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38화 (238/413)

238화. 과거의 시간 속으로

짧은 순간, 기억 같은 게 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치 하나의 장면이 영화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온오프의 부작용.

그게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니면 나에게 생각을 읽는 것 이외에도 다른 능력이 생겼다는 건데, 그건 더더욱 말이 안 됐다.

이렇게 엄청난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길 리 만무하니까.

‘기억, 기억······.’

처음엔 정말로 이게 기억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기억이었다. 그게 육감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대로 읽은 기억 속에는 형의 얼굴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있는 표정으로. 그 장면이 마치 잔상처럼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신도하의 기억 속에서 화를 내고 있던 형. 이 상황은 예전에 있던 일이겠지.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아 보였다.

‘···신경 쓰인다.’

매우.

그리고 그게 굉장히 신경 쓰였다.

알 수 없는 능력에 혼란이 오면서도 그게 너무 신경이 쓰여서, 그래서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능력이고 뭐고.

“선배님.”

“응. 왜?”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그래, 얼마든지.”

신도하가 여유롭게 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조용히 심호흡을 한 뒤, 마침내 다시 입을 뗐다.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얘기?”

“예전 루트에 관해서요.”

형의 그런 얼굴을 본 이상, 이제는 묻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 * *

앞서 내 말을 들은 신도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에 뒤 따라 나오는 시선에도 이번엔 피하는 것 없이 신도하와 눈을 마주했다.

신도하의 눈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건데?”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서요.”

구체적인 지점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아마 신도하는 내가 처음 그 얘기를 꺼낼 때부터 어떤 걸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을 터였다.

[“이전 이야기라······.”]

그리고 신도하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이전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그 이야기를 타인한테 하는 걸 고민하는 건지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역시 도현이에게 들은 게 없나 보군.”]

동시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라는 말은 조금 그랬지만.

“그걸 갑자기 묻는 이유는?”

역시 쉽게 이야기해주지 않는군.

게다가 상당히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단순히 궁금해져서라고 하기엔 대답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그렇다면, 여기선 어느 정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수밖에.

“죄송합니다, 아까 사진 봤어요.”

“아, 그래. 그렇군.”

동시에 신도하는 등 뒤로 덮어져 있는 액자를 살짝 곁눈질했다. 그렇게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 좋아.”

“감사합니다.”

신도하가 입가에 미소를 살짝 걸친 채로 웃었다. 다행이었다. 갑작스런 물음에도 선뜻 그렇게 해주겠다고 해서.

솔직히 말해서 어쩌면 신도하도 이 일을 감추려고 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사실 감추려고 했다면 그대로 더 기억을 봐볼 생각도 있었다. 어떻게 보는 진 모르겠지만.

“얘기가,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겠는걸.”

그렇게 신도하는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 * *

신도하는 우도현을 처음 본 순간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얼굴로는 연습생 중 단연 최고였기에. 얼굴 많이 보기로 유명한 RA 엔터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연습생이었다.

[쟨 무조건 데뷔.]

[RA 엔터가 절대 놓칠 리 없다.]

[저 얼굴이면 아이돌을 할 수 밖에 없다.]

연습생이고, 직원이고 구분 없이 늘상 그렇게 말하곤 했었으니까. 그때 당시 RA엔터에서 우도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앞선 말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말들이 가끔 오가기도 했지만.

[근데 좀 또라이라던데.]

어쨌든, 우도현은 유명했고 당연하게도 데뷔를 했다. 그리고 신도하는 그런 우도현과 함께 그룹을 하게 되었고, 메인 보컬을 맡게 되었다.

* * *

루트는 대형 기획사 RA 엔터테인먼트의 5인조 남자 그룹이었다.

권해진, 주건후, 박시겸, 신도하, 우도현. 이렇게 5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는 그룹으로 데뷔하자마자 그야말로 빵 떴다.

데뷔곡인 ‘Make a Dream’으로.

그냥 뜬 것 도 아니었다. 대박감으로 떴다.

앨범 판매량은 데뷔 첫해에 초동 87만장을 넘겼다. 이는 순전히 앨범 2종으로만 기록된 수치였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의 곡이 연간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데뷔 앨범은 초동 50만장에 그 다음으로 나온 앨범은 87만장을 기록.

이 모든 게 데뷔 첫해에 이루어진 결과이자 수확이었다.

- 루트 진짜 조합부터 개사기 얼굴합도 존나 잘맞아서 좋아

- RA가 완전 사활을 걸고 낸 듯 나올 때부터 뜰 것 같았어ㅋㅋㅋㅋㅋ

- 내가 볼땐 얘네 앞으로 더 뜰 것 같오 아 진짜 루트 너무 사랑한다

- 일단 실력들이 하나하나 주옥같어 특히 메보랑 메댄이 존나 잘함 거기에 비주얼 센터까지 완-벽

- 내 생각엔 얘넨 대상까지 얼마 안 걸릴 것 같음 아마 내년에 바로 대상 갈지도ㅋㅋㅋㅋㅋㅋ

좋은 소속사에 좋은 곡, 좋은 안무, 거기에 조화로운 멤버 구성까지. 소위 뜰 수 있을 만한 요소를 다 갖추었다.

그렇기에 뜨지 않는 게 더 어려운 그룹이었다. 루트는.

루트는 그렇게 데뷔 때부터 날아오르며 주목을 받는 그룹이었다. 그 과정에서 숱한 견제를 받기도 하고, 사생도 나날이 우후죽순 붙어났다.

이렇듯 업계의 모든 시선이 루트와 그 멤버들, 그리고 이들의 성장에게로 쏠렸다.

눈이 없는 곳은 없었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수천, 수만 개의 눈이 따라다녔다.

“해진이는 어디 갔어?”

“모르겠는데요.”

“같이 있던 거 아니야?”

“몰라요.”

그런 박시겸의 말에 매니저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늘상 있던 일이었기에 여기서 더 묻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 준비 사이 권해진이 어디 갔는지 아는 멤버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권해진이 말없이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제 할 일은 알아서들 할 뿐.

루트는 흔히 선이라는 게 명확한 그룹이었다.

가족, 친구.

흔히 말하는 그런 가까운 관계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가까이서 일하는 직장동료. 그것을 그들에게 가장 걸맞는 칭호였다.

멤버가 어디서 뭘 하건, 언제나 늘상 관심이 별로 없었다.

물론 이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비즈니스 관계를 좋아하는 팬은 없다. 우애가 좋은, 누구보다도 친한. 그런 이미지를 고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루트는 이를 대외적으로 잘 지켜내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겠끔. 그리고 그렇게 보였다.

“해진이 형, 옆 대기실에 놀러간 것 같은데요. 아까 다른 그룹 멤버 봤어요.”

“아, 그래?”

이에 신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대기실을 나간 권해진이었지만, 대기실 앞에서 옆 대기실을 쓰던 타 그룹의 멤버를 본 바였다.

그리고 그때서야 매니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니었다면 찾아봐야 하나 싶었기에.

“도하 형.”

우도현이었다.

이어서 다가온 우도현에 신도하가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왜?”

“아까 뭐 하자고 하지 않았어?”

“아.”

그때서야 기억이 났다.

“끝나고 저녁 먹고 들어갈래?”

“저녁?”

“먹고 가자. 전에 내가 말했던 한식당. 거기 진짜 맛있어.”

“전에 말했던 곳?”

“응. 너도 아마 좋아할걸.”

“그래, 그럼.”

오랜만의 외식이었다.

그간 스케줄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바깥에서의 식사 자체가 쉽지 않은 탓도 있었다.

촬영이 끝나자 멤버들은 당연하게도 제각기 흩어졌다. 숙소로 향한 이도 있었고, 약속이 있는 이도 있었다.

그 중 신도하와 우도현은 함께 앞서 신도하가 말했던 한식당으로 향했다. 사전에 예약을 해둔 덕에 기다림 없이 그대로 룸으로 향할 수 있었다.

“형은 메뉴 뭔데?”

“간단하게 소고기로 하자.”

주문을 마치고 난 뒤, 우도현은 그대로 반 정도 남아 있던 컵에 그대로 물을 채웠다. 그리고 어느새 컵에는 물이 가득 찼다.

“반이나 남았는데 매번 왜 그렇게 꽉 채워?”

“반밖에 안 남은 거지.”

이를 들은 신도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우도현의 습관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해진이 형이 오늘 어디 간다고 했었지?”

“몰라.”

우도현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멤버의 사생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누구랑 뭘 하건, 어딜 가건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이니까.

타인의 사생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건 멤버 모두 비슷했지만, 그 중 우도현은 특히 더 그랬다.

오히려 그가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는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근데 요즘 본가엔 잘 안 가는 것 같네.”

데뷔 이후 숙소 생활을 하면서도 꼬박꼬박 본가에 들렀던 우도현이었다.

우도현은 가족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했다. 특히 동생과는 일주일에 몇 번씩 통화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본가에 가는 길이 뜸해지더니 이내 걸음이 뚝 끊겼다.

“앞에 깔렸어, 사생.”

“아, 그렇겠군.”

“그래서 한동안은 안 가려고.”

아예 가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기엔 본가는 우도현에게 있어 너무나 소중했다.

“동생 때문에 그렇지?”

“어. 심지어 말을 걸더라고.”

“그건 좀 심한데.”

“그러니까.”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였다. 그런데도 사진을 찍고 말을 건다. 그 이후로 부모님이 꼬박꼬박 동행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세현이 못 본 지도 꽤 됐네. 다음에 한번 데리고 와. 얼굴 좀 보게.”

“싫은데.”

우도현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빠른 즉답에 신도하는 그저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동생에 관해서는 예민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아꼈고.

그러면서 또 자랑은 자랑대로 해댔다.

“세현이가 부담스러워하겠어.”

“왜?”

“어디 가서 티 내지 마. 이건 뭐 동생 바보 수준이네.”

“부모님은 더 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 말에 신도하는 다시 한번 어이가 없어졌지만 곧 다시 웃었다. 이렇게 나오니 왠지 더 보고 싶어졌다. 우세현이.

지난번에 봤을 땐 굉장히 작았는데, 그 사이 얼마나 컸을지 궁금했다. 애들은 빨리 큰다지.

식사를 마친 뒤, 식당에 걸어둘 싸인까지 하고 나서야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래오래 걸어둬야겠어요. 루트인데.”

“감사합니다.”

신도하와 우도현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항상 저마다의 거리를 지키고 있는 멤버들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다른 멤버들보다 조금 더 가까웠다.

취향이 맞거나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신도하는 우도현과 대화가 꽤 잘 통한다고 여겼다. 구체적으로 우도현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우도현 성격에 함께 어울릴 리가 없을 테니까. 신도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다 보니 같이 있는 시간이 조금 늘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적인 시간도 조금 더 함께했다.

빈번한 건 아니었지만, 가끔씩 같이 식사를 하고, 가끔 쇼핑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신도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 우도현은 신도하랑 젤 친해? 둘 목격담이 많은 것 같아

└ ㅇㅇ 둘이 젤 친함

└ 둘이 가장 서로 편해하긴 해

└ 윗 댓들 뭔소리야 루트는 다 친함

└ 루트는 그냥 다 친해 특별히 친한 거 없어

└ 그래도 우도현 신도하가 젤 친한 건 맞지 않나?

“또 너희 둘이 놀다 왔냐?”

“같이 밥 먹고 왔어요.”

“하여튼 엄청 붙어 다녀요.”

권해진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루트는 해가 지날수록 놀랍게 성장을 했다. 데뷔 해 신인상을 휩쓰는 거야 당연했고, 2년 차가 되었을 땐 대상을 탔다.

2년 차엔 초동 150만장으로 음반 대상을 탔고, 3년 차가 되었을 땐 초동 250만장 달성과 함께 음원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음원, 음반 대상.

이것을 동시에 이룩한 것이 루트였다.

그때 당시 루트의 노래가 자몽 차트 연간 3위를 차지했다.

그런 그들의 앞엔 계속해서 꽃길만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딜가든 나오는 환호와 함성.

그에 따라 몸소 체감되는 인기.

모든 게 꿈 같기도 하면서 이 모든 건 현실이기도 했다.

“이번 앨범 컨셉 말인데, 조금 더 강한 걸로 나가야 하지 않겠냐?”

“강한 것도 좋지만 그것만 고집하다가는 자칫 마이너해질 수가 있어요.”

“이번엔 따로 프로모 들어가는 거 있대요? 지난번 프로모 팬들이 많이 좋아했는데.”

사이가 친밀하진 않았지만, 그룹에 관한 건 모두 생각이 비슷했다.

오랜 그룹 유지 희망.

그룹의 위치가 높아질수록 개개인에게도 루트는 더욱 중요해져만 갔고,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그리고 그 마음은 멤버 모두가 동일했다. 적어도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루트가 더욱 높게 날기를 바라는 마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마음.

하지만 언제나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이고, 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었다. 모든 일이 항상 순조롭게 풀릴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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