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오랜만의 만남이잖아.
[형]
: 어디냐
생각지 못한 메시지였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는.
아니, 그보다 한창 바쁜 줄 알았는데.
[우세현]
: 일 하러 왔어
[형]
: 컴백 준비는 잘 돼가고?
[우세현]
: ㅇㅇ
새 앨범 준비 과정에 있다는 건 이전에 말한 바가 있으니 형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앞선 답장을 보내자마자 곧바로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형]
: 주말에 시간 되면 한번 와. 오랜만에 밥 먹자.
한창 바빠 보이더니 주말에는 시간이 되나 보네. 그보다도 이번 주말 스케줄이 어떻게 됐더라.
기억하기론 저녁엔 특별한 게 없던 것 같기도 했다.
“야, 차 왔다.”
“응.”
그리고 그 사이, 차가 왔다.
이에 일단 답장을 대충 보냈다.
[우세현]
: ㅇㅇ 알겠어
‘대충 그때 얘기하면 되겠지. 권해진에 관한 건.’
그리고 곧바로 다가오는 검은색 벤을 향해 안지호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 * *
“원래 그런 식이냐?”
안지호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뭐가?”
“아까. 권해진.”
아. 그 얘기였군.
그 말을 하는 안지호는 어째 평소보다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예전에도 비슷하긴 했어. 그때도 좀 과하긴 했거든.”
그땐 어깨가 아니라 볼이긴 했지만.
“어쩐지 낯짝이 맘에 안 든다 했다.”
“첫인상 별로였어?”
“좋을 수가 없잖아.”
그 말엔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하긴 아까 그 적막을 생각하면, 좋을 리가 없긴 했다.
어느새 박시겸에 이어 한 명 더 추가되었다. 안지호가 싫어하는 낯짝. 혹시 신도하도 안 좋아하려나. 그래도 신도하는 앞선 두 사람에 비하면 낯짝이 나은 편이긴 한데.
그리고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에 있던 멤버들이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 나왔다.
“그래서 무슨 얘기하고 왔는데?”
“그냥 곡 녹음 방향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랑, 우리 노래 많이 들었다고.”
“아아.”
이에 백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차선빈과 신하람도 앞서 있던 일이 궁금했던 건지 그런 백은찬 옆에 앉아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난 또 둘만 부르길래 뭔가 싶었네.”
“안 피곤해?”
“응. 괜찮아.”
“근데 안지호는 왜 이렇게 심기가 불편하냐?”
아. 아까 권해진 얘기를 하면서 표정이 안 좋아 보이더니. 아직까지 꽤나 저기압인 듯 했다.
“조금 예상 못한 인물을 만나서.”
“예상 못한 인물? 누구?”
“권해진.”
“엥?”
그 말을 들은 백은찬이 벙찐 표정으로 되물었다. 확실히 예상치 못한 인물이긴 했다. 권해진이.
“그 선배 X끼도 별로야.”
“뭐야, 뭔 일이 있었길래 벌써부터 호칭이 이 난리냐?”
“별일 없었어. 그보다도 도운이 형은 어딨어?”
다 있는 마당에 어째 도운이 형만 안 보였다. 당연히 다 같이 숙소에 있을 줄 알았는데.
“그 형은 회사요.”
“회사? 뭐 하러 갔는데?”
“앨범과 관련해서 이야기하러 갔대요.”
아, 그렇군.
아무래도 리더니까.
그리고 도운이 형이 숙소로 온 건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서였다. 생각보다 늦은 귀가였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온 도운이 형은 그대로 거실에 있던 날 보며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을 보였다.
“아직 있었네.”
“네. 형은 좀 늦었네요.”
“응. 얘기가 길어져가지고.”
꽤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에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뭐라도 줄까요?”
“아냐, 됐어.”
그렇게 말하더니 윤도운은 곧바로 소파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피곤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지친 듯한 모습이었다.
[“아, 당 떨어지네.”]
“단 거 라도 줄까요?”
“어, 있어?”
“네.”
이에 나는 주방 테이블 위에 있던 초콜렛 몇 개를 가지고 나왔다.
“근데 이거 은찬이 꺼 아니야?”
“아까 저한테 몇 개 먹으라고 줬어요.”
그리고 도운이 형이 그대로 내게서 초콜렛을 건네받았다. 미니미한 사이즈에 고급스러운 포장으로 감싸져 있던 초콜렛이었다.
“밥은요?”
“먹긴 먹었는데, 좀 일찍 먹었어.”
대답과 함께 윤도운은 그대로 초콜렛을 우물우물 씹었다.
“근데 뭐하느라 늦은 건데요?”
“이번 앨범에 들어갈 곡 때문에.”
“곡이요?”
그러자 윤도운이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내가 작업했던 곡 하나 있잖아.”
“아, 그러고 보니 형 작업하고 있던 곡 하나 있었죠.”
“응.”
짧은 공백기 사이, 도운이 형은 곡 작업에 매진을 했다. 앨범에 참여 비중을 조금 더 늘리고자.
그리고 그걸 중간 중간 멤버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는데, 나 역시 이전에 들었던 바였다. 멜로디가 꽤 예뻤지.
“완성됐어요?”
“응. 완성은 됐는데, 사실 내가 그 곡을 만들기 시작한 계기가 따로 있거든.”
“뭔데요?”
“우리 팬송을 하나 만들고 싶어서.”
아, 팬송.
아직까지 우리는 정식 팬송이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거에 관해 고민하는 바였는데, 도운이 형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다른 건 몰라도 팬송만큼은 직접 만들고 싶어서. 그래야 좀 더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또 우리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니까.”
“그렇죠.”
“그래서 그거랑 관련된 걸 회사랑 이야기하느라 좀 늦었어. 물론 아직 데모 밖에 없어서 가사 작업이랑도 해야 하지만.”
다시 말해 이번 앨범에 그 팬송을 싣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뒤이어진 말로는 오늘 회사랑 어느 정도 조율이 된 듯 싶었고.
“안 그래도 그 곡 멜로디가 진짜 좋았는데. 당연히 통과될 것 같았어요.”
“그래? 내심 조마조마했거든.”
대답과 함께 윤도운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이제 가사만 쓰면 돼. 다같이.”
어, 잠깐. 다같이?
“다같이요?”
“응. 이거 팬송이라고 했잖아. 내가 오늘 그것까지 이야기하고 왔지. 가사는 우리가 쓰는 걸로.”
“형.”
“왜?”
“잘했어요.”
그러자 도운이 형이 이내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 남아 있던 초콜렛을 하나 까서 먹었다.
직접 쓰는 팬송. 도운이 만든 팬송.
의미가 남달랐다.
거기에 앞으로 가사 쓸 생각을 하니 그것도 좋았다.
게다가 가사도 가사지만, 도운이 형이 쓴 곡이 정말로 좋아서 어서 빨리 멜로우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 노래 진짜 멜로디 괜찮은데.
“근데 이거 맛있다. 기운이 좀 돋네.”
그렇게 말하던 도운이 형은 이전보다 조금은 피로가 가신 얼굴이었다.
“하나 더 먹을래요?”
“여기 있는 건 다 먹었는데.”
“백은찬한테 이 얘기하면 더 주고도 남을걸요.”
“그럼 하나 더 가져오는 걸로.”
그 말에 도운이 형과 함께 그대로 마주 보며 웃었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더 필요한 시점이었다.
* * *
권해진은 오늘,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에 기분이 조금 들떠 있는 상태였다.
전역 소식이 기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퍼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폰 또한 쉼 없이 울렸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그는, 수많은 메시지 폭탄에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일일이 그에 대한 답장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7시였지.’
오늘 저녁 7시.
그때도 그는 역시나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은 바로 루트 멤버들과의 저녁 식사 약속이었다. 사실 약속이라기보단 그의 일방적인 통보에 가깝긴 했다.
그렇지만 그는 사전에 자주 가는 식당을 예약해두었고 이미 도착해 자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20분 전.’
그리고 약속 20분 전.
슬슬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쯤, 아니나 다를까 문이 활짝 열렸다.
“왔냐?”
“······.”
박시겸이었다.
이에 박시겸이 곧바로 미간을 좁혔다.
“왜 지금 와 있는 건데요?”
“왜? 조금 일찍 올 수도 있지.”
“형이요?”
“큼.”
그리고 권해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름 찔리는 구석이 있었기에.
일반적으로 권해진은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타입은 아니었다. 정각에 맞추거나 혹은 5분 정도 늦는 타입이었으니까.
“오늘은 특별하잖냐. 그래서 또 빨리 와서 자리하고 있었지.”
“특별할 게 있나요.”
“전역하고 처음 만나는 건데 나름 특별하지.”
“단순히 아무도 안 올까봐 그런 건 아니고요?”
“큼.”
이에 권해진은 또 한번 정곡을 찔렸다.
그에 비하면 박시겸은 무조건 3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는 주의였다. 그렇기에 사실 오늘 만남은 박시겸 치고 꽤 늦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근데 너 오늘은 좀 늦었다. 원래는 30분 전에 칼 같이 오는 녀석이.”
“안 올까 하다가 온 거라서요.”
“하여간 정 없는 녀석.”
“아침부터 쓸데없는 전화 세례는 받고 싶지 않거든요.”
이내 박시겸이 빈 좌석에 착석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으로 아직까지 채워지지 않은 좌석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너 요즘 드라마는 좀 잘 되는 것 같던데.”
“그럭저럭이죠.”
“그 사이 대본 보는 눈이 좀 늘은 거냐? 보아하니 신도하도 꽤 여러 프로를······.”
“벌써 제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때, 문이 다시 한번 열리면서 다음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10분, 역시 신도하도 여전히 칼 같네.”
권해진이 눈앞에 있는 신도하를 보며 말했다. 이에 신도하는 그대로 문을 닫으며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형이야말로 안 하던 짓 하면 곧 죽을 때라던데. 건강은 괜찮은 건가요.”
“지금 욕하냐?”
“그럴 리가요.”
그리고 신도하는 박시겸의 반대 자리로 가 앉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시선이 마주했지만, 그럼에도 특별한 인사는 오가지 않았다.
이렇게 권해진과 박시겸, 신도하까지 5명의 멤버 중 3명의 멤버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모인 게 얼마 만이냐.”
권해진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대충 2년 만인가?”
“3년이요. 형 입대하는 날도 안 봤는데.”
“아, 그렇네. 생각보다 시간이 지났네.”
“일일이 세고 있는 것도 좀 그렇네.”
“대충 보면 견적 나오잖아.”
그렇게 말하던 신도하는 이내 앞에 있던 물을 조용히 들이켰다. 그와 함께 테이블 위로는 고요한 정적이 흘러들어왔다.
모인 자리에서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와중에 권해진만이 자신의 입을 쉼 없이 놀리고 있었고, 이를 신도하가 간간히 반응해줄 뿐이었다.
박시겸은 권해진과 신도하가 하는 대화를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사실 초대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어.”
그 말에 신도하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리고 이를 본 권해진은 역시나 아무렇지 않게 앞선 말을 계속했다.
“우도현.”
순간, 신도하와 박시겸의 시선이 동시에 권해진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박시겸은 들고 있던 나이프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근데 불렀는데, 역시나 안 오더라고.”
“굳이 올 이유가 없죠.”
박시겸이 변조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역시 그런가? 하긴, 뭐 어떤 식이든 그 자식 성격으로 봐선 안 올 것 같았지만.”
“알면서 연락했어요?”
“응.”
권해진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를 본 신도하가 이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좀 놀랐어. 복귀 같은 거 다시 안 할 줄 알았거든.”
“아마 생각의 기점이 바뀐 지 얼마 안 됐을 거예요. 그리고 그걸 예상보다 더 서두른 것 같고요.”
“넌 항상 그렇게 우도현을 잘 안다는 듯이 말하더라. 예전에 그렇게 붙어 다니더니.”
“잘 알죠.”
그런 신도하의 말에 권해진은 잠시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어째 맞는 말 같기도 해서 반박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거냐? 우도현.”
“아뇨.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그럼 뭔데?”
“화라기보단 지금은 아마 그냥 관심이 없는 거겠죠.”
“애초에 우도현이 관심이 있는 게 있나.”
“그러게. 원래 뭐든 관심 같은 거···아, 나 그러고 보니 만났다.”
그런 권해진의 말에도 신도하와 박시겸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제 앞에 있는 식사에 집중했다.
“누굴요.”
“세현이.”
그리고 그런 그의 대답은 신도하와 박시겸의 행동을 다시금 멈추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