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토끼가 날아다니네.
지금 눈앞으로는 많은 수의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곳은 퍼펙트 랜드라는 이름의 테마파크로 타 테마파크들에 비해 꽤나 작고 귀엽게 꾸며져 있었다.
‘아이들 전용인가.’
귀여운 캐릭터들로 꾸며져 있는 것도 그렇고, 주변으로 풍선이 가득한 게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분위기였다.
“저기 봐요! 토끼가 날아다니고 있어요!”
“아, 그렇네.”
신하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로 토끼 캐릭터가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용이라 그런지 놀이기구들도 모두 높이가 낮고 속도가 빠르게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재미적인 면은 기대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섭진 않을 테니 탈 수는 있을 터였다.
“타보자.”
“어? 세현이 형, 도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이걸 탄다고?”
안지호가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당연한 거 아니냐,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타고 가야지.
“보니까 대부분 안 빨라 보여.”
“높이도 괜찮고요. 뭐부터 할까요?”
신하람은 어느새 신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반대로 안지호는 아직까지 미간을 좁히고 있었지만.
“오, 형들! 저기 머리띠도 있나 봐요.”
“머리띠?”
그리고 신하람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 보니 그대로 기념품 샵이 하나 보였다. 기념품 샵 앞에는 캐릭터 머리띠와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굳이 머리띠까지 할 필요가······.”
“헉! 저기 지호 형이랑 완전 딱인 거 있어요!”
“아, 그렇네.”
고양이? 고양이 맞나?
아무튼 귀여운 머리띠들이 많았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기념품 샵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신하람을 뒤따라 나 역시도 걸음을 조금 서둘렀다.
“하여튼······.”
그렇게 궁시렁거리던 안지호도 뒤이어 우리를 착실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형들, 이거 어때요?”
신하람이 귀여운 곰돌이 모양의 머리띠를 쓴 채로 물었다. 말해 뭐해, 당연히 잘 어울렸다.
“귀여워.”
“지호 형은?”
“괜찮네.”
“좋아! 그럼 일단 이거 후보요!”
바로 결정이 아니었구나.
그러더니 신하람은 곧 옆에 있던 다른 머리띠를 다시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어느새 안지호가 거울 앞에 있는 게 보였다. 안지호가 쓴 건 노란색 미니미 캐릭터가 올라가 있는 머리띠였다.
“넌 그걸로 하려고?”
“어.”
그러더니 곧 머리에 썼던 머리띠를 잠시 내려놓고는 신하람을 불렀다.
“잠깐 이것 좀 가지고 있어봐.”
“넹? 뭐요?”
“머리띠.”
그리고선 신하람에게 잠깐 머리띠를 건네주었다. 이어서 안지호는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아무래도 신발끈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됐어. 이제 줘.”
“넹. 여기요.”
그리고 안지호가 신하람의 손에서 다시 머리띠를 가져갔다.
“어, 세현이 형은 강아지?”
“응.”
내가 고른 머리띠는 강아지 모양 머리띠였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제일 튀지 않고 무난해 보여서 골랐다.
“자, 그럼 레츠고!”
곰돌이 모양 머리띠를 쓴 신하람이 그렇게 소리쳤다. 머리띠도 다 골랐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놀이기구를 탈 차례였다.
가장 먼저 탑승한 건 위아래로 움직이는 미니카였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전부인 이 놀이기구는 적당한 높이에 적당한 스피드로 움직였다.
‘근데 좀 재밌네, 이거.’
분명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전부인데도 꽤 재밌었다. 높이도 적당해서 기분도 좋았고.
“아, 이건 좀 난이도가 낮네요~”
“애들용이 다 그렇지.”
······나만 재밌었나?
이거 분위기가 나만 재밌었는데?
“다음엔 저거 어때요? 회전컵!”
“멀미 나는 거 아니냐?”
“멀미 날 정도로 빠르진 않을걸요?”
그리고 다음은 회전컵을 타게 되었다.
돌아가는 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앞서 하람이가 말 한대로 그렇게 빠르진 않아 보였다.
‘괜찮은데?’
이것도 꽤 괜찮았다.
일단 돌아가는 스피드가 그다지 빠르지 않아서 꽤 재밌게 탔다.
“역시 스피드가 좀 느린 것 같아요.”
“애들용이 다 그렇지.”
“······.”
음, 그래. 이번에도 나만 재밌었구나.
나만 재밌었어.
“다음엔 저거 어때요?”
“바이킹?”
“네! 역시 놀이공원의 꽃은 바이킹이죠~”
“꽤 자신 있게 말하네.”
“그야 높이가 낮으니까요!”
역시나 일반 바이킹보다는 올라가는 높이가 낮았다. 그렇지. 놀이공원의 꽃은 바이킹이지.
그렇게 바이킹에 탑승했다.
그래도 이건 높이가 꽤 있어서 소리를 지르는 것까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재밌었지만······.
“와, 이건 꽤 재밌는데요?”
“애들용치고는 괜찮았어.”
“?”
······괜찮았구나!
이번엔 다들 재밌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재밌었어.”
“네. 형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아주 신나 하더라.”
그 말을 하던 안지호가 나를 향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니, 다같이 재밌었잖아.
“그런 의미에서 한번 더 탈까요?”
“한번 더 타. 우세현 좋아한다.”
“···아니, 다 좋아했잖아.”
“그럼 세현이 형을 위해 한번 더!”
“야, 빨리 와.”
뭐, 그래. 재밌으면 됐지.
그리고 그렇게 바이킹을 한번 더 타기로 했다. 두 번째를 타도 여전히 소리는 못 질렀다.
그 이후에는 피날레는 회전목마로 장식하기로 했다. 회전목마. 이거 진짜 어릴 때나 타던 거였는데.
주변엔 거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앞타임만 해도 중간중간 성인들도 보였다. 다만, 어찌 된 건지 이번 타임엔 성인이 우리밖에 없었다.
“와, 형! 이거 진짜 오랜만인데요?”
“응.”
그리고 신하람은 꽤나 신이 난 건지 앞에 있는 매니저 형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매니저 형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연사를 찍어댔다.
그래, 이것도 타다 보니 꽤······.
“뭐야, 저거 윈썸 아니야?”
“뭐? 윈썸이라고?”
와중에 그런 우리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안지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고, 하람이는 여전히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말을 타는데 집중했다.
* * *
해가 조금씩 저물기 시작하자 찢어졌던 탐험대 멤버들과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그래서, 그쪽은 뭐 탔는데?”
“바이킹이요!”
“회전목마.”
“회전목마?”
그 말을 들은 백은찬이 곧바로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으나 어쨌든 나름 알차게 타고 왔다.
와중에 차선빈이 회전목마를 보는 게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게 아까보다 아이들이 잔뜩 타고 있었다.
“끝나고 같이 탈래?”
“응. 같이 타자.”
차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제안한 건데 타고 싶었던 게 맞았던 모양이었다. 동시에 전에 느린 것도 즐긴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쨌든 이제 슬슬 해도 저물어가는 시점이었고, 그에 따라 촬영도 마쳐갔다.
이에 이대로 클로징 촬영을 마치는 건가 싶었는데, 그때 앞에 있던 스텝 하나가 갑작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러분. 이대로 가기 아쉽지 않으세요?”
“? 아쉽기는 아쉽죠.”
“사실 여러분. 오늘 촬영에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네? 숨겨진 비밀이요?”
숨겨진 비밀?
뜬금없는 비밀 선언에 멤버들은 그대로 의문을 잔뜩 그린 채로 다음에 올 스텝의 말을 기다렸다.
“네. 그건 바로 ‘특별 미션 수행자’가 있었다는 사실이죠~”
“특별 미션 수행자요?”
“네! 그렇습니다. 이번 리얼리티에는 멤버 중에 한 명, 특별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멤버가 있었는데요. 혹시 눈치채셨나요?”
아, 이거 스파이나 X맨 같은 거네.
꼭 이런 컨텐츠에 하나씩 들어가 있는 스파이.
결국 멤버들 중에 오늘 제작진들로부터 미션을 받고 수상한 행동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거였다.
‘이상 행동을 했던 멤버가 있던가.’
워낙 사람도 많고 정신도 없고 해서 딱히 주의를 기울일 틈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데요? 그 사람이?”
“직접! 밝혀주시죠!”
그리고 오늘의 스파이, 아니, 미션 수행자가 멤버들 가운데서 손을 들었다.
“나.”
그건 바로 안지호였다.
* * *
“네. 그 사람은 바로, 지호 씨였습니다!”
“안지호라고요?”
“지호 형이 뭘 했는데요?”
그 순간 모든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안지호에게로 향했다. 상당히 뜬금이 없었다. 그보다 안지호의 수상 행동이 뭐가 있었지.
“그것도 직접 말씀해주시죠.”
“아! 잠깐만요! 알겠어요, 어깨동무죠?”
“아닌데.”
“아, 아니에요?”
“나 진짜 알겠다. 아이컨택이지?”
“아닌데.”
“아니냐?”
일반적으로 어깨동무나 아이컨택이 수상 행동은 아니긴 한데···어쨌든 전부 아니었다.
그리고 공개된 정답은 바로,
“모든 멤버와 왼손 부딪치기.”
-였다. 리얼리티를 찍는 동안 모든 멤버와 한번씩 왼손을 부딪치며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얼핏 의심 가는 게 하나 있었다. 뭐 털어준다고 했던 그거 아닌가?
“혹시 아까 그거야? 벌레.”
“어. 맞아.”
역시.
그거 놀이공원 버프가 아니었네.
“아니, 언제 했냐?”
“아까.”
“와, 난 기억도 안 나.”
성공했다는 걸 보니 정말로 그 사이, 모든 멤버와 왼손을 부딪치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와중에 자연스러웠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을 하는 멤버는 별로 없었다.
“형, 저는 언제 했어요?”
“넌 아까 머리띠 살 때.”
“? 그때 했다고요?”
“혹시 신발끈?”
“어.”
“아!”
그때서야 기억이 났는지 신하람은 그대로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건 꽤 자연스러웠는데?
“자, 그럼 여기서 성공 보상을 드릴게요.”
“아니, 성공 보상이 있어요?”
“보상이 뭔데요?”
“보상은 바로 ‘기념품샵에서 원하는 품목 하나 마음껏 고르기’ 입니다!”
보상이 꽤 괜찮았다.
그야말로 가격대 상관없이 고를 수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반대로 만약 안지호가 실패했더라면, 해당 상품은 나머지 멤버들에게 부여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어서 안지호에게 오늘의 스파이, 아니 숨은 미션 수행자로서 간단한 소감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힘들었지만,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다음에도 또 맡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덤덤하면서도 꽤나 자신만만한 말투였다. 말하는 걸 보니 은근 미션을 즐긴 모양인가 보다.
“근데 미션은 언제 받았던 건데?”
“출발 전에.”
출발, 출발 전이라.
혹시 조식 먹을 때였나.
타이밍 상 그때인 것 같은데.
뒤이어 안지호의 상품을 위해 그대로 근처에 있던 기념품 샵으로 장소를 옮겼다. 상품을 고르는데 꽤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고민이 짧았다.
“전 이거요.”
“뭐냐, 이건?”
“양말.”
안지호가 고른 건 다름 아닌 수면 양말이었다. 깔끔한 검정색에 작게 귀여운 강아지 캐릭터가 그려진.
“따뜻해 보이네.”
“그러니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수면 양말이 따뜻해 보이면 좋은 거지.
그리고 백은찬은 그대로 계산대로 향하는 안지호를 졸졸졸 따라갔다.
“도대체 왜 양말인 건데?”
“실용성 있잖아.”
“지금은 여름인데?”
“겨울에 신으면 그만이지.”
결국 안지호는 의견을 굽히지 않은 채 계산을 마쳤고, 이에 백은찬은 여전히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근데 확실히 양말이 실용적이긴 해.
* * *
노래하는세현이 @sehyunee
애들 이번에 일본에서 자컨 찍었나봄ㅋㅋ
회전목마 사진.jpg
└ 헐 머리띠ㅋㅋㅋㅋㅋㅋ
└ 순서대로 세현 지호 하람?
└ ㅈㄴ귀엽네ㅠㅠㅠ왜 뽀작한 회전목마를 타고 있숴ㅠㅠㅠㅠㅠ
└ 근데 왜 3명 밖에 없어요?
└ 3명 밖에 없는 거 아님 다른 사진 봤는데 근처에 더 있어요ㅋㅋㅋ
└ 모야 단체로 회전목마 탄거임?ㅋㅋㅋ 귀여워죽겠네
일본에서 돌아온 뒤, 당시 목격으로 찍혔던 사진이 조금씩 올라왔다.
올라온 사진은 리얼리티 촬영이 모두 끝난 뒤에 다 같이 멤버 단체로 회전목마를 탑승했던 당시의 사진이었다.
물론 구체적인 상황까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놀이공원에 갔다’ 정도만 알려진 듯 했다.
“회전목마?”
“응.”
“거기까지 가서 회전목마를 타고 왔어?”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 그 캐릭터의 회전목마는 한국엔 없지 않을까.
“이왕이면 스릴 있는 걸 탔어야지.”
“그것도 스릴 있었어. 그리고 형이 생각하는 스릴은 난이도가 너무 극악이야.”
“원래 놀이기구는 그 맛에 타는 거야.”
아니, 그건 전지적 형 입장이고.
형은 백은찬과 같이 그런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즐겨 타는 유형이었다. 언제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았다.
일본에 다녀온 뒤, 나는 곧바로 형의 집으로 향했다.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술 한잔 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