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내가 랩, 넌 노래 어때?
티어로브.
현 가요계의 명실상부한 1군.
같은 3대 엔터라 불리는 DR 엔터테인먼트의 8년 차 남자 아이돌 그룹이다.
그리고 그런 티어로브가 5월 컴백을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예상되는 날짜는 우리와 같은 5월 중순.
‘하필······.’
아직 정식으로 날짜가 공개된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5월 중순을 예상하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동발이라면 최악 중의 최악이군.’
체이스 때보다 훨씬 더 상황이 안 좋았다. 일단 체이스는 명백한 탑의 위치라기보다는 그보다는 조금 아래인 라이징 포지션이었다.
음반은 물론이고 음원에서도 상당히 밀릴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나 음원 진입 성적이나 초반 성적은 팬덤의 규모와 인지도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
현실적으로 그 두 가지 요소 모두 티어로브보다는 우리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 동발은 최악 중의 최악.
음반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티어로브는 작년에 나왔던 앨범도 100만장 이상을 팔아치웠으니까.
여기에 티어로브는 1년 만의 컴백이었다. 그러다 보니 컴백이라는 기사 하나만으로도 화제성이 상당했다.
- 미쳤어 티어로브 5월 컴백 예정!
- 이게 얼마만이냐ㅠㅠㅠㅠㅠ 드디어 컴백인거냐ㅠㅠㅠㅠㅠㅠㅠ
- 컨셉이랑 노래 괜찮은 거였음 좋겠다 통장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 하 오늘부터 굶어야겠다 그래서 스밍은 언제부터 하면 된다고?
- ㅎㅎ 내 돌 제발 5월에는 안 나왔음 좋겠다 (기도)
- 아 ㅆㅂ 내 돌 5월 초에 나온다는 소문 있던데
└ 누구?
└ 윈some
반면, 이쪽은 분위기 침체 그 자체였다.
“불안하다, 하필 같은 5월······.”
“이렇게 되면 우리가 미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일단 우리는 아직 컴백일 기사를 안 냈으니.”
그 말을 하던 윤도운이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미룬다는 결정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일단 컴백 자체가 장기적인 플랜으로 모두 일정이 맞춰져 있는 상태였고.
그렇기에 일단은 일정대로 준비를 계속했다. 정말로 동발이든 아니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그리고 사실 이번 곡이 좋긴 한데.’
이전 곡들에 비하면 확신의 이지리스닝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마이너한 컨셉과 노래는 아니었다. 일단 곡이 좋았고.
더불어 이번 앨범 역시 차선빈의 랩 메이킹이 들어갔다. 타이틀곡이 대표적이었고, 그 밖에 수록곡 부분에서도.
아무튼 전반적으로 곡이 좋았다.
특히나 차선빈의 랩의 경우, 중간에 녹음을 하면서도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기도 했는데 이전보다 훨씬 가사가 좋아졌다.
거기에 랩도 는 것 같고.
“오, 선빈이 또 늘었는데.”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도 칭찬 일색이었다.
확실히 차선빈은 목소리가 좋고 톤이 낮아서 그런지 랩 톤이 좋았다. 거기에 발음도 좋다.
“세현이 넌 랩은 생각 없어?”
“뭐?”
녹음 부스를 나온 차선빈이 내게 뜬금없이 물어왔다. 순간 장난인가 싶었는데, 그걸 묻는 표정은 여느 때와 같았다.
“전혀. 랩은 아니야.”
“그래? 해본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다 싶어.”
단순히 가사의 나열밖에 안 될 테니.
그러니 괜한 짓 말고 노래나 열심히 부르자는 생각이다.
“그래도 나중에 한 번 해보면 좋을 텐데. 박자감 같은 게 좋아서 잘할 거야.”
“고맙다.”
그래도 이벤트성 같은 거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 한가 싶기도 했다. 예를 들면, 팬미팅 같은 곳에서. 내가 랩, 차선빈이 노래 같은 형식으로.
“내가 랩하면 넌 노래 어때?”
“노래?”
“응. 지난 디싱에서도 잘했잖아.”
그때 차선빈 노래가 상당히 반응이 괜찮았다. 내가 듣기에도 좋았고. 차선빈은 음색이 좋아서인지 노래할 때도 듣기 좋았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차선빈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번 열심히 해볼게.”
어, 이렇게 다음 팬미팅 유닛 무대가 결정이 되는 건가.
근데 뭐,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불과할 뿐이니 벌써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긴 했다.
“어, 세현이 형 이제 들어가는 거예요?”
“응.”
그리고 차선빈 다음으로 녹음 부스에 들어가려 할 때쯤, 안으로 들어오는 신하람과 마주쳤다.
“근데 하람이 너 지금 순서 아니지 않아?”
“넹. 근데 그냥 좀 빨리 왔어요.”
그러더니 녹음 부스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테이크 아웃 컵 하나가 들려있었다.
“세현이 형, 파이팅이요!”
“응.”
이내 헤드셋을 썼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이번 타이틀곡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녹음은 특별히 막히는 것 없이 수월하게 끝이 났다. 시간을 보니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끝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부스를 나서니 마찬가지로 대기 의자에 앉아있는 안지호가 보였다.
“안지호, 왔네.”
“넹. 지호 형도 일찍 왔더라고요.”
“일찍? 제시간에 온 건데.”
“은찬이 형 같은 경우에는 맨날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오잖아요. 그에 비하면 형은 엄청 빨리 온 거죠.”
“비교군이 적절하지가 않은데.”
“하긴 그 형보다 늦을 수가 없긴 해요.”
그렇게 신하람은 맞는 말이라면서 가지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빨대를 이용해 한 모금 더 마셨다. 처음보다 어느새 양이 꽤 줄어있었다.
“지호야, 들어가.”
“네.”
그대로 안지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형은 이제 가는 거예요?”
“응. 원래라면 그렇긴 한데.”
안지호의 노래가 궁금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신하람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형, 오늘 컨디션 완전 좋아 보여요. 노래하는데 날아다니는 줄.”
“고마워.”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형들은 진짜 실력이 매번 느는 것 같아요. 선빈이 형도 이번에 랩 완전 좋았다고 PD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맞아. 차선빈 랩 좋았어.”
게다가 이번엔 영어랩도 들어가 있었다.
그 부분에서 진짜 장난 아니었지.
“다른 형들도 다 그래요. 매번 볼 때마다 다들 실력이 느는 게 보여요.”
그건 나도 동일하게 느끼는 바였다.
데뷔를 하고 앨범이 내고, 활동을 하면서 점차 멤버들의 실력도 나날이 늘어가는 게 보였다. 그만큼 다들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테고.
“하람이 너도 많이 늘었잖아.”
“저요?”
“응.”
그러자 신하람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녹음 부스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그렇다면서 반응할 줄 알았는데.
“사실 저는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아요.”
그리고는 다시금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왜?”
“일단 저는 포지션이 애매해요.”
“애매하다고?”
“네. 랩도 했다가~노래도 했다가~”
그건 어쨌거나 둘 다 괜찮기 때문 아닌가.
“그저 평타인 정도에 속하는 거죠. 어느 것도 확실하게 뛰어나지는 않은.”
신하람은 곡에 따라 랩을 하기도 때로는 노래를 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주요적으로는 랩을 더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항상 고민이에요. 내게 주어진 포지션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결국 잘하는 게 있는가 하고요.”
그렇게 신하람은 말했다.
그리고는 곧 입꼬리를 올린 채 나를 보며 말했다.
“웃기죠? 벌써 데뷔한 지 1년이 넘어갔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아니. 전혀.”
포지션이라는 명목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결국 현재 자신의 실력적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건 가수라면 누구든 하는 고민이었고, 언제든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난 뭐든 평타를 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네?”
“평타를 친다는 건 일단 기본은 한다는 거잖아. 그 기본이 되기까지가 상당히 어려운 거거든.”
그리고 그만큼 노력을 했다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춤도, 노래도, 랩도. 모두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 있으니까. 밸런스가 좋은 거지.”
게다가 요즘은 예전에 달리 일부러 포지션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너무 포지션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그러자 신하람이 갑자기 웃어 보인다.
방금 전보다 훨씬 누그러진 표정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당연하지.”
“헤.”
그리고 다시 웃는다.
기분이 좀 풀린 건가.
“지금 뭔가 명쾌해졌어요.”
“그래?”
“네!”
그렇다면 다행이고.
물론 고작 내 말 몇 마디로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잘 전달이 된 모양이다.
“사실 제가 말 한마디에 감동 받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형이 지금 제가 원하는 말을 해줬나 봐요.”
“무슨 말을 원했는데?”
“모르겠어요.”
모르겠다고?
“모르겠는데. 그냥, 그냥 시원해요.”
그리고는 조금 남은 아메리카노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어느새 반 이상이 줄어있었다.
“근데 그거 안 써?”
“이거요? 음, 쓰긴 한데 그래도 먹을 만 해요. 아, 형은 라떼만 먹죠?”
“라떼라기보다는 카라멜 마끼야또.”
“형은 너무 그것만 먹는 거 아니에요? 안 질려요?”
“응.”
맛있기만 하던데.
그리고 그때 안지호가 녹음을 마치고 나왔다. 아니, 그새 다 끝났어?
“벌써 끝났어요?”
“응? 응. 지호도 빠르잖아.”
“오올. 역시 지호 형.”
안지호가 빠르긴 하지······.
파트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넌 왜 계속 안 가고 있어?”
“너 녹음하는 거 궁금해서.”
“···시간도 많다.”
그리고선 주섬주섬 제 물건을 챙기기 시작한다. 이에 나도 그만 일어날까 싶어 물건을 챙겼다.
“아, 혹시 다음 하람이 너야?”
하람이라면 보고 갈 생각이었다.
뒤이어 안무 연습이 있긴 하지만.
“아뇨. 저 아니에요.”
“그럼 누구······.”
“나지!”
그렇게 문 너머로 백은찬이 손을 흔든 채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를 본 프로듀서가 백은찬을 반겼다.
“은찬이 딱 맞춰서 왔네.”
“제가 또 시간 약속은 철저하죠.”
너무 철저한 거 아니냐.
정말 딱 맞춰서 왔어.
“형, 내가 볼 땐 형 10초 정도 늦었어요.”
“10초? 무슨 소리야. 0초에 맞춰왔구만.”
“이상한 데서 칼 같네.”
그 말에 백은찬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곧 녹음 부스로 들어갔다.
“잠깐, 하람이 너 마지막 아니었나?”
“맞아요.”
“근데 이렇게 빨리 왔어?”
“네. 형들 하는 거 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덧붙였다.
“형들 하는 거 보면 조금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러더니 곧 백은찬이 녹음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랬었군. 그렇다면 역시 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자리를 잡았는데, 옆에서 안지호가 다시 움직이는 게 보였다.
“어디가?”
“? 연습실.”
“같이 보자, 애들 녹음하는 거.”
“됐어. 연습실 가서······”
“형! 같이 봐요!”
그리고 이어지는 하람이의 거센 요구에 결국 안지호는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잠깐만이다, 잠깐.”
“응.”
그래, 2명 금방이다.
옆에선 ‘내가 왜······.’란 귀찮음이 섞인 중얼거림이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녹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곧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날은 그렇게 하람이가 녹음을 하는 것까지 마저 지켜보고 난 이후에야 뒤이어 연습실로 돌아가게 되었다.
* * *
그리고 며칠 뒤.
우리의 컴백 날짜가 기사를 통해 공개됐다. 마찬가지로 티어로브의 컴백 날짜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