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말이 통하질 않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그대로 닫히기 직전, 문밖에서부터 누군가 [열림]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까만 모자의 여성 한 명. 그와 동시에 앞에 있던 여성과 순간이지만 눈이 마주쳤다.
[문이 닫힙니다.]
여성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가장 꼭대기 층의 버튼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층수 버튼 앞에 섰다.
그리고 정적이 돌았다.
그와 함께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익숙한 기시감 같은 게 공기 중을 맴도는 것 같았다.
이에 무의식적으로 폰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땐 그저 폰에 시선을 두는 게 편했다.
[“우세현.”]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에서 울리듯 천천히.
앞선 여성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지만, 그건 어떻게 봐도 앞에 있던 이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번 들리기 시작한 목소리는 그대로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오늘도 존X 잘생겼어.”]
[“오래 기다리긴 했어도 몰래 뚫고 온 보람이 있네.”]
‘사생.’
같은 입주민 따위가 아니라 사생이었다.
어째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게 느껴진다 싶더니.
‘일단은 조용히.’
이대로 가기로 했다.
사생인 걸 눈치챘다 하더라도 사방이 막힌 장소이니만큼 그걸 티 내지 않는 게 나았다.
저쪽에서 먼저 다가오지 않는 이상.
그리고 어차피 내릴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었다. 엘리베이터는 착실히 제 층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층에 도착하면, 그대로 빠르게 내린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근데 사생이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온 거지.’
보통은 공동 현관 입구에서 막히게 되어 있었다. 거기서부터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보통 숙소 앞에 있던 사생들도 아파트 내부까지는 들어오지 못한 채 밖에서만 서성였다.
앞서 사생이 했던 생각으로 봤을 때, 몰래 들어온 건 기정사실인 듯 한데 그 과정이 정확히 가늠이 안 갔다.
들어오는 주민들 사이에 몰래 섞여서 들어왔나.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긴 했다.
[“세현이.”]
그런데 그 순간,
사생의 목소리가 한번 더 들려왔다.
‘아.’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덜컹!
동시에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이 멈췄다. 층수를 확인해보니 아직 숙소가 있는 층까지 몇 층 남아 있는 상태였다.
“세현아.”
그리고 앞선 사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생각이 아닌, 실제 목소리가.
“혹시 벌써 눈치 깠어?”
그 순간, 사생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게 보였다.
젠장.
* * *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러자 내부 공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어떠한 소음조차 없는 공간 속에서 지금 이곳을 채우는 건 오직 아슬아슬한 감각의 적막만이 전부였다.
‘버튼을 누른 건가.’
보통 엘리베이터 버튼의 경우, 층 버튼을 두 번 누르면 버튼 취소가 된다.
보아하니 사생이 앞서 내가 눌렀던 층과 자신이 눌렀던 층의 버튼을 취소시킨 모양이었다.
“그렇게 눈치가 빠르다고 말이 많던데. 그게 진짜 다 사실이었나 봐.”
검은 모자의 사생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나를 보며 말했다.
“특히나 사생 카메라나 붙순이들 낌새를 그렇게 빠르게 눈치챈다고 다들 불만이 많던데······.”
눈치 못 챌 수가 있나.
어느 정도 거리 안에 있으면 들리는데.
물론 어디까지나 내 의지가 아닌 능력이 멋대로 날뛰는 것에 불과했다.
“우리 세현이 진짜 눈치 빠르다.”
그 순간, 대충 눈대중해 봤다.
앞선 사생과 엘리베이터 버튼 간의 거리를.
‘제대로 막고 있군.’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눈치를 챈 걸 알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엘리베이터 버튼을 제대로 막고 서 있는 위치였다.
“버튼, 다시 눌러주시죠.”
“아, 이거? 원랜 사진만 찍을까 했는데, 역시 말 한번 걸어보고 싶어서.”
그렇게 까만 모자의 사생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조금 더 가리고 섰다. 아무래도 쉽게 비킬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 멤버들 다 숙소에 있나.’
동시에 들고 있던 폰을 주머니에 넣는 척, 빠르게 통화 목록을 켰다. 그리고 그대로 대충 아무 목록을 눌렀다.
‘분명 매니저 형이 온다고 했었지.’
그러니 지난 통화 목록에서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면 지금 상황을 전달할 수 있을 거였다.
최신 통화 목록에는 멤버들이나 매니저 형들밖에 이름이 없으니까.
그리고 어떠한 방면으로든 매니저 형에게 이 상황을 전달할 수 있다면, 곧바로 상황이 종료될 가능성이 컸다.
되도록 신중해야만 했다.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이상.
‘신호는 대충 걸리고 있을 테니, 적당한 대화가 필요하겠군.’
더불어 이쪽의 상황을 알릴 수 있을 만한 그럴듯한 대화가 필요했다. 앞서 미리 생각을 확인해본 결과, 녹음은 하지 않은 채였다.
대화한 걸 남기겠다고 멋대로 녹음을 켜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이에 나는 적당히 말을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러자 검은 모자의 사생이 전보다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어. 너희 층 눌러 줄게. 근데 대신 사진 찍으면 안 돼?”
그러더니 들고 있던 휴대폰을 든다.
여전히 말이 안 통했다.
“아니면 제가 그냥 문 열겠습니다.”
“그보다 세현아, 모자는 이제 그만 쓰자. 잘생긴 얼굴 다 가릴라.”
그러더니 한 발자국 다가왔다.
이에 곧바로 조금 물러섰다.
그리고 모자를 더욱 눌러썼다.
말을 하곤 있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하거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마. 내가 다시 층 버튼 눌러 준다니까?”
퍽도.
솔직히 말해서 그냥 내가 뚫고 나갈 것도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던 대로 밖에서 열리는 게 베스트고 아니면 사생이 스스로 비키는 수밖에 없는데, 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거의 제로였다.
이 상황에서 순순히 다시 버튼을 누를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 그걸 배제하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지만 이쪽에서 직접 여는 것도 타이밍과 각도, 혹은 사진을 미끼로 하면 가능할 법도 했다.
“있잖아. 내가 전화도 많이 했었는데.”
전화?
대충 번호까지 뚫은 사생이라는 건가.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사실 따위 별로 중요치 않았다.
“비켜주시죠.”
“아, 세현이랑 대화하니까 좋네. 역시 이렇게 직접 대화할 걸 그랬나봐.”
말이 안 통하는군.
아무래도 적당한 타이밍을 봐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대충 대화를 하면서 사진으로 유도를 하면,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세현이랑 더 얘기하려면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여야겠다, 그치?”
타이밍하고는.
순간적으로 쥐고 있던 휴대폰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슈우웅-
‘어?’
그리고 그 순간,
내내 멈춰있던 엘리베이터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 X발! 이거 왜 이래?!”
검은 모자의 사생도 마찬가지로 놀란 것인지 자신의 뒤에 있던 버튼을 뒤돌아 한번 더 확인해보는 모양새였다.
당연하지만, 안에서 눌러진 버튼은 없었다.
‘그럼 역시 밖에서······.’
이에 나는 문 쪽을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대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띵-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어느 층에서 멈췄다. 동시에 느린 속도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립니다.]
그것은 마치 슬로우모션을 거는 것 마냥 아주 천천히,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눈앞으론 매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단 듯이.
“우세현.”
문이 열리고 난 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안지호의 얼굴이었다.
“나와.”
상당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 * *
안지호는 말없이 그대로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제대로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다.
‘혹시 연락을 받고······.’
정황상 지금 상황을 대충 다 파악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긴장의 끈이 풀렸다. 이후 곧바로 알 수 없는 안도감 같은 게 조금씩 퍼졌다.
“진혁이 형!”
그 순간, 안지호는 매니저 형의 이름을 큰 목소리로 불렀다. 매니저 형도 함께 있었던 건지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씨X!”
이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한 사생은 이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황급히 눌러보려고 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안지호가 바깥에서 여전히 잡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매니저 형들이 도착했고, 사생은 당연한 수순으로 자포자기한 채 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건 아주 잠깐의 사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졌다.
“우세현.”
그리고 다시 한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너머로부터.
“이쪽으로 와.”
안지호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그대로 발이 움직였다. 고작 몇 걸음에 불과했음에도 한 걸음 한 걸음이 꽤나 묵직했다.
그렇게 안지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내내 눌러 앉아있던 무언가가 이제야 완전히 해소가 된 기분이었다.
* * *
“혹시 업어 달라는 거냐?”
“뭐?”
안지호가 이내 내게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야.
“그냥 힘이 풀려서 그래, 힘이······.”
그리고 잠시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이내 숨을 한번 깊이 내쉬었다.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내심 당황했던 모양이다.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한번에 긴장이 풀어진 느낌.
“안지호.”
“어.”
“먼저 들어가도 돼.”
“어.”
아무래도 바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그렇게 말했는데, 그럼에도 안지호는 여전히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볼 일은?”
안지호가 물었다.
어느새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다 보고 왔어.”
그리고 안지호는 더 묻지 않았다.
한번 더 물을 줄 알았더니.
사실 그랬어도 대충 둘러댈 생각이었다.
선물을 미리 말할 순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다시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잔해서 좋았다. 진정이 되는 기분.
“안지호.”
“응.”
“고마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숨 좀 고르고 나니 다시 움직일 힘이 났다. 곧바로 그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자. 바닥 차가워.”
그런데 어찌된 건지 안지호는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
무슨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어, 나 역시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얼마 안 가 안지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여기 몇 층이야? 우리 층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확인해보니 원래 숙소가 있던 층보다 몇 층 아래였다. 그로 인해 안지호와 난 계단을 이용해 몇 층 위로 올라갔다.
“근데 너한테 전화 갔어?”
“어.”
역시 그랬군.
정신이 없어 그냥 되는 대로 터치를 한 건데 마침 안지호의 번호로 연락이 간 모양이었다.
일이 복잡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깊게 한숨을 한번 쉬었다.
“우세현.”
“응.”
“괜찮냐?”
평소와 달리 조심스럽게 묻는다는 게 느껴졌다. 그럴 필요 없는데.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명확했다.
“응. 괜찮아.”
그러자 안지호가 조금 더 거리를 좁혀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난, 안지호와 함께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숙소로 돌아가자, 윤도운과 신하람이 사색이 된 얼굴로 우리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아니, 무슨 일이예요?”
그리고 대충 앞선 이야기를 했다.
사생이 공동 현관 내부까지 침입을 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죽치고 있다가 그대로 나를 따라 들어온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어째 두 사람의 표정이 삽시간이 안 좋아지는 게 보였다.
“미친 거 아니에요?”
“그보다 세현이는 괜찮고?”
이에 괜찮다고 말했다.
당연하지만 다친 곳도 없고, 무슨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안지호가 빨리 와준 덕에, 별일 없었어요.”
“아니, 그거 완전 놀랐잖아요. 지호 형이 갑자기 매니저 형들 부르면서 막 뛰쳐나가길래 뭔 일 났나 싶었어요.”
“어, 맞아.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데도 말도 안 하고 무작정 달리더라.”
이에 그랬었냐 물어보니 안지호는 모르겠다며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더불어 그런 안지호와 함께 나가려던 도운이 형과 하람이를 다른 매니저 형이 말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좋지도 않은 상황에 우르르 나올 필요는 없었으니까.
“잠깐, 뭐라고? 엘리베이터? 침입?”
“세현아, 괜찮아?”
뒤늦게 숙소로 돌아온 차선빈과 백은찬도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나를 찾았다.
“어떻게 들어온 거고? 숨어 있었다고? 아니, 제대로 돌았네.”
“세현아, 안색이 나빠 보여.”
아니, 둘 다 진정 좀 해라.
와중에 동시에 말하니 더 정신이 없었다.
“일단 진정 좀 하고······.”
“어떻게 번호가 뚫려? 이대로 괜찮은 거냐? 야, 안 되겠다. 이제부터 엘리베이터는 무조건 두 명씩 타자.”
“세현아, 밥 먹을래?”
아무튼 한동안 그렇게 차선빈과 백은찬은 내 방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영 갈 생각을 안 하는 것 같길래 밥을 핑계로 일단 방에 보내 놨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매니저 형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앞선 사생을 경찰에 넘겼다는 얘기였다. 주거 침입 등을 명분으로.
더불어서 회사에서는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조취를 취하였는데, 그건 바로 공식 커뮤니티의 공지였다.
[공지] 윈썸, 사생팬 관련 법적 대응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