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84화 (184/413)

184화. 바람이 많이 분다.

‘사자.’

찰나의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순간 사자의 얼굴이 보였다.

뭔가 매치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자를 볼 줄은 예상 못했으니까.

그 탓에 잠깐 헷갈리기도 했다.

앞서 내가 본 인물이 정말로 사자가 맞는가인 것에 대한.

‘아니, 분명 사자였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확실히 사자였다. 잘못 봤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야, 왜 그래?”

옆에 있던 백은찬이 나를 향해 물어왔다. 이에 빠르게 정신을 고쳐 잡았다.

“아니. 아무것도.”

“뭘 보고 있던 건데?”

“그냥 잠깐 눈앞으로 뭐가 날아가길래.”

“촬영 다시 들어간대.”

“응.”

일단 당장은 일에 집중해야만 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거니까.

그렇게 또 다시 불어오는 바람에 뒤에 있던 바람개비가 다시금 휘몰아치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 * *

촬영은 장소를 이동해서도 계속되었다. 테마파크 다음 장소는 바닷가 근처였는데, 탁 트인 바닷가 뷰를 보니 절로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바다색 엄청 예쁘다.”

“이게 그 에메랄드 바다에요?”

“뭔가 사진 보고 있는 것 같네.”

날이 좋아서 그런지 바다도 반짝반짝했다. 거기에 앞서 멤버들이 말한 대로 색이 에메랄드빛이었다.

“야, 나중에 단체 사진 한번 찍자.”

“좋네. 그냥 가기 아쉬웠는데.”

“마음 같아선 입수 게임 같은 것도 하고 싶은데, 아쉽다.”

백은찬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건 별로 아쉽지 않았다.

그렇게 멤버들은 상당히 신이 나 보였다. 하긴, 이 풍경을 보고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지. 그만큼 바다가 예뻤다.

그리고 그렇게 바다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조금 전 일이 떠올랐다. 인파 속에서 사자를 봤던 그 일.

‘일단 날 만나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사자에게서 받은 매개체에 아무런 신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서 이후에 특별한 접촉도 없었고.

‘그렇다면 단순 우연인가.’

예전에 집에서 사자를 만났던 것처럼, 주변에 일이 있어서 보게 됐다거나하는.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다.

일단 사자는 이상한 걸 잡고 다니는 일도 도맡아 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아, 잠깐.’

그렇게 따지면 이 근처에 이상한 게 있다는 거잖아. 그래도 괜찮은 건가? 혹시 위험한 건···.

아니. 일단 사자가 와 있는 이상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어떻게 될 터였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참, 엄청난 우연이네.’

제주도로 촬영을 왔는데, 사자도 마침 제주도에 일이 있었다. 정말로 상당한 우연이었다.

“야.”

그때 순간적으로 들리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어느새 옆에 와 있던 안지호가 보였다.

“어, 왜?”

“좀 떨어지라고.”

“아.”

앞에 있는 울타리를 말하는 거였다.

잠시 생각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꽤 울타리 가까이로 간 모양이었다.

“뭔 생각을 하길래 정신을 놨어?”

“그냥 바다 감상.”

“정신줄 잡아가면서 해라.”

“알겠어.”

놓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안지호 말대로 앞선 일은 잠시 제쳐두기로 했다.

사실 아직까지 사자와 관련해 궁금한 게 많았지만, 어차피 생각해봤자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다에서의 촬영이 시작됐다.

진행되는 촬영은 바다를 배경으로 둔 페어 촬영이었다. 2명씩 짝을 나누었고, 나는 안지호와 찍게 되었다.

휘이이이잉─

‘여전히 바람 한번 크게 부네.’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바람이 많이 불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테마파크 때보다 훨씬 더 세기가 강했는데, 아무래도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이렇게 바람이 불 시 다른 것보다 표정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여기에 같이 일하는 스텝 분들도 힘드실 테고.

카메라나 반사판과 같은 여러 장비들을 들고 계시다 보니 바람이 크게 불면 아무래도 촬영에 영향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잠시 바람이 잠잠해졌을 때쯤, 촬영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촬영으로 인해 상당 인원이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근방으로 다시금 사람이 모이는 게 보였다.

“자, 이대로 다시 한 컷 더 갈게요.”

그리고 조금 자세를 바꿔 촬영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 그때 문득 눈앞 시야로 또다시 익숙한 얼굴이 걸렸다.

‘···어?’

이번에도 사자였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순간 바람이 다시 한번 강한 소리를 내며 휘몰아쳤다.

“엇!”

“세현 씨!”

그때, 순간적으로 뭔가가 바람을 타고 눈앞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기도 전에 그 물체는 어느새 나에게 가까이 와 있었다.

‘어, 뭐···.’

그런데 그 순간, 엄청난 힘에 의해 몸이 옆으로 강하게 당겨졌다.

동시에 나를 향해 날아오던 물체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난 그대로 잠시 앞서 지나간 물건의 정체를 확인했다.

‘잔가지···.’

날아온 물체의 정체는 바로 나무의 잔가지였다. 다만, 형태가 꽤 날카로워 그 탓에 잘못했으면 그대로 피부를 긁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순간 안지호가 나를 빠르게 제 쪽으로 끌어당긴 덕에 그런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의 안지호가 보였다. 표정이 꽤나 살벌했다.

“야.”

그 순간, 안지호가 입을 열었다.

그대로 보이는 표정과 말투로 보아 뭔가가 제대로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과 달리 뒤 따라오는 말 같은 것은 없었다.

‘어, 무슨 일···.’

그런데 그때, 앞서 의문을 표하기 무섭게 안지호는 마주 본 상태에서 그대로 내 어깨를 강하게 당기더니 이내 곧 가까이 다가왔다.

동시에 나를 향해 낮게 읊조리며 말했다.

“뒤지고 싶어?”

아뇨.

* * *

그것은 굉장히, 아주 굉장히 작은 목소리였다. 안지호의 바로 앞에 있던 나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목소리.

현재의 상황이나 안지호와 내 자세를 볼 때 겉보기엔 마치 토닥여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아니 물론 비슷하긴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정줄 잡아라.”

그러더니 그 상태로 정말 자연스럽게 내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이건 알아서 잘하라는 의미인가.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났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촬영 중이고 스텝들도 있고 하니 나름대로 최대한 자중한 듯 했다.

“세현 씨, 괜찮아요?”

주변에 있던 스텝들 역시 하나둘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안지호와 떨어질 수 있었다.

“네. 괜찮습니다.”

“아유, 갑자기 저만한 게 어디서 날아온 건지.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러게요.”

그리고 그대로 괜찮다는 의미로 스텝을 향해 한번 미소 지었다.

“촬영 조금 쉬었다가 갈까요?”

“아뇨. 바로 가도 괜찮습니다.”

“잠깐 쉬고 갈 수 있을까요?”

그때 옆에서 안지호가 불쑥 들어왔다.

이에 스텝은 어차피 바람이 다시 강해져서 이쯤에서 한번 더 쉬어야 할 것 같다며 그 김에 조금 쉬었다 가자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촬영은 15분 정도,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굳이 안 쉬고 가도 되는데.”

“정줄 잡으라고 그런 거다. 오늘 하루 종일 빠져 있는 것 같길래.”

“미안.”

곧바로 안지호에게 사과를 전했다.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지호가 순간 미간을 크게 좁히더니 이내 빠르게 말을 뱉었다.

“너 내가 집중하라고 했지. 촬영하는데 어디 정신 내빼고 있어? 프로 의식 없냐? 매니저 형들이 주변 살피라고 하는 거 못 들었어?”

이전보다 목소리가 꽤나 높아져 있었다.

물론 현장인 만큼 큰 소리를 내거나 한 건 아니었다.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긴 했지만, 스텝들과도 조금 떨어져 있었고 또 파도 소리가 워낙 큰 탓에 묻혀 다른 이들에게 들릴 일은 없었다.

“진짜 미안. 이제부턴 정말 제대로 정신 차릴게.”

“···하아.”

그러자 안지호는 잠시 낮게 한숨 쉬었다.

괜한 일로 걱정시킨 것 같아 미안했다.

조금 전 사자라고 생각했던 인물은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사자가 아니었다. 단순히 비슷하게 생긴 인물이었을 뿐.

아무래도 앞선 생각 때문에 순간적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사이 정말 정신을 놓고 있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쓸데없는 생각은 정말 지우기로 했다. 안지호 말대로 정줄 잡아야지.

“아깐 고마워.”

“뭐?”

“나뭇가지. 순발력 장난 아니더라.”

“그건 니가 정줄 빼놓고 있어서 그런 거고.”

“그래. 그래서 덕분에 잘 피했다.”

뭐, 그 뒤는 좀 살벌하긴 했다만. 하하.

“그 표정은 뭐냐?”

“그냥 지난 기억이 떠올라서.”

“지난 기억?”

“아무튼 고맙다고.”

그런 내 말에 안지호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조용히 턱을 괼 뿐이었다.

“정신 돌아왔으면 됐어.”

“응.”

잘 돌아왔다.

굳이 쉬어갈 필요 없다 생각했는데, 나름 리프레쉬가 되었다. 이젠 정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 좀 빼고 살아, 우세현.”

“아까는 정줄 잡으라고 했잖아.”

“그거하곤 다른 얘기다.”

그렇게 대충하는 말처럼 이야기했지만, 안지호가 말한 말의 의미가 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동안 안지호와 함께 눈앞에 있는 바다를 감상했다. 여전히 에메랄드색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좋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도, 어쩐지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혀 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사이 강하게 불던 바람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 * *

“너 아까 큰일 날 뻔했다며.”

“뭐?”

“아까 뭐 날아왔다고 그러던데.”

언제 들은 건지 이전에 있던 일을 멤버들 역시 알고 있었다. 매니저 형한테 들었나.

“매니저 형한테 들었어. 조심 좀 해라.”

“별거 아니었어. 그냥 나뭇가지였어.”

“그게 그냥 길가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는 아닐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뭇가지인 건 비슷했다. 그리고 별일 없었으니까.

“하여튼 우세현···”

“세현아, 다쳤어?”

중간엔 소식을 들은 건지 차선빈이 헐레벌떡 달려오기도 했다. 표정만 봐서는 이미 어디 실려가 있어야할 정도였다. 누가 얘한테 뻥튀기해놨냐.

그리고 한동안 아무 일이 없다는 걸 잘 확인시켜줬다. 그럼에도 백은찬과 차선빈은 내가 개인 촬영을 하는 동안 대기실에 가지 않은 채 밖에 나와 있었다.

여기에, 안지호도.

“이 다음이 나야.”

넌 왜 앉아있냐는 물음에 안지호는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는 준비를 끝낸 도운이 형과 하람이가 나오기도 했다.

그 뒤로도 광고 촬영은 계속되었다.

개인에 이어 단체로도 진행이 되었는데, 단체로 진행을 할 때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다 같이 여행 온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덕에 파라솔도 세우고, 비치발리볼도 던졌다. 다행히 바람이 점점 잦아드는 추세라서 별다른 탈 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전, 광고 촬영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광고 촬영 이후에도 여전히 남은 일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컨텐츠 촬영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여전히 사자의 매개체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사자의 얼굴과 마주치는 일 또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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