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직접 보러 갈래?
사자는 오늘 스케줄 하루, 특별 동행을 하기로 했다. 이전에 말한 특별 조치의 일종이었다.
- [인간이 정말 많아.]
‘당연하죠. 콘서트인데.’
정확히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사자는 현재 내게만 인식이 되는 상태로 존재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도 가능하게 되고.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으로의 대화였다. 혹여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간 정신 이상자로 보이기 십상이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일주일 내내 동행을 하는 것은 아니고, 오늘 하루. 무대가 있는 날인 오늘만 특별 동행이었다.
다른 날의 경우 오프가 안 돼도 그다지 상관이 없지만, 오늘은 아니었으니.
‘그래도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은근 귀찮네.’
- [귀찮다고?]
바로 이런 점이.
어쨌든 하루니 다행이었다.
지금 올림픽 주 경기장은 엄청난 함성과 함께 엄청난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가 있는 대기실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들려요? 소리?”
“와, 소리 진짜 장난 아니다.”
이를 듣던 백은찬이 곧 혀를 내둘렀다.
반면, 차선빈은 조용히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진짜 옛날 생각나네.’
예전엔 꼭 보던 행사 중 하나였다.
이 헤븐 콘서트가.
매년 루트가 나오곤 했었으니까.
TV를 통해서 본 거였지만, 그래도 TV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열기를. 루트는 항상 주 경기장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언제나 가장 크게 들렸다.
루트의 이름이.
그 무대 한 가운데 선 형의 모습을 언제나 TV 너머로 바라보곤 했었다.
이제는 그 무대에 내가 선다고 생각하니, 뭔가 묘하면서도 설렜다. 많은 멜로우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기에.
“근데 저희 자리는 다 찬 거 맞아요?”
“응. 당연하지.”
매니저 형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팬석을 눈으로 보지 못해서 그런가. 현실감 같은 게 안 들었다.
게다가 배정받은 좌석도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3층이었다. 무려 3층! 3층이었다. 3층의 가장 왼편 자리.
이 콘서트에서는 팬덤의 좌석 위치가 어디인가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해당 팬덤의 크기에 따라 좌석이 할당되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팬덤이 큰 그룹의 경우 3층에 좌석에 할당되는 게 국룰이었다.
그러니 이 3층에 팬덤 좌석이 배정됐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물론 소속사 빨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요즘 인기가 한창 좋다고 하더라도 소속사가 대형인 것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없던 요소일 터였다.
“작년에도 진짜 오고 싶었잖아요.”
“맞아. 그때 진짜 아쉬웠지.”
“스케줄이 묘하게 겹치는 바람에.”
사실 작년에도 마찬가지로 헤븐 콘서트에서 출연 요청이 오긴 했지만, 해외 스케줄로 인해 오지 못했었다. 그래도 올해는 왔으니까.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부터 또 한번 커다란 함성 소리가 들렸다. 스무 그룹이 넘는 아이돌이 나오니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체이스도 같은 3층이지.’
그룹 인기나 팬덤 규모, 기획사 등의 여러 요소로 볼 때, 체이스 역시 당연하게도 3층에 배정되었다.
아마 팬덤석도 우리와 마주 보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배정을 한 거겠지만.
그리고 그런 체이스와 더불어 눈에 띄는 그룹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티어로브였다.
명실상부한 1군 아이돌인 티어로브.
다만, 티어로브는 오늘 헤븐 콘서트 무대에 서지 않는다.
무대에 서는 게 아닌, 티어로브의 멤버 중 한 명이 오늘 헤븐 콘서트의 mc를 맡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세현 씨!”
신윤우였다.
* * *
“세현 씨, 안녕.”
와중에 신윤우와 우연히 딱 마주쳤다.
오늘의 헤븐 콘서트 mc는 다름 아닌 티어로브의 신윤우였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마주칠 것 같긴 했는데, 정말로 마주치게 됐다. 귀찮게.
그에 비해 신윤우는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껏 반가운 얼굴을 하고서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을 테지만.
어쨌든 마찬가지로 인사는 해주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반갑네요.”
“네. 오랜만입니다.”
신윤우와 마주한 게 지난 리패키지 활동 때였으니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터였다. 그러니까 그때 그 자판기 앞에서의 만남 이후 처음이었다.
“혹시 잠깐 시간 돼요? 내가 궁금한 게 좀 있어서.”
“여기서 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내가 원래 방해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세현 씨도 그렇지 않아요?”
신윤우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앞서 물어보고 싶단 말이 뭔지 대충 감이 오긴 하는데.
“네. 그럼 그러죠.”
일단 귀찮으니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조금 보는 눈이 덜한 곳으로.
“아이고, 마침 또 자판기가 있네. 세현 씨, 그때 수정과 좋아하지 않았어요?”
“수정과가 아니라 식혜였습니다.”
“아, 그랬었군. 근데 여긴 또 식혜가 없네요.”
신윤우가 안타깝다는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원하는 대로 자리도 옮겼으니 얼른 본론이나 좀 말했으면 싶은데.
- [식혜보다는 수정과인데.]
‘조용히 하시죠.’
이 놈의 사자는 여전히 말이 많았다.
“근데 물어보고 싶으시단 게 뭐죠?”
“아, 그래요. 물어봐야지.”
신윤우는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알고 있었어요? 지난번에 우리 멤버 공작소 관련 일.”
역시 그 일과 관련된 얘기였군.
안 봐도 뻔했다.
보아하니 혹시나 내가 그 일을 미리 알고 있던 건지 의구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그에 대한 내 대답 또한 뻔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당연히 모른다지.
굳이 알았다고 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이야기만 더 길어지게 될 테니.
“아, 아니에요?”
“예. 저도 기사로 처음 접했으니까요.”
그러자 신윤우는 낮은 시선으로 그대로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잘못 짚었다고?”]
[“느낌이 빙고인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봤자 명확한 증거 또한 없으니 더 이상 추궁할 거리도 없을 터였다.
“그때 세현 씨 말대로 주변을 조금 더 살폈으면 좋았을 텐데. 아주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지 뭐예요.”
“고생하셨겠습니다.”
“고생했죠. 그것 때문에 회사고 멤버들이고 한동안 정신이 빠져 있었으니까요.”
신윤우가 한숨을 한번 깊게 내뱉었다.
다소 인위적인 한숨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아무튼 그걸 물어보고 싶었어요. 혹시나 뭔가 알고 있었나 해서요.”
“그럴 리가요.”
“그렇겠죠, 역시?”
“예.”
이에 신윤우는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원래 내 감이 틀린 적이······.”
그 순간, 신윤우의 시선이 느리게 어딘가로 꽂혔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 지나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없어서요.”
그리고 신윤우는 금방 다시 눈을 돌렸다. 뒤이어 있던 기척도 어느새 사라지고 난 후였다.
“네. 그렇군요.”
“그러니까요.”
이내 신윤우가 다시 빙긋 웃어 보였다.
“세현 씨는 참, 뭐랄까 신경 쓰이게 하는 게 있어요. 뭔가 찜찜한 면도 있고.”
그래서 어쩌라고.
“네, 그렇군요. 근데 그럼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아, 잠깐만요. 나 마침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거든요.”
부탁?
대충 봐도 쓸데없는 부탁일 게 뻔했다.
“싸인이요.”
“예?”
“우도현 선배님 싸인. 선배님 이번에 복귀하셨잖아요. 저 꽤 팬이었거든요.”
그리고는 그대로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이 새X, 빌드업치네.
“근데 세현 씨는 알아요?”
“뭘 말입니까?”
“선배님이 왜 갑자기 복귀했는지.”
그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럼 그렇지.
이 얘기, 왜 안 묻나 했다.
“선배님이 갑자기 왜 복귀하셨나 궁금해서요. 세현 씨라면 알고 있지 않아요?”
신윤우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 새X, 이거 지금 하는 질문은 호기심도 호기심이지만 오히려 엿 먹으라고 묻는 게 크다.
“거기에 루트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거 말이에요. 루트 일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잖아요.”
이 새X도 루트 팬이었냐.
저번부터 쓸데없이 루트 꼬리를 물고 있다.
‘열받게 하려는 의도라면 어느 정도 성공은 했다만······.’
그래도 이쪽만 엿 먹을 수는 없지.
“선배님.”
“네. 세현 씨.”
“방금 지나가신 분, 아시는 분 같던데요.”
그런 내 말에 신윤우가 잠시 흠칫 했다. 그리고 동시에 침묵했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었지만, 이는 곧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전, 신윤우가 시선을 쫓은 인물.
그 인물은 확실하게 신윤우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리고 그 해당 인물은 오늘 헤븐 콘서트의 출연 그룹 중 하나인 ‘블룸’이라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두 사람이 마주친 짧은 순간, 신윤우의 생각과 앞서 지나치던 인물의 생각이 동시에 들려온 덕이었다.
[“와X, 눈치.”]
역시나 당황하는 눈치였다.
“어, 그렇죠. 아는 얼굴이에요.”
신윤우가 대답했다.
애써 감추고 있는 듯해 보였지만, 확실히 아까보다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그새 눈치 깐 건가.”]
[“아냐, 어차피 전 여친인데.”]
아, 전 여친이었군.
어쩐지 생각보다 동요한다했다.
“상당히 친하신가보네요.”
“네?”
“그냥요. 왠지 그런 것 같아서요.”
그러자 신윤우는 다시 말이 없었다.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뇨,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는 얼굴 정도죠. 음, 소개라도 시켜줄까요?”
“아뇨. 됐습니다.”
“아, 그래요.”
멘탈 나갔나. 소개는 무슨 소개.
하지만 정신없어하는 꼴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열심히 티는 안 내려고 하고 있지만.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네. 선배님.”
“그럼 무대 잘해요.”
그러더니 서둘러 자리를 옮기려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채로.
[“여전히 눈치 한번 X나 빠르네.”]
[“이미 눈치 깐 것 같은데.”]
[“아, 자꾸 뭔가 들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동안은 신윤우의 찜찜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꼴을 보니 다음엔 쉽게 접근 안 할 것 같은데. 물론 그건 그때 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꼬리를 내빼고 가는 모습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으악!”
그러던 와중, 잘 가던 신윤우가 갑자기 발을 미끌했다. 그리고 순간 지른 비명에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런 신윤우에게로 집중됐다.
그러자 신윤우는 쪽이 팔렸는지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일어나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왜 혼자 쳐 자빠지는 거지.
- [내가 그랬거든.]
사자가 눈앞에서 씨익 웃었다.
아, 그랬군.
어쩐지 왜 혼자 쌩쇼를 하나 했다.
그리고 왜 그랬냐는 물음에 사자는 그대로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 [싸가지가 없어 보이길래 나도 모르게.]
이에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드물게 엄지를 세워주고 싶었다.
따봉 사자는 말고.
* * *
이후에 곧바로 대기실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준비에 오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어디 다녀와?”
대기실로 돌아오자 백은찬이 물었다.
이에 나는 손에 있던 음료를 그대로 들어 보였다.
“음료 뽑으러.”
“너 것만?”
“아니. 너 것도.”
그러자 백은찬이 씨익 웃어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백은찬을 향해 가지고 있던 음료 중 하나를 살짝 던져 주었다.
“야, 직접 보러 갈래?”
“갑자기 뭘?”
“멜로우들.”
그때, 백은찬이 갑자기 제안을 하고 나섰다. 직접 팬석을 보러 가자는 말이었다.
“직접 보면 좋잖아.”
“당연히 그렇지.”
“그러니까 가자고.”
괜찮은 제안이긴 했다.
일단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밖도 밝은 편이었고, 더불어서 우리 차례가 되기까지 아직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보러 갈 시간은 충분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보고 싶었다.
팬들이 정말로 많이 왔는지.
그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눈으로 담고 싶었다.
“가자.”
“좋았으, 우세현은 콜~”
“둘이 어디 가?”
“오, 차선빈~”
마침 차선빈이 백은찬과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차선빈의 어깨에 백은찬이 바로 팔을 걸었다.
“우세현이랑 둘이 나가려고.”
“둘만?”
“가고 싶냐?”
“응.”
차선빈이 그대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형이 데려가준다!”
“아니, 형은 누가 형인데.”
“야, 그새 까먹었나본데 이 셋 조합에서 내가 가장 생일이 빨라요.”
“그래 봤자 몇 개월 차이잖아.”
“몇 개월동안 내가 밥을 얼마나 먹었는데!”
“세현아, 봉 들고 갈 거야?”
“응. 들고 가려고.”
“와, 내 말 안 듣냐!”
응. 안 들음.
그 길로 나는 차선빈에게 가지고 있던 봉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러자 백은찬이 투덜거리며 봉을 하나 가져왔다.
“근데 다른 애들은?”
“천천히 나오라고 하지, 뭐.”
보아하니 다른 멤버들은 아직 준비가 덜 끝난 모양이었다. 이왕이면 같이 보고 싶어서.
그래서 일단 봉을 가지고 차선빈과 백은찬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와, 대박······.”
순간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이를 보던 백은찬이 중얼거렸다.
그대로 매니저 형이 알려준 대로 가니 곧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엄청난 규모의 주 경기장의 모습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와아아아아아!]
끝없이 전해져 오는 열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