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언제 만나게 해줄 건데?
의류 광고를 찍게 되었다.
찍게 된 의류 광고는 ‘MID’라는 캐주얼 의류 브랜드로, 10-20대의 젊은 층을 타겟층으로 잡고 있다.
“오, 세현이 형. 핑크 맨투맨~”
그 때문에 의상은 가벼운 맨투맨에 볼캡, 그리고 운동화였다.
“하람이 넌 병아리 같네.”
“병아리? 닭이 아니고?”
옆에 있던 백은찬이 입꼬리를 올린 채로 말했다. 그러자 신하람은 노란색 닭이 어딨냐면서 백은찬을 향해 크게 반박했다.
“병아리라고 하기엔 너무 크잖아.”
“뭐라는 거죠. 형이 더 크잖아요.”
신하람은 그렇게 반박했지만, 어째 백은찬의 말대로 이전보다 조금 큰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진짜 큰 것 같긴 해.”
“어? 진짜요?”
“거 봐. 얘 컸다니까.”
묘하게 눈높이가 비슷해진 느낌이었다. 전에는 분명 확실히 조금 더 낮았는데.
“요즘 키 재봤어?”
“아뇨. 시간이 없어서. 근데 형들 말 들어보니까 한번 재봐야 할까 봐요.”
그래, 분명 큰 것 같다.
역시 아직 19살이라 그런지 쑥쑥 크는구나.
“어쩌면 벌써 세현이 형을 넘었을지도?”
“뭐?”
“넘은 것 같기도 한데?”
백은찬이 이번엔 나를 보며 웃었다.
아니, 잠깐만.
“느낌이 와요. 큰 거 같아요!”
“근데 우세현 넘으면 180cm 된 거 아니냐? 얘가 그 수문장이잖아.”
“수문장은 무슨.”
“제가 한번 재보고 알려줄게요.”
“단체방에 올려라, 단체방에.”
“옙.”
어쨌든 하람이의 키가 컸다면 축하할 일이었다. 막내가 자라서 언제 180cm이···아니, 물론 아직 확정 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새 이만큼이나 컸다.
“키? 키는 왜?”
“어, 우리 그룹 최장신 형 왔다.”
신하람이 그대로 다가온 차선빈을 가리켰다. 앞서 말한 대로 그룹의 최장신은 차선빈이었다. 잘생긴 와중에 키도 크다.
“하람이가 키가 큰 것 같아서.”
“아. 응. 좀 그런 것 같다.”
“역쉬. 저 큰 게 맞는가 봐요.”
대답을 들은 신하람이 그대로 만족스럽게 웃으며 브이를 그렸다. 이대로 가면 팀 최장신 될지도.
그리고 얼마 안 가 촬영에 들어갔다.
‘MID’는 캐주얼 의류 브랜드인 만큼 티셔츠나 맨투맨, 후드티 같은 것들이 주된 의상이었다.
그 때문에 촬영 분위기 자체도 꽤나 통통 튀고 밝은, 편안한 배경이 주를 이었다. 모델이 된 이상 한동안은 이게 사복이지 않을까.
‘어, 체이스 컴백하나 보네.’
그러던 중, 우연히 체이스가 컴백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것도 정규 컴백.
[단독] 체이스, 올여름 정규로 돌아온다
여름이라고 하는 거 보니 컴백이 정말 얼마 안 남은 모양이었다. 이거 삐끗했으면 또 겹쳤을 수도 있었겠는데. 리팩이랑.
- 와라 빨리 와라 체이스 컴백
- 이번에 체이스 얼마나 팔 것 같음?
└ 못해도 지난번보다 2배를 팔 것 같은데ㅋㅋㅋㅋ요즘 체이스 인기 장난 아니자나
└ 체이스 내 주변으로 유입 존나 많음 체감상 유입 많은 거 체이스 윈썸임
- 내 생각엔 체이스 이번에 초동 100만 넘을 듯
└ 100만? 체이스가 그렇게 컸어?
└ ㅇㅇ 요즘 국내 추세 장난 아니잖아
└ 투어 돈 다음에 해외 팬덤도 겁나 쓸었다더라
이번 컴백 이전까지 체이스는 해외 투어를 한번 돌고 온 바였다. 그리고 그 덕인지 해외 팬덤이 아주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추세였고.
‘···100만 넘으려나.’
어쩌면 정말 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못해도 90만은 갈 거고.
최근 우리 정규 앨범 초동은 85만장.
아직까지 100만장이 되지 않는 수치였다.
‘음원 정도야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찌됐건 음원이나 음반이나 결국 까봐야 아는 법이었다. 물론 수치가 상승할 거라는 예측은 반박 못하지만.
“아, 우세현.”
“응. 왜?”
“형님은 언제 만나게 해줄 거냐?”
뭐? 이건 뭔 뜬금없는 소리냐.
마치 맡겨 놓은 듯한 백은찬의 당당한 요구에 그대로 잠시 뭔가 싶었다.
“맞아요! 저도 만나고 싶어요!”
옆에 있던 신하람 마저 이에 가세했다.
그러더니 억울하다는 듯 한껏 열변을 털어놓았다.
“지난번에 엄청 아쉬웠다고요. 게다가 은찬이 형이 실물 장난 아니라고 하니까 더 궁금하잖아요.”
“야, 진짜 장난 아니야. 너 보고 약간 놀랄지도 몰라. 내가 그랬거든.”
“아, 이것 봐. 사람 궁금하게 말한다니까요? 선빈이 형! 형도 그때 만났죠!”
그대로 차선빈에게까지 대화가 뻗어나갔다. 이에 차선빈이 그대로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요즘 바쁘신 거 아니야?”
“바쁘지. 한창 바쁘다고 하더라고.”
“아, 그렇긴 하겠네. 지금이 가장 정신이 없으실 때긴 하겠다.”
“그렇겠죠······.”
확실히 요즘 한창 바빠 보이긴 했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고 어느 정도 여유가 날 때쯤엔 멤버들과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했다.
“그래서 그게 언젠데?”
“글쎄. 한 1년 후쯤?”
“그 정도면 그냥 형님을 소개 시켜주기 싫은 거 아니냐.”
그럴 리가.
나는 그대로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 * *
광고 촬영이 끝난 이후에는 그대로 밥을 먹으러 갔다. 마침 촬영장 근처로 이전부터 멤버들이 가고 싶어 했던 삼겹살집이 하나 있어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드디어 여기를 먹어보는구나!”
“근데 오늘은 사람이 많지 않네요?”
“시간대가 애매해서 그런가봐.”
그렇게 테이블을 조금 나눠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인원이 인원인지라. 여기에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도 몇 개 시켰다.
“근데 봤어요? 여기 오기 전에 있던 트리벌스에 우리 얼굴 붙어져 있는 거!”
신하람이 그대로 입 안에 쌈을 하나 크게 싸 먹으며 말했다. 와중에 맛있었는지 아까보다 눈이 조금 커졌다.
“봤어. 엄청 크게 붙어 있던데.”
“까짜노라짜나요.”
“그러게.”
‘Tree Birth (트리벌스)’는 우리가 현재 모델을 하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 이름이었다. 제주도에서 촬영을 했었던.
‘차선빈 포스터가 잘 나왔었지.’
이전에도 인터넷을 통해 보긴 했었는데, 실물로 보니 봤던 것보다 훨씬 잘 나와서 놀랐다.
“아, 근데 여기 근처에 대형 마트 하나 있더라. 그런 의미에서 아이스크림 어때?”
“아이스크림?”
식후 아이스크림이라, 굉장히 괜찮았다.
모처럼 보이는 백은찬의 센스였다.
“근데 왜 마트에서 사? 편의점도 있지 않나?”
“거기 마트 안에 이번에 새로 아이스크림 체인점 하나 입점했다는 거 봤거든요. 어쨌든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그리고 백은찬의 이러한 외침에 멤버들은 저마다 손을 들었다. 안지호만 빼고.
“그래, 전원 손을 들었구나.”
“? 지호 형은 안 들었는데요?”
“안지호는 손 든 거야. 이제 마음으로.”
“뭐?”
그러자 곧 안지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백은찬을 쳐다봤다.
어쨌든 그렇게 멤버들과 먹을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백은찬이랑 둘이.
“보니까 지하에 있다고 하더라고.”
“벌써 찾아봤어?”
“엉. 내가 또 맛도 다 찾아봤지.”
빠르기도 하네.
엄청 먹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안 먹었으면 어쩔 뻔했냐.
그리고 그렇게 백은찬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오고 있는데, 잘 걷던 백은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어.”
“뭐야, 왜?”
“아는 사람 봤어.”
“아는 사람? 누구?”
그리고 백은찬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이모.”
* * *
“어, 그래. 은찬아. 오랜만이네.”
“안녕하세요, 이모.”
“밖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다.”
앞서 우연히 만나게 된 백은찬의 이모분. 상당히 뜻밖의 만남인지라 나는 일단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기만 했다.
“옆에는···친구? 낯이 좀 익은데.”
“아, 네. 같은 멤버 세현이요.”
“안녕하세요.”
“아, 그래. 멤버가 아주 잘생겼네.”
백은찬의 이모가 나를 보며 말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룹에 관해서는 잘 모르시는 모양이었다.
‘뭐, 아이돌 그룹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이면 그러실 수도 있긴 하지.’
그룹보다는 철저하게 조카 위주로 그간 봐오셨다던가.
“그래, 활동은 잘하고 있니? 요즘 한창 바쁘다고는 하던데.”
“네. 그럼요. 잘하고 있어요.”
백은찬은 그렇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근데 너희는 주로 어디에 나오니?”
“예?”
“듣자 하니 요즘 잘 되고 있다고 하긴 하는데, TV를 틀어도 통 나와야 말이지. CF로도 안 나오고, 드라마에도 안 나오고.”
그 말에 백은찬은 그대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간간히 메이저 예능에도 얼굴을 비춘 바였는데 비교군이 맞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영화에 나오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렇지?”
“예, 그렇죠.”
“게다가 요즘엔 어디더라, 체이스인가? 거기가 인기가 많다고 하더라. 그래서 난 너희 그룹 이름이 체이스인 줄 알았잖아~”
“······.”
“그래서 걱정이 많다니까. 이대로 그룹이 망하는 건 아닐까하고 말이야. 여기 있는 친구만 해도 이렇게 잘생겼는데 이름이 긴가민가하고.”
그 순간 백은찬의 이모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거, 말하는 걸 보니 대충 느낌이 왔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자신의 조카를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걸.
“좋은 회사 들어갔다더니 그것도 아닌가봐. 일이 안 들어오는 건 아니지? 아무튼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은찬아.”
제대로 악담을 퍼붓는군.
굳이 체이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 하며, 드라마나 영화를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있나 보네.’
백은찬과 외가 쪽 사이에.
문득 전에 백은찬이 외가에 가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옆에 있던 백은찬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의외로 백은찬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이모.”
순간 백은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리고 백은찬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저희가 요즘 좀 바쁘긴 해요. 오늘만 해도 광고 찍고 오는 길이거든요.”
“어? 뭐? 광고?”
광고라는 말에 백은찬의 이모는 조금 전과 달리 살짝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화장품 광고도 찍었는데. 그건 아마 TV로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래, 화장품 광고······.”
“마침 저기에 너 판넬도 있네.”
나는 그대로 근방에 있던 ‘트리벌스’ 지점 앞에 놓여 있는 백은찬의 판넬을 가리켰다.
타이밍 좋게 백은찬의 등신대가 지점 앞에 놓여 있었다. 멋있게 잘 나왔네, 등신대.
여기에 백은찬은 쓰고 있던 모자를 그대로 살짝 벗었다. 머리를 정리하려는 듯이 자연스럽게.
“어, 뭐야. 윈썸 아니야?”
“뭐? 윈썸?”
“백은찬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짧은 사이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면서 이내 시선이 집중되었다. 대형 마트 근처라 그래도 사람이 좀 있었고, 와중에 학교가 끝날 시간인 건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좀 있었다.
동시에 백은찬의 이모는 여전히 놀란 듯한 눈으로 주변으로 들리는 목소리 쪽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야, 백은찬 맞아!”
“헐, 뭐야. 진짜야?”
“뭐야, 뭔데?”
이내 주변으로 알아보는 이들이 하나둘씩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은찬은 그때서야 벗었던 모자를 다시 썼다.
“그러니까 괜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앞으로는 TV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예요.”
“어, 아, 그래? 다행이네······.”
“네.”
여전히 주변의 눈치를 보며 잔뜩 당황하고 있는 자신의 이모를 향해, 백은찬은 그렇게 다시 한번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