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99화 (199/413)

199화. 위치가 마음에 들더라고.

“브리지 포레스트?”

─ 응.

“우리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그?”

─ 응.

그대로 형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형의 모습과 달리 난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형이 이사 온 브리지 포레스트.

이 아파트는 서초구 쪽 고급 아파트로 우리 숙소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훨씬 가깝다.

어느 정도냐면 숙소에서 이 아파트의 모습이 보일 정도니까. 마찬가지로 저쪽에서도 이쪽 아파트가 보일 테고.

“생각보다 엄청 가깝네······.”

─ 위치가 마음에 들더라고.

아, 거기 뷰가 좋긴 하겠지.

일단 워낙 고층이고 하니.

우리 숙소도 뷰는 꽤 좋은데.

“어쨌든 그럼 자주 보긴 하겠네.”

─ 그러려나. 활동 하다 보면 숙소에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잖아.

“일단 지금은 비활동기라서.”

─ 한동안은 내가 바쁠걸.

그렇긴 하겠지.

이제 회사에도 들어가고 정식으로 복귀하게 되었으니 대본도 꽤 들어올 테고.

“그래. 바쁜 게 좋지.”

─ 어, 그래. 바쁜 게 좋지.

형이 대충 말하는 투로 답했다.

─ 그래서 말인데.

“응.”

─ 도우러 와.

“도우러? 뭘?”

─ 이사.

아. 이거 전화 잘못한 것 같은데.

* * *

그리고 며칠 뒤, 형의 이사가 진행되었다. 이사가 완전히 결정되고 난 후엔 형이 말한 날짜에 맞춰 집으로 갔다.

귀찮긴 하지만, 이사를 도우러.

“왔어? 대충 자리 잡고 앉아.”

“···앉는다기엔 아직 뭐가 많은데.”

“사소한 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니, 사소하지가 않다고.

이렇게 빼곡하게 짐이 있는데 이게 어떻게 사소해.

그리고 난 그대로 팔을 걷고 나섰다.

“일단 치우자.”

“뭐, 천천히 하면······.”

“천천히란 없어.”

그러자 형은 소리 없이 못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말대로 천천히 했다가는 몇 날 며칠이고 이 상태일 거다.

그리고 한동안 형과 함께 열심히 짐을 정리했다. 기본적인 건 이미 다 옮겨져 있는 상태라 손을 댈 게 없었고, 남아 있는 가벼운 짐들만 정리하면 됐다.

생각보다 짐은 많지 않았다.

거실에 잔뜩 깔려있었을 때는 이렇게 많은 가 싶었는데, 막상 정리를 시작하니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다.

“그래, 이제 좀 깨끗하네.”

“이제 속이 시원하냐?”

“응. 너무.”

한결 깔끔해진 집 안 풍경을 보니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이 깔끔함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진짜 뷰가 좋긴 좋네.’

문득 바라본 창 너머로는 확 트인 하늘과 드넓은 한강이 눈앞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게다가 창도 넓고.

“왜? 마음에 들어?”

“응. 여기 뷰 엄청 좋다.”

“너희 쪽도 괜찮지 않나?”

“그렇긴 한데, 이렇게까지는 아니지.”

역시 고급 아파트.

뷰가 다르긴 다르다.

“오고 싶을 때 와. 비번 알려줬잖아.”

“생각나면. 근데 형 뭐해?”

“메뉴 고르기.”

형은 그렇게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음, 메뉴 고르기. 아주 중요하지.

“역시 이삿날은 그거겠지?”

“응. 그렇지.”

“좋아, 그럼 그걸로.”

그리고 얼마 안 돼 짜장면, 탕수육 세트가 배달되었다. 역시 이삿날에는 짜장면이 제격이다.

“역시 이 중국집은 여전히 맛있네.”

“그렇지. 오래됐잖아.”

“캐나다에 있을 때도 엄청 생각났어.”

이어서 형은 자연스럽게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었다. 형은 찍먹파였기에. 물론 나도 찍먹파였다.

민트초코와 달리 이것과 관련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근데 복귀 준비를 잘 되고 있어?”

“대충.”

“테이블 위에 대본 있던데.”

“응. 검토하는 중.”

거실에 있는 테이블 위로는 대본 몇 개가 놓여져 있었다. 근데 뭐, 형은 대본 보는 눈이 괜찮아서 그쪽으로는 걱정할 게 없었다.

그보다 기깔나게 선택하고, 기깔나게 연기해서 시덥지 않은 말들 좀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형의 연기력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이 오갔다. 개중에는 눈에 불을 켠 채로 형의 연기력 논란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그거 할 시간 아냐?”

“그거?”

그러더니 짜장면을 먹다 말고 급하게 TV를 켠다. 그거? 그게 뭐지.

[알쏭달쏭 음악쇼! <가면 아래 가수>!]

“아.”

“오늘 이거 하는 날이잖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었다.

내가 나오는 회차의 방송날이.

“어, 형 원래 이거 봤나?”

“아니. 근데 요 근래 보니 재밌는 것 같더라고.”

요 근래?

음, 그러니까 그 말은 지난편도 봤다는 이야기인가.

“특히나 이번 회차가 재밌더라. 실력자가 많더라고.”

“아, 그래?”

“응.”

그리고는 다시 방송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화면에는 지난 회차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오고 있었다.

“특히 저 가면이 참 마음에 들더라.”

“···누구?”

“아, 저기 나오네. 저기.”

설마 부엉이 가면은 아니겠지.

그리고 화면을 보니 곧바로 익숙한 모양의 가면이 눈앞으로 보였다.

“눈사람 가면.”

동시에 형은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다 알고 하는 소리구만.

* * *

그리고 그대로 형과 함께 <가면 아래 가수>를 본방을 시청했다. 대충 보니 이미 지난 회차분도 본 모양이었다.

화면 속에는 그 당시 함께 출연했던 출연자들의 무대가 하나둘 씩 나오고 있었다.

“넌 뭐 불렀어?”

“<별의 챕터>.”

“아, 그 노래 좋지.”

선곡을 들은 형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화면을 향해 있었다.

“그건 니가 직접 선곡한 거지?”

“응. 첫 번째 무대랑은 조금 다른 분위기의 곡을 해보고 싶었어서.”

“근데 뽑기 운이 너무 없던 거 아니냐? 그거 꽤 어려운 노래였잖아.”

“달리 선택권이 없었어. 마지막에 남은 게 그거였다고.”

“뭐, 결과적으론 좋았지만.”

형의 말 대로 결과적으론 그 곡으로 1 라운드에서 1등을 했으니 좋은 거긴 했다. 과정이 다소 쉽지 않았을 뿐이지.

[자, 어느새 벌써 2 Round의 절반 이상의 무대가 지나갔는데요. 도하 씨! 지금까지 어떠셨나요?]

그리고 익숙하게 들리는 그 이름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어느새 화면 속에는 신도하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이번 회차는 정말 실력자분들이 너무 많으신 것 같아요.]

거실이 조용했다.

그렇게 잠깐의 사이, 형과 나 사이에는 침묵과 같은 그 무언가가 흘렀다.

그대로 옆을 잠깐 확인하니 형은 턱을 괸 채로 그저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필 이 타이밍의 신도하냐.’

형과 모니터링을 하는 와중에 하필 신도하도 함께 나오는 방송이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패널을 위주로 하는 프로가 아니었기에 화면에 자주 잡히지 않았다는 것 정도.

‘그러고 보니 시간이 좀 지났네.’

문득 지난번에 신도하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원한다면 피드백을 해주겠다는 말.

물론 밥을 산다는 전제가 깔려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 어떤 말이 나올지 내심 궁금하긴 했다.

“신도하 말인데.”

그런데 그 순간, 형의 입에서부터 신도하의 이름이 나왔다. 마침 신도하 관련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나도 모르게 조금 움찔했다.

“아직도 얼쩡거려?”

“얼쩡···웬 얼쩡?”

“귀찮게 하지 않냐는 의미야.”

귀찮게라.

만날 때마다 귀찮긴 하지만, 딱히 사적인 만남은 없었다. 연락을 빈번하게 주고받는 것도 아니었고.

예외적으로 생일 선물을 받은 일이 있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뭐 없었다.

“귀찮게 하면 말해.”

“뭐 어떻게 하려고?”

“글쎄. 어떻게 할까······.”

그 순간 형의 목소리가 묘하게 낮게 깔렸다. 그리고서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데, 어째 진심으로 고민하는 것 같아 불안했다.

이럴 때면 꼭 좋지 않은 결론이 나오던데.

“아, 너 나오네.”

화면에는 어느새 눈사람 가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형은 여전히 턱을 괸 채로 앞에 보이는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 다음은 1 Round의 최다득표자이자 마지막 순서인 ‘한 여름의 스노우맨’을 모시겠습니다!]

이윽고 박수 소리와 함께 시작된 내 무대. 그렇게 잠시 앞선 무대를 감상했다.

짝짝짝짝!

그리고 약 3분간의 무대는 다시 한번 박수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금방 끝이 났다.

“잘했네.”

“어?”

“무대. 니가 우승이지?”

“응.”

그러자 형은 그럴 줄 알았다며 그대로 입꼬리를 올렸다. 어느새 화면에 잔뜩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여튼 노래 하나는 기똥차.”

“노래 하나는?”

“그만큼 잘한다는 의미야.”

“어째 너무 칭찬하는데?”

“칭찬할 만하니까. 잘했어.”

형이 나를 보며 말했다.

조금 낯 뜨거운 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괜히 입꼬리도 올라가고.

“그동안 더 늘은 것 같은데.”

“조금, 늘긴 했지.”

“그래, 확실히 실력이···아.”

그때 형이 갑자기 미간을 좁혔다.

“왜?”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져서.”

“왜?”

그리고 다시 말이 없었다.

뭐지. 잘 나가다가 왜 저래.

이후 다시 앞을 보니 어느새 화면에는 다시 한번 신도하가 잡히고 있었다.

웃으며 박수를 치는 모습에.

[“아, 저 새X······.”]

아무래도 웃는 게 아니꼬웠던 모양이다.

* * *

방송이 끝난 이후, <가면 아래 가수>의 이번 회차 왕좌에 관한 글과 함께 기사들 또한 쏟아졌다.

- 가면 아래 가수, ‘한 여름의 스노우맨’의 정체는 윈썸의 세현

- 새로운 왕좌의 탄생, 한 여름의 스노우맨은 인기 아이돌 그룹 윈썸 세현

- 윈썸 세현, 치열한 경쟁 끝에 <가면 아래 가수>의 가장 높은 곳에 달하다

- 이렇게 노래를 잘했나? 다시 한번 확인한 윈썸 세현의 경이로운 노래 실력

- 윈썸 세현 목소리 진짜 좋다 노래 잘하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저 정도일 줄은

- 아이돌 왕좌 오랜만이네 거의 1년 넘지 않았나?

- 개인적으로 세현 두 번째 무대가 좋았음 마지막에 미친 고음 지르는데 진짜 미친줄

- 연승 제도 같은 거 있었으면 재밌었을 텐데 ㅋㅋ 그럼 꽤 오래 갔을 듯

- 스노우맨이 윈썸 세현이었어? 헐 노래 엄청 잘했구나

└ 너무 뒷북인 거 아니냐ㅋㅋ 이걸로 온에어 한참 달렸는데ㅋㅋ

└ [글쓴이] : 평소에 세현 목소리 자세히 안들어봐서 몰랐었음 와 이제보니 쩌네

생각보다 기사도 많이 났고, 반응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내 이름은 물론이고 그룹 이름까지 SNS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갔으니까.

요즘은 많이 약해졌다고 하나, 역시 주말 공중파 예능의 힘은 무시 못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박시겸이랑 나왔던 <미션맨> 방송 날짜가 곧이었는데.’

우연히 찍게 된 <미션맨>.

물론 길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 출연 정도의 짧은 분량일 테지만 그래도 방송에 얼굴이 나오긴 할 터였다.

기억하기로는 그때 찍었던 <미션맨>의 방송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었다. 근데 설마 형도 이거 보는 거 아니겠지.

<가면 아래 가수>는 그렇다 치고, <미션맨>의 경우에는 정말로 우연히 찍게 된 거라 아직까지 나와 관련된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신도하 때 반응을 보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사실 형이 이를 보게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형은 한동안 복귀 준비로 바쁠 예정이었기에.

그에 비해 난 리패키지 앨범 활동까지 모두 끝난 터라 일단은 공백기에 해당됐다.

물론 일은 여전히 하고 있었지만.

오늘만 해도 광고 촬영이 하나 잡혀 있었으니까.

“윈썸, 바로 촬영 들어갈게요!”

광고 촬영.

이번에 우리는 의류 광고를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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