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뭔가 재밌는 게 있지 않을까.
신윤우는 평소 가십에 흥미가 많았다.
업계에 떠도는 소문이나 남모르는 진실. 그런 것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사회면에 나올 법한 그런 대형사건 건이 아니더라도 어느 그룹의 어떤 멤버가 서로 사이가 안 좋다더라, 혹은 이번에 누가 재계약을 했다더라. 같은 사소한 것에도 흥미를 느꼈다.
‘그러니 얘네는 뭐 없으려나.’
가십거리 같은 거.
신윤우가 그 순간, 제 앞에 있는 윈썸 멤버들을 보며 생각했다.
‘얘네, 사이는 좋으려나.’
윈썸의 경우 서바이벌로 시작된 그룹이었다.
공개적으로 순위가 매겨지는 경쟁을 통해 데뷔한 만큼, 일반적인 그룹보다 멤버 간의 경쟁의식이 더 강할 수 있었다.
물론 자체 서바이벌인 만큼 일반 서바이벌보다는 경쟁의식이 강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방식이든 한번 생긴 경쟁의식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얘네는 1위, 2위고.’
그러니 그런 방면으로 뭐가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재미있었지. 예전에 우도현, 우세현 형제와 관련한 이야기.’
형제 사이가 안 좋다는 그 유명 루머.
앞과 같은 가십에도 신윤우는 상당히 재미를 느낀 바였다.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물론 진실이었으면 그건 그거대로 더욱 재미를 느꼈을 터였다.
‘사실 가장 재밌는 건 연애 관련이지만.’
이제 고작 1년 차인 신인에게 연애 관련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더 재밌었겠지만.
물론 이 모든 건 순전히 제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다. 정보를 어디 팔아먹겠다 이런 건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궁금하잖아.
“나중에 한번 만나서 밥이라도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신윤우는 그렇게 넌지시 전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장해준과 리우는 잠시 속으로 혀를 찼다. 또 시작이구만, 저거. 라는 식으로.
평소 신윤우는 밥을 사거나 하는 식으로 친분을 능숙하게 형성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만든 친분으로 자신이 원하는 가십을 얻곤 했다.
상대의 호감을 얻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 역시 그에게 있어선 그리 어려운 일 아니었고.
그러니 신윤우는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볼까 싶었다. 밥 한번 먹자에서 연락처 교환으로.
“아, 그러고 보니······.”
“그런데 선배님, 이번 앨범의 란 곡이요, 직접 작사하신 건가요?”
“네?”
그러나 신윤우가 미처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우세현이 먼저 신윤우를 향해 물었다.
“너무 좋아서요. 그 곡 좋아하거든요.”
“아······.”
이에 신윤우는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알고 있네요?”
“네. 가사가 너무 좋아서요.”
그래, 그렇구나.
일단 노래를 들어봐 줬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건 그거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신윤우가 식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던 찰나, 우세현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가사가 참 감성적이고 좋은 것 같습니다.”
“어, 그래요?”
“네. 공감 가는 가사도 많고요.”
“아, 고맙네요.”
신윤우가 애써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답했다. 왜인지 모르게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아, 매니저 형.”
“왜 나와 있어?”
와중에 윈썸의 매니저가 왔다.
그 순간 아차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글렀구나 싶은 마음에.
그리고 그렇게 어버버하는 사이 우세현과 차선빈은 그대로 반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그래요, 그럼 오늘 무대 열심히 해요.”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먼저 자리를 떠났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상황은 그야말로 완전히 종료되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신윤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아쉽다는 표정을 드러내었다.
‘낚기 실패인가······.’
자연스럽게 번호가 오갈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타이밍이 별로였어.’
요즘 한창 인기가 좋은 그룹인 만큼 내심 궁금한 게 많았는데. 낚지 못한 게 그로서는 꽤나 아쉬웠다.
“실패네.”
옆에 있던 장해준이 말했다.
“뭐가?”
“낚는 거 말이야. 후배들한테 밥이나 술 사면서 재밌는 이야기 듣는 거, 네 특기잖아.”
그러자 신윤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재밌잖아.”
“뭐,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일수록 재밌긴 하지. 그것보다 내가 더 잘생기지 않았냐?”
“누구보다?”
“누구긴 누구야. 아까 걔네보다지.”
“아아.”
그제서야 말을 이해한 신윤우가 고개를 대충 몇 번 끄덕였다.
‘근데 확실히 잘생기긴 했지.’
그리고 그런 우세현을 보니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도현이.
얼굴이 닮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분위기랄까. 그런 게 조금 닮은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궁금한데.’
어쩐지 이대로 그냥 포기하기에는 영 아까웠다. 아직까지 호기심이 꽤나 일었기 때문에.
‘다음에 한번 더 시도를 해볼까.’
그렇게 그는 언제나처럼 가볍게 생각을 넘겼다.
* * *
“되도록 번호 교환 상황은 피해.”
“응?”
“티어로브 말이야.”
대기실로 돌아가던 도중, 차선빈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그러자 차선빈이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로 다시 물어왔다.
“왜?”
“그냥 느낌이 별로라서.”
“느낌이?”
“응.”
굉장히, 아주, 별로였다.
정확히는 앞에서 줄줄줄 들려오는 생각들이.
대충 어떻게든 재밌는 껀덕지가 없나 하는 모양인데, 당연하게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럴 만한 것도 없고.’
신윤우가 바라는 건 멤버 간의 불화, 다툼, 혹은 연애. 이런 건 자극적인 소스를 원하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알려줄 생각도 없고. 얄팍하게 입 좀 털어서 제 재미를 충당할 생각이었나 본데 쓸데없는 짓이었다.
“더불어서 웬만하면 좀 멀리하고.”
“선배님들?”
“응.”
타인의 사생활을 자신의 재밋거리로 여기는 인간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빌미는 잡히지 않는 게 좋고.
“알겠어.”
차선빈은 의외로 선뜻 그렇겠다고 전했다. 물론 내가 그러라고 한 거긴 했지만, 막상 별말 없이 동의해주니 조금 의아해졌다.
“왜 그런지는 안 물어봐?”
“그냥. 너가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이유. 물론 이유가 있긴 하지만······.
더불어 그러한 차선빈의 말속엔 왠지 모를 믿음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나를 향한 믿음이.
“······너무 믿는 거 아니야?”
“불편해?”
“아니, 당연히 그건 아니고.”
그건 아니지만, 사실 차선빈의 입장에서 보면 앞서 내가 한 이야기는 사실 아무런 근거 없는 소리에 불과했을 테니까.
“그럼 그냥 믿을게.”
그럼에도 차선빈은 믿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심지어 믿겠다고 이야기하겠다는 그 말에서조차 믿음이 느껴졌다. 시선 또한 여전히 날 향해 있었고.
그리고 그 눈엔 흔들림이 없었다.
“아아······.”
“? 왜 그래?”
“선빈아.”
“응.”
“사람 쉽게 믿으면 안 돼.”
그러자 차선빈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렇게 순진해서야!
차선빈이 날 믿어주는 건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지만, 이렇게 아무나 함부로 믿는 건 좋지 않았다.
“세상은 험난하다.”
“무슨 말이야?”
“아무나 믿고 그럼 안 된다는 말이야.”
그러자 그제서야 차선빈은 내 말뜻을 이해한 건지 이내 ‘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평소와 같은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너만 믿으니까.”
아니, 이러기냐······.
자그마한 거짓 하나 보이지 않는 그 말에,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 거라면 다행이긴 하지만···아니, 그것도 백퍼센트는 좀······.
“고마워.”
“응.”
“그래도 90%, 아니 80%만 믿어.”
“알겠어.”
이내 차선빈은 그러겠다며 미소 지었다. 전혀 듣는 모양새가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차선빈은 너무 순진해서 문제다.
그리고 무대를 마치고 벤으로 돌아가던 중에, 우연히 방송국 화장실 앞에서 익숙한 얼굴을 다시금 보게 되었다.
시작 전 만났던 티어로브의 중국인 멤버, 리우였다.
화장실 근처에서 통화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런 리우와 곧 시선이 마주쳤고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했다.
언뜻 들으니 중국말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엿들을 생각 같은 건 없어서 그대로 빠르게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공작실.”]
공작실란 단어가 문득 들렸다.
수많은 중국말들 사이에서 몇 개의 한국어 단어가 가끔씩 들렸는데, ‘공작실’은 그 몇 개 안 되는 한국어 중 하나였다.
공작실, 이건 중국인 멤버들이 자신의 중국에서의 개인 활동을 위해 차리는 개인 소속사와 비슷한 개념의 것이었다.
그렇게 리우는 주변을 잠시 살피는 듯 하더니 이내 걸음을 옮기며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렇군.’
대충 돌아가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거, 아무래도 본인 가십이나 먼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은데.
* * *
당장 이번 주부터는 음악 방송 1위 후보에 오르는 시기였다. 그리고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연이은 1위 행렬이.
“네, 오늘의 1위는~”
“윈썸! 축하드립니다!”
U-Countdown을 시작으로 공중파 음악 방송까지 차근차근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SBC <탑 가요>.
그 순간 무대 위 꽃가루가 펑! 소리를 내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터졌다.
“네, 이번 주 1위 윈썸 축하드립니다!”
급작스럽게 터지는 꽃가루에도 놀랐지만, 앞서 불리는 이름에 한번 더 놀랐다.
이번 한 주 동안 모든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 처음 맞이하는 기록이자, 엄청난 기록이었다.
활동을 하는 동안 모든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다는 게 절대 쉬운 게 아니기에.
“와, 이게 탑 가요 트로피구나.”
“그거 한번씩 들고 셀카 찍자.”
멤버들은 모두 트로피를 신기한 듯 한번씩 쳐다봤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있으면 여기 트로피 아래에 그룹 이름이 새겨질 것이었다.
‘······고민되네.’
셀카를 올릴 때마다 고민되는 건 찍은 사진 중 어떤 사진을 업로드할 지였다.
그래도 멜로우들에게 최대한 잘 나온 걸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인데, 어째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것도 같고. 3장중에 어떤 게 그나마 나을지 좀 고민됐다.
“2번째가 제일 괜찮은데?”
“전 1번째도 괜찮은 것 같아요.”
“내가 볼 땐 다 괜찮은데.”
깜짝이야.
옆을 보니 어느새 멤버들이 어깨 너머로 내가 찍은 셀카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백은찬은 2번이 가장 낫다며 계속 주장했고, 하람이는 1번, 와중에 차선빈은 3개 다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선택이 더욱 힘들어졌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 다 올려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10장도 아니고 3장인데.
“아, 그렇게 쉬운 방법이!”
“맞아요. 그냥 다 올려요. 다 괜찮은뎅.”
“응. 다 괜찮아.”
그리고 그렇게 다 올리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멜로우 분들이 좋아해주셨으면.
“얘들아, 이제 그만 이동해야 해. 다음 스케줄 바로 뒤에 있거든.”
앞선 매니저 형의 말에 서둘러 이동할 준비를 했다. 오늘 음악 방송 이후에는 너튜브 컨텐츠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톡 어바웃에 출연하는 건 처음이네.”
“아, 요즘 이거 완전 잘 나가잖아.”
우리가 출연하게 될 너튜브 컨텐츠는 ‘Talk about’이라는 컨텐츠로 흔히 줄여서 톡바웃이라 불렸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다시피 주로 토크를 위주로 하는 컨텐츠였고, 아이돌 그룹들이 컴백을 하면 꼭 한번씩 나오곤 했었다.
“안녕하세요, 윈썸.”
“안녕하세요!”
컨텐츠의 MC를 맡은 방송인 석이형이 도착한 우리를 반겼다. 촬영은 조명이 밝은 어느 화이트톤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여기 사전 질문 작성 한번만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한 건 사전 질문지 작성이었다. 해당 질문지에는 몇 가지 질문이 적혀 있었는데, 대답하기 어려운 류는 아니었다.
[앨범 곡들 중 가장 최애곡은?]
[요즘 이 멤버, 좀 귀엽다.]
[각자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멤버 이름]
아니다, 요즘 이 멤버 좀 귀엽다는 고민이 좀 필요했다. 귀여운 멤버, 귀여운 멤버라······.
“귀여운 멤버, 누구 썼냐?”
그때 백은찬이 빠르게 옆으로 다가와 내 질문지를 눈으로 한번 훑었다.
“아직 빈칸인데.”
“이거 어때, 우리 서로 쓰는 거야.”
“너?”
“뭐냐, 이 반응은?”
아니, 뭐 못 쓸 건 없지만.
“그래. 너 써줄게.”
“야, 그래도 진심 몇 프로는 넣어줘.”
“알겠어.”
10% 정도 넣어주면 되나.
백은찬, 귀엽다.
그리고 그 뒤의 질문도 마저 적어나갔다. 할 때마다 백은찬이 궁금한지 조금씩 보긴 했지만, 봐도 별 상관은 없었다.
“아니, 근데 핸드폰 저장명이 진짜 이거야?”
“응.”
백은찬, 차선빈, 안지호···대충 성과 이름의 조합이었다. 이래야 찾기 쉽고.
“정이 없네. 정이 없어.”
그렇게 말하며 백은찬은 혀를 찼다.
그리고 작성을 완료한 질문지를 작가님께 전달한 이후 얼마 안 돼 녹화에 들어갔다.
“오늘 이곳에 위닝샷을 제대로 날려주실 분들이 오셨죠, 환영합니다. 윈썸!”
“Keep in mind! 안녕하세요, 윈썸입니다.”
그렇게 오프닝 방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