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이만큼 응원을 한다는 소리지.
준비된 건 맥주 몇 캔과 소주였다.
더불어 함께 먹을 안주도 형이 미리 배달을 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나저나 회전목마 하니 예전 생각나네.”
“예전 생각?”
“어렸을 때 놀이공원 갔던 거.”
“아.”
그때 얘기였었군.
꽤 오래된 이야기였다.
“그땐 너 회전목마만 타도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그랬었는데.”
“언제적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아마 6살 때쯤일걸. 그거 아마 사진으로도 남아 있을 텐데. 그때 표정이 너무 웃겨서 내가 있는 대로 찍었거든.”
마치 생각만으로도 웃기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그때 사진이 많이 남아 있나 했더니, 그 원인이 눈앞에 있었다.
“아, 갑자기 그 사진 다시 보고 싶어지네. 그거 아마 집에 있을 텐데······.”
“시덥지 않은 말은 그만하고. 그보다 왜 두 마리야?”
“뭐가?”
“치킨!”
왜 양념만 두 마리인 거냐고.
안주로는 치킨을 시켰는데, 어이가 없게도 양념으로만 2마리를 시켰다.
“양념이 맛있잖아.”
형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보통 이럴 때는 양념 하나 후라이드 하나잖아.”
“어차피 너 후라이드 먹지도 않잖아.”
“아예 안 먹는 건 아니고 소금만 있으면 그래도 조금은 먹어.”
“이 집은 소금이 맛이 없어.”
아니, 소금이 맛이 없을 수가 있어?
소금이 다 똑같은 소금맛 아니야?
아무리 봐도 그냥 양념 두 마리를 먹고 싶어서 두 마리를 시킨 듯 했다. 확실하다.
“그래도 닭다리는 똑같이 4개잖아.”
“그건 당연한 거고.”
맛이 중요했다. 맛이.
물론 후라이드보단 양념이긴 한데.
“아무튼 재밌었겠네.”
“응. 재밌었어.”
간만에 간 거라 더 그랬을지도.
사실 어렸을 땐 놀이공원에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 가끔씩 부모님이 놀이공원에 데려다주신다고 했지만,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그때는 형이 없었으니까.
형이 데뷔를 한 뒤로는 형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 힘들었다.
이전에 형 없이 엄마, 아버지와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딱 한번.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이전에 갔을 때와 느낌이 너무 달랐다. 그래서 그땐 회전목마도 타지 않았다. 전혀 신이 나지 않아서.
비어있는 그 빈자리가 너무 컸다.
그래서 한동안은 놀이공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근데 그때 형이 데려가 줬지.’
놀이공원.
어떻게 된 건지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나를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줬다. 열심히 얼굴을 가리고서. 그때 회전목마도 탔던 것 같은데.
무심코 그때를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괜히 웃음이 났다. 동시에 그대로 앞에 있던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곧바로 입안으로 알싸한 쓴맛이 감돌았다. 아무리 마셔도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었다.
그리고 그때, 앞에 앉아 있던 형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냉장고.”
갑자기 웬 냉장고?
그러더니 냉장고에서 뭔가를 하나 꺼내왔다. 이후 내 앞으로 작은 캔 하나가 놓여졌다. 콜라였다.
“콜라는 왜?”
“그만 먹어. 한 병 비웠어.”
어, 벌써 그렇게 됐나.
뒤이어 뭐라 할 새도 없이 형이 내 앞에 있던 잔을 치웠다. 그대로 콜라 캔을 따는 소리가 집 안을 시원하게 울렸다.
‘생각보다 빨리 비었네.’
테이블 위에 있던 소주병 하나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혼자서 마신 건 아니고 형이랑 나눠마셨다.
그래도 아직까지 괜찮은 걸 보면 다행히 한 잔에 갈 만한 주량은 아닌 듯 했다.
양으로 본다면 형이 훨씬 많이 마셨을 텐데 그럼에도 형은 여전히 티 하나 없이 멀끔한 얼굴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 그보다 대본은 정했어?”
“대충?”
“정했다고?”
순간 놀라 먹던 콜라를 뿜을 뻔했다.
그렇게 중요한 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니, 통화하자마자 했어야 할 거 아닌가!
“아니, 그 중요한 얘기를 왜 지금 해?”
“확실하게 정한 건 아니야. 아직 그쪽이랑 미팅도 해봐야 하고, 회사랑도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해서.”
형이 느긋한 모습으로 맥주를 들이켰다. 그렇다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닌, 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대충 어떤 역할인데?”
“일단은 주연롤이고, 역할은 프로파일러.”
“프로파일러?”
“프로파일러이자 경찰.”
“괜찮네. 근데 일단 주연롤이라는 건 뭐야? 주인공은 아니야?”
“메인롤이 따로 있어. 난 2롤 정도고.”
아, 그렇군.
같은 주연이긴 하나 조금 더 극의 중심이 메인 주연롤은 다른 선배 배우인 듯 했다.
“장르는?”
“판타지 섞인 장르물.”
오, 꽤 재밌을 것 같은데.
구체적인 스토리까진 모르겠지만, 일단 캐릭터나 장르로 봤을 때 꽤 흥미가 갔다.
“작가가 누군데?”
“이수혜 작가.”
“어, 그 분 그 드라마 쓰신 분 아니야? .”
“어, 맞아.”
는 몇 년 전에 방영했던 의학 장르 드라마였다. 시청률도 30%가 넘었고, 화제성도 좋아 꽤 흥행했던 바였다. 나도 꽤 재밌게 봤고.
이수혜 작가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장르물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장르물하면 떠오르는 작가 중 한 명이자 장르물의 대가라고 불렸다.
“시놉, 괜찮았어?”
“응. 괜찮더라고.”
“그럼 더 바빠지겠네.”
“그렇겠지. 캐스팅이 확정되고, 전체적인 일정이 나오면 그때부턴 아마 더 바빠지겠지.”
어쨌든 잘 됐으면 했다.
연기적인 부분은 걱정할 게 없었으니 따로 걱정할 건 없었지만, 이왕이면 드라마도 잘 되야 할 텐데.
“그래도 일 있으면 연락해.”
형이 나를 보며 말했다.
“딱히 연락할 만큼의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바쁜데 무슨 연락이야.”
“해. 무조건. 상관없으니까.”
꽤나 단호하게 나오는 형 탓에 일단 알겠다고 말해두었다. 정말로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형. 닭다리 하나 넘겨줄게.”
“갑자기?”
“이거 진짜 큰 거 인 거 알지?”
“닭다리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거 아니냐?”
닭다리 하나가 얼마나 큰데.
뭘 모르네.
이만큼 응원을 한다는 소리지.
“닭다리 하나만큼의 응원은 좀 그런데.”
“크기로 따지지는 말자.”
마음은 훨씬 더 크니까.
그렇게 형은 여전히 뭐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차분하게 닭다리를 넘겨주었다.
“근데 저쪽 닭다리가 더 큰데?”
“······.”
하여튼 눈썰미도 좋다.
* * *
[공식] 우도현, MU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체결···“전폭적인 지원 하겠다.”
신도하는 눈앞의 기사를 그렇게 한동안 조용히 지켜보았다. 기사의 내용은 앞서 몇 번이고 읽은 덕에 여전히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복귀라.’
우도현의 갑작스런 복귀.
이에 한동안 이를 두고 인터넷이 꽤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건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 한때 탑을 찍었던 아이돌의 복귀 소식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우도현의 복귀는 당연하게도 신도하로써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세현이 때문인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거였다.
분명 단순히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복귀를 결정한 건 아닐 테니. 무엇보다 이렇게 급하고, 빠르게.
원래 우도현이 결단력이 빠르긴 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언젠가 다시 오지 않을까 했지만······.’
어디까지나 신도하의 바람이긴 했으나 그래도 그는 내심 우도현이 언젠가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다.
그게 지금 일 줄은 전혀 몰랐지만.
뒤이어 신도하는 곧바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이어지는 차분한 신호음을 타고 얼마 안 가 누군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
─ 왜.
박시겸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아직까지 자고 있던 거야?”
─ 어제 밤샘 촬영이었어. 왜.
“기사 봤어?”
─ 무슨 기사?
“도현이 기사.”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화 너머로 상황을 파악하는 소리가 마치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계약했다는 기사?
“응. 보고 말하는 거야, 그냥 말하는 거야?”
─ 전에 만났다고 했으니 그렇거니 한 거야. 대충 그럴 줄 알았어.
박시겸이 여전히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 생각엔 아마 RA 엔터 쪽에서도 오퍼를 넣지 않았을까 싶은데.”
─ 무슨 근거로? 들은 거라도 있어?
“그냥. 감이야.”
그 말에 박시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했다. 하지만 전혀 없는 말은 아니었다. RA 엔터 역시 자회사로 배우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오퍼가 들어갔다.
우도현의 판단에 의해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지만.
“그래, 그래서?”
─ 뭐가?
“앞으로 자주 볼 거 아니야. 도현이.”
배우로서의 복귀니 우도현은 자신보다 박시겸을 현장에서 만날 확률이 더 높았다. 아쉽게도.
─ 이쪽이라 해도 부딪힐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아.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우연찮게 현장에서 만날 수도 있는 거고.”
─ 그래. 대단한 우연이 있다면 말이지.
박시겸은 그렇게 신도하의 의견에 반박했다. 같은 분야라고 하더라도 넓디넓은 현장이었다.
그러니 앞서 말한 대로 우연을 가장 만남을 아닌 이상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않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전에 세현이 만났다며?”
지난 윈썸이 특별 출연했던 드라마, <목소리를 찾아가세요.>에서의 인연을 말하는 것이었다. 분명 답지 않은 대화를 했다고 들었으니.
─ ···우연이었어.
“우연? 갑자기 무슨 소리야?”
드라마 때의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작스럽게 생뚱맞은 말을 하는 박시겸에 신도하는 뭔가 싶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박시겸은 신도하가 말한 시점이 언제인지를 인지했다.
─ 잠시 착각을 한 모양이야.
“착각할 만한 일이 있었나보네.”
쓸데없이 날카로웠다.
이에 박시겸은 빠르게 화제를 넘겼다.
─ 그래. 만났었어. 그게 왜.
“답지 않은 말을 했단 말을 들어서 말이야.”
─ 그 정도로 친해? 우세현이랑.
“친하지.”
─ 우세현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맞고?
“그렇게 생각해주면 기쁠 것 같은데.”
그 말을 하는 신도하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마음 같아선 더 친해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
─ 굳이 그렇게 친해지려는 이유가 뭔데?
“마음에 드니까.”
─ 하······.
박시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했다.
“이번 도현이 복귀도 아마 세현이 영향이 클 테지. 예전부터 엄청 아꼈잖아, 동생.”
─ ······그래. 그랬었지.
“형제 사이가 그렇게 좋은 건 또 처음 봐서 말이야. 원래 그렇게 다들 좋은가.”
─ 몰라. 형제 같은 게 없어서.
박시겸이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근데 사실 세현이가 재밌는 면이 있긴 해.”
─ ······.
그때, 박시겸은 순간이지만 답이 없었다. 그리고 신도하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말이 없네? 동조야?”
─ 계속 쓸데없는 말 할 거면 끊는다. 피곤해.
말을 돌리는군.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예상했듯이 박시겸은 쉽게 말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통화는 정말 얼마 안 가 끊겼다.
끝내 피곤하다는 박시겸에 의해서.
예상보다 긴 통화였다.
‘복귀작은 뭐로 하려나.’
매니지먼트 계약까지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터였다. 그리고 과연 어떤 작품을 복귀작으로 선택할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대도 됐다.
‘되도록 빨리 나왔으면 좋겠군.’
그렇게 신도하는 수없이 봤던 기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옆에 있던 따뜻한 커피가 담긴 금색 손잡이의 머그컵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