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관상에 노래가 없어.
쨍한 태양과 푸르른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 아래, 민트 컬러의 트럭 한 대가 거리에 멈춰 섰다.
동시에 멈춰 선 트럭 안에서부터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남성은 그대로 천천히 지면에 발을 내딛었다.
이어서 카메라가 비춘 남성의 얼굴.
그것은 파란색 베레모에 하얀색 세일러, 그리고 그 위에 파란색 자켓을 걸치고 있는 갈색 머리의 우세현이었다.
- 세현이 갈머!
- 아 마린룩 너무 좋아ㅠㅠㅠ
- 벌써 끝났다ㅠ 개존잘
그런 우세현의 뒤로 장면이 하나씩 전환되면서 각자의 자리에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하나 둘씩 클로즈업되며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거대한 시계탑의 모습. 동시에 시계의 바늘이 하나 움직이자 곧바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트렌디한 사운드의 곡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곡의 시작은 안지호였다.
첫 파트로 등장한 안지호는 타이가 없는 남색 카라의 마린룩을 입고 있었다. 그런 안지호의 뒤로는 이국적인 모습의 마을이 배경으로 비춰졌다.
[엉망인 세계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손 안의 지도를 펼쳐봐]
- 안지호 음색 미쳤다
- 지호 빨머ㅠㅠㅠ빨머 지호 사랑해
- 첫 파트부터 꽉 잡고 가네
그 사이, 앞서 나왔던 민트색 트럭이 한번 더 등장하였다.
해당 트럭의 상단부에는 ‘WINSOME’s ICE CREAM’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고 트럭의 지붕에는 커다란 3단 콘 아이스크림 모형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 아이스크림 트럭 안에 앉아 하얀색 소프트콘을 들고 있는 우세현이 화면에 등장했다.
더불어 우세현이 들고 있던 그 소프트콘에는 조그마한 노란색 해바라기가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이제는 이곳으로 찾아와]
[언제나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너와 함께 Travel.]
- 우세현 표정 뭐야ㅠㅠㅠㅠㅠㅠ
- 해바라기? 해바라기랑 아이스크림? 미쳤어 진짜
- 개 상큼해ㅠㅠㅠㅠㅠㅠ
첫 파트부터 안지호와 우세현으로 이어지는 보컬의 조합은 한 번에 듣는 이의 귀를 집중시키기 좋았다.
그렇게 멤버들이 타고 있던 아이스크림 트럭은 도로 위를 여유롭게 달렸다.
이번 리패키지 앨범의 컨셉은 ‘Blue Travel’ 이라는 곡 제목과 맞게 ‘여행’이었다.
그리고 앞서 나온 아이스크림 트럭을 통해 멤버들과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는 것이 이번 컨셉의 핵심이었다.
이에 멤버들이 타고 있던 아이스크림 트럭 주변으로 이국적인 유럽 마을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리고 그런 마을 한 가운데 호수 동상 앞에 앉아 있는 차선빈이 등장했다.
그런 차선빈의 반대편에는 신하람이 앉아 있었고, 두 사람은 동상을 사이에 둔 채로 그렇게 한 편의 랩을 마치 대화하듯 주고받았다.
- 헐 선빈이 하람이 랩ㅜㅜ
- 역시 차선빈 존나 잘하네
- 이번에도 영어랩이다!
- 하람이 랩 많이 늘었다ㅜㅜ오구오구
그리고 나오는 후렴 부분의 단체 군무.
동시에 6명의 멤버들 뒤로는 광활하게 펼쳐진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Blue Travel]
[언제라도 데려가줄게]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 여름 분위기 제대로 난다
- 마린룩 다 너무 예뻐ㅜㅜㅜㅜ
- 중간 청바지 셔츠 조합도 이쁨
그때 아이스크림 트럭은 마을이 아닌 푸르른 바다가 보이는 도로 위를 달렸다.
이후, 아이스크림 트럭은 새로운 목적지에 정차했고 동시에 드넓은 모래사장 안에 들어섰다.
그대로 트럭 위에 오른 백은찬은 옆에 보이는 색색깔의 콘 아이스크림 모형을 기대어 화면을 향해 한번 웃었다.
그런 그의 손에는 역시나 노란색 해바라기가 꽂혀 있는 흰색 소프트콘이 들려있었다.
[파란 향기가 나는 바다에]
[언제나 찾아와줘]
[네 쉼터가 되어줄 테니]
- 은찬이 음색ㅜㅜㅜㅜㅜㅜ
- 해바라기 백은찬 이것은 진리다
- 썬글라스도 귀여웡ㅜㅜㅜㅜㅜㅜㅜ
그 사이, 장면 장면으로 파란 바다와 함께 있는 멤버들의 컷이 잡혔다.
그리고 그대로 푸른 바다를 마주 보고 있던 하얀색 세일러를 입은 윤도운은 손에 든 필름 카메라로 앞서 보이는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촬영했다.
[Blue Travel]
[달리는 시간 속에]
[너와의 하나 뿐인 Memory]
- 도운이 금발 도운이 금발
- ㅁㅊ 윤도운 목소리 존나 달콤해
- 미소 뭔데 웃는 거 뭔데ㅠㅠ
이어지는 푸른 바다와 단체 군무.
그리고 마린룩 의상을 입은 멤버들은 그대로 모래사장 위에 깔끔한 군무를 선보였다.
이후, 곡은 끝을 향해 달려갔고 이내 우세현의 파트를 마지막으로 잔잔한 파도 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
[그대로 너와 함께 달릴게.]
그리고 민트색의 아이스크림 트럭은 그렇게 다시 끝없는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Blue Travel]
[The END.]
* * *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직후, 각 종 커뮤니티와 SNS에는 그와 관련된 반응이 쏟아졌다.
- 마린룩에 아이스크림 트럭이라니ㅠ 진짜 너무 상큼해 엉엉
- 다들 마린룩 완전 착붙이야 이거 음방에서 당연히 입어주겠지? 코디분 열일해줘ㅠ
- 이번 노래는 좀 가벼워서 좋다 확신의 이지리스닝인 느낌
- 윈썸 노래 들어보는데 랩 멤들 파트가 별로 없는 듯 멜로디 위주의 노래라서 그런가
- 윈썸 이번에 또 청량이야? 얘네 퍼포형 노래는 왜 안해?
└ 바로 전 곡이 퍼포형이었어
└ 위닝샷 했는데 뭔솔
└ 퍼포형 원하면 위닝샷 무대 한번 봐봐 퍼포 쩔게 해줌 ^.^
리패키지 곡의 진입 성적은 자몽 메인 차트 19위. 거기에 실시간 차트의 경우 3위를 기록했다. 정규 앨범 못지않은 성적이었다.
‘괜찮은데?’
본래 리패키지 앨범의 경우, 정규보다 화력이 다소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컴백 텀이 짧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선주문이나 앨범의 초동 추이도 지난번과 비슷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선방했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엔 이지리스닝에 계절 맞춤인 곡인 만큼 이전보다 차트 방어가 조금 더 수월할 듯 했다.
‘거기에 활동 기간이 겹치는 그룹도 없고.’
그동안과 달리 이번만큼은 활동 기간이 겹치는 대형 그룹, 혹은 음원 강자가 없었다.
그러니 이대로 순위 방어만 잘한다면, 2주 연속 1위도 노려 볼 만했다.
“근데 근래 컴백하신 분들이 꽤 계시네.”
이번 주 음악 방송 라인업을 확인하던 백은찬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형 그룹이나 연차 높으신 선배님들은 없지만, 그래도 당장 컴백한 그룹의 수가 꽤 되긴 했다.
그리고 백은찬을 따라 나 역시 그날의 라인업을 잠시 확인해봤다. 그렇게 많은 출연자들 중에서 눈에 띄는 그룹명이 하나 있었다.
‘아, 온다크. 여기도 컴백했군.’
온다크 (Ondark)는 중소 기획사인 ME 엔터테인먼트 소속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올해 햇수로 3년 차인 선배 그룹이다.
처음 나왔을 땐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꽤 반응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같은 해에 체이스가 데뷔를 한 이후로 그 관심은 어느새 빠르게 식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곡을 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 때문인지 꽤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여기 메인보컬이 노래를 잘했지.’
온다크의 메인 보컬, 유원.
X세대 그룹 중에 노래 실력이 좋은 걸로 종종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음색이 독특한 건 아니지만, 리듬감도 좋고 고음 처리도 깔끔하고. 물론 직접 무대를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초면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마주친 유원을 향해 그렇게 가볍게 목례했다.
활동이 겹치다 보니 음악 방송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물론 지금은 우연히 마주친 거지만.
방송국 한 켠에 있는 자판기 앞에서.
인사 이외의 말은 오가지 않았다.
그저 서로 볼 일에 집중할 뿐.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실제로 보니 더 잘생긴 뚝딱이상이네.”]
“···아.”
“왜 그러세요?”
“아뇨. 음료가 품절이라서요.”
그러자 유원은 ‘아-’하는 소릴 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눈앞에 있는 자판기에 집중했다.
‘잘생긴 뚝딱이······.’
그러고 보니 이전에는 꽤 들었던 말이었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좀 들을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역시 언제 들어도 별로인 표현이었다.
예전부터 싫어했던 말이기도 했고.
[“아무리 봐도 관상에 노래가 없는데.”]
도대체 왜 외모와 노래를 연관시키는 건지. 그보다도 관상에 노래가 없는 건 뭐냐. 그냥 자리를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듯 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네. 무대 잘하세요.”
“선배님도요.”
그리고 그렇게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쓸데없는 생각 탓에 괜히 피곤해지기만 했다.
“어디 갔다 와?”
“잠깐, 음료 좀 뽑으러.”
대기실로 돌아오니 어느새 방송이 한창이었다. 뒤이어 소파에 앉아 있는 백은찬을 따라 앉았다.
“어, 온다크다.”
중간에는 온다크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는 유원이 꽤나 눈에 띄었다. 좋은 보컬을 보여주기도 했고, 분량도 많았던 터라.
무대를 처음 보는 사람도 메인 보컬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오 지금 노래 부르는 멤 유원이지? 역시 메보 잘한다
- 유원은 진짜 누가봐도 메보인게 티가 남ㅋㅋㅋㅋ
- 유원 노래 ㅈㄴ 잘한다 고음을 되게 편하게 함
- 난 요즘 돌들 중에서 유원이 노래로는 탑이라고 본다
커뮤니티 무대 반응 역시 유원에 대한 반응이 주를 이었다.
“깔끔하네.”
확실히 유원은 노래를 잘했다.
이번 노래 역시 심심한 면이 있긴 하지만. 썩 먹힐 것 같은 타입은 아니었다.
“네가 더 잘하는데.”
그 순간, 차선빈이 옆으로 와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서는 그대로 나를 바라본 채로 말을 이었다.
“훨씬 잘해.”
어, 근데 그렇게 강조할 것까진···.
그보다 언제 와서 보고 있던 거냐.
“얘가 더 잘하긴 하지.”
“그렇지?”
“그럼.”
백은찬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반응했다. 어느새 나를 가운데 둔 채로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솔직히 노래로는 상대가 없다고 본다.”
“응.”
“약간 그 부심이 생긴다랄까?”
“응응.”
그래, 고맙다.
과한 칭찬이긴 하다만.
“고맙냐? 그럼 저거 줘.”
“뭐?”
“아까 뽑아온 음료수.”
노리는 게 있었구만.
이에 조금 전 뽑아온 음료를 그대로 백은찬에게 순순히 넘겨주었다. 어차피 뭐, 또 뽑으면 되니까.
이어서 백은찬은 나를 향해 입꼬리를 한번 올렸다. 그리고는 내게서 건네받은 음료수의 따개를 그대로 크게 땄다.
그렇게 캔 따는 소리가 대기실 안을 경쾌하게 울렸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남은 무대들을 조금 더 감상했다.
* * *
그렇게 활동이 막 시작됐을 무렵, 방송 섭외가 하나 들어왔다. 정확히는 예능 섭외.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온 예능 섭외 요청이었다.
“<가면 아래 가수>?”
“응.”
“와, 드디어 나가는 거야?”
섭외받은 프로그램의 이름은 MBS <가면 아래 가수>. 이는 공중파 주말 저녁에 방송되고 있는 노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가면 아래 가수>.
이 프로그램은 간단히 말하자면, 정체를 숨긴 채 가면을 쓰고 노래를 하는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포맷은 간단했다.
매 회차 마다 8명의 출연자들이 등장하는데, 무대를 통해 이들과 겨루어 최종 1등을 가려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거 진짜 너 언제 나가나 했는데.”
“근데 이 프로는 예능이라기보단 경연이잖아요.”
“응. 그렇지.”
앞선 신하람의 말대로 해당 프로는 단순 ‘예능’이라기보다는 ‘경연’의 성격이었다. 일단 노래로 경쟁을 하는 게 주된 내용이니.
“근데 잘할 거야.”
차선빈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반드시 잘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한 번쯤 출연해보고 싶긴 했지.’
사실 <가면 아래 가수>는 한번쯤 출연해보고 싶었던 노래 예능이었다.
연차가 꽤 된 프로라 어렸을 적부터 봐왔던 것도 있었고, 가면을 쓰고 노래를 한다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고.
“그래서 가면은 뭘로 할 건데?”
“보통은 선곡부터 묻지 않나요.”
“가면도 궁금하잖아! 가면도! 이거 은근 가면이 포인트가 되니까.”
백은찬의 말대로 가면이 포인트가 되긴 했다. 일단 출연 이름도 가면의 이름대로 갔고.
“이왕이면 화려한 게 좋을 것 같은데. 반짝반짝~한 거 있잖아.”
그렇게 백은찬은 화려함을 강조했다.
반짝반짝한 거라.
아직 확실하게 결정한 건 없는데.
‘그보다 노래 선곡을 뭘로 할지가 더···.’
아. 생각났다.
아니, 그러니까 선곡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사실이.
‘이 프로 고정 패널, 신도하였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