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27화 (227/413)

227화. 소문 좀 내줘요.

이화준은 지금 잠시 상황 파악이 안 됐다. 그도 그럴게 그만큼 앞선 신도하의 말이 전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아낀다고? 안 친한 거 아니었나?’

당연히 친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얼굴만 아는, 그런 불편한 사이일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현실은 이화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소문 좀 내줘요.”

“네?”

“너무 친해서 문제라고.”

그 말을 들으니 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신도하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 사실이 진짜라는 게 더욱 체감됐다.

그리고 그렇게 멍하게 서 있는 이화준의 어깨에 신도하는 이내 손을 올렸다.

“그럼 잘해 봐요.”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 띤 얼굴로, 신도하는 그렇게 이화준의 어깨를 천천히 몇 번 토닥였다.

그러한 신도하의 모습에, 이화준은 순간적으로 섬뜩함과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짜증을 느꼈다.

* * *

스튜디오 촬영이 시작되었다.

출연 인원은 5명의 멘토와 5명의 멘티들이었다.

그 안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멘토와 멘티로 결정되었을 당시의 이야기, 첫인상 등과 같은 주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도하 씨와 세현 씨는 이미 알고 계시던 사이셨죠?”

“네. 그렇죠. 세현이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봤던 터라. 친동생 같기도 해요.”

친동생은 너무 한껏 MSG 친 거 아니냐.

그냥 동생도 MSG인 마당에.

방송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유독 더 친한 티를 내는 것도 같았다.

“세현 씨도 그러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 그렇다면 두 분의 케미, 이렇게 또 기대가 되네요~”

그와 더불어 각각의 팀이 어떤 포지션을 선택했는가도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보컬부터 공개를 해볼까요?”

보컬 무대를 선보일 팀은 5팀 중 2팀.

그 중에는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나머지 3팀은 댄스가 2팀, 랩이 1팀이었다.

사실 이는 파트너가 된 멘토를 보면 당연하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그 분야에서 소위 이름 좀 있다는 이들을 섭외한 것이니.

딱히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도 아니었기에, 모험 없이 각자 잘하는 걸 하는 방식이었다. 제작진 측에서도 그걸 원했고.

‘와중에 이화준은 왜 저러고 있는 거냐.’

어떻게 된 건지 아까부터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향해.

[“이기자.”]

[“이겨서 인정을 받자.”]

생각은 오로지 이긴다는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왜 인정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저쪽에서 저렇게 적대감을 대놓고 표하고 있는 이상, 이쪽도 질 생각은 없었다. 뭐,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긴 했지만.

그리고 스튜디오 촬영 이후에는 멘토와의 연습 시간을 가졌다. 당연히 이것도 촬영의 일부분이었다.

여기에 연습 장소는 우리 회사로 정해졌다. 그러니까 IN 엔터테인먼트.

“IN 엔터에 오게 될 줄은 몰랐네.”

신도하가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신도하가 RA 엔터에만 있던 세월이 몇 년인데.

“도현이도 와 봤어?”

“아뇨. 형은 아직요.”

“나중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해.”

글쎄. 딱히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던데.

물론 회사가 가깝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IN 엔터에는 특이한 연습실이 있다던데, 그거 사실이야?”

“아, 아뇨. 그냥 소문일 뿐이에요.”

“아하. 소문.”

있긴 있지. 정말로 특이한 연습실.

오랜 소문인 것 같았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로 상당히 유구한 소문인 듯 했다.

그리고 제작진에게서 받은 카메라를 세팅했다. 촬영은 별도의 스텝 없이 제작진에게서 사전에 건네받은 카메라를 이용해 기록하는 형식으로 했다.

와중에 넓직한 연습실에 신도하랑 둘이 있으려니 조금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선곡으로 결정한 ‘겨울을 담은 봄’는 아련함을 바탕으로 한 리드미컬하고 감성적인 R&B 곡이었다.

이 곡은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이별의 슬픔과 함께 이별 이후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제목과 같이 겨울과 봄이라는 단어를 통해 나타내고 있었다.

“이 노래, 원래 알고 있었어?”

“네. 분위기가 좋아서 종종 들었거든요.”

“나도 좋아해. 이별을 노래하는 곡치고 나름 희망찬 느낌이라서.”

그건 나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그리고 멜로디도 예쁘고.

장르적으로 생각해도 신도하와 함께 듀엣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그럼, 한번 해볼까?”

“네.”

그렇게 연습에 들어갔다.

노래의 시작 부분인 벌스 1을 신도하가 맡았고, 나는 곧바로 이어지는 벌스 2 부분을 맡았다.

그리고 익숙한 전주와 함께 신도하가 조용히 마이크를 잡았다.

‘신도하가 노래 부르는 건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간 신도하는 음반 활동보다는 예능이나 뮤지컬 쪽에서 활동했었으니까. 그러니 주로 그쪽에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건 예전 밴드 예능 이후로 처음인가.’

<조금 특별한 음악 밴드>. 그때 그 데뷔 초 밴드 예능 이후로 신도하와 함께 노래하는 건 처음이었다. 막상 돌이켜 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 겨울에 했던 차갑던 그 약속]

[마치 눈 녹듯 사라져버린 약속을]

[한없이 되감으며 되풀이하고 있죠.]

처음부터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니, 물론 실제로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신도하의 노래를 듣고.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다는 게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한 소절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노래를 굉장히 잘한다는 걸.

중간에 들어가는 화음 또한, 그런 신도하의 주도하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들어갔다.

[추억은 멈춰 있는 시간이지만]

[때로는 멈춰 있는 시간 속에도]

[의미 있는 회로가 있다는걸]

그야말로 편안했다.

듣기만 편안한 게 아니라 부르고 있는 나조차 편안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꽤 잘 맞는 것 같네.”

노래를 마친 이후, 신도하는 꽤나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 보이기도 하고.

“선배님이 잘 리드해주신 덕분이죠.”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잘 따라왔는데. 덕분에 편했어. 오랜만에 기분이 좋네.”

신도하는 그렇게 다시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정말로 기분이 좋은 게 맞았는지 다시 연습을 준비하면서도 앞선 곡을 작게 허밍했다.

“왜?”

“아뇨.”

나도 모르게 쳐다본 모양이었다.

아니, 근데 허밍도 잘한다.

아무 생각 없이 부른 것 같음에도.

그러자 신도하가 곧 언제나와 같이 웃는 얼굴로 물어왔다.

“혹시 좀 다르게 보였나?”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여전히 눈치 한번 빠르다.

* * *

연습은 막힘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도하에게서 꽤 도움을 받았다.

“이 부분은 소리보다는 호흡 쪽에 비중을 더 넣는 게 좋아. 그쪽이 훨씬 더 듣기 편안하게 들리거든.”

“이렇게 하면 되나요?”

“맞아. 역시 금방 조절이 가능하네. 호흡의 비중을 얼마나 넣는 게 좋을지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야.”

신도하는 그렇게 꽤 칭찬을 늘어놓았다. 예전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가르치는 것에도 상당히 재능이 있어 보였다.

여기에 신도하는 작사나 편곡, 그 밖의 것들에 능했다. 이렇게 말하니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은 수준이네.

“세현이 너도 작사에 관심 있지?”

“네.”

당연히 관심이 있었다.

작사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그럼 다음에 한번 놀러와. 작업실에.”

“따로 작업실이 있으신가요?”

“예전부터 작업하던 공간이 따로 있어서. 익숙한 곳에서 일해야 결과가 잘 나오는 타입이라.”

루트 활동 당시에도 신도하 곡이 꽤 있었다. 작사에는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편이었고.

‘궁금하긴 하네, 작업실.’

예전부터 사용했다는 걸 보면, 꽤나 오래된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도 우리에게 작업실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 적 있었다.

필요하면 만들어주겠다고.

물론 아직까진 없는 상태였지만.

“다음에 시간 괜찮으실 때, 불러주시면 가겠습니다.”

“그래,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을게.”

그냥 손만 들어도 될 것 같은데. 어찌 됐건 카메라를 통해서는 대충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연습이었다.

듣기 좋은 멜로디와 여전히 흠잡을 곳 없는 신도하의 목소리가 그렇게 한동안 이 큰 연습실을 채웠다.

“잠깐 쉬었다가 할까?”

“네. 좋습니다.”

중간에는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순간, 신도하가 카메라가 있는 곳으로 가 전원을 오프시켰다.

켜 있는 상태로 쉬는 건 줄 알았는데, 정말로 쉬어가자는 의미였던 모양이다.

“그래야 좀 더 느긋하게 쉬지. 24시간 촬영이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제작진 측에서 PPL로 주었던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솔직하게 저 음료는 굉장히 맛이 떨어졌다.

“이거 맛이 없지?”

“···그냥 먹을 만합니다.”

“맛없는 거 맞아. 다른 방송에서도 PPL로 받아봤는데, 출연자들 다 맛이 없어 해서 먹는 내내 고생했어.”

아,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똑같은 가보다.

“많이 안 먹어도 돼. 내가 먹을 테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이 정돈 그냥 맡기는 게 나을걸.”

신도하가 웃으며 말했다.

물론 맡기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맛없는 걸 아는데 굳이 그럴 순 없었다.

“IN 엔터도 뷰가 좋네.”

신도하가 저 멀리 있는 연습실의 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당히 고층에 있던 연습실이라 뷰가 꽤 좋았다.

“선배님은, 요즘도 꾸준히 작업하시나요?”

“응.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작사요? 아님 곡이요?”

“보통은 둘 다지. 그보다 관심 있네?”

“네. 당연히 있죠.”

“아니, 작업 말고 나한테.”

어, 그 말은 내가 평소에 본인한테 되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 물론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아뇨, 저는 항상 있었죠.”

“비꼬려는 거 아니고, 단순히 기분 좋아서 하는 말이었어.”

그리고 정말로 그랬던 건지 신도하가 그대로 살짝 미소 지었다. 뭐, 관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이런 관심은 꽤 좋네.”

“그보다도 저 예전에 그 곡 꽤 좋아했거든요. ‘Autumn’이요.”

“아, 그 곡?”

‘Autumn(어텀)’이라는 곡은 루트의 미니 앨범 2집에 수록된 발라드곡으로 어렸을 적부터 꽤 많이 들었던 곡이었다.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가사가 꽤 좋았기에. 그리고 내가 알기론 그 가사를 쓴 게 바로 신도하였다.

“그 곡은 쓸 때 좀 힘들었어. 한참 바빴던 때라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었거든.”

“그 곡 가사가 좋아서 많이 들었어요.”

“그래? 기쁜데.”

신도하는 그렇게 웃으며 옆에 있던 맛없는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게다가 하필 그때 쓰던 만년필이 고장 나서. 아, 나는 웬만하면 손으로 가사를 쓰는 유형이거든.”

“만년필을 쓰시나요?”

“응. 가사 쓸 때마다. 요즘도 그렇게 하고 있고.”

직접 적어가면서 한다는 거군.

본 적은 없다만, 대충 신도하와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은 있었다.

“아······.”

그리고 그렇게 대화를 하던 도중, 신도하가 곧 작게 한숨 쉬었다.

“왜 그러세요?”

“시간이 참 빨라서.”

신도하가 굉장히 아쉽다는 얼굴을 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20분 이상이 흘러 있었다. 10분 정도 쉬어가려고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더 흘러 있었다.

“안타깝지만, 이제 슬슬 일어나도록 할까.”

“네. 그러시죠.”

사실 그렇게까지 안타까울 건 없었지만, 그냥 아무 말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먼저 일어난 신도하는 그대로 카메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카메라의 전원을 다시 켜는 가 싶었는데, 그 순간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뭔가 느낌이 좋네.”

문득 그렇게 말했다.

이에 나는 곧 그런 신도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앞서 신도하가 말한 그 느낌이 뭔지, 마찬가지로 알 것 같은 느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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