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63화 (163/413)

163화. 정석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잘생겼군.’

그것이 박시겸이 우세현을 발견했던 당시 가장 처음 했던 생각이었다. 이어서 그는 입가에 있던 담배를 잠시 빼낸 뒤 그대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우연한 상황에 마주친 게 된 거지만, 박시겸은 앞서 우세현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도 그럴 게 어렸을 때 보았던 얼굴과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느끼기엔.

그때 우세현이 미련 없는 모습으로 등을 돌렸다. 마치 자신을 못 본 척하는 것 마냥. 이에 박시겸은 잠시나마 어이가 없었다.

‘형이랑 성격이 비슷한가 보군.’

순간 떠올려진 익숙한 얼굴에 박시겸은 그대로 깊게 연기를 뱉었다.

‘······슬슬 다시 돌아갈 때가 됐네.’

박시겸은 그렇게 끼고 있던 담배를 옆에 있던 재떨이에 지그시 눌렀다. 짓눌린 담배는 그대로 소리 없이 꺼져 들어갔다.

‘지금이 대충 19, 아니 20살 정도인가.’

이어서 그는 가지고 있던 향수를 하나 꺼내 들었다. 동시에 손목 등에 익숙하게 뿌린 뒤 그대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윈썸의 소식은 그간 간간히 전해 듣고 있는 바였다. 아무래도 같은 연예계이다 보니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들리게 되어 있었다.

다만, 박시겸은 이에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우도현의 동생이 데뷔를 했다고 들었을 땐, 그저 그 꼬맹이가 데뷔를 했구나 싶은 정도의 관심이었다.

언젠가 한번 만나게 되지 않을까 은연중에 생각하긴 했다만 이렇게 빠른 시일 내, 그것도 현장에서 만나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다.

윈썸에게 주어진 역할과 대사는 특별 출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당히 적은 분량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 자신과 마주하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렇기에 박시겸은 지금 윈썸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촬영되는 씬은 방송국 내에서 들리는 윈썸의 무대에 홀리듯이 따라가게 되고, 그곳에서 윈썸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잘하네.’

지금은 윈썸의 무대 분량 컷이 진행되고 있었다. 복잡한 안무 동선 속에서도 윈썸은 꽤나 능숙한 라이브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확실히 노래를 잘한다.

우세현이.

‘왜 노래로 갔는지 알만해.’

이제껏 왜 연기 쪽으로 가지 않았나 내심 의문이었던 와중에 이렇게 직접 무대를 보고 나니 조금이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이와 더불어 엄청 튀었다.

무대에서.

굳이 센터에 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마치 어디서든 센터인 마냥.

‘······이렇게 무대를 보는 건 오랜만이군.’

반짝이는 조명, 화려한 무대 세트.

그 아래에서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풍경에 박시겸은 그렇게 잠시 앞선 무대를 감상했다.

* * *

“무대, 잘 봤어요.”

박시겸이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 그리고 딱딱한 말투인 건 변함이 없었다.

겉보기엔 의례적으로 하는 말 같았는데, 어찌 됐건 현재는 능력을 오프해둔 터라 정확한 의중까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 시겸 씨가 봐도 그렇지?”

“네. 아주 잘합니다.”

“윈썸이 정말 실력이 좋아~”

그렇게 박시겸과 정한철 감독은 잠시 대화를 나누는 듯 하더니 이내 다가온 스텝에 의해 감독이 먼저 자리를 떠나게 됐다.

그리고 어색한 와중에 어쩌다 보니 박시겸과 둘이 남게 되는 꼴이 됐다.

“칭찬, 감사합니다.”

일단 앞선 말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달리 할 말이 없기도 했고, 그래도 의례상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자 박시겸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내 말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말하고 싶은 거?

그리고 얼마 안 가, 박시겸의 딱딱한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대사는 있는 그대로 치는 게 좋아.”

“예?”

“개인적으로 원칙에서 벗어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말이야.”

대사? 원칙?

그렇게 뜬금없는 말만 늘어놓는 듯 하더니 이내 박시겸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본인의 위치로 돌아갔다.

‘대충 애드리브 같은 거 하지 말라는 소린가.’

앞서 말들을 유추해보면, 대충 그런 것 같았다. 근데 이 대사에 애드리브 요소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고작 몇 줄인데.

“어, 인이어가 안 나왔어요?”

“네.”

“아이고······.”

스텝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대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느새 앞선 내 말을 들은 건지 백은찬이 한껏 놀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인이어가 안 나왔다고?”

“응.”

“언제부터?”

“대충 시작부터인가. 처음엔 나왔는데 어느 순간 노이즈가 나더니 끊기더라고.”

이에 백은찬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현 씨, 인이어가 안 나왔어요?”

“아, 네.”

그리고 어느 순간 인이어에 문제가 있었단 말이 촬영장 전체로 퍼지게 되면서 다들 한번씩 내게 관련 말을 묻곤 했다.

“대단하네, 그 상황에서 당황하지도 않고.”

“근데 그게 인이어가 안 나오는 상태에서 한 라이브였단 거예요?”

“와, 근데 진짜 아무도 몰랐어요.”

사실 컷 소리가 나면 바로 이야기해 다음 컷에는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려고 했는데, 어째 첫 컷에 오케이가 난 덕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니, 넌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냥 할 생각을 했냐?”

“그럼 해야지, 어떡하냐.”

“뭐, 그건 그렇긴 한데. 나였으면 얼굴에 당황한 티 엄청났을 듯.”

“인정. 은찬이 형이라면 백퍼 티 났어요.”

“하하. 하람아, 잠깐 와봐라.”

동시에 신하람은 우리에게서로 빠르게 멀어졌다. 당연히 놓칠 백은찬이 아니었고.

“근데 전혀 눈치 못 챘어. 무대 위에서의 느낌은 평소랑 같아서.”

“그렇게 하려고 되도록 힘썼지.”

그러자 차선빈은 이상하게 놀란 얼굴로 나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씬은 단 하나였다.

이는 박시겸과의 대화 씬으로 주인공인 도태영이 여자 주인공을 위해 윈썸에게 싸인을 부탁하는 장면이었다.

“아, 뭔가 벌써부터 표정 관리가 안 돼.”

“입꼬리 내려.”

“나 입꼬리 올라갔어?”

그러자 백은찬은 황급히 거울을 이용해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입꼬리가 올라간 건 아닌데 표정이 좀 요상하긴 했다.

“우세현!”

그리고는 내 어깨를 잡더니 이내 뚫어지게 쳐다본다. 뭐야, 왜 이래.

“됐어!”

[“진정이!”]

잘 모르겠지만, 대충 진정이 됐다는 얘기 같았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자, 그럼 이번 씬 바로 갈게요.”

시작은 앞서 공연을 지켜보고 있던 도태영이 그대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윈썸에게 말을 거는 장면부터였다.

[하이-큐!]

“안녕하세요, 윈썸.”

“어! 안녕하세요, PD님!”

라디오국 PD인 도태영은 윈썸과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리고 도태영은 그러한 윈썸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우리의 대사가 시작됐다. 특별한 건 없고, 그냥 안부를 묻는 게 다였다.

“잘 지내셨어요? 이번에 저희 곧 <온 라디오> 출연하거든요!”

“아, 예. 그렇죠.”

“지난번에 너무 잘해주셔서 또 나가고 싶다고 매니저 형한테 말씀드리고 그랬어요.”

“나도 윈썸 노래 잘 듣고 있어요. 하하. 그런 의미에서 여기 싸인 하나만!”

그대로 도태영은 가지고 있던 포스트잇 하나를 꺼냈다. 우연히 만난 터라 종이고 뭐고 제대로 준비된 게 없던 탓이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게 접힌 포스트잇 한 장뿐. 묶음도 아닌 한 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앞서 도태영이 내민 포스트잇를 받아들며 자연스럽게 대사를 치면 됐다.

“네, 당연히······”

[“좋다, 자연스럽다.”]

[“화면에 잘 나오네.”]

그때, 순간적으로 주변에 있던 스텝 한두 명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이에 나도 모르게 대사를 멈칫하고 말았다.

[컷!]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죄송합니다.”

“그럼 다시 갈게요. 방금 아주 좋았어요.”

그리고 나는 한번 더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동시에 박시겸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마치 욕을 하는 듯한 눈이군.

‘일단 오프.’

동시에 능력을 바로 오프했다.

[현재 상태 : OFF]

좋아. 이젠 괜찮겠지.

한 줄밖에 없는 대사를 NG를 낸 탓에 꽤나 골이 아팠다.

“네. 당연히 해드려야죠. 주세요.”

그리고 대사와 함께 박시겸으로부터 포스트잇 하나를 건네받았고, 이내 싸인 했다.

“고마워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단체 대사.

그때 찰나의 순간이지만, 박시겸과 또 다시 눈이 마주쳤다.

[컷!]

그와 동시에 감독의 컷 소리가 들려왔다.

* * *

이번 씬은 지난 공연 씬과 다르게 앵글을 변경하거나 하는 식으로 몇 번 더 반복해서 찍었다.

“자, 좋아요. 여기까지만 할게요.”

드디어 끝난 건가.

길지 않은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집중을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지친 감이 있었다.

다행히 그 뒤로 NG가 나거나 지적을 받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인지 촬영도 꽤 빨리 끝났고.

“다들 오늘 잘했고, 수고 많았어요. 잘생긴 친구들이 연기도 잘하니 좋네요.”

“감사합니다!”

마찬가지로 박시겸 역시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박시겸은 그 한마디만을 남긴 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음 촬영 현장으로 떠났다.

“드라마 촬영이라는 게 생각보다 힘들더라.”

이동하던 도중, 멍한 얼굴의 도운이 형이 말했다.

“일단 한 장면 찍을 때만 해도 여러 각도에서 여러 번 촬영하니까요.”

“대사가 짧은 데도 혹시 실수할까봐 엄청 떨었어.”

“근데 박시겸 선배님 연기 잘하시더라고요.”

“아, 맞아. 연기 잘하시더라.”

백은찬이 동의하고 나섰다.

그렇지, 잘하긴 했지.

역시 연기 짬밥은 무시할 수 없는 건지 대사 전달력 같은 게 확실히 다르다는 게 체감이 됐다.

근데 형도 연기 잘하는데.

연기는 언제 하는 거냐, 형.

“근데 세현아, 아까 박시겸 선배님이랑 무슨 얘기 하지 않았어?”

옆 좌석의 차선빈이 물었다.

“아까?”

“응. 공연 장면 끝나고.”

아. 그때군.

무대에 내려온 직후를 말하는 거였다.

“그냥 무대 잘 봤다고 하던데.”

“아, 그래?”

“응.”

그러자 차선빈이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애드리브 얘기는 굳이 안 해도 되겠지.

그것보다 그건 왜 갑자기 이야기한 거지.

내가 애드리브를 할 것처럼 보였나.

그렇다면 상당히 잘못된 분석이었다.

‘그런데 아까 생각이 흘러들어온 건 우연이었나.’

가끔씩 멋대로 흘러들어오는 일은 많았는데 하필 타이밍이 타이밍이다 보니.

‘어쩌면 연기할 때도 무대랑 비슷한 영향이 오는 건가.’

그런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대에서 능력을 켰을 때와는 그 감각이 확실히 달랐다.

무대에서보다는 마치 평소 우연히 생각이 흘러들어올 때와 느낌이 더 비슷해서.

단순히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무대에 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됐다.

‘하지만 또 모르는 거니.’

아무래도 앞으로 연기를 하게 될 때면 무조건 오프를 해두고 시작해야 할 듯 했다. 물론 연기를 언제 또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나는 시트에 몸을 기댔다.

피곤한 것도 피곤한 거지만, 그 탓에 눈이 무거웠다.

왠지 오늘 하루는 다른 때보다 조금 더 긴 듯한 느낌이었다.

* * *

“시겸 씨도 들었어요?”

“뭘요?”

“아까 윈썸 인이어 안 나왔대요.”

“아, 들었습니다.”

박시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듣고 깜짝 놀랐잖아요. 그 상황에서 당황하지도 않고, 거기에 바로 오케이. 요즘 아이돌들은 정말 실력이 좋은 가 봐요.”

“그런가 보네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박시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단순히 요즘 아이돌 때문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이미 경험한 바라서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실력 수준이 높아졌다고 한들 그건 간단히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멘탈이 좋은 거겠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일단 멘탈도 중요했다. 실력이 뛰어나고 해도 멘탈이 무너져 그걸 활용할 수 없다면 그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그렇기에 박시겸은 실력적인 측면보다는 멘탈적인 부분에서 놀랐다.

‘연기적인 부분은 형편없지만.’

고작 한 줄밖에 없는 대사를 NG를 냈다.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실수였다. 기본도 안 된 실수.

요즘 소속사에선 연기 교육도 안 시키는 건가.

여기에 한 편으로는 괜한 애드리브를 날리는 건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애드리브 따윌 걱정한 건, 다름 아닌 우도현 때문이었다.

‘우도현은 워낙 변칙이 많았으니까.’

혹여 동생인 우세현 역시 그렇지 않을까 걱정을 했던 바였다. 대충 성격이 비슷해 보였으니.

‘하지만 괜한 우려였던 것 같군.’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과했던 것 같았다. 사실 어떻게 봐도 애드리브 같은 건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보다 왜 굳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답지 않게.

그는 변칙이 있는 걸 싫어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그의 일상 속에 작은 변칙이 생겼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답지 않았던 작은 행동으로 인해.

그리고 그 순간, 미처 피우지 못한 담배가 생각났다.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변칙 따위, 질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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