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활동이 겹치는 건 처음이네.
김하진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얼마 전에 윈썸에 입덕한 일명 늦덕이었다.
그런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윈썸의 정규 1집 팬싸인회에 응모를 했고, 당첨이 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왜냐면, 그녀가 산 앨범 장수는 겨우 1n장에 불과했기 때문에. 보통 팬싸인회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몇백장 단위는 기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당첨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X친 운빨 덕분이었다.
보통 당첨자는 수량 줄세우기를 통해 결정되는데, 여기에 간혹 랜덤 비율을 넣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랜덤에 김하진은 당첨이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X친 운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지금, 윈썸의 정규 1집 팬싸인회 현장에 와 있었다.
‘긴장돼서 말이 안 나와······.’
얼마 없는 팬싸 경험으로 그녀는 이미 혼돈 상태였다. 거기에 주변은 온통 이 현장이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뿐이었다. 아마 홈마들일 터였다.
그래도 나름 본대로 머리띠나 포스트잇 같은 걸 준비하기는 했으나 정작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분명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은 했는데, 막상 멤버 앞에 서니 어버버하긴 일쑤에 그러다보면 곧 ‘이동이요~’이란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준비해온 말은커녕, 인사가 고작이고 여기에 멤버가 물어보면 단답으로만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개 망했다.
‘인터넷에서 보던 <아, 정말요?>를 내가 하고 있어, 내가!’
그렇게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자신을 향해 웃어주며 한마디, 한마디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주려 하고 있었다.
‘애들 진짜 너무 착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안 나오는 건 여전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게 된 최애의 앞.
우세현의 앞이었다.
김하진은 여전히 긴장된 상태였다.
심지어 최애 앞이라 그런가, 더 얼었다.
“점심 드셨어요?”
“네.”
“맛있는 거 드셨어요?”
“네.”
제가 대답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너무 잘생긴 탓에 긴장이 잔뜩 돼서 눈도 제대로 마주칠 수가 없었다.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하진 누나. 하진 누나라고 써줘요.”
와중에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최애의 목소리가 너무나 다정해, 김하진은 다시 한번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 머리띠. 감사합니다.”
그래도 일단 머리띠는 건넸다.
준비한 머리띠는 하얀색 강아지 모양의 머리띠. 그걸 쓰니 더욱더 빛나는 최애의 모습에 김하진은 또 다시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너무 귀여워!
여기에 나름 준비한 게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질문 포스트잇.
다른 건 못해도 이것만은 제대로 얻어가자는 생각이었다.
이걸 하다 보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평소 궁금했던 정보를 얻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앨범에 있는 우세현 페이지에 자신이 적은 질문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래, 분명 붙였었는데······.
‘포스트잇 어디 갔어?!’
우세현이 싸인을 위해 펼친 자신의 얼굴이 있는 페이지. 그 페이지에는 분명 지난 밤 붙인 질문 포스트잇이 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없었다.
어디에도.
‘어, 왜 없는······.’
순간 당황해 막혔던 말문이 더 막혔다. 그렇게 그녀는 사색이 되었다. 정말로 쫄딱 망한 것 같은 느낌에.
아무래도 어딘가 흘렸거나 다른 페이지에 붙인 게 아닐까 싶었다. 그야말로 망연자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자신의 실수에 한탄하고 있을 때쯤, 앞에 있던 우세현이 김하진을 향해 다시 말을 걸었다.
“이 페이지 말고 다른 페이지에 해드릴까요?”
“어? 네?”
“음, 잠시만요. 제가 좋아하는 사진이 몇 개 더 있거든요.”
그리고 우세현은 이내 가지고 있던 앨범 포토북을 손안에서 촤라락-하고 넘겼다.
“아. 여기가 좋겠네요.”
그 순간, 김하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우세현이 펼친 그곳에 없다고 생각했던 질문 포스트잇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딴 페이지에 붙인 거였어?’
제대로 확인을 했어야했는데 급한 나머지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았다.
‘만약 그대로 했으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랬다면 이 포스트잇은 그냥 단순히 종이짝에 불과했을 테니까.
하지만 우세현은 그런 포스트잇을 발견해주었다. 마치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읽은 듯이.
“근데 포스트잇이···아, 이거 바로 이름 옆에 적으면 되는 거죠?”
“아, 응!”
그리고 우세현은 질문을 읽으며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별거 아니지만 진지한 그 모습에 김하진은 또 다시 감동 받았다.
“멤버들 각자의 정신 연령. 일단 저는 20살이요. 현재 나이대로.”
“스무살?”
“네. 지금 나이랑 정신연령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그리고 다른 멤버들은······.”
그리고 우세현은 멤버 이름 옆에 자신이 생각하는 멤버들의 정신 연령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충 이렇게요.”
- 세현 : 20
- 선빈 : 19
- 은찬 : 15
- 하람 : 17
- 도운 : 21
- 지호 : 30
“지호가 삼십?”
“네.”
우세현이 곧 웃으며 대답했다.
“동갑이긴 한데, 지호는 평소에 현실적이기도 하고 또 어른스러운 면도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연령이 좀 높아 보여요.”
그렇구나.
김하진은 이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호가 좀 어른스럽긴 하지.
“그리고 선빈이는 친구 같을 때가 더 많긴 한데, 가끔씩 동생 같을 때도 있어서 한 살 줄였어요.”
“···동생 같을 때는 언젠데?”
“음, 요리할 때?”
그 말에 김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왠지 알 것 같은 마음에.
“이제 이동하실게요~”
그때, 뒤에 있던 스텝이 전했다.
이제야 좀 뭔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가 했는데, 어느새 벌써 옆으로 이동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이었다.
최애와 적지만 대화도 나누었고, 또 질문에 대한 답도 얻었으니까.
무엇보다 얼굴을 봐서 좋았다.
우세현은 정말 잘생겼다, 진짜, 대박으로.
‘아이디를 바꿀까, <세현아 카메라 부숴>로.’
나름 진지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싸인된 포토북을 받고 난 뒤, 다시금 옆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그때 우세현이 김하진을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잘 가요, 하진 누나.”
“!”
그 순간, 급작스럽게 불린 제 이름과 누나란 칭호. 거기에 우세현의 예쁜 미소에 김하진은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
* * *
팬 싸인회가 종료 이후, 꽤나 많은 사진들이 올라왔다. 당연하지만 라이크 래빗 머리띠를 쓴 사진 역시 올라와 있었다.
‘보정 잘됐네.’
색감이 꽤나 깔끔했다.
그리고 계속 사진을 보는데, 문득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바로 머니건 사진.
팬분이 주신 머니건을 아주 팡팡 터뜨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돈종이가 아주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네. 와중에 얼굴이 제대로 찍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보다 이걸 보니 문득 숙소에 있는 머니건이 떠올랐다. 형한테서 받은 그 머니건.
“야, 우세현. 너 이거 뭐야.”
그때 백은찬이 들고 있던 폰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는 사진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이거 빨리 해명을 해봐.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아, 이거.”
그건 바로 포스트잇 질문으로 받았던 멤버들의 정신 연령 관련 질문이었다.
[세현이가 생각하는 윈썸 멤버들 정신 연령]
“난 왜 15살이야?”
“15살 같으니까?”
그러자 백은찬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음, 15살이 적당해 보인다. 대충 하는 짓이.
“어딜 봐서 내가 15살이야. 나는 한 21살쯤은 되는구만.”
“왜 21살인데?”
“일단 내가 너보다 형님이니까.”
그러더니 갑자기 헤드락 걸치듯 내 어깨 위로 팔을 걸친다. 도대체 누가 형님인 건지.
“다음부턴 21살로 써라.”
“10살 더 줄여줘?”
“뭐? 야, 잠깐!”
5살도 어울리긴 했다.
백은찬에게. 귀엽잖아. 5살.
그리고 나서는 한참을 궁시렁 거리는 듯 하더니 이내 밥 먹을 때가 되자 곧 조용해졌다. 진짜 15살 같네.
오늘부터는 2주차 음악 방송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1위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주간이기도 했고.
‘이번엔 공중파 3사 달성했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공중파 3사 1위는 해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지난 활동에서 SBC <탑 가요>에서 1위를 하지 못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그것까지 욕심이 났다. 일단 성적이 오른 것도 오른 거지만, 대진운도 괜찮았다.
동시 컴백하는 음원이나 음반 강자 가수가 없던 덕이었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컴백하는 티어로브도 이번 주에 컴백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기대할 만했다.
[네, 올봄 아주 특별한 분들이 돌아오셨는데요. 지금 바로 그분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어서오세요, 티어로브 분들입니다!]
대기실 모니터 화면에는 이번 주 컴백하는 티어로브의 인터뷰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어, 티어로브 선배님들 나오시네?”
“응.”
그러자 백은찬이 곧 내 옆으로 와 앉았다.
티어로브는 예상했다시피 높은 음원과 음반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반에서야 100만장 이상을 향하는 추이였고, 음원의 경우 이전보다 조금 주춤한 모양새긴 했지만 그래도 자몽 메인 탑 차트에서 10위권 내로 진입을 했다.
현재를 기준으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근데 티어로브 선배님들이랑 활동이 겹친 건 처음이네.”
“그러게.”
백은찬의 말대로 음악 방송이 겹치는 건 처음이었다. 뭐, 이쪽이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당연한 거긴 했지만.
‘매번 tv를 통해서나 봤었는데.’
루트와 티어로브는 활동 시기가 어느 정도 겹쳤었다. 그렇다 보니 티어로브도 자연스럽게 tv를 통해서 더 보게 되고 뭐, 그랬었고.
‘새삼 티어로브도 연차가 꽤 되네.’
데뷔 8년 차라는 게 실감이 나는 대목이었다. 물론 루트가 한창 전성기일 당시 티어로는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의 위치이긴 했지만.
하지만 티어로브 자체가 대형이긴 했으나 데뷔하자마자 터진 것은 아니었다. 아마 3년 차 정도 지나고 나서였을 것이었다. 점차 라이징하기 시작 한 건.
그 당시엔 루트가 거의 꽉 잡고 있었으니까. 1군을 넘어서는 위치로.
‘곧 인사하러 가야겠군.’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대기실로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티어로브 멤버들과.
“어, 우세현 씨네.”
* * *
마주친 순간, 무리의 가장 앞에 있던 티어로브의 멤버, 신윤우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이었다.
차선빈과 잠깐 나온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상황이었으니.
그래도 일단 인사부터 하고 봤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그런 우리의 인사를 신윤우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받아주었다.
마주친 인물은 티어로브 멤버 전원이 아닌 일부 멤버였는데, 신윤우와 장해준, 그리고 리우였다.
“윈썸,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아, 맞다. 너 그랬었지. 그 뭐였더라,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심히 봤었잖아.”
“플레이 온더 스테이지.”
“아, 맞아. 플레이 온더 스테이지.”
아, 플온스.
어쩐지 이름을 콕 집으며 아는 척을 한다 했더니. 그런 이유에서였군.
그나저나 티어로브가 봤다는 게 의외였다.
일단은 타 기획사 연습생 서바이벌이고.
“게다가 우세현 연습생이 원픽이었거든요. 그래서 응원 엄청 많이 했었는데.”
그렇게 신윤우를 다시 한번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단순히 반가운 척은, 아닌 것 같고.
“특히 마지막 편이 참 흥미진진했어요. 누가 1위를 할지~아, 그러고 보니 이렇게 두 사람이 1, 2위였죠?”
“네. 맞습니다.”
그게 언제적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위 같은 건 잊은 지 오래였다.
“근데 데뷔한 지 좀 됐죠? 대충 이제 1년 차인가?”
“네, 1년 조금 넘었습니다.”
“아, 그때가 진짜 딱 기합이 많이 들어가 있을 때인데~”
그러면서 세 사람은 알 수 없는 자신들의 신인 시절을 잠시 이야기하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차선빈과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실제로 보니 더 잘생겼네요.”
“그러게.”
“서바이벌 때부터 이미 완성형이셨어, 이분들은. 그때도 보면서 놀라고 그랬었는데.”
이에 대충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근데 슬슬 할 말도 없어지는 것 같은데, 언제쯤 돌아갈 수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문득 앞에 있던 신윤우와 잠깐 시선이 마주했다. 그러자 신윤우는 그대로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잘생겼네.”]
동시에 이어지는 신윤우의 잔잔한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근데 얘네는 뭐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