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별일 없이 멀쩡해.
[우세현 연습생]
뜬금없이 폰이 진동했다.
그리고 뒤이어 확인한 액정에는 위와 같은 이름이 떠 있었다.
‘전화?’
안지호는 이내 화면을 한번 터치했다.
그리고 곧 폰을 귀에 갖다 대었다.
“어, 왜.”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에 잘못 걸린 건가 싶어 그대로 통화를 종료시킬까 하던 찰나, 폰 너머로 목소리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버튼, 다시 눌러주시죠.]
우세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찌된 건지 볼륨이 상당히 작았다. 마치 휴대폰만 켜놓은 채로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하지만 울리는 목소리 덕에 어떠한 내용인지 확실히 인지가 됐다. 여기에 우세현 말고도 들리는 목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젊은 여성 목소리.
대화 내용은 완벽하게 들을 수는 없었지만, 들리는 단어만으로도 상황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안지호는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걸칠 틈도 없이 방문을 열고 나섰다.
“진혁이 형!”
“어? 왜? 뭐야?”
숙소에 와 있던 매니저는 순간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뭐라 더 물을 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 와요!”
“어, 응, 그래!”
다급하고도 어째 심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매니저는 그대로 안지호를 따라 나섰고, 이내 가는 도중 ‘사생’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생? 사생이라고?”
매니저는 다급한 목소리로 한번 더 물었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일일이 대답을 해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안지호는 이내 빠른 시선으로 엘리베이터의 층과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베이터는 움직임을 멈춘 채 숙소가 있던 층보다 몇 층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 목소리.’
모든 것을 종합해봤을 때, 우세현은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근데 사생은 어디···지호야, 어디가!”
이에 안지호는 그대로 계단을 이용해 몇 층 더 아래로 내려갔다. 고착 몇 층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두 층 아래의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이내 엘리베이터를 빛을 내더니 곧바로 움직이는 소릴 내었다.
‘빨리.’
눈앞에 보이는 숫자가 하나하나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안지호는 더더욱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의 심경을 대변하듯 그의 손가락이 엘리베이터 버튼 위로 톡톡-거리며 움직였다.
띵-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엘리베이터.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이는 앞선 장면에 안지호는 미간이 구겨짐과 동시에 제대로 짜증이 솟구쳤다.
“우세현, 나와.”
심히 개 X 같은 상황이었다.
* * *
팬 커뮤니티 공지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윈썸 팬클럽 담당자입니다.
최근 발생한 윈썸 멤버들의 사생활 침해와 관련하여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
금일 낮의 경우, 신원 미상자가 숙소 건물 내부에 무단으로 침입한 일로 인해 이를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였으며, 무단 침입 등의 혐의로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법적 조치를 하였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또한, 사생활 침해 등의 다음과 같은 사항이 지속될 시 선처 없는 처벌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소속사 또한 이와 같은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아티스트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팬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관련 기사들도 하나둘 씩 보도되기 시작했다.
- 윈썸 (WINSOME), 숙소 건물에 침입한 사생팬에 법적 조치
└ 헐 숙소에 침입했다고?
└ 존무ㄷㄷㄷ 어떻게 숙소에 침입을 하냐
└ 보니까 숙소 내부까진 아니고 공동 현관인가 거기 출입한 거래
└└ 그것도 무서운데 거기도 보통 비번 있어야 들어갈 수 있잖아?
└ 이런 일 있을 줄 알았지 안 그래도 요즘 윈썸 숙소 앞에 진치고 있는 애들 꽤 보였었는데
└ 이런 짓을 하는 사생이 아직도 있구나
└ 역시 시대를 불문하고 사생은 항상 상상을 초월함 근데 얼마 전에 비슷한 일 또 있지 않았나?
└ 법적 조치 잘했다 콩밥까지 멕였으면 꿀인데 아쉽
└ 으휴 애들 숙소 이사가겠네 도대체 왜들 그러고 사는 거냐
└ ㅁㅊ 사생X끼들은 이해하려고 들면 안됨ㄴㄴ 걔들은 걍 범죄자임
- 앞으로 사생들 눈에 보이기만 해봐라ㅗㅗㅗㅗㅗㅗ가만 안둠ㅗㅗㅗㅗㅗ
- ㅆㅂ 도대체 왜 숙소 앞에서 진을 치는 거임? 전화는 왜 하는 거고? 이해가 안감
- 예전에 사생 홈마 뭐 올라오지 않았나? IN이 리스트 같은 거 올려줬음 좋겠다 거르게ㅜㅜㅜㅜㅜㅜ
- 아티스트 보호에 좀 힘쓰라고ㅠㅠ 어떻게 했길래 사생이 숙소에 침입을 해 ㅆㅂ
- 애들 괜찮나ㅠㅠ사생 진짜 미친X들ㅠㅠㅠㅠㅠ
그리고 그 탓인지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는 사생과 관련한 이슈로 붉어졌다. 우리 일도 우리 일이지만, 앞서 숙소 침입을 당했던 타 그룹 일도 있었기에.
또한, 검은 모자의 사생이 정말로 그간 무분별한 전화를 해오던 이가 맞긴 했던 건지 이전에 비해 휴대폰이 훨씬 조용해졌다.
아니, 조용해진 건 아닌가.
[형]
“응. 왜?”
─ 기사, 뭐야.
아니, 벌써 기사를 본 건가.
물론 워낙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고 있으니 굳이 기사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을 터였다.
“그보다 형, 거기는 지금 새벽 아냐?”
─ 설명이나 해. 어떻게 된 거야, 사생.
형이 다시 물었다.
─ 숙소에 쳐들어왔다며.
“정확히는 숙소가 아니라 숙소 건물이야. 그리고 쳐들어 온 게 아니고 잠입.”
그러자 형은 한숨을 깊게 한번 내쉬었다. 어찌나 깊게 쉬던지 여기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
─ ······다친 곳은?
“전혀. 일단 육체적인 피해는 없어.”
─ 정신적인 피해는?
형이 전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특별한 건 없는데 다른 것보다 멤버들이 좀 놀란 것 같아.”
─ 다른 멤버 말고, 너.
“나도 뭐···놀란 정도.”
자세한 내용 같은 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 기사에도 구체적인 내용은 적혀 있지 않을 터였다. 단순히 ‘숙소 건물 침입’이 내용의 전부일 테고.
괜히 더 걱정시킬 필요 없었다.
─ 정말 그게 다야?
“어?”
─ 형 속일 생각하지 말고.
형이 조금 더 진지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튼 이럴 때는 귀신이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나도 모르게 털어 놨을지도. 전화상이라 다행이었다.
“괜찮다니까.”
─ ······.
그리고 형은 잠시 침묵하는 듯 하더니 이내 한숨을 한번 깊게 내쉬었다.
─ 이래서 시키기 싫었는데.
형이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앞에 들어갈 주어는 아마 연예인···이겠지.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깊은 한숨.
그걸 들으니 괜히 마음이 그래졌다.
“나 괜찮아, 형.”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 역시 붙어있어야······.
“뭐?”
─ 아니. 한국에 한번 더 가야겠다고.
아아. 그 말이었군.
그러더니 무슨 일 있으면 가장 먼저 연락하라며 계속해서 강조를 했다. 형이야말로 한국에 오기 전에 연락 좀 했으면.
여기서 형은 추가적인 잔소리들을 더 늘어놓더니 이내 그로부터 30분은 더 통화를 하고 나서야 나는 마침내 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밖에 형 말고도 밴드부 부원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괜찮은 거냐면서. 뉴스 헤드라인이 워낙 자극적으로 나갔던 터라.
더불어 연락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이에게서도 왔다. 이를 테면 신도하.
[신도하 선배님]
: 괜찮아?
[우세현]
: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도하 선배님]
: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해.
시간은 늘 있으니까.
시간이 늘 있으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근래만 해도 신도하가 새로운 뮤지컬에 출연하게 됐다며 기사난 걸 본 적이 있었다.
어쨌든 감사하다고 답을 보냈다.
이런저런 걱정을 담은 연락들이 많았지만, 걱정하는 만큼 다쳤거나 멘탈이 깨졌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해당 사생을 잡았고.
경찰에 넘기는 과정까지 잘 이루어졌으니 나름 일의 마무리는 그럭저럭 된 거였다.
“괜찮은 거 맞냐, 우세현?”
다만 멤버들도 걱정이 된 건지 종종 내게 괜찮냐 묻곤 했는데, 정말로 별 거 없었다.
“그래도 걱정되니까 앞으로는 꼭 매니저 형들이랑 혹은 멤버끼리 같이 다니고.”
“혹시 외출할 일 있으면 같이 가줄게.”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갑자기 과보호 되는 기분이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이런 비슷한 일, 한두 번도 아닌데.
이번 일 자체가 말이 되나 싶은 일이긴 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처음 겪는 걸 아니라서.
형이 루트를 활동하던 당시에도 사생과 관련 문제가 하루가 다르게 쏟아졌다.
흔히 보는 사생 택시, 모르는 번호의 연락, SNS 도배, 주거 침입 등 상상 이상으로 세상엔 말이 안 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형이 겪던 문제의 일부를 나 역시 겪기도 했었다. 마찬가지로 사생에 의해.
언제는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 앞으로 찾아오기도 했었고, 본가에 침입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 정도 일로 멘탈이 깨지거나 할 일은 없었다. 대충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와중에 다행인 건지.
그러니 정말로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나저나 우리 이사한다던데.”
“아, 맞아. 나도 들었어.”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는 숙소의 이사를 결정했다. 보안과 안전상의 이유였다.
“조금 더 큰 곳으로 이사 예정이야. 보안도 더 철저히 할 수 있는 곳으로.”
보안. 그렇지, 보안이 가장 중요하지.
“아, 그리고 화장실도 2개로.”
매니저 형이 덧붙였다.
중요한 걸 하나 까먹고 있었네.
화장실 2개.
이것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조건이었다. 이젠 씻을 때 여유가 좀 생기겠군.
* * *
그렇게 일상은 다시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던 도중, 새롭게 중요 일정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컴백.
바로 다음 앨범의 컴백 일정이 잡히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냥 컴백이 아닌 이번엔 정규 컴백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정규 1집 앨범.
정규 컴백은 일반적인 미니 앨범의 컴백과 비슷해 보이지만 상당히 달랐다. 일단 앨범에 들어가는 곡수부터 차이가 있었으니까.
4개, 많게는 5개 정도의 곡이 들어가는 미니와 다르게 정규는 무려 10곡 이상이 한 앨범에 들어간다.
그만큼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도, 진행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 들어가기 전, 또 하나의 중요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바였다.
“어, 왔냐?”
“응.”
자정이 넘은 시각.
나는 멤버들과 함께 백은찬의 방에 모였다. 이 방은 언제 와도 옷만 산더미다.
“앉아, 앉아.”
그리고 나는 그대로 차선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 들키고 왔지?”
“당연하지.”
“좋아쓰.”
지금 이 방엔 모든 멤버가 모여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멤버는 나를 포함해 모두 5명. 안지호가 빠져 있었다.
“언제 봐도 신기해. 안지호는 어떻게 그렇게 12시만 되면 칼 같이 잠이 드냐?”
“그 형은 거의 시계예요. 시계. 더 신기한 건 스케줄이 있으면 또 안 자요.”
“나도 봤어. 신기해.”
차선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이전엔 그게 참 신기했지.
근데 같은 방은 쓴 지 오래 돼서 그런가. 이제는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지는 생각했어?”
그리고 그렇게 안지호만 빼고 여기에 모인 이유는 하나였다. 안지호의 깜짝 생일 파티를 위해.
“근데 이것저것 생각을 해봤는데, 그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 있어.”
“뭔데?”
“과연 안지호가 이걸 보고 놀랄까···?”
백은찬이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그게 의문이긴 해. 지호가 원래 잘 놀라고 그런 타입은 아니잖아.”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세현이 형 때는 또 성공했잖아요.”
“에이, 우세현은 안지호보다는 허들이 좀 낮지.”
허들이 낮은 거냐.
근데 뭐, 놀랐던 건 사실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니면 깜짝 말고 단순히 감동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그것도 괜찮겠어요. 근데 감동은 또 어떻게 줄 건데요?”
깜짝도 그렇지만 감동 코드 역시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편에 속했다.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은 게 없군.
“아,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둘 다 한번 잡아보자!”
“둘 다 잡자고?”
“그러니까 내 계획은 이래!”
그리고 백은찬은 이내 자신의 계획을 우리에게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