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염원을 잔뜩 담아야지.
“수고하셨습니다.”
“시겸 씨, 수고하셨어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미션맨>의 모든 촬영이 종료되고, 이어졌던 회식 자리에서 박시겸은 그대로 짐을 챙겨 일어났다.
이어서 스텝들과 출연진들에게 가보겠다는 인사를 전한 뒤, 곧바로 대기해 있던 차량에 올라탔다.
‘피곤하네······.’
오늘따라 더 피곤했다.
온종일 뛰어다닌 탓인가.
이에 박시겸은 차량 헤드에 그대로 몸을 기댔다. 동시에 눈이 감겼다. 매니저는 잠시 요 편의점에 부탁받은 물을 사러 간 상태였다.
‘별 희한한 우연도 다 있군.’
오늘 일을 되새기다 보니 우세현과 만남 역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건만, 이상하게 기억이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앞서 고전을 해서 그런가.’
이름에 ‘세’가 들어가는 시민을 찾는 그 미션. 그 미션을 달성하기까지 박시겸은 꽤나 고군분투를 했던 바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쩌면 미션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했었으니까. 그렇게까지 생각이 닿자 어느 정도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었긴 했다.
사실 방송만 아니었더라면, 진작 포기를 했을 터였다. 성공할 확률이 낮은 일에 노력을 투자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실패를 목전에 두고 있던 찰나, 미션 성공의 해결키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우연은 또 하나의 어이없는, 아니 큰 결과를 만들어냈다.
빙고 게임에서의 우세현의 활약으로 인해 박시겸의 팀은 이제껏 받은 힌트 중 가장 큰 힌트를 얻게 되었고, 결국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떠오르는 무화과에 박시겸은 그렇게 잠시 실소했다.
‘감은 있다더니.’
어딘지 모르게 묘한 감이었다.
단순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한 대 필까.’
그 순간, 문득 담배 생각이 났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고 하려던 찰나, 손안에 무언가가 잡혔다.
‘사탕.’
청포도 사탕이었다.
앞전에 우세현에게 받았던. 먹고 남은 사탕을 그대로 대충 넣어두었는데, 그 이후로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사탕이었다.
박시겸은 단 것을 싫어했다.
그렇기에 평소에도 사탕 같은 걸 먹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때는 문득 손이 갔다.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게 먹어볼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당시 그는 많이 지쳐 있던 상태였다. 본인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러한 상태에서 타이밍 맞게 우세현은 그에게 사탕을 건넸고, 와중에 효과가 좋았는지 내내 날카롭던 신경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에 따라 약간이지만 피로감도 조금 줄어들었다.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았을 사탕이, 그 순간만큼은 먹을 만 했다.
그렇게 박시겸은 가지고 있던 사탕을 다시 쥐었다. 그리고 괜한 생각을 치우듯 사탕을 안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었다.
이어서 그는 그대로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밖으로 나갔다.
* * *
“진짜 어떻게 딱 그렇게 마주쳤는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니까.”
“그러게요. 그 상황 속에 세현이 형이 딱 있었다는 게 진짜······.”
앞서 백은찬과 신하람은 지난번 내가 <미션맨>에 특별 출연했던 일에 대해 아직까지도 신기하다며 이야기했다.
“게다가 거기 게임에서도 1등했다잖냐. 얘가 또 게임은 기가 막히게 잘해요~”
“빙고 게임이라고 했었죠?”
“응.”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능력에 의한 거긴 한데. 어쨌든 뭐, 분량이 있으면 좋은 거니.
‘얼떨결에 박시겸하고 또 같이 방송을 하게 된 꼴이긴 한데······.’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이후 박시겸과 딱히 연락하는 일도 없었고. 당연하지만.
그보다도 다음엔 이런 특출보다는 웬만하면 멤버들과 단체로 나갔으면 했다. 거기 나오는 게임들 꽤 재밌어 보였는데.
“근데 세현아, 오늘이지?”
“어? 뭐가?”
“방송.”
방송?
<미션맨>의 방송이라면 아직 날짜가 한참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앞선 차선빈의 말에 그대로 오늘 날짜를 떠올려보았다. 그 사이, 백은찬 역시 뭔가가 떠오른 건지 말을 얹었다.
“어,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디데이네.”
“응.”
“아, 오늘 세현이 형 방송하는 날이죠?”
아, 그렇구나. 오늘이네.
그리고 날짜를 확인하고 난 뒤, 앞서 멤버들이 말한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가면 아래 가수>, 그거 오늘 하잖아.”
백은찬이 다시금 내 쪽으로 고개를 밀며 말했다. 바로 <가면 아래 가수>의 지난 출연분이 나오는 날이었다.
“이게 보통 2회분인가?”
“응. 그렇다더라.”
“그럼 다음주까지 열심히 챙겨봐야겠네.”
방송 일자는 이번주와 다음주, 이렇게 2주 방송이 될 예정이었다.
이번 회차는 아마 1 라운드 분량만 나올 듯 했고, 왕좌가 결정되는 건 아마 다음주 분량일 듯 싶었다.
그리고 시작된 <가면 아래 가수>.
“우세현, 너 순서 몇 번째였어?”
“5번째.”
“아, 그럼 아직 한참 남았네.”
순서가 꽤나 뒷순서에 배정이 되긴 했었다. 이러한 순서 배정은 제작진 측에서 결정한 사항이라 내겐 딱히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던 도중, 패널로 있던 신도하가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어째 평소보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때도 그랬었나.
[그럼 오늘의 첫 번째 출연자부터 만나보겠습니다! 바로 ‘노래하는 부엉이’입니다!]
노래하는 부엉이.
익숙한 가면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첫 순서는 유원이었었지.
그와 동시에 화면 속으론 부엉이 가면을 쓴 유원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하얀 너의 그림자 뒤로]
[나는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어, 이거 유원이야?”
“응.”
“아, 목소리 들으니 알겠네.”
백은찬이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유원이 이번 회차에 함께 출연했다는 것을 이미 멤버들에게 이야기한 바였다.
- 오 가아수 첫 번째부터 노래 잘하네ㅋ
- 근데 뭔가 아이돌 삘이다
- 헐 이거 온다크 유원 아니야?
방송 온에어에서는 유원의 정체를 눈치챈 이가 없었지만, 아이돌 커뮤니티에서는 조금씩 유원의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 진짜 유원 맞으면 혹시 왕좌 가려나? 돌 중에서 노래 꽤 상타잖아
- 근데 정말 유원 맞음? 묘하게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한데
- 솔직히 맞아도 팬들은 다 입다물고 있을 듯ㅋㅋㅋㅋ
‘나도 빨리 들키려나.’
유원의 이름이 벌써부터 꽤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 역시 오래 숨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물론 나름 숨겨본다고 하긴 했지만.
“근데 세현이 형도 나오면 바로 이름 나오지 않을까요?”
“얘? 무조건 바로 나오지.”
“곧바로 아시려나?”
“그래도 조금 숨겼어요.”
“그래?”
그러니 나름 좀 뒤늦게 눈치채주셨으면 하지만, 그건 막상 가봐야 알 듯 싶었다. 아, 멜로우들은 당연히 바로 알아주시겠지만.
이후 유원의 뒤로도 무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때마다 간간히 판정단이나 관객들의 집중하는 표정이나 놀란 표정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그럼 다음은 어느새 5번째 출연자입니다! 바로 ‘한 여름의 스노우맨’! 나와주시죠!]
그러다 보니 금방 내 순서가 됐다.
이어지는 박수 소리.
“헐, 우세현! 우세현!”
“아, 형! 조용히 좀 해봐요!”
“둘 다 조용히 해라.”
이후 윤도운의 말을 마지막으로 백은찬과 신하람은 집중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준비한 미션곡인 <해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색깔 있는 음색의 ‘한 여름의 스노우맨’]
[잔잔함 속에도 나타나는 풍부한 감성]
화면 속에 있는 관객들과 판정단 역시 무대에 한껏 집중해 있는 얼굴들이었다. 더불어 시끄럽던 숙소마저 어느 샌가 조용해져 있었다.
‘아, 반응.’
그리고 그 타이밍에 문득 떠오른 반응 생각에, 그대로 폰을 들었다. 그러자 아까 보던 화면이 다시 한번 눈으로 띄워졌다.
이어서 띄워진 화면 속, 그대로 한 게시글이 곧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 스노우맨 누가봐도 우세현ㅋㅋㅋㅋㅋ
······아.
* * *
- 우세현 우세현 우세현 100퍼임
- ㅋㅋ 우세현 가면 아래 가수 나왔네
- 지금 하는 사람 윈썸 세현이야?
- 지금 가아수 세현 아니냐고 하려고 왔는데ㅋㅋㅋ이미 윈썸 세현이라고 소문 다 나 있음ㅋㅋㅋㅋㅋ
- 이건 너무 세현인데?ㅋㅋㅋㅋㅋㅋ
그 순간, <가면 아래 가수>와 관련된 게시글은 순식간에 내 이름으로 뒤덮여져 있었다.
‘······바로 들통났네.’
더불어 앞선 유원 때와 다르게 확신을 가진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던 지라 숨기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정체가 나온 거나 다름이 없었다.
“오, 형. 형 이미 다 들킨 것 같아요!”
“아, 뭐야. 우세현 들켰어?”
“당연히 들키겠지. 저렇게 티가 나는데.”
안지호가 턱을 괸 채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화면을 향해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도운이 형도 폰을 들어 반응을 살폈다.
“그러네. 이미 세현이라고 난리야.”
“거 봐, 내가 바로 안다고 했지?”
“솔직히 세현이 형은 음색 때문에라도 바로 들킬 줄 알았어요.”
확인해보니 방송 온에어에까지 간간히 이름이 나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숨기고 가긴 글렀군.
그러다 보니 무대는 어느새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었고, 앞선 <해밀>의 무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잘했다.”
그 순간, 차선빈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내내 앞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더니 무대에 꽤나 집중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표정이 밝은 걸 보니 나 또한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근데 진짜 잘하긴 했어. 이거 되게 어려운 곡 아닌가?”
“어려운 곡이지. 경연에서 살리기 힘든 노래이기도 하고.”
“이 곡을 어쩌다가 하게 됐다고 했었죠?”
“그냥 뽑기였어.”
“아항. 뽑기.”
랜덤으로 뽑는 와중에 하필 남은 게 저것밖에 없던 지라. 그냥 내가 운이 없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긴 했다만.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 속, 연예인 판정단과 관객들의 얼굴들이 다시금 하나둘 비춰졌다.
그 안에는 신도하 또한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모습으로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네.’
신도하가 제안했던 밥 사기.
한창 활동을 하고 있다 보니 바쁜 와중에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다. 근데 뭐, 애초에 그러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니.
지이이잉-
그때, 들고 있던 폰이 짧게 진동했다.
동시에 화면 위로 메시지가 작게 떴다.
[신도하 선배님]
: 무대 좋았어
양반은 못 되겠네.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아무래도 이 인간도 지금 본방 사수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뒤이어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이에 대한 답을 보냈다.
[우세현]
: 감사합니다.
* * *
1회차 방송분은 2 ROUND 진출에 성공한 인원을 보여줌으로써 끝이 났다.
그리고 <가면 아래 가수>의 첫 회분이 끝나자, 곧바로 내 가면 이름이 SNS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3. 한 여름의 스노우맨
#20. 세현이
···어쩌다 보니 실명도 함께.
- 가아수 봤는데 우세현 노래 ㅈㄴ잘하는 구나 한번 더 깨달음
- 윈썸 세현 노래 잘한다 메보 맞지?
- 가아수 때문에 이번에 해밀 다시 플레이리스트에 넣음 가아수 버전으로 음원 따로 나왔으면 좋겠다ㅠ
- 이번 회차 스노우맨이 우승할 듯
- 스노우맨이 제일 잘했어 일단 발성 성량부터 다르더라 무조건 가수야
- 윈썸 세현이 가아수 나왔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임?
그렇게 한동안은 스노우맨의 짤과 함께 내 이름이 종종 돌아다녔다. 이 정도면 가면을 안 쓴 것과 비슷한 효과였다.
“스노우맨 씨. 목소리 너무 좋아요~”
“···아직 비밀이야.”
“어차피 차 안인데 뭐 어때. 제가 스노우맨 씨 팬이라서 그래요~”
백은찬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활동 3주 차,
예상했던 대로 케이블을 포함한 공중파 그 주 음악 방송의 1위 후보에 올라갔다.
“보니까 오늘 투표가 되게 중요하더라.”
“투표요?”
“응. 실시간 투표.”
매니저 형이 어느새 정보를 주워 왔다. 그러더니 곧 오늘은 투표로 당락이 결정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아, 근데 할 수 있을까?”
“전 기대는 많이 안 하려고요.”
“왜 기대를 많이 안 해! 염원을 담아야지!”
“많이 안 한다고 했지, 안 한다고는 안 했어요!”
그렇게 백은찬과 신하람은 언제나와 같이 한동안 티격태격하는 모습이었다. 염원을 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 도운이 형이 뭔가를 잔뜩 들고서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얘들아, 방금 잘 전달이 됐대.”
“아, 그거 전달 잘 됐대요?”
“응. 그래서 몇 개 가지고 왔어.”
“오.”
뒤이어 도운이 형이 가지고 왔던 것을 그대로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아이스크림이었다.
막방 기념 역조공 아이스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