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40화 (240/413)

240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2)

재계약은 여전히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 생각보다 빠르게 재계약 여부가 발표될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루트의 재계약 여부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 당연히 재계약 할 것 같은데 한창 전성기인데 팀을 굳이 나올 필요가 있나

- 루트는 갠활도 활발하게 시켜주잖아 그러니 그룹 유지해도 손해가 없지

- RA가 맘에 안들긴 한데 그래도 재계약해줬으면 좋겠다 앨범 나왔으면 좋겠어

- 재계약 전이나 후에 앨범 한번 내주겠지? 앨범 안 나온지 너무 오래됐잖아ㅠㅠㅠ

- 근데 RA는 도대체 앨범을 왤케 안 내주거임 루트 컴백 좀 시켜줘 이놈들아

대다수가 루트는 전원 재계약을 할 거라 예상하던 바였다. 하지만 재계약이란 본래 까기 전엔 모르는 법. 그렇기에 함부로 단언할 수 없었다.

“미팅은? 잘하고 왔어?”

신도하가 그대로 우도현에게 캔 하나를 건넸다. 작업실에 구비해두었던 음료였다.

그 날, 우도현은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며 신도하의 작업실을 찾았다.

“아직 크게 얘기 나눈 건 없고.”

“그래? 근데 뭘 그렇게 봐?”

“그림.”

신도하의 작업실 한 켠에 있던 그림 하나. 우도현은 그 그림 앞에서 이를 잠시 바라봤다.

“이거 꼭 별자리가 있는 것 같네.”

“어, 맞아. 있어. 남들은 잘 모르던데. 역시 도현이 넌 눈썰미가 좋네.”

뒤이어 우도현은 그림에서 눈을 뗀 뒤, 가까이 있던 소파로 가 앉았다. 그리고 신도하 역시 그런 우도현을 따라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건데?”

“혹시 뭐 있어?”

“뭐?”

그 말에 신도하는 순간 멈칫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었기에.

하지만 신도하는 곧 당황한 기색 없이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답했다.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 뭔가 느낌이 그래서.”

“느낌?”

예전부터 우도현은 촉이 좋았다.

눈치도 빠르고.

그래서인지 뭔가가 있다 싶으면, 이를 무섭도록 빠르게 캐치했다.

“설마 그럴 리가. 내가 알기론 특별한 일은 없어.”

신도하가 태연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우도현은 그런 신도하를 말없이 응시했다.

하지만 신도하는 여전히 빈틈없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 당황해봤자 꼬리를 물릴 뿐이니.

그리고 그렇게 신도하를 응시하던 우도현은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손에 든 캔을 한번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말인데.”

“응.”

“건후 형, 그 이후로 뭐하겠다고 한 건 없지?”

순간 다시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촉 하나는 알아줘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점을 좋아하지만.

“내가 알기론 없어. 게다가 그렇게 멤버들하고 얘기했는데, 또 그럴 리가 없잖아.”

신도하가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말할 수 없었다.

이 말의 여파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까.

재계약이 끝나면.

우도현의 계약이, 모든 멤버들의 계약이 완료가 되면, 그때. 그때 이야기하면 된다.

그때까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저나 멤버들이나.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이건 아주 사소한 비밀일 뿐이었다.

“아, 근데 새 드라마는 언제 들어가?”

“그거 아직 시간 좀 있어.”

그렇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이 이상 대화를 길게 이끌어 나가봤자 좋을 게 없었으니까.

물론 이를 눈치채지 못할 우도현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추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뭐, 역할은 꽤 마음에 들어.”

“어? 그래? 무슨 역할이랬지?”

“의사.”

“왜 마음에 드는데?”

“동생이 좋아해.”

그 말을 들으니 대충 이해가 갔다.

그간 역할이 마음에 든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기에 좀 의외가 싶었더니 역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세현이가 의사 좋아해?”

“그냥 멋있어 보여서 좋아하는 거겠지.”

“귀엽네.”

그렇게 떠오르는 얼굴에 신도하는 그대로 웃음 지었다. 그리고 동시에 문득 지난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세현이는 눈치가 참 빠른 것 같아.”

“뭐?”

“그냥. 지난번에 봤을 때 그런 것 같더라고.”

지난번 콘서트가 끝난 이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를 다시 떠올리니 신도하의 입가엔 다시금 미소가 지어졌다.

“쓸데없이 뭐 있는 것처럼 하지 말고 말해.”

“아무튼 동생 사랑은 여전하다니까. 그보다도 세현이도 나중에 TV에 나오면 좋을 텐데.”

“TV?”

“응. 노래로. 데뷔하면 좋잖아.”

노래를 잘한다고 하니.

나중에 혹시 데뷔를 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을 것 같았다.

“안 시킬 건데.”

“왜?”

“시키기 싫어.”

하지만 우도현은 영 내켜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충 왜 그런지는 알 것 같지만, 과연 그게 쉬울까 싶었다.

“그렇다면 나중에 같이 노래를 할 기회라도 생겼으면 좋겠네.”

신도하가 그렇게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우도현은 여전히 그런 신도하를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봤다.

“노래? 불러도 나랑 불러야지.”

“세현이는 날 더 좋아하지 않을까.”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지.”

그 말에 우도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하지만 신도하는 나름 진심이 섞여 있었다.

아직까진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 그림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재밌는 상황이 그려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었다.

“안 돼.”

“허락이 필요한 거였어?”

“짜증나니까 이 대화는 그만하자.”

“나중에 세현이한테도 한번 물어봐야겠다. 형이랑 나 중 누구랑 같이하고 싶은지.”

“X친 거야? 당연한 걸 묻고 있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잖아?”

그렇게 신도하는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면, 훗날 무대에서 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물론 그건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어렸을 때는 평균만 되어도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들을 많이 하니까. 게다가 우도현의 눈엔 약간의 콩깍지도 껴 있는 상태일 테고.

‘이왕이면 정말로 잘했으면 좋겠네. 노래.’

그렇게 신도하는 다시금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그래, 정기적인 앨범 활동······.”

“예.”

“그래. 그렇구나.”

계약과 관련한 미팅 자리.

그런데 어째 반응이 묘했다.

아니, 묘하다기보단 꽤나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재계약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던 도중, 회사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왜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를.

우도현 이외 다른 멤버들은 정기적인 그룹 활동의 보장 같은 건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는커녕 자신들의 개인 활동에 관한 더욱 확실한 푸쉬와 보장, 개인 활동에 따른 더 높은 정산 비율 요구 등 이에 관한 것만 주장했다.

앞으로 그룹 활동에 관한 건 아무도 회사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이미 관심이 없었다.

‘루트 이름만 가져가겠다는 거지.’

그룹의 이름은 놓지 않고 싶고, 그룹의 후광을 계속 받고 싶다는 거다. 그 아래에서 그룹이 아닌 자신이 주목받고 싶다는 거고.

개개인의 인지도가 높다고 한들, 그룹이 주는 힘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룹 안에 있어야 훨씬 유리하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 멤버들이었기에 더더욱 그룹 안에 있고자 하는 거다.

어이가 없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그룹 활동에 관심이 없을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 후순위가 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일 줄은 몰랐다.

‘신도하까지.’

그리고 그건 신도하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도하 역시 그렇다는 얘길 들었다. 다른 멤버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는 이야기를.

- 도현이 넌, 그룹 스케줄 우선이야?

- 근데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때 그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왜인지 모르게 아까보다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그룹의 일 같은 건 이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이대로 재계약을 한다면 그룹은 계속 유지 되겠지만, 아마도 제대로 된 활동은 하기 힘들 터였다.

‘기껏해야 일 년에 디싱 하나 나오는 정도겠지.’

제대로 된 앨범이 나올지조차 의문이었다. 지금도 이런데, 재계약 후에는 더욱 보장이 될지 의문이었다.

그 사실에 다시금 짜증이 솟구쳤다.

분명 처음엔 이렇게까진 아니었는데.

이 정돈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안에서 강한 실망감 같은 게 몰려왔다. 이 부분에 관해선 저도 모르게 기대를 하고 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사업 얘기는 조금 더 끌어.”

“이대로 계속 입을 다물라는 얘기군요.”

“그래. 주건후 사업 얘기를 굳이 지금 시점에서 우도현한테 알릴 필요는 없잖아.”

사업?

그러던 와중에 듣게 되었다.

사업인지 뭔지 하는 이야기를.

그와 동시에 우도현은 제 앞에 있는, 그대로 열어야만 했던 문을 망설임 없이 강하게 열었다.

“뭐죠, 이 X소리는?”

* * *

“아직 시작한 건 아니래. 그냥 구상 단계. 구상 단계라고 하더라. 우리도 안지 얼마 안 됐어.”

“······.”

우도현이 열어야 할 그 문을 열었을 때, 당시 그곳엔 3명의 멤버들이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주건후를 제외한 멤버들이었다.

그리고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당사자인 주건후 이외 권해진, 박시겸, 그리고 신도하까지. 자신을 제외한 멤버들 모두.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저 혼자 알지 못하는 것 따위 그렇게까지 배신감이 들 만한 일이 아니었다.

정작 화가 나는 건 따로 있었다.

다시금 사업을 준비하는 주건후나, 그걸 알고서도 이제까지 말없이 묵인한 멤버들.

그 사실이 답답했다.

어떻게 봐도 그건 그룹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었으니까.

“역시 비밀에는 한계가 있네요.”

박시겸이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도현······.”

“어째 하나 같이 비슷하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변론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려는 신도하에, 우도현은 곧바로 말을 끊었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우도현의 말에 이번엔 권해진이 미간을 좁힌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우리도 주건후의 사업에 관해서는 부정적이야. 근데 뭘 그렇게 다 같이 대형 병크라도 친 것 마냥 말하는 거냐?”

“대형 병크랑 다를 것도 없죠.”

“뭐라고?”

그리고 그제서야 제대로 알 것 같았다.

멤버들이 이렇게까지 재계약을 고집하는 이유를. 그건 아마 저마다의 욕망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룹이고 뭐고 제 연애나 친목에만 관심 있는 권해진이나, 개인 사업을 위해 허울을 유지하고자 하는 주건후나, 연기나 개인 활동 이외 전혀 관심 없는 박시겸이나.

X같이 이중적인 모습들.

그리고 그 순간, 우도현의 머릿속에는 수 많은 의문들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에 의미가 있나.

지금 하고자 하는 것들이 의미가 있나.

그렇게 수많은 의문 끝에 우도현의 머릿속엔 그저 어떠한 결론 하나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럼 전 그냥 안 할래요.”

“뭐?”

“뭘? 뭘 안 해?”

그리고 이어지는 우도현의 뜬금없는 말에 권해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신도하의 마음 속 불안은 더욱더 크기를 키웠다.

지금 우도현의 입에서 나올 그 말이 무엇인지, 그게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에.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어떠한 말이, 나올 것 같은 강한 예감에.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불안감이 더욱 크게 요동치려 할 때쯤, 우도현은 다시금 입을 열며 말했다.

“그룹이요. 저 그냥 재계약 안 할래요.”

그 말을 하는 우도현의 입가에는 어느새 이제껏 본 적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도현이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어.”

신도하가 말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신도하는 덤덤한 모습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면서.

하지만 그와 다르게 생각은 많았다.

그렇기에 일부러 더욱 차분한 모습을 보이려고 한 듯 했다. 신도하의 속은 전혀 잔잔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런 신도하의 생각들을 듣고 있으려니 나 역시도 괜히 덩달아 생각이 많아졌다.

“도현이한텐 미안한 일이지. 중요한 일을 혼자에게만 감춘 꼴이니까.”

전에 형에게 미안해하고 있다고 한 이유가 이거였나. 그때 그 일과 관련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그것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도현이가 나가게 된 이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 일단 재계약 기간이 5년에서 2년으로 바뀌었거든.”

“5년이요?”

“응. 원래대로라면 5명으로 5년을 더 계약할 생각이었지.”

와중에 5년이냐.

하지만 형이 팀을 나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재계약 기간에 관해서도 조정이 됐고, 결국 2년으로 계약이 됐다고 한다.

대충 보니 2년으로 바뀌게 된 것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듯 했지만, 신도하는 그것까진 말하지 않았다.

“이제 좀 설명이 됐어?”

“예. 감사합니다.”

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야 대충 알 것 같았다. 그 당시에,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도.

“그때 도현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고 있어. 단순히 사업 건으로만 그런 건 아니겠지. 그냥 여러 가지가 얽혀 있던 거야.”

마치 그때를 회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제는 너무나도 과거가 되어 버린 그때를.

“제대로 미움을 사버렸지.”

신도하가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선배님, 오늘 감사했습니다.”

“어? 가려고?”

“네. 그만 가야 할 것 같아서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내겐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상, 형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형에게 가서, 다시 한번 들어볼 생각이었다. 당시에 있었던 일에 관해.

“도현이한테 가보려고?”

“아, 네.”

역시 눈치 한번 빠르다.

“그래. 좀 더 있었으면 했는데 아쉽네.”

“오늘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면 다음에도 또 놀러와. 그땐 만년필 쓰는 모습 보여줄게.”

만년필. 그래, 쓸 생각이 있긴 했나 보군.

어쨌든 그렇게 신도하를 향해 고개를 한번 숙였다. 마음이 조금 급했다. 그렇지만 막상 가려니 떠오르는 물음 하나가 있었다.

“선배님.”

“응.”

“선배님은 그때 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때 형에게 거짓말을 했던 일.

그것을 물었다. 물론 여기에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 신도하는 형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건지. 그것에 대한 것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끝에 신도하는 그에 대한 답을 했다.

“난 언제나 도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있어. 그때도, 지금도.”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앞선 말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었지만, 관계 개선은 바란다는 의미로 들렸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보자.”

그렇게 신도하는 다시금 나를 향해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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