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내기 한번 할까?
탕!
탕!
그 순간, 탄환이 날아가는 소리가 주변 공간을 작게 울렸다.
안지호와 차선빈은 각각 손에 권총을 든 채 앞에 보이는 과녁에 꽤나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탕!
“오.”
제대로 들어간 것 같은 총알에 백은찬이 조용히 감탄했다. 어느새 백은찬 역시 사격장이 있는 곳으로 와 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 그보다 잘 쏘는데?”
그리고 그 사이 다시 한번 발포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만 봐서는 마치 영화 한 장면과 같았다.
“근데 둘이 대결하는 거냐?”
“어? 그런 거예요?”
“보통은 누가 누가 더 잘 쏘나 대결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 사이 다시 한번 총알이 과녁을 뚫고 지나갔다. 오, 와중에 차선빈이 정중앙을 제대로 맞혔다.
“안지호 선수, 분발해야겠는데요.”
백은찬이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지호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었다.
탕!
그와 동시에 정확히 과녁의 중앙을 꽂았다. 뒤이어 안지호가 들고 있던 권총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분발?”
“분발이 필요 없으십니다.”
“이 형 태세 전환하는 거 보소.”
“대단하십니다.”
앞선 딜에도 백은찬은 고개까지 흔들며 느린 박수를 쳤다. 이어서 차선빈 역시 마지막 한 발을 쏜 뒤 그대로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누가 이겼는데?”
“종이 가져와 봐요, 종이!”
“오, 비슷한 것 같은데?”
그리고 결과가 궁금했던 건지 멤버들은 한데 모여 두 사람의 과녁을 확인했다. 이에 비해 정작 차선빈과 안지호는 관심이 덜한 모습이었다.
“지호가 조금 더 앞선 것 같은데.”
“형들, 이거 뭐 내기했어요?”
“특별한 건 안 했어.”
“아, 걍 한 거였어?”
“지호가 쏘는 게 재밌어 보이길래.”
아무래도 안지호가 쏘는 걸 보고 차선빈도 마찬가지로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근데 안지호는 사격을 좀 해봤나.’
차선빈도 잘하긴 했지만, 안지호가 쏜 총알은 대부분이 중앙에 가까이 향해 있었다. 이전에 양궁도 잘하더니 쏘는 거에 소질이 있는 건가.
“차선빈, 한 판 더?”
“좋아.”
그대로 차선빈과 안지호는 사격에 한 판 더 들어갔다. 이번엔 권총이 아닌 소총을 쏠 예정인 듯 했다.
“내기 한번 할까?”
“무슨 내기요?”
“안지호 대 차선빈. 누가 이길지.”
백은찬이 꽤나 신이 난 모습으로 말했다.
“상품은요?”
“과자 6개 쏘기.”
과자 6개. 1인당 하나인가.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그럼 전 지호 형한테 걸래요. 이 형이 딱 보니까 사격을 많이 해봤어.”
“오, 나도 안지호.”
백은찬과 신하람은 자연스럽게 안지호에게로 표를 몰빵했다. 그리고 이를 보던 도운이 형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차선빈에게 표를 걸었다.
“우세현, 넌?”
“나도 그럼 차선빈.”
이왕 이렇게 된 거 수를 맞추면 좋으니까. 사실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긴 했다.
“야, 들었냐? 안지호?”
“뭘.”
“우리 내기 다 걸었어. 그러니까 너 무조건 이겨야 해.”
백은찬이 꽤나 강조했다.
그러자 이를 들은 안지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다시 말했다.
“제대로 안 걸면 후회할걸.”
그걸 왜 날 보고 얘기하냐.
그리고 안지호는 다시 말없이 총을 잡았다. 느낌상 안지호에게서 고수의 향기가 나긴 하지만······.
“선빈아, 잘해.”
그래도 한번 민 거 계속 밀어야지.
“응. 이겨 볼게.”
차선빈이 이내 나를 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차선빈 파이팅.
“자, 그럼 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백은찬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얼마 안 가, 게임이 시작되었다.
탕!
“오······.”
처음부터 안지호가 과녁의 정중앙을 뚫었다. 그와 동시에 멤버들은 놀란 눈으로 안지호를 쳐다봤다. 느낌이 어째 살벌했다.
* * *
사격 게임의 최종 승자는 안지호였다.
무슨 일인지 쏘아대는 족족 맞추는데, 이전 판보다 훨씬 더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줬다.
내기가 걸려 있어서 그런가.
그렇게 안지호는 말없이 쏘는 족족 표적을 제대로 명중시켰고, 차선빈도 이에 못지않게 점수를 많이 냈지만 아무래도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내가 제대로 걸라고 했잖아.”
승부가 난 순간, 안지호가 나를 보며 한껏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아주 기세등등하네.
“그렇게 말한 것 치고는 차이가 많이 없던데.”
“조금 조절을 했지. 그리고 차선빈이 금방 늘었어.”
하긴, 그런 거 같긴 했다.
그래서 결국 과자는 나와 도운이 형이 쐈다. 와중에 도운이 형이 자기가 그냥 다 사겠다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다 말해주었다.
“이야, 안지호 덕분에 과자를 먹네~”
“지호 형이 엄청 잘 쏘긴 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1인 2개 하는 건데~”
이에 백은찬과 신하람만 신이 났다.
뭐, 어쨌건 다 같이 과자를 먹게 되는 결말이니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에 더 연습을 해볼게.”
차선빈이 나를 보며 말했다.
또 다시 뭔가 다짐을 한 듯한 말투였는데, 아무래도 진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에 지금도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차선빈이 기분이 조금 나아진 건지 살짝 웃었다. 다음엔 정말 안지호를 이길 수 있을 지도.
“아, 근데 우리 뭐 하러 갔던 거였지?”
“어, 그러고 보니?”
“시구 연습이요.”
“아하.”
와중에 중요한 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햇빛이 뜨겁게 느껴지는 날씨에, 우리는 시구 행사를 하러 갔다.
다행히 날씨가 아주 좋았다.
그야말로 경기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우리가 시구를 하게 된 팀은 서울을 연고지로 둔 팀이었기에 그 길로 잠실로 향했다.
“상대 팀이 웨일즈라고 했었지?”
“응.”
오늘의 상대 원정팀은 지방 구단팀인 웨일즈라는 팀이었다. 찾아보니 요즘 한창 연승을 달리는 중 듯 했다.
“하람이는 좀 곤란하겠네.”
“하하, 곤란할 게 뭐가 있나요, 하하.”
“엄청 곤란해 보이는데?”
그러자 신하람이 넋을 놓은 듯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하람이는 웨일즈 구단의 팬이었다.
일명 웨린이.
듣자 하니 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은 웨일즈가 아닌 서울 구단의 시구자로 초청. 그러니 자연스럽게 웨일즈의 패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얘 봐라, 넋이 나갔네.”
“질 수도 있는 거죠, 하하······.”
그럼에도 모습이 여전히 씁쓸해 보이는 건 내 착각이 아닐 듯 했다. 자본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거지.
- 오늘 애들 시구 ㅈㄴ 기대중임 시구시타라니 청량 그 자체일 듯
- 은찬이고 시구고 세현이가 시타지?
└ ㅇㅇ 기사에는 그렇게 나와 있더라
└└ 그럼 나머지 멤버들은 안 나올까ㅠ
└└└ ㄴㄴ 나머지 멤버들도 같이 나와서 인사한대
- 근데 뭔가 은찬이 잘 던질 것 같음ㅋ 세현이는 존나 귀엽고 멋있을 것 같고
- 백은찬 시구 존나 잘 어울려 역시 윈썸의 체육인
- 이왕이면 승요되고 오길ㅠㅠ
- 근데 찍덕들 엄청 몰려 갔을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ㅠ 애들 잘 보고 왔음 좋겠는데
“둘 다 잘하고 와.”
“은찬이 형, 이왕이면 스트라이크 넣어요.”
“노력하마.”
그렇게 백은찬은 자신 있는 얼굴로 쓰고 있던 모자를 조금 고쳐 썼다. 이후로 멤버들은 간단한 인사 후 그대로 먼저 관중석으로 떠났다.
그리고 나서 선수들과 함께 간단한 시구, 시타 연습을 한 이후 시간이 되자 그라운드로 나갈 준비를 했다.
밖이 밝아서 그런지 아직까지 그라운드의 잔디가 초록초록하게 빛났다.
‘여기서도 카메라가 보이는군.’
예상했지만, 대포 카메라가 꽤 많았다. 그것도 꽤 가까이. 눈을 돌리면 어디든 카메라가 있었고 그에 따라 셔터 소리 역시 가감 없이 들려왔다.
“이제 호명하면 마스코트 따라 나와 주시면 되고요. 간단하게 준비하신 파이팅하는 말씀 한마디씩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대로 옆에 있던 마스코트가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날도 더운데 고생이 많으신 것 같았다.
“약간 떨리네.”
“너무 긴장 말고.”
“그래도 가운데 꽂을 거니까 걱정은 말고.”
“그래, 꼭 그래라.”
그러자 백은찬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던지다보면 가끔씩 공이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기도 했는데, 뭐 알아서 가운데 넣는다고 하니 믿고 맡기기로 했다.
[그럼 오늘의 시구, 시타를 맡은 대세 아이돌 그룹 윈썸의 우세현, 백은찬 씨를 소개하겠습니다!]
“가자.”
“응.”
이어서 들려오는 안내 멘트와 함께 백은찬과 나는 그대로 수많은 관중들이 있는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섰다.
* * *
같은 시각, 시구와 시타에 나서지 않는 멤버들은 스텝의 안내에 따라 경기장 중앙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형들 잘하겠죠?”
“잘하겠지. 연습을 많이···아, 좀 딴 길로 새긴 했지만 어쨌든 연습도 했고.”
지난 사격 게임의 내기가 그렇게 윤도운의 머릿속에 얼핏 스쳐 지나갔다. 와중에 멤버 모두 꽤 신이 나버린 탓에.
“솔직히 세현이 형은 걱정이 별로 없는데, 은찬이 형은 긴장만 안 하면···피자 왔어요!”
“아, 이쪽으로 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등장한 피자에 신하람은 한껏 신이난 얼굴로 먹을거리를 세팅했다. 역시 야구 경기장하면 뭐니 뭐니해도 먹거리였다.
“지호 형, 형들 것도 똑같은 거예요?”
“그쪽은 뭔데?”
“저희는 콤비네이션이요!”
“여기는 페퍼로니.”
“바꿔 먹어요!”
그러자 안지호가 앞에 있던 피자판을 통째로 들어 올려 신하람에게 건넸다. 좌석당 앉을 수 있는 수가 정해져 있는 탓에 멤버들은 제각기 2명씩 나눠 앉아 있었다.
“아, 나중에 애들 나오면 사진 찍자.”
“오, 갱찮네요.”
“지호가 찍어. 지호가 잘 찍잖아.”
“네.”
대충 고개를 끄덕인 안지호는 그 길로 가지고 있던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우세현과 백은찬의 등장을 알리는 소개 멘트가 나왔다. 그때 멤버들은 제각기 하던 것을 멈춘 채로 이에 집중했다.
어느새 안지호는 폰을 들고 있는 채였다.
“은찬이 형이! 던져요!”
“와, 이렇게 보니까 멋있네.”
마운드 위에는 그렇게 흰색 유니폼에 네이비 모자를 쓴 백은찬이 서 있었다. 워낙 키가 훤칠한 터라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
여기에 쏟아지는 자연광까지.
그런 그의 등번호에는 ‘6’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멤버 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 백은찬 진짜 분위기가 선수 같다ㅋㅋㅋ일단 피지컬부터 길쭉길쭉해서 좋네
- 백은찬 180 넘지? 유니폼 개찰떡이야
- 은찬이 잘 던질 것 같아서 기대중
이에 관중석에 있던 찍덕들은 그 순간 무수한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물론 멤버들이 있는 곳에도 찍덕은 있었다. 마찬가지로 윈썸을 찍기 위해 미리 중앙석에 자리를 잡은 찍덕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에 대비해 아티스트 보호를 위한 가드를 따로 세웠다. 더불어 바로 맞닿는 좌석으로는 매니저들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멤버들을 향한 시선과 카메라에는 변함이 없었다.
“세현이 형도 나왔어요! 저기! 저기!”
“이렇게 보니 세현이 진짜 유니폼 찰떡이네.”
윤도운이 이를 보며 감탄했다.
마운드에 선 백은찬과 마찬가지로 우세현 역시 타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긴장한 듯 살짝 웃는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했다.
- 야구 유니폼 입은 우세현 존나 설레
- 세현이 모자랑 유니폼 진짜 찰떡이다ㅠㅠ 웃는 거 보고 기절하는 줄
- 방금 우세현 웃는 거 제발 짤로 만들어주라
이어서 자세를 잡는 백은찬에, 멤버들은 어느새 각자 폰을 꺼내 든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두근두근했다.
슈웅-
그리고 마침내 공은 백은찬의 손을 떠났고, 이내 포수 글러브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 * *
“오~”
앞서 백은찬이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순간, 그와 함께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백은찬이 던진 공이 생각 이상으로 빠른 스피드로 올곧게 뻗어나간 덕이었다.
여기에 나는 적당히 타이밍에 맞춰 들고 있던 배트를 부드럽게 휘둘렀다.
[네! 아주 멋있는 시구와 시타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와 백은찬은 다시 한번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전했다.
- 오 뭐야 백은찬 잘 던진다
- 세현이 휘두르는 거 너무 귀여워ㅠ
- 관객 소리 들었어? 오-하는 소리 다들림ㅋㅋㅋㅋㅋ
- 세현이랑 은찬이 짜랬따 (짝짝)
- 이제 애들 아예 가는 거야?
└ ㄴㄴ 아마 경기 볼걸?
└└ 악 그럼 채널 돌리면 안 되겠네
- 와 근데 잠깐 봤는데 찍덕 ㅈㄴ많다
‘끝났다.’
막상 타석에 서니 조금 긴장되는 감이 없지 않았다. 물론 백은찬의 말대로 공은 알아서 잘 뻗어나갔지만.
“형들 수고했어요~”
“수고했어, 얘들아.”
중앙 관중석으로 돌아오자 멤버들이 곧바로 나와 백은찬을 반겼다. 테이블 위로는 미리 주문해 놓은 피자가 한 상자씩 놓여져 있었다.
“세현아, 페파로니 피자.”
차선빈이 피자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페파로니 맛있지. 그리고 나는 그대로 차선빈의 옆으로 가 앉았다.
“둘 다 진짜 잘하더라.”
“백은찬이 잘했죠.”
“아, 나 엄청 집중했어.”
대답을 하던 백은찬이 그대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여 공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치우칠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결과는 꽤 멋있게 나왔다.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한번 더 봐야지.
“안타!”
“2루타다!”
그리고 나서는 한동안 경기에 집중했다. 다행히 초반부터 홈팀이 점수를 앞서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하, 2루타···2루타 신나요······!”
와중에 하람이는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람이는 카메라가 들어올 때마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손에 쥔 응원 풍선을 열심히 흔들어댔다. 이제 프로가 다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