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불안한 예감이 든다.
“세현이를 만났어요?”
“응.”
권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도하가 곧바로 먹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디서 만났는데요?”
“Elist 작곡가 스튜디오에서. 근데 둘 다 왜 그렇게 관심을 가져?”
“관심 가진 적 없는데요.”
박시겸이 답했다. 그렇게 그는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모습으로 옆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상하게 목이 탔다.
“저보다는 얘가 많죠.”
“도하가?”
“맞아요. 저 관심 많아요.”
반면, 신도하는 순순히 긍정했다.
굳이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왜 많은데?”
“이유야 많죠.”
“노래 잘해서?”
“형도 아네요?”
“들었어. 그리고 예전부터 우도현이 세현이 노래 잘한다고 종종 말했잖아.”
예전부터 듣던 이야기였다.
동생이 노래를 잘한다며 항상 칭찬했기에 이는 멤버들 역시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생각 이상으로 더 잘했지만.
“어릴 때랑 비슷하더라고. 그래서인지 그때도 괜히 생각나고.”
“또 괴롭힌 건 아니죠?”
“괴롭히긴 누가 괴롭혔다고 그래. 귀여워서 그런 건데. 아, 그리고 여친은 여전히 없다네.”
그 말을 하는 권해진의 얼굴에는 어느새 장난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본래 귀여우면 괴롭히고 지고 싶어지는 편이었다. 게다가 그땐 워낙 어렸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본 신도하는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괴롭히지 마요.”
“걱정도~”
그렇게 권해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대답과는 다른 표정에, 신도하는 안 되겠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까지도 박시겸은 여전히 물만 들이 키고 있었다.
권해진은 예전부터 좀 엉뚱하게 튀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잘 알기에 신도하는 앞선 권해진의 대답이 영 찜찜했다.
“그렇게 되면 도현이가 진심으로 화낼걸요.”
“음, 그건 좀 그렇겠네.”
“그러니까 괜히 건들지 말아요.”
“그러기엔 니가 이미 건들고 있는 거 아니냐?”
“건드는 게 아니라 친해지는 거죠.”
신도하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좀 친해졌고?”
“네.”
“박시겸, 넌?”
“왜 묻는데요?”
“너도 반응했잖아.”
“······.”
정곡을 찌르는 말에 박시겸이 그대로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의 결국 긍정의 의미에 가까웠다.
“이거, 이거. 뭔 일이 있었나보네?”
“넌 뭔데?”
“스프가 좀 짠 것 같다, 여기.”
“스프는 원래 짜게 먹어야 해. 밍밍한 스프만큼 맛없는 게 없어.”
“다음엔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하죠.”
제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는 박시겸에 신도하는 그대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 사이 대화는 이상한 흐름으로 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역시 신도하에게는 이미 익숙했다.
그렇게 한동안 세 사람의 식사가 이어졌다. 여전히 대화가 많지 않은 잔잔한 식사자리였다.
“왠지 앞으로 볼 일이 많을 것 같다.”
“방송 아니면 사양할게요.”
“개인적인 연락은 자제하고요.”
“아무튼 정 없기는.”
식사는 금방 끝이 났다. 식사가 끝나자 세 사람은 미련 없이 흩어졌다. 와중에 박시겸이 가장 먼저 자리를 떴고, 이를 신도하가 뒤따랐다.
하지만 잔잔하고 평범해 보였던 이 식사자리는 이후에 생각지도 못한 파란을 일으켰다.
- 찰칵!
며칠 뒤,
이와 관련된 기사 하나가 떴기에.
- [단독] 루트 재결합 여부 보여···권해진, 박시겸, 신도하, 우도현 4인 새롭게 재결합하나?
* * *
아침부터 뜬금없는 기사에 눈을 의심했다. 다름 아닌 루트의 재결합과 관련된 기사였다.
- 엥 루트 재결합함? 엥 근데 우도현?
- 루트 재결합 소식 실화임? 그것도 우도현까지?
- ㅁㅊ 권해진 전역하자마자 루트 재결합한다고 소식 떴네
- 그것보다 재결합도 재결합인데 왜 우도현은 포함인 거야? 우도현은 애저녁에 루트 나갔잖오
- 기사보면 우도현 포함 4인이라던데 설마 찐으로 이렇게 나오나
루트의 재결합 여부와 관련된 소식이 전해지면서 온종일 커뮤니티고 SNS고 할 것 없이 이 화제로 불탔다.
게다가 단순한 재결합 기사가 아니었다. 형을 포함한 재결합 기사였기에 그 화제는 더더욱 불타올랐다.
‘트릭 일보, 원래원 기자.’
단독을 달고 가장 처음 기사를 보도한 기자의 이름이었다. 트릭 일보, 이곳은 연예인 파파라치로 유명한 신문사였다.
‘그 사이 루트 멤버 중 한 명에게 붙은 건가.’
그리고 해당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트릭일보, 원래원 기자] 루트가 한 자리에 모였다. 최근 전역한 리더 권해진을 중심으로 지난 수요일, 박시겸, 신도하, 우도현이 은밀하게 권해진의 전역 축하 기념 식사 자리를 가졌다. ······ 그리고 이는 루트 재결합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이들의 재결합에 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며칠 전, 루트 멤버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고 그곳엔 형을 포함한 루트 멤버 4명이 자리하고 있었단 내용이었다.
올라온 사진은 식당으로 들어서는 박시겸과 신도하의 사진이 마찬가지로 기사에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이 있는 만큼 루트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했다.
- 재결합은 모르겠는데 일단 만난 건 맞나보네 사진 뜬 거 보니
- 근데 저 사진 도촬 아님? ㅈㄴ 각도도 도촬처럼 나옴
└ 도촬 맞음 원래 트릭 일보가 저런 거 전문이잖아
└ ㅈㄴ 소름 돋아 내내 쫓아다니다가 건진 거 일 거 아냐
- 고작 만난 거 가지고 재결합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 리더 전역했으니 그냥 겸사겸사 만난 거겠지
└ 우도현까지 만났다는데 이건 확신의 재결합 시그널 아니냐
└└ 근데 우도현 사진은 없잖아 신도하랑 박시겸 밖에 없던데
와중에 형의 사진은 없었다.
여기에 권해진도.
찍힌 이는 박시겸과 신도하뿐이었다.
‘형이 만나러 갔을 리는 없을 것 같고.’
권해진과 박시겸, 신도하 세 사람이 모인 자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자리에 형이 참석했을 확률은 꽤나 희박했다. 애초에 형을 자리에 불렀는지도 의문이고.
스케줄이나 촬영 이런 걸 다 떠나서, 형이 그 자리에 선뜻 갔을 리는 없었다.
“형님은? 연락 없어?”
“응.”
그러니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아까부터 형에게 나름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촬영 중인 건지 아까부터 답이 없다.
“어차피 사실 아닐 거라며. 그럼 어련히 알아서 잘 있겠지.”
“안지호, 냉정한 거 봐라. 그래도 이렇게 기사가 빵빵 터지는데 걱정이 안 되겠냐.”
“걱정될 게 뭐가 있어?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사실 형을 포함한 재결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기사가 거짓이라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른 것보다 형의 목소리를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재결합이란 이름의 타이틀을 달고 나온 기사들로 인해 단순히 재결합이라는 사실만 수면 위로 올라온 게 아니었기에.
아무래도 형이 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그와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말이 나왔다. 와중에 좋지 못한 말들도 간간히 있었고.
그러다 보니 걱정이 됐다.
와중에 연락이 안 되니 괜히 초조한 마음만 늘었다.
‘집으로 가볼까.’
지금 당장은 집에 없을 것 같긴 했지만, 마침 내일이면 주말이었다. 주말에 만나자고 이야기한 바가 있으니 당연히 집에 오겠지.
“조금 있다가 형네 집에 좀 다녀올게.”
“같이 가줄까?”
차선빈이 물었다.
어느새 얼굴에 걱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차선빈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어차피 코앞이고.
게다가 형이 언제 올지 모르니.
어쩌면 이미 집에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차선빈은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지만, 그래도 곧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니 괜한 걱정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 되도록 웃어 보려 노력했다.
“우세현.”
그때, 안지호가 다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쳐다보니 그대로 잠시 입을 다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조금 주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한번 작게 쉬더니 이내 미간을 좁힌 채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그대로 안지호가 나와 시선을 마주한 채로 말했다. 아까부터 무슨 말을 그렇게 주저하나 했더니, 이 말이었나 보다. 앞서 한 말이 신경 쓰이기라도 했던 건지.
“응. 고마워.”
“다녀와라.”
안지호가 그렇게 덤덤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도 앞선 말들을 들으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다녀올게.”
그리고 그 길로 형의 집으로 향했다.
* * *
비밀번호를 풀고 들어오니 역시나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아직까지 촬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불 꺼진 집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마도 오늘 저녁이나 내일은 오겠지.
그 김에 냉장고도 한번 확인해봤다.
엄마가 주신 반찬도 아직 있었고, 지난번에 왔을 때 채워뒀던 재료들도 아직 남아 있던 터였다.
생각해보니 저녁 전이었다.
그렇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기에 일단 그대로 앉아 형을 기다렸다. 아직까지 형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이전에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도 아직이었고. 평소엔 빨리도 보더니 이럴 때만 되면 늦게도 본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림이 하염없이 지속되고 있을 때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뒤이어 눈을 떴을 땐 주변에 조금 시끄러워져 있었다.
“···형, 왔어?”
“깼냐?”
“응.”
어느새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자다가 미끄러진 모양이다.
와중에 베개가 있는 걸 보니 이불은 없어도 친절하게 베개는 가져다준 모양이다.
“이불은 줬어야지.”
“목 결리는 게 더 신경 쓰이지 않냐?”
“따뜻한 게 좋은데. 어차피 소파는 푹신하잖아.”
“아니, 보는 내가 목이 결리겠더라고.”
대체 어떤 자세로 자고 있었던 거냐, 나는. 그래도 베개 덕인지 다행히 목이 결리거나 하는 건 없었다.
“근데 언제 왔어?”
“얼마 안 됐어. 1시간 전쯤? 그나저나 넌 이 밤에 뜬금없이 왜 온 건데?”
“아.”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형이 워낙 태평한 모습이라 잠시 잊고 있었다.
“형, 기사 봤어?”
“기사? 아, 그 재결합?”
“응. 그거 뭐야?”
“뭐긴, 당연히 허위 기사지.”
형이 여전히 TV에 시선을 응시한 채로 말했다. 모습을 보니 정말로 허위가 맞긴 한 모양이었다.
“그쪽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아니야.”
“응. 그렇지. 근데 허위가 맞다는 건 아는데, 만난 건? 기사엔 멤버들이랑 만났다고 되어 있던데.”
“당연히 그것도 허위지. 애초에 만날 리가 있나.”
그것도 그렇긴 하지.
아무튼 그냥 전부 다 허구라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그거지만, 지금 여기 온 건 형의 상태를 확인해보기 위함이 컸다.
‘멀쩡해 보이긴 하는데.’
생각 또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정말로 형은 보이는 대로 평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하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래서 그거 확인하려고 온 거야?”
“아니, 그냥 겸사겸사 왔어. 어차피 주말에 보자고 했었잖아.”
“뭐, 12시 넘었으니 주말이긴 하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 있었다. 초 저녁쯤에 온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잔 거냐.
“너 연락은 안 해도 돼?”
그때서야 형이 보던 화면에서 눈을 뗐다.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얘기해놨어. 그리고 하루 자고 갈 것도 생각했고.”
“컴백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은 다행히 일정이 없어.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서.”
사실 바빴더라도 밤을 새더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오긴 왔겠지만.
“이제 보니 그게 좀 필요하겠다.”
“뭐?”
“너희 멤버들 번호. 이럴 때 미리 연락해두면 좋잖아.”
형이 연락할 일이 있을까.
그것보다 어째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형.”
“왜?”
“재결합할 거라고 생각해?”
당연히 형을 포함한 재결합이나 만남은 허위 사실이겠지만, 나머지 멤버들의 재결합은 사실일 가능성도 있었다. 뭐, 3명이긴 하지만.
그리고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의외로 얼마 가지 않은 채 깨졌다.
“아니.”
꽤나 단호한 대답이었다.
마치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안 할 거야. 아마.”
그 말과 동시에 형은 다시금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확신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런 형의 말에 그대로 수긍했다.
왠지 모르게 나 역시 그럴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근데 형, 아까부터 뭘 그렇게 봐?”
“아, 이거.”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눈에 익숙한 장면이 화면 속에 펼쳐지고 있었다.
[멘토 : 신도하, 멘티 : 윈썸 세현]
다름 아닌 이전에 방송했던 멘토, 멘티 프로그램 의 재방송이었다. 그리고 이를 보던 형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참 언제 봐도 마음에 안 들어.”
그러면서도 여전히 화면을 응시한 채였다. 음, 그래 예상한 반응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신도하의 생일 선물 얘기는 앞으로도 굳이 안 하는 게 좋겠다. 좋은 반응은안 나올 것 같으니.
“근데 너 밥은 먹고 잤냐?”
“밥? 아, 안 먹었는데.”
“뭐? 밥도 안 먹고 뭐 했어?”
“뭐하긴 잤잖아.”
그리고는 급하게 폰을 켠다.
“먹고 싶은 거 말해봐.”
“그냥 내가 할까?”
“어, 그래. 치킨.”
“아니, 내가 해준다고.”
“요즘은 야식으로 치킨이 땡기더라.”
내 말을 아예 안 듣는구만.
대놓고 치킨이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형이 울적해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어서 정말로 치킨을 시켜먹었고, 와중에 오늘도 양념만 2마리였다. 하지만 뭐,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선 기사와 관련된 기사가 새로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