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꼼수 부리지 마라.
우리의 정규 앨범 컴백일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사가 나갔다.
[공식] WINSOME, 5월 11일 첫 정규 앨범으로 컴백 확정
└ ㅁㅊ 정규잖아 윈썸 컴백하잖아
└ 드디어 정규 1집!!!!!!!!!!!!!!
└ 대충 얼마 만에 나오는 거야?
└└ 5개월 정도 작년 12월에 디싱 나왔으니까
└ 컨셉이랑 노래 제발 좋은 걸로 (기도)
└ 이번에도 혹시 청량일까? 쎈 걸로 가지고 나와도 좋을 것 같은데
└└ 쎈 거 가지고 나왔음22222
└ 일단 나오기만 해라 있는 대로 다 질러줄테니까
└ 근데 티어로브도 5월 컴백 아니었나?
그리고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기사가 뜨자마자 티어로브 역시 우리 이름과 함께 거론됐다.
- 설마 티어로브랑 윈썸이랑 동발인 거 아냐?
- 티어로브랑 윈썸 동발이면 티어로브 압살이겠네ㅋㅋㅋㅋㅋㅋ
└ 무슨 압살이야 요새 티어로브 초동 수치 떨어지고 있던데ㅎ
└└ 응 떨어져도 100만
- 근데 요즘 윈썸 엄청 상승세 같던데 뭔가 낌새가 심상치가 않음
- 가만 보면 둘이 같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애들 ㅈㄴ많은 거 같음 솔직히 같이 나오면 둘다 손해 아님?
└ 응 아냐 티어로브 압승이야~
- 티어로브 언제적 티어로브임 적어도 중고딩들은 윈썸이나 체이스일텐데ㅋ
└ 인지도나 올리고 와라~ㅎ
└└ 누가 보면 티어로브 국민그룹인줄
└└└ ㅇㅈ 티어로브 팬들 하는 거 보면 티어로브가 한국 레전드 그룹임ㅋㅋㅋㅋㅋ
└└└└ 티어로브 팬들 자의식 과잉인 거 유구하잖아ㅋㅋㅋㅋㅋㅋ
- 이건 무조건 티어로브 승리지ㅋㅋㅋ근데 타팬 입장에선 같이 나오는 게 재밌긴 함ㅋㅋㅋㅋㅋ
그리고 며칠 뒤.
티어로브의 확정 컴백일이 기사를 통해 밝혀졌다.
“언제요? 언제래요?”
“하······.”
[공식] DR 엔터테인먼트, “티어로브 5월 18일 미니 7집 컴백 예정”
공개된 날짜는 5월 18일.
정확히 우리보다 일주일 뒤였다.
‘괜찮다.’
일단 동발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이었고, 더불어 우리가 먼저라는 점도 괜찮았다.
적어도 한 주는 확실히 티어로브의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까. 혹시 이번에 성적이 좋아 2주차까지 괜찮은 성적이 나와 버린다면, 음방에서 1위를 먹기 힘들어지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맞아요. 정말 동발 아닌가 하고 아찔했어요.”
“그건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이지.”
멤버들 내심 많이들 불안해했던 건지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었다.
사실 이왕이면 더 차이가 났으면 좋았겠다 싶겠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선 이게 어딘가 싶었다.
“근데 이번 안무가 빡세긴 하다.”
백은찬이 연습실 바닥에 뻗은 채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무래도 빠른 비트에 맞춘 역동적인 안무여서 그런지 구성 자체가 쉴 틈이 없이 구성되어 있긴 했다.
그래서 습득하는 데만 상당 시간이 걸렸고. 물론 습득 시간이 오래 걸린 건 나의 한정된 이야기긴 했다.
“너도 많이 빨라졌어.”
“전혀.”
물론 극 초반을 생각하면 좀 빨라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또 속도가 눈에 띄게 붙은 건 아니었다. 그냥저냥 정도.
“그래도 이 정도면 빠른 거지. 오히려 차선빈이 기하학적으로 너무 빠른 거고.”
그 말에 차선빈이 백은찬과 나를 쳐다봤다. 저를 불렀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무 속도? 빠른가?”
“빠르지. 너 엄청 빠르다.”
“아, 좀 줄여야 하는 거야?”
“아니. 절대.”
나는 곧바로 차선빈을 향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걸 왜 줄여! 그 멋있는걸.
“근데 세현이는 춤선이 좋잖아.”
“맞아, 너 예전부터 춤선 좋단 말, 꽤 듣지 않았냐?”
듣기는 들은 바였지만 그래도 그걸로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아직 능숙하지 않은 느낌이었고.
“그래도 난 세현이 춤 좋아. 보는 거 좋아해.”
“어, 그래?”
“응.”
차선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춤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 좋네.
하지만 그렇게 춤이 빡세다보니 그만큼 노래 연습도 빡세게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다 보니 한동안 보컬 연습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VOCAL 404]
또 그러다 보니 여기도 오다가다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고.
‘보컬룸 404호.’
생각해보니 그 뒤로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니까 사자에게 능력에 대해 물어본 이후.
‘슬슬 답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근데 생각해보니 원인을 알았다고 해도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모르는구나. 그 방면을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니까 사자가 원인을 알아낸 타이밍을 어떻게 알아채는가, 답을 전해줄 수 있을 때를 내가 어떻게 아는가, 그 방면.
‘한번 가볼까.’
그래서 생각난 김에 일단 오늘 가보기로 했다. 마침 보컬 연습을 하러 오기도 했으니.
철컥!
그리고 언제나처럼 가장 먼저 문을 잠갔다. 오늘도 역시 해당 보컬룸은 비어있었다.
언제 봐도 이곳은 조용하고 스산하다.
다른 보컬룸과 달리.
확실히 뭐가 있긴 있는 건지.
뒤이어 대충 아무 곳이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리가 아프더라.
더불어 물도 준비했다.
아, 이건 목말라서가 아니고 혈압 상승용.
사자랑 말을 하다 보면 종종 열이 받아서.
그리고 곧 그렇게 허공을 향해 말했다.
“따봉 하는 사자가 고맙지는 않죠.”
휘이이이익-
그 순간 스치듯 잠깐 바람이 불어왔다.
“방금 그건 무슨 말이냐?”
그리고 그대로 사자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달리 살짝 인상을 쓴 얼굴로.
* * *
“따봉 하는 사자가 고맙지는 않죠?”
“아. 이제 보니 대충 이것도 통하나 보네요. 혹시나 하고 해본 건데.”
대충 ‘따봉’, ‘사자’, ‘고맙다’라는 키워드만 넣은 문장을 만들어 주문, 아니, 주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러봤다.
혹시나 그래도 먹혀들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잘 먹혀들었다.
사자가 이렇게 눈앞에 나타났으니.
“실험을 해봤다는 거냐?”
“네.”
그러자 사자는 꽤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키워드만 있다면 어느 정도 변형이 돼도 상관없는 모양이군.
“너 은근 잔머리를 굴리는 타입이었구나.”
“이왕이면 센스라고 해주시죠.”
“그래서, 오늘 부른 건···어, 너 머리색이 바뀌었네?”
사자가 변한 내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대. 컴백 준비에 앞서 머리색을 막 바꿨던 참이었다.
“금방 알아보시네요.”
“당연하지. 내가 또 한 눈썰미 하거든. 근데 잘 어울린다. 분명 지난번엔 검은 머리였지?”
진짜 기억하는 모양이네.
의외이긴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던 터라.
“다음엔 보라색 어때? 그것도 예쁠 것 같은데.”
“기각입니다.”
“어, 왜?”
왜긴 왜야,
내 맘이지.
어쨌든 지금은 그런 머리색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것보다 지난번에 물었던 무분별하게 생각이 들리는 현상이요. 그건 어떻게 됐어요?”
“아, 그거.”
사자가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는 듯 반응했다. 그거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아닌 무분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뜻했다.
혹시 뭔가를 알아냈나.
“모르겠어.”
“네?”
“원인 말이야. 아직까지 불명이라고.”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한 답이 나왔다.
아직까지 불명이라고?
“···제대로 알아보긴 한 거예요?”
“당연하지. 내가 또 일 처리 하나를 끝내주거든.”
“그 끝내주는 일 처리가 이 방면에서는 적용이 안 됐나 보네요.”
“음······.”
사자는 상당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입만 다물면 다냐. 해결책을 가져오라고, 해결책을!
“그래서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
“여전히 가끔 있었어요.”
“그래?”
그나저나 이런 식이면 결국 이런 리스크를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건가. 혹을 떼려다 괜히 혹을 붙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혹을 떼려고 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절대 없다. 이런 작은 리스크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음, 알겠어. 내가 조금 더 힘을 써보지.”
“그 말은 지금까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그럴 리가. 앞으로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거지.”
사자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넌 이전과 같이 마음 놓고 ‘OFF’를 사용하도록 해. 앞선 문제 같은 건 내가 최대한 해결책을 찾아볼 테니까.”
이전과 같이 OFF를.
그렇지.
“네. 알겠어요.”
“그래. 좋아.”
사자가 만족스럽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요.”
“뭔데?”
“원인을 찾거나 하면 이쪽에서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럴 때, 방법 없어요?”
“음.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러더니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방법이 있긴 한 건가?
“방법이야 있지. 이쪽에서 신호를 보낼만한 매개체를 하나 만들면 그만이니까.”
그런 게 있다면 진작 좀 말을 하라고.
“지금 바로 만드는 건 가능하고요?”
“그럼.”
“어떻게요?”
“이렇게.”
그리고 사자의 손안에서 잠시 무언가 빛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것은 곧 둥근 원형의 형태로 바뀌더니 이내 조금씩 빛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매개체 형태는 어떻게 해줄까? 반지? 팔찌? 귀걸이?”
“키링이요.”
“키링?”
팔찌든 반지든 액세서리 형태는 곤란했다. 매일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은데 같은 액세서리를 매일 한다면 혹여 말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사실 액세서리 착용을 평소에 잘 하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영 불편해서.
“알겠어.”
그렇게 사자의 손안에서 빛나던 구는 이내 모양이 갖춰지는 듯 하더니 이윽고 작은 키링 형태가 되었다.
근데 모양이······.
“웬 모자예요?”
“이거잖아. 이거. 나의 트레이드 마크!”
“아.”
키링의 모양은 저승사자가 쓰고 있던 모자였다. 검은색 중절모. 그게 트레이드 마크일 줄은 몰랐네.
“아예 내 얼굴을 박아줄까 하다가 만 건데. 그쪽이 나았으려나?”
“감사합니다. 정말 맘에 드네요.”
“역시 그렇지?”
당연하지.
얼굴로 박았다간 꿈자리가 사나웠을 거다.
상당히 투박한 디자인이었지만, 그래도 튀지 않는 모양이라 오히려 괜찮다 싶었다. 때도 안 타겠네.
그리고 사자는 손목에 있던 시계를 한번 확인하는 듯 하더니 이내 그만 가봐야겠다 말했다.
“아, 그리고.”
“네.”
“다음엔 꼼수 부리지 마라.”
동시에 사자의 씨익 웃는 얼굴을 보였다.
따봉 사자를 이야기하는 거군.
아무래도 같은 방법은 안 통할 듯 했다.
그건 좀 아쉽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자는 언제나와 같이 연기마냥 사라졌다.
곧바로 나 역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에.
‘어쨌든 수확은 제로라는 거네.’
그간 시간이 상당히 지났을 턴데 알아낸 건 없고. 사자가 더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느낌상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여기서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가져온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그대로 보컬룸의 문을 열었다. 연습이나 더 하다 가겠다.
“······어.”
뒤이어 그렇게 보컬룸의 문을 열고 나오는데, 순간적으로 문 앞을 지나던 안지호와 마주쳤다.
갑작스럽게 보이는 얼굴에 조금 놀라기는 했으나 이를 되도록 티내지 않으려 했다.
“연습?”
“어.”
“나도 연습하러 온 참이었어.”
그런 내 말에 안지호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하고 나오는 게 아니고?”
아, 이런.
말을 잘못했군.
“하고 나왔지. 근데 이제 가려던 참이었다고.”
그러자 안지호가 벽에 걸려 있던 시계를 한번 쳐다보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말했다.
“빨리 가네.”
“출출해서. 뭐 좀 먹고 다시 오려고. 넌 몇 호실인데?”
“405호실.”
“아, 그래. 열심히 해라.”
그리고 빠르게 먼저 자리를 이동했다.
당연하지만, 사자와 했던 대화를 들킬 일은 없었다. 일단 방음이 철저하니까.
그러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도 모르게 괜히 걸음이 빨라졌다.
이래서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