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18화 (218/413)

218화. 가지고 다니면서 쓰라고.

듣기 좋은, 감성적인 어쿠스틱 사운드의 음악이 그대로 스튜디오 안을 채우고 있는 지금, 우도현은 중앙에 있는 소파에 앉아 녹음 부스 안을 그대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로 인해 모든 것이 그대로]

[Pause, Pause.]

‘잘하네.’

언제 봐도 노래를 잘했다, 제 동생은.

흠잡을 곳이 없는 건 당연하고, 한 소절 한 소절을 할 때마다 매번 집중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귀가 호강하는 느낌.

앞서 느낀 바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잘 나오겠는데.’

얼마 듣지는 않았다만, 앞서 들은 것만으로도 곡이 잘 나올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곡, 잘 나올 것 같죠?”

그때, 앞에서 이를 듣고 있던 이진혁 감독이 고개를 살짝 돌려 물었다. 표정은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이다.

“네. 잘 나올 것 같아요.”

“세현 씨가 노래를 너무 잘해줘서요. 곡이 훨씬 사는 것 같아요.”

애초에 곡 자체가 잘 뽑힌 것도 있었지만, 그걸 제대로 살리는 건 어디까지나 부르는 가수의 몫이었다.

하지만 우세현은 살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곡을 더욱 풍부하게, 듣기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녹음을 하는 내내 이진혁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한껏 서려 있었다.

“내가 볼 땐 섭외가 아주 나이스였어요.”

“감독님이 하신 거니까요.”

“그러니까. 내 안목이 아직 죽지가 않았어.”

이에 우도현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이번 섭외 과정에서 우도현이 직접적으로 크게 관여한 바는 없었다.

단순히 요즘 윈썸 노래가 좋다는 얘길 했을 뿐.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음악 감독은 그 길로 우세현을 캐스팅하기로 결정했고, 그걸 다시 한번 연결해 준 게 다였다.

‘아마 저쪽에서는 어느 정도의 화제성을 염두에 둔 캐스팅이었겠지만······.’

노래도 노래지만, 순전히 그것만을 기대하고 섭외 요청을 넣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보다는 윈썸 자체가 요즘 한창 인기가 괜찮은 그룹인데다가 우도현의 드라마에 우세현이 OST를 부른다면 그거대로 주목도가 올라갈 테니, 그러한 점도 생각을 한 캐스팅일 것이었다.

‘하지만 나쁠 것 없지.’

일단 그렇게 된다면, OST 자체로도 꽤 주목을 받을 테니까. 게다가 <시간 감지자>는 지금 꽤나 주목 받는 드라마였다.

그러니 잘 된다면 노래 쪽으로도 좀 더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거고, 앞으로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였다.

보통 한번 OST를 시작하면, 다음엔 섭외가 더 수월하게 들어오기도 했으니.

그렇지만, 실력 좋은 동생을 둔 덕에 단순 화제성뿐만 아니라 노래퀄 역시 챙길 수 있을 듯 했다.

물론 잘할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노래 하나는 정말······.’

언제 들어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우도현은 그대로 녹음 부스 안에 있는 제 동생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기분 좋아 보이네.’

한껏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서 상당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게 자신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우도현은 그대로 몸을 조금 젖혀 소파에 기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가가 작게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또한 괜히 기분이 좋아져 버린 탓이었다.

* * *

예정된 녹음이 전부 끝이 났다.

이후 나는 그대로 쓰고 있던 헤드셋은 벗은 뒤, 부스 밖으로 나왔다.

“세현 씨, 오늘 수고 정말 많았어요.”

“네. 감독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노래가 너무 잘 나와서 벌써 반응이 궁금하다니까요.”

이에 살짝 웃어 보였다.

이왕이면 반응이 많이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음악도 드라마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 요소 중 하나니까.

그래서 더 신경 쓰기도 했다.

그냥 드라마도 아니고 형 드라마니.

“수고했어.”

형이 앉아 있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그래도 예상했던 대로 녹음이 일찍 끝난 덕에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는 있을 듯 했다.

“용케 안 졸았네.”

“원래 눈 뜨고 조는 게 내 특기야.”

“그건 좀 무섭지 않아?”

“신기한 장기지.”

그런 걸 신기해할 리가.

그보다 애초에 형이 그런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그래서, 시간은 왜 내달라고 했는데?”

“아, 중요한 게 있어서.”

“중요한 거?”

전에 형한테 주기로 했던 선물.

시간이 나는 김에 그걸 오늘 주고자 했다.

이런 건 보통 생각났을 때 빨리빨리 줘야 안 잊어버리니까.

“근데 중요한 게 숙소에 있는데.”

“숙소? 그럼 가지 뭐.”

“우리 숙소는 외부인 출입 금지야.”

그건 가족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사전에 이야기하면 상관없긴 한데, 사전이라고 하기엔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하지만 형을 그대로 밖에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내가 형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스튜디오가 숙소와도 별로 멀지가 않아서. 자연스럽게 형 집과도 멀지 않고.

이동 동선이 꽤 비효율적이긴 한데, 그래도 웬만하면 빨리 주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주는 게 이득이니까.

그리고 형이 좋아하는 모습도 빨리 보고 싶었다. 어, 근데 좋아하겠지.

그래도 선물이기에 포장도 나름 신경 써서 해달라고 했는데, 그 덕에 박스 포장이 아주 화려했다. 이거 내가 했다고 하면 안 믿겠지?

“빨리 왔네?”

“응. 요 앞이니까.”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곧바로 형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와중에 심심했는지 TV가 켜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형을 향해 손에 있던 포장 박스를 건넸다.

“형, 이거.”

“? 이거 뭔데?”

“선물.”

“아.”

그때서야 기억이 난 건지 그렇게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나서야 내게서 박스를 건네받았다.

“전에 준다고 했던 그거?”

“응. 대본 케이스.”

“기어코 샀네.”

“내가 준다고 했잖아.”

그러자 형이 피식 웃는다.

“혹시 까먹고 먼저 산 건 아니지?”

“안 샀어.”

그리고선 조용히 포장을 풀기 시작한다. 정말로 포장에 신경을 많이 써준 건지 박스 위 리본이 아주 풍성하게도 묶여 있었다.

“이거 내가 포장······.”

“업체에서 포장을 꼼꼼히 해주셨네.”

“······.”

음, 역시 안 통하는군.

그렇게 포장을 다 풀고 나자 마침내 내가 주문 제작한 대본 케이스가 나왔다.

준비한 대본 케이스는 전체적으로 깔끔한 블랙 가죽에 네이비 포인트를 준 케이스였다. 대충 형이랑 어울릴 것 같아서.

거기에 나름 가죽 위에 네이비색으로 작게 영어로 이름 각인을 새기기도 했다.

“형, 이제 가지고 다니면서 쓰라고.”

“그래. 예쁘네.”

“색은 대충 내가 골랐어.”

“잘 골랐네.”

그대로 형은 상자 안에서 케이스를 꺼내 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현장에 커피차도 갈 예정이긴 한데, 그건 그냥 미리 말 안 하기로 했다. 보면 알겠지.

“고맙다, 잘 쓸게.”

“잃어버리지 말고.”

“그럴 일 없어.”

형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그렇지. 잃어버리면 대본 분실인데.

그런 의미에서 역시 대본 케이스로 하길 잘한 것 같다.

“새삼 신기하네.”

“뭐가?”

“어렸을 땐 선물이라고 직접 쓴 편지 같은 거 주고 그랬었는데. 아, 물론 그게 더 좋아.”

“그게 더 좋다고?”

이게 얼마짜린데.

아니, 물론 그렇게 가격이 나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르자면 이쪽 아닌가.

“형 원래 그런 손편지 좋아했어?”

“아니.”

근데 왜 그게 더 좋대.

아무튼 알다가도 모를 취향이었다.

“이름도 새겼네?”

“응. 확실한 게 좋잖아.”

“괜찮네. 맘에 든다.”

그러면서 여전히 케이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확실히 마음에 들긴 한 가보다. 아까부터 눈을 못 떼고 있는 걸 보면.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해졌다. 신경 써서 한 보람이 있었다. 커피차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아, 너 뭐 먹을래?”

“아까 형이 사온 케이크 좀 먹었어.”

“얼마 안 먹었잖아.”

사실 케이크배라기 보단 커피배가 차 있긴 했다. 커피가 맛있어서. 게다가 완전히 배부른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면 뭔가 좀 거슬린다.

“뭐가 있긴 해?”

“없어도 만들어야지.”

그렇게 형은 팔을 걷었다.

이게 바로 선물 효과인가.

그보다 냉장고를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형을 돕기 위해 나 역시도 팔을 걷고 나섰다.

* * *

그 날, 형의 집에서 나름 이것저것 해 먹었다. 간단하게 볶음밥 정도. 예상했던 대로 냉장고에 뭔가 많이 없어서 다소 재료가 부족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냉장고를 좀 채워놔야······.’

엄마가 가끔씩 반찬 같은 걸 보내주시긴 한데, 그것 말고는 뭐가 없었다.

그러니 시간 날 때 한번 가서 채워야 할 것 같았다. 형이 좋아하는 거야, 다 거기서 거기니까.

“세현 씨, 준비 다 끝났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니 평소와 달리 머리에 펌이 살짝 들어가 있었다. 오늘 할 화보 촬영 맞춤 헤어였다.

“머리 귀엽다.”

차선빈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에 비해 차선빈은 이마를 살짝 드러낸 반깐 머리를 하고 있었다. 원래 잘생긴 애들은 이마를 깔수록 잘생겼다던데, 사실이군.

오늘 할 화보 촬영은 차선빈과 둘만 찍는 화보였다. 유닛 화보 촬영. 그래서인지 대기실이 평소보다 조용했다.

컨셉은 몽환적인 소년 컨셉과 흑백의 나른한 컨셉 이렇게 2가지를 기본으로, 화보 주제는 ‘되는 조합’이라고 했었나. 아무튼 그런 것이었다.

‘대충 얼굴합이 좋다는 얘기겠지.’

데뷔 때부터, 아니, 플온스를 찍을 때부터 주변에서 워낙 많이 들었던 말이었으니. 그래도 그 말은 항상 듣기 좋았다.

“되는 조합! 이건 바로 보기만 해도 된다!라는 말을 하게 만든다는 의미죠!”

그 순간, 오늘 촬영 에디터가 눈앞에서 열과 같은 성을 토해내며 말했다. 이에 난 차선빈과 그대로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컨셉 설명해주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두 분 다 알고 계시죠? 지난번 인터넷에서 한번 올라왔던 ‘보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아이돌 멤버 조합 Best 10’!”

“아, 네. 봤습니다.”

아마 그룹별로 두 명씩 뽑아 그 안에서 순위를 매겼던 걸로 기억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핫해서 인기 게시글로도 돌아다니고 했었지.

“거기서 선빈 씨랑 세현 씨가 1등을 하셨잖아요? 환상적인 얼굴합으로!”

“그랬었어?”

“응. 그랬었어.”

그냥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 중 하나라 차선빈은 놓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나는 봤고.

“그래서 이번 컨셉도 그렇게 잡았어요. 되는 조합! 근데 실제로 보니 확실히 될 조합이네요. 이건!”

“감사합니다.”

얼굴합이 좋다는 얘기겠지. 어쨌건.

“그러니 오늘은 개인컷보다는 투컷이 많을 거예요. 되는 조합이니까요~”

“그럼 더 좋네요. 전 선빈이랑 찍는 거 좋아하거든요.”

“저도요.”

“역시 되는 조합!”

그렇게 에디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빙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나니 대충 얼빡컷도 꽤 찍을 듯 했다. 얼빡은 또 차선빈 전문인데. 진짜 될지도.

소품은 대충 아이스크림, 솜사탕, 캔디 같은 걸 활용한다고 한다. 그 반대의 컨셉의 경우 좀 더 분위기가 차분할 것 같고.

설명이 어느 정도 끝난 뒤에는 다시 준비에 들어갔고, 그렇게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스텝의 말이 있었다.

“선빈아, 곧 있으면···뭐 해?”

“어?”

그 순간, 뭔가에 집중하고 있던 건지 차선빈이 이내 조금 다급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 고민하는 게 좀 있어서.”

“뭔데?”

“영화.”

“영화?”

그러자 차선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보고 싶은 영화 있어?”

“응. 근데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야.”

“그럼 보면 되잖아. 왜 고민해?”

“그건 그런데, 영화관으로 갈까해서.”

아, 최근 상영작인가보군.

평소에 차선빈은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었다. VOD로 보는 걸 더 많이 봤고.

“근데 혼자 가려고?”

“응.”

그대로 차선빈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대답 전에 조금 고민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혼자 보는 거 선호해?”

“아니. 그건 아니야. 그냥 예전부터 혼자 가다보니 거기에 익숙해져서······.”

음, 그래. 그렇군.

그럼 적어도 혼자 가는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는 거였다. 그렇다면, 같이 가면······.

“같이 갈래?”

“어?”

방금 한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같이 가자는 말. 차선빈이 내게 한 말이었다.

“그냥 같이 가면 어떨까 싶어서.”

어, 차선빈이 먼저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한 건 처음 아닌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던 것 같았다.

이에 나는 곧바로 답했다.

“그래. 같이 가자.”

그와 동시에 차선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괜찮아?”

“당연하지.”

안 될 게 뭐가 있겠냐.

나도 영화 보는 거 좋아한다.

게다가 차선빈이 먼저 제안한 건데, 당연히 가야지.

“그럼 같이 가자.”

“응. 바로 가자.”

“어?”

그러자 차선빈이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끝나고 바로. 원래 이런 건 결정했을 때 가야 하는 법이니까. 가자고,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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