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둘이 안 친해.
신도하는 지금, 언제나와 같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드라마는 다름 아닌 <시간 감지자>.
첫 방송 이후 매번 시간에 맞춰 나름 본방 사수를 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꽤 재밌었다. 연기도 좋고. 장르물인 만큼 연출적인 부분도 상당히 중요했는데, 이 또한 괜찮았다.
‘오늘은 시청률이 더 오를 것 같은데.’
그렇게 신도하는 옆에 있던 금색 손잡이의 머그컵은 들어 올렸다. 그 안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가 담겨 있었다.
‘연기는 여전히 잘하고.’
그렇게 화면 속 우도현은 극 중 현재민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도현의 연기를 두고 그간 많은 말들이 오갔기에.
그렇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말들은 첫방송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만큼 우도현은 여전히 연기에 능숙했고, 또 탁월했다.
애당초 그런 의심을 갖는 게 말이 안 됐다. 연기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었고, 드라마 한두 작품 찍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 순간, 방송 화면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신도하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 채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너를 향해 걸어가는 이 걸음만큼은]
[늘 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목소리 한번 좋네.’
음색 한번 끝내줬다.
듣기 편안하면서도 본인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담긴 목소리. 거기에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노래에 저절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좋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좋았다.
어느새 신도하는 드라마 보는 것도 잊은 채 OST에 푹 빠져 있었다.
그렇게 정신이 빠져 있던 통에 들고 있던 컵을 테이블에 놓으려다 그만 놓칠 뻔하기도 했다.
“이런.”
조심해야지, 이거 아끼는 건데.
그리고선 머그컵을 다시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두었다.
‘아, 벌써 끝났나.’
그 사이 짧은 오에스티가 끝이 났다. 중간에 정신을 놓친 탓에 끝까지 제대로 듣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졌다.
‘그나마 바로 공개라 다행인가.’
다음 날 오후, <시간 감지자>의 이번 OST는 그때 전 음원 사이트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연락하고 싶지만······.’
그래도 조금 더 참을성을 갖기로 했다.
음원이 나온 뒤. 그때 해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고대하던 우세현의 첫 OST <너에게로 달려갈게>가 전 음원 사이트에 풀렸다.
이어서 업데이트된 음원 차트 목록에, 신도하는 그대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 * *
음원이 공개되고 얼마 되지 않아, 신도하의 개인 별스타에 이번 OST의 홍보글이 올라왔다. 스트리밍 화면에 태그, 그리고 하트까지 제대로 눌러진.
그리고 그렇게 올라온 신도하의 예상치 못한 SNS 홍보로 인해 온 커뮤니티가 그대로 들썩였다.
- 헐 신도하가 우세현 ost 홍보글 올림ㅋㅋㅋㅋㅋㅋ
- 신도하가 우세현 ost 홍보글 어디에 올렸는데? 뭐라고 올림?
└ 스밍한 거 캡쳐해서 올림 심지어 하트까지 누름ㅋㅋㅋㅋㅋㅋ
└ 개인 슨스에 노래 좋다고 올림
- 신도하랑 우세현이랑 많이 친했나? 공개된지 얼마 안 된 ost 홍보까지 해주는 걸 보니
└ 그렇다기엔 이제까지 뭐가 없었음
└ 그래도 방송 같이 몇 번 했었잖아 그때마다 케미 좋다고 난리였는데
└ 그냥 얼굴 아는데 안 해주기 뭐해서 올려준 거 같은뎅
- 걍 정말로 노래 좋아서 올린 거 아님? 둘이 별로 안 친하잖아ㅋㅋ
사실 나와 신도하와의 친분 유무는 당연히 누구나 예상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 형의 전 멤버고, 여기에 방송도 몇 번 같이 한 사이였기에.
하지만 단순 친분을 넘어서 실제로 친함의 정도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 노래가 딱 도하가 좋아하는 분위기인데 그래서 추천해준 것 같음
- 사적으론 뭐 알려진 거 하나 없는데 친하다고 말할 건 아닌 듯
- 근데 둘이 뭔가 좀 비슷하긴 하다ㅋㅋ 외모 이런 거 말고 똑같이 메보인거나 호감 이미지 같은 거ㅋㅋ
└ 나도 그래서 둘 다 좋아함ㅋㅋㅋㅋ
└ 전혀 모르겠는데
- 걍 노래 좋다고 올린 것 뿐인데 뭔 궁예가 이렇게 많냐ㅋㅋㅋ일단 전 멤버 동생인데 얼굴은 그래도 꽤 본 사이겠지
- 둘이 안 친해 그냥ㅋㅋ 친했으면 저런 홍보글이 아니라 목격담이 줄줄이 떴을 듯
대충 친하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상당수 기우는 듯 했다. 아무래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으니.
그동안 사진이 찍히지 않은 게 상당히 컸던 모양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었고.
굳이 정의하자면, 그냥 관계가 조금 복잡한 동종 업계의 선배 정도이려나. 뭐 그랬다.
‘그보다 신도하가 올릴 줄은 몰랐는데.’
그냥 잘 들었다는 인사가 다 일 줄 알았는데.
사실 신도하가 SNS에 글을 올림으로써 OST가 또 한번 조명을 받게 된 건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관련 기사도 나고, 여기저기서 한번 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일단 신도하의 별스타 팔로워가 많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엄청 많다.
[팔로워 / 4,032만]
4,000만이 넘었다.
그리고 이는 아이돌 팔로워 수 중 TOP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는 루트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팔로워 수였다. 물론 그런 신도하 아래 순위는 줄줄이 박시겸을 포함한 다른 루트 멤버들이었지만.
와중에 형은 데뷔 이래로 쭉 개인 SNS가 없던 터라 뭐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전부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약 우도현이 개인 SNS를 가지고 있었다면, 루트 멤버 중 가장 많은 팔로워 수를 기록했을 거란 예상들이 많았으니.
물론 신도하와 박시겸을 포함한 다른 루트 멤버들도 최상위권에 머물고 있으니 형 역시 비슷한 정도는 됐을 터였다.
가장 많은 팔로워는···만들어 봐야 알지 않을까.
그렇지만, 지금이 전성기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형은 전혀 만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딱히 SNS를 신경 쓸 타입도 아니라서.
- 근데 우도현은 sns 안 만든대?
‘역시 SNS 말이 나오긴 하네.’
신도하와 내 얘기로부터 어느새 자연스럽게 화제는 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루트까지 끌올되는 전반적인 흐름이 이미 눈에 선했다.
* * *
─ 안 그래도 잠깐 고민하긴 했어.
“형이? sns를?”
─ 너 ost 홍보하면 좋으니까.
아, 그 측면에서.
혹시 신도하가 올린 거 본···음, 생각해 보니 당연히 봤겠거니 싶었다.
─ 대문짝만하게 홍보하는 게 확실히 좋아 보이긴 하더라고. 짜증나긴 해도.
뒷말은 정말로 짜증이 좀 섞였는데.
“근데 내 오에스티보다는 형 드라마 홍보 측면이 더 낫지 않아?”
─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근데 사실 굳이 그런 홍보가 아니어도 <시간 감지자>는 나날이 시청률이 상승 곡선을 타는 추세였다.
이번 주는 지난주보다 시청률이 3% 정도 상승해 벌써 10%가 넘었다. 매 화 반응도 핫했고.
그에 비하면 저쪽 <라이어>는, 뭐 아직까지 반등의 여지가 없었다.
“어쨌든 형 촬영은 잘···어.”
그 순간, 눈앞으로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대충 봐도 눈에 띄는 아주 화려한 디자인의 버스가.
[0914 도하야 생일 축하해♥]
X친, 신도하 생일이야?
아니, 물론 날짜를 보니 당장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버스에는 분홍분홍한 디자인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신도하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그래, 그렇지.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신도하의 생일과 관련된 것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도하야, Happy Birthday!]
[신도하, 언제나 너와 함께 노래해]
버스 정류장 광고부터 시작해, 서울 중심가에 있는 광고 전광판이란 전광판은 모조리 신도하의 생일로 도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정도면 온 세상이 신도하 생일이라고 광고를 하는 수준이었다. 아, 물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도하니 그럴 만하다는 게 당연하지만.
“세현아, 지난번에 말했던 그 프로그램, 나갈 거지?”
“아, 그 새로 기획한다던 멘토 프로그램이요?”
“응.”
그리고 와중에 예능 하나가 섭외가 왔다. 섭외로 온 건, 음악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케이블 방송국에서 새롭게 특집으로 진행하는 멘토, 멘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전 세대 아이돌 선배와 현재 아이돌이 1 : 1 멘토, 멘티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듀엣이지.’
물론 노래에 국한되는 건 아니었다.
춤이든 랩이든 포지션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았으니.
‘대충 후배 그룹 출연진 수가 5명쯤 됐던 것 같은데.’
그리고 거기에 맞춰 멘토로 나올 선배 아이돌 그룹의 숫자도 5명. 전달받은 출연진들 중에는 크게 눈에 띄는 인물은 없었다.
물론 멘토진 쪽에서만.
같은 멘티의 입장으로 출연하는 출연진들 중에는 확연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으니까.
‘이화준.’
그건 바로 체이스의 이화준이었다.
체이스의 이화준 역시 멘티 쪽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멘토와 멘티의 선정은 촬영장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닌, 개인이 사전에 정한 보컬, 댄스와 같은 포지션에 따라 제작진이 멘토를 붙여주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멘토가 성한영 선배라고?”
“응.”
성한영은 몇 세대 위인 ‘온라잇’이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그룹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었다.
‘온라잇’은 루트와 활동 시기가 거의 일치하는 그룹이었고, 루트와 마찬가지로 재계약 이후로는 멤버들 모두가 흩어진 상태였다.
“할 노래도 정해가야 하는 거야?”
“그건 아마 가서 정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멘토와 합의를 해야 하니.
“너랑 안지호 촬영은 언제인데?”
“우리는 다음주. 근데 야외에서 오프닝이래.”
마찬가지로 백은찬과 안지호 역시 케이블 예능 프로에 나가게 됐는데, 이는 라는 프로로 선택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각 단계마다 선택을 통해 촬영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는데, 과연 백은찬과 안지호가 잘 맞을지가 조금 염려되는 부분이긴 했다.
“대놓고 안 맞을 텐데.”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
“적당히 알아서 타협해.”
“그건 내가 할 말이고. 니가 좀 타협을 해. 난 일반적으로 일반적인 걸 고른다고.”
“일반적임의 기준이 좀 다르지 않나.”
벌써부터 이 꼴이다.
그래도 꽤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아 개인적으론 좀 기대가 되긴 했다.
촬영은 내가 백은찬과 안지호보다 앞이었기에 먼저 촬영 준비에 나섰다. 그런데 촬영일 이전에 긴급하게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멘토를 맡기로 한 성한영의 출연이 불발되었다는 연락이.
촬영일이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꽤나 황당한 일이었다. 더불어 성한영이 출연하지 않게 된 이유는 더 황당했다.
“뭔 이유요?”
“여자 아이돌이 아니라서 안 하겠대.”
여자 아이돌과 멘토, 멘티가 아니라 안 하겠다는 거였다. 황당을 넘어선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와중에 남녀 듀엣을 하고 싶다는 거냐?
돌아가는 걸 보니 일단 섭외 요청에 수락은 했는데, 지속적으로 여자 아이돌과 멘토로 붙여 달라는 요구를 제작진에게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고 성한영은 자연스럽게 출연하지 않겠다는 수순이었다.
“그래서, 제작진 측에선 어쩐대요?”
“어쩌겠어. 새로 멘토할 사람을 구해야지. 아니면 그냥 펑크인데.”
그게 그렇게 쉽게 구해지려나.
일단 촬영 날짜도 얼마 안 남았고.
그래도 염려와 다르게 새로 멘토로 들어갈 사람이 구해지긴 구해졌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렇게 촬영 날짜도 촉박한데 선뜻 해준다고 해서.”
“안 할 수가 없죠. 아무래도 하 PD님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노래하는 프로니까요.”
“그렇지. 우리 도하 씨가 노래 하나는 정말 기깔나잖아요~ 그래서 내가 원래부터 멘토로 부르고 싶었다니까!”
그리고 그렇게 구해진 새로운 멘토란, 다름 아닌 신도하였다.
더불어 지금은 그렇게 멘토로 정해진 신도하와 메인 PD인 하진우 PD와 함께 앞으로 있을 녹화와 관련한 사전 미팅을 하는 중이었다.
“아, 그래서 이렇게 도하 씨의 멘티가 되실 분은 여기 계신 윈썸의 세현 씨예요. 이미 아는 사이긴 하죠?”
“네. 당연하죠.”
신도하가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세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