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11화 (211/413)

211화. 듣던 거랑 같으시네요.

“예. 안 좋습니다.”

안지호가 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당황스러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안 좋다고 인정을 하는 거냐.

안지호다운 대답이긴 했다.

“그래요. 그래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그건 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앞선 안지호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도 형은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워하는 기색을 없이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 때문인지 다시 분위기가 어색해지려 하고 있었다.

‘둘이 성격이 안 맞을 것 같긴 했다만.’

눈싸움이라도 하는 거냐고.

옆에서 보는 사람이 오히려 눈치를 볼 지경이었다. 일단 분위기를 조금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근데 치약만 사러 나왔어?”

“백은찬이 과자도 사오라던데.”

“아, 사가려고?”

“아니?”

그래. 그럼 그렇지.

내 예상으론 백은찬 역시 그냥 기대 없이 습관처럼 말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과자라면 우리도 사긴 했는데.”

형이 내가 들고 있던 봉투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안주로 산 것도 있었고,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산 것도 몇 개 있었다.

“하나 줄까요?”

“아뇨. 됐습니다.”

“아, 다행이네. 그냥 한 말이었는데.”

형이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그와 동시에 안지호의 미간이 작게 구겨졌다. 아니, 왜 굳이 싸움을 거는 건지.

이어서 안지호는 그대로 형과 한번 더 시선을 마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내게로 다시 눈을 돌렸다.

“간다.”

그리고 형에게 대충 목 인사를 한 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잘 가요.”

형 역시 그런 안지호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목소리 한번 친절했다.

그리고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는가 싶었는데, 그때 잘 가던 안지호가 그 자리에 멈춰서며 이쪽을 돌아봤다.

그러더니 곧 형에게 시선을 둔 채 말했다.

“성격이 듣던 거랑 같으시네요.”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였다.

듣던 거. 또라이라는 그 이야기 말인가.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냐.

그러자 형이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오히려 많이 축소됐죠, 말이.”

그리고는 다시 씨익 웃는다. 서로 성격 나쁘다는 말을 잘도 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선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어쨌든 내 입장에선 피곤할 따름이었다.

* * *

“밤인데 날씨가 괜찮네.”

형이 말했다.

안지호와 헤어진 뒤, 예정했던 대로 형과 함께 근처 산책로를 걸었다. 워낙 산책로 자체가 크고 밤이라서 그런지 딱히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근데 형, 우리 무대 봤어?”

“응.”

아, 그렇군.

사실 데뷔 초반에만 잠깐 보다가 말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팬미팅도 봤구나.

“가장 최근에 본 게 뭔데?”

“너 이번 리패키지 활동.”

오, 최신 업데이트가 빠르네.

그거라면 정말로 완전 최근이었다.

“근데 안지호한테 시비는 왜 걸어.”

“안 걸었는데?”

형이 뻔뻔한 얼굴로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안 걸기는. 대놓고 걸었구만.

“안지호가 말은 저렇게 해도 특별한 악의는 없어. 그냥 좀 직설적인 거지.”

“아, 그래.”

“응. 그러니까 괜히 오해 말라고.”

그래서 여러모로 오해받기 쉬운 타입이긴 하지만. 웬만하면 둘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면 했다. 친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딱히 오해 같은 건 안 하지만, 꽤 잘 안다는 듯이 말한다?”

“당연하지. 우리 멤버인데. 게다가 안지호랑은 룸메도 오래 했고.”

적어도 예전보단 많이 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같이 산 세월이 꽤 되니.

“그리고 안지호는 좀 편해.”

“편해?”

“응. 생각에 거짓이 없거든.”

앞과 뒤를 뒤집듯 다른 생각이 없다, 안지호는. 대부분의 생각들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그냥 내뱉는 편이니까.

물론 다른 멤버들도 앞뒤가 다른 면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와중에 안지호는 특히 더 그런 편이었고.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형이 나를 향해 말했다.

“뭘?”

“남의 생각 같은 거. 과하게 신경 쓰지 말라고.”

“응.”

그건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타인의 생각에 하나하나 연연해봤자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이 들릴 때도 종종 있지만.

“그런 건 그냥 넘겨. 그냥 흘러가는 Bgm처럼 두면 가장 좋고.”

“갑자기 무슨 Bgm이야.”

“일종의 비유야. 그 생각들엔 그만한 가치가 없으니까. 가장 중요한 건 너야.”

그렇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나 친밀하지 않은 이들의 생각엔 확실히 그만한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생각만큼은 그렇게 마냥 흘려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형이 답지 않게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

“알겠어.”

그렇게 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온오프는?”

“어?”

“온오프 말이야. 애초에 오프를 활용하려고 능력 받은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애초에 그 오프를 적절하게 활용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으니까.

아직까지 형에게 오프의 최대 일수나 긴 오프로 인한 부작용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은 터였다.

“이게 나름 유용할 때가 많아서.”

“유용?”

“응. 이걸로 일단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웬만해선 그냥 켜두고 있는 편이야.”

“아아.”

그러자 이내 형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없는 말은 아니니까.

능력은 실제로 상당히 유용하다.

“그래, 그건 잘하고 있네.”

“뭐, 그렇지.”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 없었다. 괜한 걱정만 끼칠 뿐이고, 거기에 사자와 괜한 싸움을 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무슨 일 있으면 형한테 바로 말해. 쓸데없이 혼자 가지려 하지 말고.”

“어. 알겠어.”

“그냥 하는 소리 아니니까 말로만 알겠다고 하지 말고 잘 새겨들어.”

형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난 그런 형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말할 수 있을 지는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형의 그 말 몇 마디가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게 다가왔다.

형은 나에게 있어 굳이 생각을 읽을 필요도, 설령 읽게 되더라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와 더불어 유일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였다. 감출 것도, 고민할 것도 없이.

나의 생각을 모두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형도 말해.”

“뭘?”

“무슨 일 있으면 말하라고. 매번 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난 무슨 일이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오히려 내 입장에선 형이 걱정됐다.

오랜만의 복귀였다.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로 걱정되는 게 많았다. 정작 당사자인 형은 꽤나 태평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오랜만에 산책하는 것도 괜찮네.”

형이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어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그러게. 좋네.”

“그러니 종종 부르면 나와.”

“뭐?”

방금 엄청 귀찮아지는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인데. 아무래도 한동안은 여길 자주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물가를 살랑이는 기분 좋은 바람이 한동안 우리의 주변을 조용히 맴돌았고, 머리 위엔 여전히 큰 달이 밝게 떠 있었다.

* * *

“으아! 안지호랑 형님이랑 만났다고?”

“응.”

“으악! 둘만요!?”

“정확히 말하자면, 나랑 형이랑 셋이서···”

“아! 지호 형!”

어쩌다 보니 형과 안지호의 지난 만남을 직접 이야기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물음에 형이랑 맥주 마시다가 늦었고, 중간에 안지호를 만났다는 말을 하게 되는 흐름이었다.

“안지호가 말 안 했어?”

“그냥 오자마자 과자만 던져두고 방으로 들어가던데?”

와중에 과자는 산 거냐.

그리고 뒤이어 신하람이 안지호네 방문을 격하게 열고 들어갔다.

“지호 형! 세현이 형네 형이랑 만났담서요!”

“어.”

안지호는 태평하게 너튜브를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보나마나 무대 영상이었다.

“아!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굳이 말을 해야 해?”

“하면 좋잖아요! 그래서요? 어땠어요?”

그 순간, 질문을 하던 신하람이 안지호의 옆에 후다닥 붙어 앉았다.

“보나마나 멋있었겠죠?”

그러자 안지호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입을 열어 한마디 했다.

“잘생겼던데.”

“악! 역시!”

그리고는 다시 집중하고 있던 너튜브 영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 잘생겼다고 생각을 했을 줄은 몰랐는데. 전혀 예상 못한 대답이었다.

그보다 막상 안지호의 입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묘했다.

“야, 그래. 내가 그랬잖아. 실물 장난 아니시라고.”

“아, 그래서. 뭐.”

“아이고! 나는 왜 못 만나는 거야아아!”

그와 동시에 신하람이 침대 위로 풀썩 엎드렸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듯 하길래 내가 대신 그런 하람이를 토닥여주었다.

“근데 오늘 신도하 선배님 만난다고 하지 않았냐?”

“맞아.”

“그런데 왜 형님이랑 있어?”

그게 말이다.

설명하려면 너무나도 길다.

어느새 신도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쨌든 그 날은 그렇게 기분 좋게 잠들었다. 저녁에 한잔한 맥주 덕분이었는지.

그리고 그 다음날.

생각지도 못한 연락을 받았다.

“안뇽.”

바로 사자로부터의 연락이었다.

* * *

사자에게서 받은 매개체라는 것이 약하게 진동했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어느 정도 인식할 수는 있을 정도라 이와 같은 신호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얼굴색이 평소랑 좀 다른 것 같은데?”

“어제 술을 좀 마셔서 그런가 봐요.”

“오호. 술. 좋지. 누구랑 마셨는데?”

“형이요.”

“엑.”

동시에 사자의 표정이 급 구겨졌다.

엑은 뭐냐. 엑은.

“······형님이 오신 모양이네.”

“네. 왔어요.”

“그래. 그렇군.”

사자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왜 부른 건데요?”

“아. 그래. 중요한 걸 말해주려고.”

“중요한 거요?”

“앞으로 일주일간은 주의하도록 해.”

“뭘요?”

“능력.”

능력?

오랜만에 마주한다 싶더니 어째 사자는 갑작스레 뜬금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왜 주의를 해야 하는데요?”

“이야기를 하면 좀 긴데, 간단하게 말하면 이상한 달이 뜨는 날이거든.”

“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이상한 다른 달이라니.

“흔히 여기 말로는 개기월식 현상이라고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저쪽과 이쪽의 힘의 균형이 묘하게 어긋나는 날이거든, 그 날이.”

아, 개기월식.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됐거늘.

“원래 수수께끼를 좋아해, 내가.”

쓸데없는 소리였다.

어쨌든 사자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대충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니 몇 년 만에 특별한 뭐가 뜬다고 인터넷에서 본 것 같았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듯 했다.

“아무튼 그 영향이 온오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이 갈지도 몰라.”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뭐, 엄연히 말하면 이쪽에서 준 힘이니까?”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만.

그렇다면, 오프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인가.

“아예 안 되는 거예요?”

“그건 아니야. 하지만 언제 어떻게 작용될지 모르니 주의하라는 거지.”

“일주일이라고 했었죠?”

“응.”

“돌아오는 일주일이에요?”

“응.”

아, 젠장.

솔직히 말해서 무대만 없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주에 무대가 하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헤븐 콘서트.’

헤븐 콘서트는 매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K-POP 축제였다. 90년대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매해 다양한 가수들과 아이돌 그룹들이 참여하는 대형 행사였다.

흔히 이 콘서트를 통해 그룹 팬덤의 규모를 알 수 있다는 게 유명하고.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 행사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주에는.

‘하필.’

그 주에 잡혀 있는 행사는 와중에 이거 하나였다. 활동도 끝난 지 꽤 됐고, 행사의 경우 몇 주 전에 이미 몰아서 다녀왔었으니까.

‘골치 아파졌군.’

그렇지만 능력을 오프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건 와중에 다행이었다. 꼼짝없이 그대로 온 상태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최악 중의 최악이지, 그건.

‘일단 주의를 좀 해야겠네.’

그때만큼은.

“온오프도 참 거슬려. 그렇지?”

사자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 거슬리는 온오프가 이쪽 입장에선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 그렇겠지.”

그러더니 곧 빙긋 웃는다.

“그래서 말인데, 그에 대한 특별 조치를 취할까 하는데······.”

특별 조치?

그리고 사자는 그대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 * *

그리고 며칠 뒤,

멤버들과 함께 헤븐 콘서트를 위해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향했다.

“와, 사람들 봐.”

“역시 주경기장.”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주경기장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빼곡히 늘어져 있는 모습들이었다.

“오늘 출연 그룹들도 많으니까.”

“그렇죠. 몇 그룹이라고 했었죠?”

“대충 스무 그룹은 넘을걸.”

스무 그룹 이상의 그룹들이 오늘 콘서트에 출연을 할 예정이었고, 그 중에는 물론 체이스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 [와, 인간 한번 많네.]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능청스러움이 베어있는 익숙한 목소리.

- [아주 복작복작해.]

사자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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