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그러니까 뭘로 했냐고.
오프닝을 시작함과 동시에 멤버 소개, 그리고 이번에 나온 신곡 소개 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럼 이제 신곡 소개도 다 들었겠다, 본격적으로 토크 어바웃을 할 시간인데요. 앞서 여러분들이 작성하신 질문지를 토대로 한번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어느새 본 코너로 들어가 각 질문에 대한 답을 살펴볼 차례였다. 그리고 사전에 작성한 질문이 앞에 보이는 모니터로 띄워졌다.
“첫 질문은, 요즘 이 멤버, 좀 귀엽다! 여기에 다들 대답을 해주셨는데요. 어때요, 다들 쉬우셨나요?”
“전 별로 어렵진 않았던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백은찬이 답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랑 표를 교환했으니.
“오, 은찬 씨는 어렵지 않으셨고. 다른 분들은요?”
“저도 별로 안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도 그냥 떠오르는 멤버를 바로 적었습니다.”
“아, 이걸 보니 윈썸 멤버 분들이 참 사이가 좋으시군요~”
MC 석이형이 흡족한 얼굴로 리액션했다.
“그럼 바로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아, 일단 이건 최다득표자부터 발표를 할 거예요.”
최다득표자라.
약간 예상되는 결과였다.
아마 막내인 하람이가 아닐까 싶었다.
정말로 귀엽기도 하니까.
“최다득표자는~ 아, 두 분이네요. 바로 하람 씨와 세현 씨입니다!”
······?
최다 득표자라고?
순간 불린 이름에 어리둥절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요즘 이 멤버 좀 귀엽다에 두 분이 최고 득표자로 뽑히셨어요. 소감 한번씩 어떨까요?”
그리고 신하람이 그대로 나를 쳐다봤다. 최다득표자가 2명이니 누가 먼저 할 것인가를 물어보는 것이었는데, 이에 먼저 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곧 하람이가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소감을 전했다.
“아, 일단 감사드리고요. 이 형들이 또 막내라고 뽑아준 모양이에요. 그래도 일단 기분은 좋습니다!”
“아니에요. 하람이가 진짜 귀여워요.”
“어, 세현이 형 나 뽑았어요?”
“······아니.”
“아익! 뭐야!”
그건 아닌데, 솔직히 뽑을까 생각은 했어.
생각에 그쳤지만.
“그럼 세현 씨도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우선 저도 감사합니다. 근데 누가 뽑은 건지 알 수 있나요?”
“네. 그럼요. 바로 알려드릴 거예요.”
다른 것보다 그게 궁금했다.
누가 날 뽑은 거냐.
“자, 모두 궁금해하시는 것 같으니 그럼 여기서 답변을 공개할게요.”
그리고 공개된 답변.
도운 → 하람
지호 → 하람
은찬 → 세현
선빈 → 세현
세현 → 은찬
하람 → 도운
아, 2표가 최다 득표였군.
백은찬이랑 표를 교환하기로 한 탓에 얼떨결에 최다 득표가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앞선 답변의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해달라는 MC의 말에 한 명씩 그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역시 막내가 귀엽죠. 요즘은 철이 좀 들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귀여워요.”
“어, 근데 하람 씨는 정작 도운 씨를 뽑았어요.”
“둘이 짠 건 아니죠?”
“놉. 안 짰어요.”
신하람이 강하게 부정을 하고 나섰다.
그러더니 곧 미간을 좁힌 채로 앞에 있는 화면을 가리켰다.
“아, 잠깐만. 세현이 형 은찬이 형?”
그 즉시 한껏 의심스럽단 눈으로 백은찬을 빠르게 쏘아보았다.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요?”
“아니. 아닌데?”
동시에 대답을 하던 백은찬의 입꼬리가 그대로 살짝 올라갔다. 제대로 티가 나는 구만.
“맞나본데?”
여기에 안지호가 조용히 말을 얹었다.
하지만 백은찬은 여전히 당황한 기색 없이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뇨, 당근 세현이가 귀여워서 뽑았죠.”
“아냐, 이 형 입꼬리가 너무 올라갔어!”
“그러니까 세현이가 너무 귀여워서 입꼬리가······.”
“짰네.”
안지호가 확신이 담긴 어투로 또 다시 말을 얹었다. 그러자 백은찬은 씨익 한번 웃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실을 털어놓았다.
“솔직히~솔직히 말하자면, 찍어주기로 한 건 맞는데!”
“아, 역시.”
“세현 씨가 귀여운 것도 맞죠~”
“어때요, 세현 씨. 진심이 반영됐었나요?”
MC가 나를 향해 물었다.
이렇게 금방 들키는군.
그래도 영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근데 진심이 반영되긴 했어요. 실제로 은찬이가 귀여울 때가 종종 있거든요.”
“헐, 진짜?”
그러자 백은찬이 눈을 빛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왜 그렇게 감동 모드인 건데.
“그렇다면 은찬 씨가 귀여울 때는?”
“밥 먹을 때요.”
“어쩐지 밥 먹을 때마다 얘가 절 그렇게 본다니까요.”
동시에 백은찬이 못 말린다는 듯 손을 한번 내저었다. 그런 백은찬의 입꼬리는 이전보다 더욱 올라가 있었다.
그건 그냥 앞에 있으니까 본 거 아닐까.
“밥 먹을 때는 왜 인가요?”
“아무래도 맛있게 먹어서 보기가 좋아요.”
같이 먹는다고 할 때마다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고. 이제는 같이 먹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없으면 되려 허전했다.
“앞으로 더 맛있게 먹어야겠습니다.”
“뭐 얼마나 더 먹으려고?”
“같이 맛있게 먹죠, 지호 씨.”
그리고는 백은찬은 의기투합하자는 의미에서 그대로 안지호를 향해 하이파이브 동작을 취해 보였다.
이에 안지호는 그런 백은찬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보면서도 이내 살짝 응해주었다.
그래, 맛있게 먹으면 좋지.
그리고 나서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다음으로 나온 질문은 <각자 휴대폰에 저장된 멤버 이름>이었다.
“이건 그럼 작성하신 답변을 직접 보도록 할게요.”
그렇게 화면에는 멤버 6명 각자가 작성한 질문에 대한 답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저장명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백은찬의 저장명이었다.
[(세현) : 우리집토끼]
[(지호) : 지호렐라]
[(선빈) : 짝꿍선빈]
[(도운) : 멋쟁이윤리더]
[(하람) : 막둥이신하람]
난 왜 너네 집 토끼인 건데.
* * *
앞서 본 저장명 중 단연코 눈에 띄는 건 백은찬의 저장명이었다. 그리고 이는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백은찬에게로 물음이 갔다.
“어, 여기 은찬 씨 저장명이 유독 눈에 띄네요?”
“넵. 저는 좀 별명처럼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백은찬이 씨익 한번 웃었다.
“잠깐 볼까요? 우리집토끼, 지호렐라, 짝꿍선빈···정말 다 별명 같네요.”
“세현이는 왜 우리집 토끼야?”
“토끼 닮았잖아요.”
백은찬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러더니 곧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예전에 세현이가 프로그램에서 라이크 땡빗 탈을 쓴 적이 있거든요─아, 자체 삐처리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MC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는 계속 이렇게 저장해두고 있었어요. 사실 원래 캐릭터명 그대로 저장을 해둘까 하다가 그냥 좀 더 친근하게 우리집 토끼로 바꾼 거죠.”
“아, 그 일이 은찬 씨한테는 꽤 기억에 남았군요.”
“그렇죠, 그렇죠.”
백은찬이 고개를 몇 번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그냥 라이크 래빗보다는 우리집 토끼 쪽이 어감이 좀 더 낫긴 하지.
“근데 이거 진짜 괜찮은 거 같아요. 저도 바꿀까요? 우리집 토끼형으로?”
“안 돼. 내 거야.”
백은찬이 강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중복되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그럼 짝꿍선빈은요? 그러고 보니 둘이 동갑이셨죠?”
“네. 근데 단순히 동갑이라서 이렇게 한 건 아니고 선빈이랑 저랑 비슷한 게 많거든요. 예를 들면, 요리 포지션이라던가.”
그리고 이러한 저장명이 어떠냐는 질문에 차선빈은 만족스럽다면서 그대로 미소 지었다. 백은찬의 저장명이 꽤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세현 씨 저장명을 한번 봐볼까요?”
그리고 순서는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왔다.
“전 그냥 성이랑 이름이에요.”
“아, 이렇게 정이 없을 수가!”
백은찬이 굉장히 안타깝다는 듯한 어투로 유독 크게 반응했다. 저거 분명 준비된 리액션이다.
“이게 아무래도 찾기 편해서요.”
“근데 확실하네요. 심지어 윤도운 형이에요.”
“윤도운 형이야?”
도운이 형이 조금 놀랐다는 듯 화면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서는 조금 내려간 미간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정이 좀 없다, 세현아.”
“네?”
“세현아······.”
차선빈 또한 한껏 서운하다는 말투로 나를 바라봤다. 표정에서부터 서운하다는 티가 팍팍 나는데 그걸 보니 새삼 좀 삭막했나 싶기도 했다.
그, 성 정도는 떼는 걸로 할까.
“-이도 붙여줘야 해. -이도.”
“-이?”
“은찬이-아니, 은차닝도 괜찮······.”
“네. 알겠습니다.”
성만 빼는 걸로 고려해야겠다.
“네, 그렇군요. 그럼 다음 지호 씨 저장명 봐볼까요?”
그리고 다음은 안지호의 저장명으로 갔다. 대충 성격상 안지호도 무난하게 이름이지 않을까 싶은데.
“지호도 뭐, 세현이랑 똑같네요.”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안지호가 작성한 저장명 또한 나와 같은 이름 석 자였다. 추가되는 것 없이.
“지호 씨도 깔끔파이신가 보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 깔끔한 게 최고다.
역시 안지호, 그럴 줄 알았······
[“연습생이 붙긴 하지만.”]
?
연습생?
* * *
짧은 사이, 안지호의 찰나의 순간 잠깐 들렸다. 연습생, 그러니까 연습생이 붙었다······.
‘······설마 우세현 연습생이냐?’
저장명.
앞서 들은 생각을 기반으로 생각을 해볼 때, 추측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아니, 근데 그보다도······.
‘왜 아직도 연습생인 거냐.’
혹시 처음 저장했을 때 그대로 인 건가.
귀찮아서 바꾸지 않았던가 하는.
그리고 그 순간, 안지호와 얼핏 눈이 마주쳤다. 마치 뭘 보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100% 그대로네.’
처음 저장했던 대로 우세현 연습생.
그렇다면 다른 멤버들도 백은찬 연습생이려나. 아니, 아마 맞겠지.
그래도 있는 대로 답하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그랬다가는 멤버끼리 친하지 않다느니 비즈니스 관계라느니 하는 쓸데없는 말이 꽤 돌았을 테니.
안지호도 그걸 알고 일부러 다르게 말한 것일 터였다. 말이 돌아서 좋을 게 없으니.
‘그래, 그건 잘했다.’
그건 잘했지만, 그래도 한번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지.
사실 저장명 같은 건 단순히 성과 이름의 조합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달랐다.
레벨업. 반드시 레벨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난, 그대로 안지호의 뒤통수를 잠시 뚫어지게 응시해주었다.
해야겠다, 레벨업!
* * *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토크에 이어 신곡 무대까지 모두 마치고 난 뒤, 촬영은 그대로 종료되었다. 해가 저물 때쯤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밖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안지호.”
“?”
나는 그대로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안지호의 옆에 조금 붙어 앉았다. 그러자 안지호가 다시 한번 뭐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너 나 뭐라고 저장했어?”
“뭐?”
“휴대폰 저장명 말이야. 뭘로 했어?”
그러자 안지호가 그대로 잠시 미간을 좁혔다. 안지호 입장에선 조금 뜬금없어 보이긴 하겠지만 돌려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급하다고!
“뜬금없이 그건 왜 묻는데?”
“단순히 우세현이 아닌 것 같아서. 혹시 뭐 더 덧붙인 거 없어?”
그러자 안지호가 그대로 시선을 살짝 돌렸다. 딱 봐도 정곡을 찔렀다는 표정이다.
“있어.”
그래도 순순히 대답을 하는군.
그렇다면 이야기 진행이 빠를 듯 했다.
“뭔데?”
“······연습생.”
연습생!
그럴 줄 알았다!
“처음 저장하고 귀찮아서 그대로 놔둔 거지?”
“응.”
조금 뻘쭘했던 건지 여전히 시선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그래.
뭐,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지만.
“레벨업 해줘.”
“레벨업?”
“이제 연습생 아니잖아. 적어도 연습생 정도는 떼는 게 어때.”
“그냥 우세현을 원한다는 거냐?”
“응.”
원한다, 그냥 우세현.
그리고 그렇게 잠깐 안지호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 이내 한숨을 푹 쉬더니 결국 폰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바꾸려고 했어.”
본인이 보기에도 슬슬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던 모양이다. 이어서 안지호는 그대로 전화번호 목록부로 들어갔다.
백은찬 연습생, 차선빈 연습생···대충 보기에도 연습생이란 글자가 아주 착실하게도 붙어 있었다.
“아, 우세현 말고 세현으로.”
“뭐야, 왜 또 바뀌었어.”
“그래야 좀 덜 삭막하잖아.”
나 역시 성은 좀 뗄까 하는 중이었다.
안지호에서 지호로.
“야, 이제 됐······”
“뭐야?”
그때 백은찬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안지호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 사이 안지호의 폰 화면을 본 건지 급격하게 눈이 커졌다.
“야, 잠만. 연습생, 뭐냐. 연습생?”
“아······.”
“와, 연습생은 좀 아니지!”
그러한 백은찬의 반응에 안지호는 이내 작게 한숨 쉬었다. 일이 귀찮게 되었다라는 얼굴이었다.
“바꿔! 당장 바꿔! 이렇게 정이 없을 수가! 이건 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네!”
“그만 떠들어. 어차피 바꾸려던 참이었으니까.”
“야, 우세현. 너도 알았냐? 연습생이래! 아직도 연습생이야!”
나도 방금 알았어, 방금.
“빨리! 빨리!”
“아, 알겠다고.”
그리고 여전히 닦달하는 백은찬에 의해 안지호는 그 자리에서 저장명을 바꾸기 시작했다.
“야, 됐지?”
“봐봐!”
백은찬과 함께 안지호의 폰 화면을 잠시 응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이었다.
“야, 너도 은찬이로 바꿔.”
“뭐?”
“여긴 왜 이렇게 소란이야?”
그와 동시에 이쪽으로 다른 멤버들이 하나 둘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
결국 안지호는 그 자리에서 모든 멤버들의 저장명을 바꾸게 되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뭔가가 더 추가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결국 모든 멤버들의 이름이 정상적으로 등록되었다.
[세현이♥]
그래, 이제 좀 마음이 개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