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29화 (229/413)

229화. 잠깐 시간 좀 내주시죠.

준비한 무대가 끝이 났다.

준비한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이렇게 끝내고 나니 뭔가 마음이 후련했다.

무사히 무대를 끝냈다는 안도감일지도.

“수고했어.”

신도하가 나를 향해 말했다.

“선배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 니가 했지. 피아노까지 준비했으니까.”

앞선 인트로에서 했던 피아노 반주는 신도하의 아이디어였다. 피아노를 앞에서 먼저 선보이면 어떻겠냐고.

마침 이 노래는 피아노 선율이 들어가 있는 노래였기에 분위기에도 잘 맞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를 수락했다.

나 역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새롭게 인트로를 만들어야 했고, 그 안에서 이런저런 과정을 거쳤다.

“너무 잘 만들어서 놀랐어. 뭐하면 내가 도와주려고 했었거든.”

“감사합니다.”

신도하가 도와줬으면 더 좋은 게 나왔으려나. 어쨌건 잘 끝났으니 됐다. 객석 반응도 괜찮았던 것 같고.

객석의 반응을 판단할 수 있는 하트.

신도하와 내 무대는 이제껏 없었던 100%를 달성했다. 그야말로 빈틈없이 꽉 채워진 하트였다.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그때, 신도하가 멘토 대기실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도 역시 멘토와 멘티로 대기실로 나뉘어져 있었기에. 그리고 난 그런 신도하를 불러 세웠다.

“선배님.”

“왜?”

“끝나고 잠깐 시간 좀 내주시죠.”

급하게 떠오른 것이 있었다.

* * *

의 정해진 촬영이 모두 끝난 시각, 신도하는 멘티 대기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서 있었다.

촬영이 끝난 뒤에 잠시 시간을 내달라는 우세현의 말 때문이었다.

‘무슨 일일까.’

고민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제껏 시간을 내달라는 부탁은 먼저 한 적이 없었기에 그것만으로도 꽤 기분이 좋았다.

무대를 재밌게 한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이런 새로운 이벤트까지. 그 덕에 신도하는 평소보다 기분이 더 업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전에 약속한 장소가 아닌 멘티 대기실 근처까지 와버렸다. 뭔지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사실 생각할 수 있는 용건은 다양했다. 곤란한 부탁일 수도 혹은 간단한 부탁일 수도 있었다. 부탁이 아닌 제안일 수도 있는 거였고.

하지만 그 용건이 뭐가 됐든 신도하는 이미 들어줄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어렵건 어렵지 않건 그런 건 별로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나 세현이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간단한 제안 정도려나.’

제가 보기엔 우세현은 곤란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그걸 부탁할 성격이 아니었다. 알아서 해결하면 해결했지.

‘이왕이면 어려운 부탁, 힘든 제안 이런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보통 역경과 고난을 함께 하면 흔히들 사이가 더 가까워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것들에 신도하는 흔쾌히 함께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에겐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 있을 리도 없을 테니까.

‘아, 그럼 도현이가 길길이 날뛰겠군.’

왠지 상상이 가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 멀리 있던 멘티 대기실의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와 동시에 신도하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어? 선배님!”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온 건 우세현이 아닌 이화준이었다. 이에 잠시 반짝였던 신도하의 흥미가 그대로 순식간에 꺼져 들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누굴 좀 기다리고 있어서요.”

“아······.”

그 말에 이화준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이화준은 금방 다시 이전과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선배님, 혹시 오늘 무대 어떻게 보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무대, 잘 봤죠.”

신도하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화준이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좋았는가 아닌가를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신도하는 그런 이화준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 성실히 대답한 것뿐이었다.

“아, 잘 보셨군요······.”

“네.”

그저 잘 봤다고.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이화준도 아니었다. 그렇게 이화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도, 화준 씨.”

“예?”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아요.”

···말?

알 수 없는 그 말에 이화준은 잠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신도하를 바라보았다.

“되도 않는 거짓말은 기분이 영 별로라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화준은 그제서야 신도하가 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앞서 무대 시작 직전, 제가 우세현에게 한 거짓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우세현이 말했나?

신도하에게 직접?

“우연히 듣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죠. 참느라 꽤 힘들었어요.”

신도하는 그렇게 웃어보였다.

이화준과 우세현이 대화하고 있던 그 공간, 당시 그곳엔 신도하 역시 자리하고 있었다. 이화준은 알지 못했지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신도하는 이화준을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고, 이내 조용히 속삭였다.

“참, 이전부터 거슬리네.”

그 말 한마디에, 이화준은 다시 한번 이전과 같은 섬뜩함을 느꼈다.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이화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입만 들썩였다.

그리고 이화준이 다시 한번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쯤, 멘티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세현아.”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나타난 우세현의 모습에, 신도하는 그런 우세현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내 우세현은 신도하를 발견했고, 왜 거기 있느냐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럼 가 봐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이화준은 앞선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그대로 신도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앞선 말이 마치 자신이 방해된다는 뜻으로 들려왔다. 이에 이화준은 그대로 다가오는 우세현을 한번 쳐다본 뒤, 자리를 떠났다.

그런 이화준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 못했지만, 그런 건 제 알 바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내내 기다렸던 이를 맞이할 뿐. 그것뿐이었다.

* * *

“왜 여기 계세요?”

“그냥, 빨리 만나면 좋잖아.”

신도하가 웃으며 말했다.

성격이 보기보다 급한가.

분명 사전에 이야기했던 장소는 이곳과는 조금 떨어진 장소였다.

‘근데 대기실을 나오니 이렇게 떡하니.’

그러니 안 놀랄 수가 있었다.

정말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였다.

“···미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더 빨리 나왔을 텐데요.”

“괜찮아. 내가 원래 좀 준비가 빨라서.”

“아, 예.”

그래, 준비가 빠르구나.

‘그보다 조금 전에 이화준이 있지 않았나.’

앞서 이화준이 먼저 신도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모르겠다만.

‘생각을 보니 썩 좋은 대화를 아니었나 보군.’

조금 전 이화준과 눈이 마주쳤을 때, 생각이 들려왔다. 대충 다음을 기약하는 3류 악당과 같은 대사였는데, 너무 흔한 대사인 터라 그냥 흘려들었다.

‘상당히 열이 받은 걸 보면, 대충 신도하한테 평가를 박하게 받은 모양이군.’

이전에 인정받겠다고 했으니까.

정황상 그건 아마 무대겠고.

“그래서?”

“예?”

“할 말 있다고 했잖아.”

아, 정확히는 할 말이라기보다는 시간 좀 내 달라는 거였는데.

그리고 계속 궁금해하는 모양새길래 나는 빠르게 들고 있던 쇼핑백을 그대로 신도하에게로 건넸다.

“선배님, 이거요.”

“이게 뭔데?”

“선물이요.”

“선물?”

그리고 그렇게 신도하는 여전히 물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가 건넨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선물이라고 말했는데도 전혀 짐작을 못 하는 건가.

“선배님, 생일이시잖아요.”

“어? 뭐?”

그 말에 어째 아까보다 더 놀란 듯한 표정이다.

“조금 이르긴 한데, 미리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사실 날짜상 신도하의 생일은 아직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근데 또 그때 맞춰주기엔 신도하나 나나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냥 될 때 주자는 생각이었다.

“어, 알고 있었던 거야?”

“네.”

당연히 알지.

그렇게 대대적으로 축하를 해주는데.

심지어 오는 길에도 버스 광고판을 하나 보고 왔다. 아무래도 받은 게 있다 보니 그냥 넘어가기 뭐했다.

그때 받은 컵이 아직도 숙소에서 번쩍번쩍하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근데 예상이랑 반응이 다르네.’

예상했던 반응은 늘 그렇듯 웃는 얼굴로 고맙다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 갈 줄 알았는데, 실제 반응은 그와 다르게 계속 삐그덕거리기만 하고 있다.

표정도 웃기는커녕 오히려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꽤 놀란 건가.

“선배님이 주신 머그컵 잘 사용하고 있거든요. 근데 받기만 하기는 뭐해서 저도 준비를 했습니다.”

“아, 굳이 안 그래도···아니, 일단 고맙게 받을게. 선물 정말 고마워. 이거 풀어 봐도 돼?”

신도하가 쇼핑백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제서야 조금 정신을 차린 건지 평소와 같이 웃는 얼굴을 보였다.

이에 나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신도하가 쇼핑백 안에 있던 상자를 꺼내 곧바로 포장을 풀었다.

“이건······.”

“만년필이요.”

준비한 선물은 만년필이었다.

해당 만년필은 만년필 브랜드 중 유명 브랜드의 것으로 기본 블랙에 골드가 코팅되어 있는 만년필이었다.

전에 신도하가 작곡할 때 만년필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으니까.

“전에 선배님께서 작곡하실 때 만년필 많이 사용하신다고 하셔서요.”

“어, 근데 이거 가격대가 좀 있을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그래도 선물인데 아무거나 주기는 좀 그렇고, 어차피 할 거 그래도 가격대가 좀 있는 걸로 골랐다. 나름 제품 비교도 열심히 했고.

그리고 신도하는 그렇게 말없이 만년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 탓에 마음에 든 건지 아닌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예쁘네.”]

아, 다행히 디자인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 안심이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 그것보다도 사실 말만 해줬어도 감동이었을 것 같은데.”

“말로만 때우기는 좀 그래서요.”

“컵 때문에 그래? 괜찮아. 너한테 받은 축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니까.”

분명 고마운 말이긴 한데, 동시에 상당히 낯간지러웠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생일 축하라는 게 원래 다 의미가 있는 거고.

“그래도 고마워. 근데 이거 아까워서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많이 사용해주세요. 작사하실 때 도움이 될까 싶어서 고른 거거든요.”

“그래. 그러도록 해볼게.”

그렇게 신도하는 웃어보였다.

그러더니 또 한동안 만년필을 쳐다본다.

“아마 올해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신도하를 보며 이번엔 내가 말없이 웃어 보였다. 앞으로 이것보다 좋은 선물 많이 받을 텐데, 뭘.

그러다 보면 대충 기억에 남는 선물 203,432번째가 되어 있지 않을까.

“다음에 작업실에 꼭 놀러와. 그때 쓰는 거 보여줄게.”

“네. 알겠습니다.”

그 전에 그냥 사진으로 보내주는 게 더 빠르게 않을까란 생각을 하긴 했는데, 궁금한 마음은 있으니 일단 그러겠다고 했다.

“저녁은? 먹을 거야?”

“저는 숙소 가서 먹으려고요.”

“아아. 그래.”

그러자 신도하가 잠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곧 웃으며 말했다.

“다음엔 미리 선약을 해야겠네.”

그리고 그때까지 신도하는 여전히 만년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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