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3)
“갑자기 무슨 일이야?”
형이 집으로 온 나를 향해 물었다.
급한 마음에 지금 집으로 가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대로 달려왔는데,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정신이 없었다.
그보다, 이 얘기를 어디서 어떻게 꺼내야 할지 그게 좀 망설여졌다.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모양새긴 하겠지만 그래도 역시나 하고 가야만 했다.
“무슨 일 있어?”
“형.”
“응.”
“도하 선배한테 들었어.”
그러자 표정이 삽시간에 나빠진다. 아직 말한 건 이름뿐인데도 벌써부터 반응이 안 좋았다.
“뭘 들었는데.”
“예전 루트 이야기.”
“루트?”
아, 역시 표정이 안 좋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얘길 신도하가 너한테 왜 하는데?”
“내가 물었어.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게 궁금했으면 나한테 물었어야지. 아니, 그것보다도 신도하랑 그 얘기는 왜 하게 된 건데?”
“우연히 작업실에 가게 돼서.”
“작업실?”
어째 화만 돋우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안 되겠다, 그렇다면 그냥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는 수밖에.
“그래서 얘길 들었는데, 형한테 직접 듣고 싶어서. 그래서 온 거야.”
그러자 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싶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신도하한테 뭘 어떻게 들었는데?”
“대충 거의 다.”
“···그렇다면 굳이 뭘 더 말할 필요는 없겠네. 그 새X가 당장 들킬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을 테니.”
“그래도 말해줘. 들을래.”
그러자 형은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앉아.”
형이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특별한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형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 순간, 이야기를 하기 위해 형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 * *
그룹이란, 생각 이상으로 귀찮으면서도 이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이 달라진 게 없었다.
아이돌 그룹이란 건, 늘 특이한 구조다.
객관적으로 귀찮고, 번거롭고, 힘든 구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우도현이 그룹 활동을 중요시 한 건, 그룹이 소중해서, 그룹이 좋아서라든가 하는 감상적인 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전에 말했듯이 그건 당연한 거였다.
루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 그 굴레에 있는 한 기본적으로 지켜야하는 것이었다.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우도현은 정말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는 우여곡절 또한 많았다.
당연하게 전원 재계약이라고 생각했던 RA 엔터에서는 발등에 불 떨어지듯 우도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니, 갑자기 안 하겠단 이유가 뭔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혼자 빠지면 결국 너만 손해야. 혹여 혼자 활동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면 그렇게 하게 해줄게.”
“아뇨. 아닙니다.”
“아마 팬들은 5명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이건 그런 팬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야.”
하지만 그러한 RA 엔터의 설득에도 우도현은 여전히 의견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계약엔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도현 빼고 전원 재계약 마쳤다고 기사 뿌려.”
그리고 모든 설득이 먹혀들지 않자 라성훈 대표는 이제는 언플로 조금씩 이를 옥죄이기 시작했다.
- [단독] 루트 권해진, 주건후, 박시겸, 신도하 4인 모두 RA 엔터와 재계약 마쳐
- [공식] RA 엔터, “우도현과는 꾸준히 재계약을 논의 중에 있다.”
- 루트 우도현, 배우 기획사 트라이 액터로 이적 준비중?
그 사이, 우도현이 배우 준비를 위해 배우 기획사로 이적을 준비중이라는 찌라시를 뿌리기도 했다.
혹여 배우 활동으로 빠질 것에 대비한 찌라시였다. 사전에 여론몰이를 하기 위해.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에 관한 여론은 좋지 못했다.
4명의 재계약이 확정적인 상태에서 홀로 배우 기획사로 이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건 결국 개인의 이익을 위해 팀을 나가는 것처럼 비춰졌기에.
- 역시 우도현 배우 하려나보네
- 솔직히 우도현 드라마 몇 개 터진 이후로 가수에 미련 없어보였음
- 언젠가부터 갠활 존나하더니 혹시 우도현 때문에 계속 컴백 미뤄진 거 아님?
- 아 어쩐지 우도현 불안하다 했다 그룹을 계속 할 성격이 아니긴 했어
결국 팀을 선택할 수 있겠끔.
제가 발견한 원석이 남에게 넘어가는 것만큼 라성훈 대표가 싫어하는 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지겨웠다. 모든 게.
그리고 그 결정 이후로 우도현은 잠시지만 본가에 머물렀다. 마음이 닿는 존재가 있는 곳으로.
“왜?”
“형이랑 TV 보려고.”
그 말을 하던 우세현이 곧바로 우도현의 옆으로 와 앉았다. 그리고 정말로 말없이 한동안 같이 TV를 봤다.
제가 본가에 온 이후, 동생은 평소보다 더 자신에게 붙어 있으려고 했다.
원래 웬만해선 타인의 생각을 읽지 않으려는 동생이었으나, 아마도 지금은 어떠한 상황인지 대충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권하거나 특별한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그저 말없이 옆에 있을 뿐이었다.
그게 동생 나름의 위로 방식임을 우도현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이 그의 마음을 더욱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겨움만 가득하던 마음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본가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건 그런 것 따위 전부 다 잊을 수 있을 만큼.
“우세현.”
“응.”
“형 계속 있을까? 집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제 동생은 자신을 향해 일말의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있는 거 좋아.”
그리고 그런 동생을 보며 우도현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 작은 긍정 하나에 모든 것이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역시 그러는 게 좋지.”
그렇게 우도현은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결단을 내리고 나니 내내 복잡했던 머리가 오히려 말끔해졌다.
그리고 그때 내린 결단을 이제까지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 *
형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그때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더 확실하게 체감되었다. 형이 재계약을 하지 않았던 이유, 트러블이 생겼던 이유. 그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자신에게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화가 아니라는 걸.
“보이더라고. 변한 상황이.”
형이 말했다.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놀랍게도 차분하고, 또 차가워서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멤버들의 변화를 깨닫고, 상황을 깨닫고, 결국 형은 그룹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예전에 형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멤버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지켜보라고 했던 말.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그룹이 개인의 어떠한 목표에 따른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 자체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깨달은 형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여긴 거다. 어쩌면 루트는 그때 이전부터 삐그덕거리고 있었을지도.
“하나 같이 결국 그룹은 뒷전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뭔가 허무해지더라고.”
형은 그렇게 실소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하지만 그럼에도 형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그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특히 신도하 그 X끼는······.”]
그리고 신도하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그 부분에 있어 감정이 가장 크게 상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멤버들 중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았으니까.
“형.”
그리고 난 그대로 형을 불렀다.
뒤이어 시선이 마주했다.
“사실 그때 형이 어떤 선택을 했건 어쨌든 난 형 편이야.”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다른 것보다.
기억 속의 형을 본 순간 지난 일을 알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지난 일 따위 어떻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난 형의 편에 설 테고, 그건 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껏 형에게 그 일과 관련해서 자세히 묻지 않은 것도 그게 어떤 사실이든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었다.
난 이쪽에 설 거니까.
“그래, 고마워.”
동시에 형이 살짝 미소 지었다.
내내 굳어 있던 표정이 어느새 조금 풀려 있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니 왠지 모를 안도감 같은 게 들었다.
‘사실 신도하는 어느 정도 형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물론 형도 그걸 원한다면 나 또한 기꺼이 그러라고 하고 싶지만, 지금 형을 보면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근데 작업실은 결국 왜 갔다고?”
“어, 배움을 얻으러?”
“딱 봐도 거짓말 같은 거짓말은 하지 말자.”
“아니, 정말 배움을 얻으러 간 거라니까.”
“너 내가 이상한 곳에 함부로 가지 말라고 했지.”
아니, 이상한 곳은 아니지 않나.
그보다도 만년필 때문에 갔다는 얘길 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만년필, 나중에 쓰는 거 보여준다고 했었지.
“어렸을 적부터 누누이 말했잖아. 모르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는 거 아니라고.”
“도하 선배가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성 붙여.”
아니, 뭘 그런 걸로 거슬려.
“아, 더 말할 것도 없이 보나 마나 그 신도하가 쓸데없이 불러낸 거겠지. 아, 이 X끼 진짜.”
그렇게 형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칫 만년필 얘기를 꺼냈다가는 그대로 만년필이 반으로 동강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신도하보다도 만년필의 안위를 위해선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보다도······.’
와중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당시 회사와 재계약 관련으로 만났을 때, 신도하 역시 자신도 그룹의 활동 방향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어째서인지 형의 말을 들어보면 신도하 역시 그룹의 안위 없이 개인 활동만을 주장했단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주장에 작은 차이가 있었다. 내가 뭔가를 잘못 알아들은 건가.
“그래서, 스케줄 있어?”
“아, 내일 아침에.”
“그럼 온 김에 더 있다 가.”
“그러지, 뭐.”
사실 오늘은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그냥, 오늘만큼은 형이랑 있고 싶어서.
물론 오글거리니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할 순 없겠지만.
“이리 와. 너 좋아하는 거 사놨어.”
“어? 민트초코?”
“어.”
그렇게 형이 아이스크림을 한 통 가져왔다. 민트 초코를 싫어하는 형이지만, 이렇게 항상 민트 초코를 빼놓지 않았다.
“같이 먹자.”
“당연하지. 혼자 먹으려고 했어?”
당연히 아니지.
일단 크기도 크기지만, 어렸을 적부터 아이스크림은 형이랑 늘 나눠 먹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형에게서 받은 아이스크림 통을 든 채 나는 그대로 TV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형 역시 그런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익숙하면서도 당연한 편안함이었다.
* * *
오랜만의 옛 이야기였다.
기억 속 저 편에 홀로 남겨두었던 옛 이야기. 그다지 달갑지는 않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것.
우세현이 떠난 뒤, 홀로 남게 된 작업실은 그야말로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조금 더 있게 할 걸 그랬나.’
막상 보내고 나니 아쉬웠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오늘따라 그 말이 더욱 와닿는 것 같기도 했다.
이어서 신도하는 조금 전 덮어두었던 액자를 다시금 올바르게 세웠다. 단체 사진 속 루트 멤버들은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도하는 그렇게 액자를 조용히 매만졌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액자 속 사진을 향해 있었다.
여전히 소중한 사진이었다.
이전에 우세현에게 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했어도 금방 눈치챘을 것이기에.
‘그런 걸로 애써 세운 신뢰를 깎아 먹을 필요는 없지.’
물론 말해줄 의무도 없긴 했다.
일단 우도현이 이를 알게 되면 당연히 반기지 않을뿐더러, 오픈할 만한 일도 아니었으니.
그럼에도 이야기를 한 건, 순간 우세현의 표정이 너무나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였을까.’
그 표정.
순간이었지만 뭔가 심각한 걸 마주한 듯한 모습이었다. 아주 찰나,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건 우세현이 제게 처음으로 뭔가를 부탁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그렇기에 앞선 일에 관해 알면서도 굳이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당황하는 모습도 재밌었겠지만,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저에겐 가르쳐주지 않을 테니.
‘아직 갈 길이 머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우세현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 건 아니었다.
“아, 이거 많이 다네.”
신도하는 그렇게 제가 사왔던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 이상으로 달았다. 아무래도 다음엔 다른 걸로 해야 할 듯 싶었다.
모든 것을 이야기한 건 아니었다.
신도하는 우도현에게 지난 일에 관해 여전히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일을 후회한다고는 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로,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자신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아마 자신은 루트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엔 역시 커피가 좋겠네.”
진한 초코의 향이 그때까지도 여전히 신도하의 작업실 공간 안에서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