162화. 드라마에 섭외가 됐습니다.
드라마에 섭외가 됐다.
케이블 채널, TNC 드라마에.
이른바 첫 연기였다.
“여기서 다 같이 인사하고, 그다음 한 명씩 대사를 치면 되는 거지?”
“어. 맞아.”
당연하지만 개인 출연은 아니었다.
멤버 모두가 함께 출연하게 되었고,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별 출연에 해당됐다.
우리가 출연하게 될 드라마는 TNC의 새 드라마 <목소리를 찾아가세요.>. 해당 드라마는 라디오 PD인 남자 주인공과 웹툰 작가인 여자 주인공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여자 주인공이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인 ‘윈썸’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특별 출연인 만큼 분량은 굉장히, 아주, 매우 적었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장면과 우연히 마주친 남자주인공과 대화하는 장면이 출연하는 장면의 전부였으니까.
“그래도 단체로 출연한다고 생각하니까 좀 덜 떨린다.”
“아니, 그보다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는 게 더 놀랍지 않아요?”
“아니. 그것보다 발연기가 더 걱정이야······.”
윤도운이 한숨을 푹 내쉼과 동시에 말했다. 아무래도 멤버 모두 연기 경력이 전무하다 보니 당연한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신하람은 그런 윤도운에게 무슨 걱정이냐는 듯 말했다.
“그래도 대사가 한 줄씩이잖아요. 딱히 발연기 할 거리도 없을 것 같은데.”
“또 모르지······.”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여전한 모양이었다.
근데 차선빈은 어렸을 때 뭐 특출이라도 한 거 없나. 왠지 드라마 한 번 쯤은 나갔을 것 같은데.
“아니, 한 번도 없어.”
“아, 그래?”
“응. 뮤직비디오 특출 같은 건 몇 번 한 적 있는데, 드라마 같은 건 처음이야.”
그렇군.
결국 다 처음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대사 같은 건 한 줄에 불과했다. 그러니 금방 지나가지 않을까 싶은데.
“세현이 너도 연기 처음이지?”
“응.”
“근데 왠지 얘 잘한 것 같지 않냐? 나만 그래?”
“맞아요. 세현이 형 잘할 것 같아요.”
아니, 애초에 잘하고 자시고 간에 대사가 한 줄인데. 아, 물론 나는 공연하는 장면에서는 도맡아 노래를 할 예정이긴 했으나 노래는 뭐, 그냥 부르면 되는 거니까.
‘사실 연기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바로 출연 배우였다.
이 드라마의 주연 배우이자 남자주인공.
[도태영 役 : 박시겸]
박시겸.
그는 바로 루트 멤버 중 한 명이었기에.
* * *
박시겸.
나이는 형보다 1살 위로 신도하와 동갑이었다. 그룹 포지션은 리드보컬과 서브댄서.
루트 활동 당시 박시겸은 형 다음으로 연기를 시작한 멤버였고, 그렇게 연기를 시작한 이래로 연기에 욕심이 있던 건지 배역을 가리지 않고 꽤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리고 어느새 주연까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박시겸은 주연 자리를 종종 꿰차곤 했다. 연기력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렇게 연기를 꽤 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시겸은 이제껏 자신을 대표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지 못했다.
이런 박시겸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대본 보는 눈이 없다.’라고 칭했다. 그래서인지 맡는 역마다 캐릭터성이 진부했고.
그래도 일단 인지도가 매우 높고, 연기력도 어느 정도 갖췄으니 아마 대본이 끊길 일은 없었을 터였다.
“아, 박시겸 선배님이랑은 알아?”
“친분 같은 건 없고, 그냥 안면만 있는 사이야. 어렸을 때 몇 번 만난 적이 있거든.”
“신도하 선배 때를 생각하면···이번에도 반겨주시려나?”
신도하 때.
그러고 보니 그땐 참 터무니없게 반겨주긴 했었지. 예상과 달리. 물론 지금도 터무니없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지만.
다만, 박시겸은 그렇지 않을 터였다.
아마도.
그리고 며칠 뒤 촬영 당일.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과 함께 제일 먼저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래요, 어서 와요.”
<목소리를 찾아가세요.>의 연출을 맡은 정한철 감독은 그렇게 웃는 얼굴로 반겼다.
“아, 실물로 보니 다들 더 잘생겼네.”
“감사합니다!”
“우리 작가님께서 요즘 한창 윈썸에 빠져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에도 넣었다고. 근데 이렇게 보니 왜 그런지 알겠네요.”
그렇게 정한철 감독은 대화 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뒤이어 오늘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전한 뒤, 촬영장 내부에 마련된 배우 대기실로 향했다. 정확히는 박시겸의 대기실로.
주연 배우 중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이니 당연하게도 인사를 하러 가야 했다.
“지금은 안 계시고요, 잠깐 나가셨나 봐요.”
하지만 막상 가니 대기실에 없었다.
촬영 시작 시간까지 아직 좀 여유가 있던 터라 잠시 바람을 쐬러 가신 것 같다며 스텝은 전했다.
‘귀찮게 두 번 왔다 갔다 해야겠네.’
그래서 일단 나중에 다시 오기로 했다.
어찌 됐건 촬영 전 얼굴도장은 찍어야 했고, 이에 나중에 다시 인사드리러 오겠다는 말을 전한 채로 대기실을 나왔다.
그리고 복도로 나오는 사이, 순간적으로 측면에 있던 창밖 너머로 시선을 두었다. 오늘따라 햇빛이 강한 탓이었다.
‘어.’
그런데 그때,
야외 흡연 부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박시겸?’
그리고 그렇게 찰나의 순간, 담배를 물고 있던 박시겸과 시선이 마주쳤다. 동시에 박시겸의 미간이 묘하게 좁아졌다.
* * *
박시겸과는 그렇게 잠시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한 채로 박시겸은 물고 있던 담배를 조심스럽게 빼 들었다.
‘바람 쐬러···흡연이었군.’
흡연 부스는 촬영장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난 곧 시선을 돌렸다.
굳이 마주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기에.
‘대충 다 피고 나면 알아서 대기실로 돌아오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멤버들과 다시 인사를 하러 오면 됐다.
다시 말해 그냥 못 본 척했다.
굳이 흡연구역까지 갈 필요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았던 터라.
“왜?”
“아니. 가자.”
그렇게 창밖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나중에 혹여 이에 관해 묻는다면, 그냥 몰랐다고 할 생각이었다. 눈이 안 좋은 걸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나는 대기실에서 박시겸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방문했을 무렵, 박시겸은 대기실 한 켠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담배 냄새 같은 건 전혀 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에 박시겸은 그런 우리를 조용히 쳐다보는 듯 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눈매에 차가운 인상.
거기에 어떠한 변화도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당연하지만, 어렸을 때 느꼈던 인상과 달라진 게 없었다. 그리고 이내 박시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물이 낫군.”
······?
이 두서없는 말은 뭐냐.
앞선 말에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 했다. 멤버들 역시 조금씩 당황한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시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예전부터 우도현한테 연기를 시키라고 했었는데···어쨌든 연기를 하게 되긴 했군.”
그렇게 박시겸은 혼자만 아는 말을 중얼거렸다. 앞선 말은 일단 처음 듣는 말이었다. 형한테 한번도 들은 적 없었고.
“어쨌든 왔으니 잘해보자. 씬은 얼마 없지만···그건 상황상 어쩔 수 없는 거니.”
그리고 나를 포함한 멤버들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이내 좀 전에 앉아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뒤이어 박시겸은 가지고 있던 대본을 다시금 펼쳐보였다. 대화가 끝났음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여전하네.’
어렸을 때 봤던 박시겸의 모습과 달라진 게 없었다. 진중하고도 철두철미한 성격. 꽤 딱딱하기도 하고.
기억하기로는 루트 멤버 중 가장 말이 없는 편에 속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한 적도 별로 없었고.
“뭔가 방송에서 보던 이미지보다 조금 더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인 것 같아요.”
대기실로 돌아가던 중 신하람이 말했다.
“나도 말씀하시는데, 괜히 눈치를 보게 되더라.”
“바쁘셔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윤도운이 말했다.
딱히 바빠서 그런 건 아닐 터였다.
원래도 제 할 말만 하는 타입이었던 것 같은데.
방송에서는 그나마 원래 성격보다 유한 착실한 청년 이미지가 주된 이미지였다. 그렇기에 앞서 멤버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대충 준비된 씬만 잘 끝낸다면, 특별히 부딪힐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이제껏 봤던 모습으로 대충 분석해본다면, 본인이 설정한 선만 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 삼거나 하지 않을 듯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짐작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뒤.
촬영 준비가 끝났다는 말을 전달받았다.
그대로 멤버들과 난, 음악 방송 때와 마찬가지로 마이크를 손에 쥔 채 무대 위로 올라갔다.
“윈썸 분들은 그냥 평소 무대 하듯 편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컷 소리가 날 때까지 부탁드릴게요.”
준비된 곡은 가장 최근 곡인 ‘Strayer’였다. 촬영은 곡의 후렴을 부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극의 상황은 방송국에서 우연히 윈썸이 리허설 하는 걸 발견한 남자 주인공, ‘도태영’이 이에 이끌리듯 다가가는 장면이었다.
첫 장면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사가 아닌 공연을 하는 부분인 만큼 그나마 긴장이 덜 됐다. 대사 치는 거 없이 이건 정말 평소대로만 하면 되니까.
[자, 하이-큐!]
감독의 시작 소리와 함께 인이어 너머로 곡의 후렴 부분이 들려왔다. 동시에 우리는 정해진 동선에 맞춰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어.’
그런데 안무를 한창 추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인이어에서부터 의문의 노이즈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지지지직]
[-뚝.]
‘뭐야, 끊겼어?’
그러더니 곧 인이어가 끊겨버리는 사태까지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멤버들의 표정에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나만 끊긴 건가.’
다른 멤버들이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내 인이어에만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이럴 경우 제대로 노래하기가 힘들었다.
와중에 감독이 이왕이면 라이브 무대를 해줬으면 한다면서 요구를 한 덕에 공연은 라이브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끊고 가야 하나.’
거기서 잠깐 고민했다.
안 나오는 인이어를 들고 막무가내로 공연을 하는 것보단 다시 찍게 되더라도 제대로 하고 가는 게 좋을 터였다.
동시에 멤버들의 표정을 다시 한번 살폈다. 분위기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그냥 가자.’
일단은 이대로 컷까지 가보기로 했다.
인이어가 안 나온다고 무대 위에서 멋대로 공연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실제 무대 위였더라도 ‘끊고 다시’ 같은 건 없었을 터였다. 게다가 아예 노래를 못 하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난 마이크를 다시 한번 고쳐 잡은 채로 그대로 동선의 가장 앞으로 나가 섰다.
[이대로 멈출 순 없잖아]
[나를 한번 믿어봐]
[Go on, Go on!]
생각보다 할 만했다.
* * *
[컷!]
그대로 컷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정식 공연이 아닌 만큼 곡은 2절 후렴에 들어가기 직전에 끝이 났다.
“아, 라이브 정말 잘하는데?”
정한철 감독이 이제까지 중 가장 밝은 표정으로 흐뭇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이거 그냥 이대로 바로 가도 되겠어. 다들 표정도 좋고, 라이브도 좋고. 요즘 아이돌 그룹은 정말 다 실력이 너무 좋아요.”
어지간히도 만족스러웠던 건지 앞선 장면과 관련한 칭찬이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떻게, 됐네······.’
처음엔 인이어 없이 노래를 하는 것도 할 만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현실적으론 역시나 쉽지 않았다. 일단 그 차이가 극명했고.
그래도 어찌어찌 하겠다고 한 게 다행히도 감독의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공연 관련해서는 더 이상의 추가 촬영은 없었다.
“세현 씨, 세현 씨가 메인 보컬이죠?”
“네. 맞습니다.”
“아, 노래 너무 잘하네요. 한번에 알겠어요. 이마에 메인 보컬이라고 써놓은 줄 알았다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독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 그런 감독의 뒤에 서 있는 한 인영이 보였다.
박시겸이었다.
뒤이어 박시겸은 나에게 몇 발자국 더 다가오는 듯 하더니, 이내 말했다.
“무대, 잘 봤어요.”
이전과 변함없는 딱딱한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