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81화 (181/413)

181화. 가까이서 찾아보세요.

그대로 상자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케이크. 꺼낸 케이크는 상당히 미니 사이즈의 케이크였다.

“어떠냐?”

“괜찮아.”

“그리고?”

“좋아.”

“오케이.”

그런 내 대답에 백은찬이 만족스럽단 듯이 웃어 보였다. 약간의 의도된 대답이긴 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눈앞의 케이크가 괜찮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초보인 솜씨였을 텐데도 생크림도 나름 깔끔하게 발라져 있었고, 게다가 슬라이스된 딸기도 꽤 많이 올라가 있었다.

여기에 케이크의 중앙에는 토끼 모양 장식과 강아지 모양 장식이 하나씩 올라가 있었는데, 그 두 장식 사이에는 딸기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데코를 귀엽게 했네.

애들이 조금 삐딱하게 서 있긴 하지만.

“이거 데코는 누가 했어?”

“차선빈이랑 나랑 둘이. 아, 근데 너 케이크에는 나름 심각한 고민이 좀 들어갔어.”

심각한 고민?

“무슨 고민?”

“토끼를 올릴까 강아지를 올릴까에 대한 고민.”

아. 그래, 그게 심각한 고민이었구나.

“이 부분에서 좀 의견 충돌이 있었지. 내가 강아지, 차선빈이 토끼였거든.”

“그래서 결국 둘 다 올리게 된 거고?”

“엉.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둘 다 올려버리자, 하고 올렸어.”

“그래, 잘했다.”

둘 다 귀여우니까, 뭐.

더불어 강아지와 토끼 사이에 딸기를 하나 배치한 것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고맙다, 잘 먹을게.”

“아, 그리고 먹을 때는 이렇게 이 방향으로 잘라 먹어야 해. 이 부분에 딸기가 좀 모여 있거든.”

백은찬이 직접 케이크 위로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근데 그러면 기껏 올린 장식이 망가질 것 같은데.

‘먹기 전에 사진이나 많이 찍어둬야겠군.’

막상 이대로 자르려니 괜히 아까워졌다.

“어, 세현이 형 사진 찍으려고요?”

“응.”

“나도 찍어야겠다.”

“아이참, 다들 무슨 사진까지!”

백은찬이 그대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로 말했다. 좋아하는 티가 팍팍 나네.

옆을 보니 도운이 형과 하람이, 거기에 어느새 안지호까지 카메라를 든 채로 케이크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진을 몇 장 찍었고, 나중에 이 자체 컨텐츠가 나가고 나면 공식 계정에 한번 더 올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맛을 보기 위해 칼을 들었다. 최대한 조심해야만 했다.

강아지랑 토끼는 피해야 한다···이러면 딸기 양이 적어지겠지만, 그래도 강아지랑 토끼는 구해내야···.

“됐다.”

“엥? 뭐가요?”

“잘 잘렸어.”

“아니, 이거 너무 치우친 거 아니에요?”

신하람이 그대로 잘린 내 케이크를 유심히 살펴봤다. 괜찮아, 강아지랑 토끼만 무사하면 됐지. 만족스러웠다.

“맛은 어때?”

차선빈이 잔뜩 긴장한 것 같은 얼굴로 날 향해 물었다. 걱정이 됐는지 꽤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나는 곧장 엄지를 세워주었다.

“맛있어. 엄청.”

그런 내 대답에 차선빈이 곧장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정말로 처음 치고는 굉장히 잘 만들었다. 맛있네.

“근데 진짜 맛있어요. 형들 소질 있는 거 아니에요?”

“아이, 소질은 무슨!”

“전문가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

“근데 지호는 뭘 그렇게 봐?”

도운이 형이 안지호를 향해 물었다.

안지호는 케이크를 먹던 와중에 위에 올라가 있던 고양이 장식을 조금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 고양이 표정이 좀 웃긴데.”

“어디? 아, 약간 웃고 있네.”

“아, 그거? 고양이 장식이 그거밖에 없더라고~”

“사실이냐?”

“그렇다니까~ 근데 또 너 하면 고양이잖냐. 고양이를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안지호는 여전히 의심스럽단 표정으로 장식을 쳐다보고 있었다. 반면, 이를 듣고 있던 차선빈은 조용히 눈길을 피했다.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그리고 난 앞에 있는 케이크를 다시 한 입 먹었다. 역시 여전히 맛있다.

* * *

이번 주는 음악 방송의 막방주였다.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벌써 3주차였다.

오늘 하는 방송의 마지막 엔딩컷은 나와 도운이 형이 나란히 잡히기로 되어 있었다. 준비한 엔딩 포즈로는 볼하트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오, 세현 씨?”

순간적으로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돌아보니 바로 옆에 티어로브의 신윤우가 나를 향해 손을 들고 있었다.

아, 귀찮게 됐네.

아주 우연히 방송국 복도에서 또다시 신윤우와 마주치게 되었다. 정확히는 방송국 복도 구석에 있는 음료 자판기 앞에서.

“오늘은 혼자네요?”

“네. 잠깐 음료수를 마시려고요.”

“아하. 근데 벌써 뽑았어요?”

신윤우가 그대로 잠시 자판기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네. 방금 뽑았습니다.”

“아이고, 혹시 안 뽑았으면 하나 사줄까 했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빨리 뽑아서 다행이군.

동시에 신윤우는 내가 가지고 있던 음료수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았다.

“근데 왜 여기까지 와서 뽑아요?”

신윤우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대기실에서도 거리가 있는, 주변에 사람도 없는 이 자판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라는 의미였다.

“제가 마시려는 음료 종류가 이 자판기밖에 없거든요.”

“아. 어떤 음료인데요?”

“식혜요.”

“오, 그래요? 나도 식혜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단히 귀찮다.

“실은 지난번에 제대로 대화를 못 나눈 것 같아서요. 내가 전에 말했었잖아요. 세현 씨 원픽이었다고요.”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궁금한 게 많아요. 아, 팬으로서.”

뒤늦게 덧붙이는 모양새였다.

팬이고 뭐고 그냥 쓸데없는 호기심이겠지. 뭐가 있진 않을까 하는 뭐 같은 호기심.

“그래서 말인데요······.”

“선배님.”

“아, 네.”

“죄송하지만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 벌써요?”

“네.”

이럴 땐 그냥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주목적이었던 음료도 뽑았으니 이곳에 더 있을 이유도 없었고.

[“뭐가 이렇게 빨라?”]

신윤우는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그리고 당황한 건지 신윤우는 이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 그럼 번호 교환은 어때요?”

서론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군.

아무래도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그보다도 생각보다 집념이 대단하네.

이 정도면 아이돌이 아니라 기자를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선배님.”

“네.”

신윤우가 여유를 잃지 않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겉모습에 불과했지만.

“휴대폰이 없습니다.”

“네?”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휴대폰이 없어요.”

그러자 신윤우는 곧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래, 요즘은 데뷔 1년이 넘도록 휴대폰을 관리하는 곳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황당할 만하겠지만 그냥 그렇게 둘러댔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유겠지만.

“아, 그래요. 그렇군.”

그런 내 말에 신윤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번호 교환, 별로인가 봐요.”

“휴대폰이 없는···.”

“아니, 굳이 그렇게 거짓말할 필요 없다니까. 요즘은 신인들도 다 잘 가지고 다니더만.”

뭐, 대충 잘 알아듣긴 했네.

번호를 교환할 의사가 없다는 거.

그리고 신윤우는 곧 품에서 지갑을 자연스럽게 꺼내 들더니 이내 음료 자판기 앞으로 가 지폐 한 장 넣었다.

“그래요, 그럼 이유나 좀 들어봅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신윤우의 시선은 여전히 자판기로 향해 있었다. 와중에 뭘 마실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굳이 돌려 말할 필요 없겠지.

거절한 이상, 어떤 그럴듯한 이유를 대더라도 신윤우의 마음엔 차지 않을 터였다.

“뭐 없거든요.”

“응? 뭐가요?”

“선배님께서 흥미 있어 하실 만한, 그런 한 정보요.”

그 말에 내내 자판기에 가 있던 신윤우의 시선이 처음으로 이쪽을 향했다.

그 말에 신윤우는 잠시 그대로 나를 응시했다. 그러던 와중에도 여전히 머릿속으로는 많이 생각들이 오갔다.

[“어떻게 안 거지?”]

그게 가장 큰 생각이었다.

그리고 꽤나 당황한 건지 이후로 말이 없었다.

“혹시 어디서 뭐 들은 거 있어요?”

“아뇨.”

“정말 없어요? 뭐, 형한테 들었다거나.”

그 방면으로 추측이 나아가는군.

하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그냥 제가 좀 눈치가 빠릅니다.”

“하.”

그 말에 신윤우는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뭔가 들은 게 있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눈치가 빠르단 이야기를 듣긴 했었는데······.”]

[“정말 촉이 이렇게 좋다고?”]

그렇게 한동안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사실대로 말한 건데도 어째 전혀 믿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뭐, 어떤 식으로 믿든 안 믿든 본인 자유이기는 하다만.

중요한 건 본인의 접근 이유를 이쪽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충 시치미를 떼려나.’

시치미를 떼더라도 찔러보는 짓은 그만하고 순순히 포기했으면 좋겠는데. 시치미를 떼는 와중에도 계속 저런 식이면 역시 귀찮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의 생각 끝에 신윤우는 마침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후, 좀 더 조심을 했어야 했는데.”

예상외로 쉽게 인정을 하는 모습이었다. 시치미는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건지.

“그런 얘기를 들어 본 것도 같아요. 세현 씨가 눈치가 그렇게 빠르다고. 근데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네요.”

그리고는 나를 향해 그대로 한번 웃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다소 인위적인 한숨을 한번 푹 내쉬었다.

“아쉽네. 궁금한 게 참 많았는데.”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건지.

그래봤자 알려줄 건 없지만.

“아, 맞다.”

그러더니 곧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반응했다. 동시에 이전보다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게.

“그것도 궁금한 것 중 하나였어요. 세현 씨 형님의 루트 탈퇴 경위.”

이 새X가.

그 말을 하는 신윤우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서려 있었다.

“말이 워낙 많았잖아요. 그래서 이건 진짜 예전부터 궁금했던···.”

“선배님.”

“응?”

“재미는 원래 가까이에서 찾는 겁니다.”

그러자 신윤우가 그건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당연히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원래 가까이에 생각지도 못한 재미가 있는 법이거든요.”

티어로브 중국인 멤버의 공작실 설립.

이건 아직까지 터지지 않은 이슈였다. 얼마 안 가 터질 테긴 하지만.

‘보아하니 신윤우는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고······.’

앞선 내 말을 듣고서 전혀 떠오르는 게 없어 보였으니까.

[“말 돌리는 건가.”]

[“어지간히도 대답하기 싫었나 보네.”]

대충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뒤이어 신윤우가 자판기의 [식혜] 음료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것은 없었다.

“어, 뭐야. 이거 왜 이래?”

신윤우는 다시 한번 당황한 얼굴로 그렇게 자판기의 버튼을 눌러보았다.

“그거 품절입니다, 선배님.”

“아.”

이윽고 뒤늦게 품절 표시를 발견한 신윤우가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해했다.

“뭐, 그래서 이렇게 찾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가까이에서.”

“선배님과 제가 가깝지는 않습니다만.”

“가깝다면 가깝겠죠. 가요계 선후배 사이인데~”

그렇게 신윤우는 새로운 음료의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선택한 음료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신윤우는 이내 그것을 집었다.

동시에 입가를 미소를 띠운 채로 말했다.

“어쨌든 좋은 조언 고마워요. 굳이 필요 없는 말이긴 했지만.”

표정과 다르게 꽤나 날이 선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신윤우를 향해 답했다.

“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당연히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래 모르고 맞는 뒤통수가 훨씬 더 아프고 억울한 법이다. 아주 확실하게, 정확하게 쳐맞아야 할 텐데.

그리고 일은 예상보다 빠르게 터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