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42화 (242/413)

242화. 아주 흥미로운 현상인데.

루트의 지난 과거의 일을 알게 된 이후에도 당연하지만 변화하는 건 없었다. 과거 일은 어디까지나 지난 과거의 일일 뿐이고, 지금에서야 변하는 건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을 뿐. 형이 멤버들에게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더 잘 알게 된 정도였다.

‘근데 다른 멤버는 아니지만, 신도하랑은 대화를 좀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신도하 역시 형을 속인 건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대화를 좀 해봤으면 했다. 그 속에 몰랐던 오해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일단 어느 정도 미안한 감정은 있는 것 같으니 그 안에서 조금 잘 대화를 해보면 뭔가 진전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니, 이건 너무 꽃밭 회로인가.

물론 이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형이 우리 그룹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나 또한 그 부분은 존중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와중에 형 편이라는 그런 말을 해놓고 굳이 신도하 얘길 꺼내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

어쨌건 뭔가 오해가 있었다면, 잘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눈앞에 있는 사자가 나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얼굴에 급하게 조금 물러섰다.

“아니, 뭘 그렇게 놀래?”

“깜짝 놀랐잖아요.”

“왜? 너무 잘생겨서?”

X친.

아, 순간적으로 욕이 나올 뻔했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죠?”

“당연히 진심이지. 그럼 이제까지 웃자고 하는 말인 줄 알았어?”

“그런 거라면 한번 웃고 말려고 그랬죠.”

“하, 이렇게 냉정할 수가.”

사자가 되지도 않는 슬픈 척을 연기했다.

물론 사자가 멀끔하게 생긴 건 맞지만, 잘생긴 것까지는 아니지 않나.

“넌 이상하게 기준이 높은 것 같아.”

“? 무슨 소리예요. 평범한데.”

“높아, 높아. 너무 높아.”

이거 그냥 할 말 없어서 이러는 것 같은데. 게다가 원래 좋아하는 외모라는 건 개인의 취향이다. 그러니 높고 말 것 할 것도 없다.

“그것보다도 얘기는 제대로 들은 거예요?”

“아, 그래. 기억 이야기?”

“네.”

지난번에 보였던 기억.

정확히는 신도하의 기억의 일부.

타인의 기억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정말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한마디로 말해 X된 상황이다.

“기억을 보는 게?”

“네.”

“어지간히도 싫은가 보네.”

당연하다.

남의 기억을 봐서 이로울 게 뭐가 있겠는가. 생각과 기억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찼다.

궁금하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

이제껏 나타난 부작용 중 가장 짜증나는 부작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무턱대고 보이는 게 아니라는 점 정도.’

부작용의 일종이라서 그런가. 무턱대고 기억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서 보여 지는 것 같았다.

거기에 생각을 읽는 것과 달리 내 멋대로 보고 싶다고 보여 지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볼 땐 아주 흥미로운 현상인데 말이야.”

“그건 전적인 사자의 입장이 아닐까 싶은데요.”

“인간의 시점에선 아니라는 거지?”

당연하지.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부작용의 일종인 만큼 빈번하게 일어나는 건 아닐 거야. 다른 부작용들과 마찬가지겠지.”

“···그건 다행이네요.”

“이왕이면 필요한 순간 쓸 수 있으면 좋은데 말이야.”

쓸데없이 몸에 영향이나 가는 부작용보단 기억을 보는 쪽이 차라리 이로운 걸지도 몰랐다. 객관적으로 보면.

‘필요할 때가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필요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이건 아니었다. 남의 기억을 엿보는 것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젠장······.’

쥐어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마치······.

- 철컥!

그때, 404호실 보컬룸의 문고리가 갑작스럽게 돌아갔다. 아니, 잠깐만. 저거 왜 돌아가는 건데?

이에 놀란 나와 사자는 동시에 보컬룸의 문을 쳐다보았다.

“누가 온 거 아니야?”

“···일단 예약은 해둔 상태인데요?”

- 철컥!

그에 응답하듯 문고리가 다시 한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덜그럭거렸다. 다행히 문을 잠가 둔 덕에 벌컥 문이 열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고리는 철컥거렸고, 그걸 본 사자는 이내 조금씩 눈앞에서 모습이 흐려지고 있었다.

“어서 나가봐. 누가 저렇게 열정적으로 노크를 하나 궁금하네.”

“굳이 확인하고 가시진 마시죠.”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모드가 있다는 게 이럴 땐 참 좋아.”

그렇게 사자는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그러더니 정말로 얼마 안 가 모습을 감추었다.

─끼익

사자가 제대로 사라지는 건 본 이후, 나는 곧바로 잠겨 있던 문을 열었다. 동시에 보컬룸 특유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 앞에 있던 익숙한 얼굴과 마주했다.

“뭐 하냐?”

안지호였다.

그보다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 * *

문 앞에 있던 안지호는 언제나와 같은 태연한 얼굴로 그대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문고리를 너무 요란하게 돌리는 거 아니냐. 무슨 일이야?”

“그냥.”

“그냥?”

이건 뭐 심심해서 했다는 거랑 뭐가 다른 거냐. 그렇게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 있자 안지호는 그대로 나를 스쳐 보컬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좁은 보컬룸 내부를 조용히 돌아보았다.

“여기 노래 잘 되냐?”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건데?”

“너 항상 여기 와서 연습하잖아.”

그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보컬룸 구석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와중에 관찰력 한번 좋다.

“그럭저럭 잘 되는 편이야. 연습생 때부터 여기서 연습해서 그런지 편하더라고.”

당연히 거짓말이다.

주로 사자를 보러 볼 때 이곳을 이용하는 편이니까.

“그래?”

“응.”

“그럼 굳이 문을 왜 잠그는데?”

“방해받기 싫어서.”

“아, 그래.”

그리고는 다시 말이 없다.

그보다 왜 그렇게 쳐다만 보고 있는 건지. 아무래도 문을 잠그고 있던 게 뭔가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잠깐 동안 안지호와 시선이 마주한 채로 있었다. 마음 같아선 먼저 시선을 피하고 싶긴 했지만, 괜한 오해를 사긴 싫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이내 얼마 안 가, 시선을 거둔 안지호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웬만하면 문은 잠그지 마라.”

“왜?”

“보컬룸 문고리 약해. 쉽게 고장 나기 십상이라고. 가뜩이나 방음되는 곳에 갇히면 답도 없어.”

아, 그러냐.

그건 몰랐다.

“응. 알겠어.”

“알겠으면 얼른 나와.”

그대로 안지호가 문에 기댄 채로 나를 향해 고개를 한번 까닥했다. 그리고 순순히 이를 따랐다.

뒤이어 보컬룸을 나오는 나를 따라 안지호 역시 보컬룸을 나왔다.

“그래서 정말 여긴 왜 왔어?”

“아. 잊고 있었다.”

그제서야 안지호가 뭔가가 기억났다는 듯 반응했다. 그래, 용무가 있긴 했구나. 솔직히 그냥 지나가다가 심심해서 와본 건 줄 알았다.

“단체방 메시지 못 봤냐?”

“메세지? 못 봤는데.”

“그럼 지금 봐. 그것 때문에 온 거니까.”

메시지?

그리고 폰을 확인해보니 확인하지 않은 메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사자랑 이야기하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은차닝]

: 다 같이 피크닉 어떰

[하람]

: 갑분 뭔 피크닉이요?

[은차닝]

: 컴백 전에 바람 쐬러ㄱㄱㄱㄱ

[하람]

: 가요가요가요가요가요

[도운이 형]

: 그래서 어디로 갈건데?

[은차닝]

: 한강 어떰 한강

[선빈이]

: 난 좋아

컴백 전에 가까운 곳으로 한번 놀러 가자는 이야기였다.

요즘 녹음이랑 안무 연습을 한창 하고 있던 터라 주로 연습실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 타이밍도 괜찮고 좋은 것 같았다.

“난 당연히 좋은데.”

“그럼 답장 보내.”

“그래, 근데 이거 말하러 온 거야?”

“어.”

안지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굳이 직접 전달하러 올 필요 없이 톡으로 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금 가자고 하잖아.”

“어? 뭐?”

“못 봤냐?”

그렇게 다시금 대화 내용들을 살폈다. 쏟아지는 대화 속에서 백은찬은 정말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은차닝]

: 그럼 지금 당장ㄱㄱㄱㄱㄱ

아무튼 실행력 하나는 최고다.

* * *

날이 좋았다.

그야말로 공원 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듣자하니 요즘은 피크닉 세트들도 대여를 해준대요!”

“그러기엔 이미 시간이 늦지 않았냐?”

“아, 그건 그렇네여.”

낮 시간엔 아무래도 사람이 많아 나오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적당히 사람이 준 시간대로 나왔는데, 마침 일몰이 지고 있었다.

‘하늘 예쁘네.’

오랜만에 보는 일몰인 것 같다.

뭔가 더 분위기도 있는 것 같고.

“하늘 예쁘다.”

어느새 옆으로 온 차선빈이 말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해가 지는 하늘을 그대로 잠시 응시했다.

“낮에 왔어도 좋았겠다.”

“밤에도 좋을걸.”

“응. 밤에도 좋아.”

차선빈이 나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 사이, 백은찬이 큰 목소리로 뒤에서부터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야, 진짜 중요한 거!”

“무겁다고.”

“잘 들어봐. 배달시킬 건데, 피자랑 치킨 중 뭐가 더 좋냐?”

백은찬이 그대로 내게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물었다. 아니, 이 정도면 내가 매달려 있는 것 같긴 한데 어쨌든 무겁다.

“난 둘 중 아무거나 상관없어.”

“나도.”

“그럼 자연스럽게 차선빈과 우세현은 치킨 파로~”

“니가 치킨 먹고 싶은 거지?”

“엉. 벌써 들켰냐?”

딱 봐도 그래 보이잖아.

그나저나 벌써 절반이 치킨이니 이대로라면 치킨이 채택될 확률이 높았다.

와중에 뒤를 보니 돗자리의 설치 장소를 놓고 도운이 형과 안지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쪽이 물가가 더 잘 보이지 않아?”

“저쪽에 설치하는 게 더 시원할걸요.”

“밤에는 웬만하면 시원하지 않나?”

“그리고 거긴 벌레도 많아요.”

안지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말했다. 풀밭이라 그런지 주변을 맴도는 벌레들이 많았다.

그리고 도운이 형과 안지호가 말했던 중간 그 어디쯤에 돗자리를 폈다. 하람이 말대로 피크닉 세트 같은 게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긴 했지만.

“안지호, 이쪽이 좋다.”

나는 그대로 안지호를 향해 손짓했다.

이쪽이 벌레가 좀 적은 것 같다.

그러자 안지호는 덤덤한 얼굴로 앞선 내 말을 따라 조용히 그쪽으로 가 앉았다.

“치킨은 몇 마리 시켰어?”

“뭐야, 우리 치킨 먹어요?”

“내가 고민을 해봤는데 치킨이랑 피자 둘 다 시키는 건 어때.”

“아직도 안 시키고 뭐했냐?”

“거기서 시켜요! 거기! 피자공주 치킨왕자요~”

“뭔소리야. 치킨 공주랑 피자 왕자야.”

“둘이 잘 어울리면 됐죠~”

“근데 거기 말고 각각 시키자.”

그리고 결국 피자랑 치킨 둘 다 시키기로 했다. 피자 3판이랑 치킨 3판. 와중에 치킨은 한 사람당 한 닭다리는 해야 한다면서 백은찬이 강력하게 주장한 바였다.

그리고 음식을 기다리면서 다음엔 뭘 할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음악 분수라는 것도 있다던데요~”

“그거 좋다, 음악 분수!”

“난 그냥 이대로 있고 싶은데.”

“아, 안지호 벌써 바닥에 붙었냐?”

“어. 안 보이냐.”

그러고 보니 저쪽에서 버스킹 같은 것도 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버스킹 보는 것도 좋은데.

와중에 시킨 지 얼마 안 되어 치킨이 도착했다. 역시 배달의 민족이었다.

“피자도 곧 올 테니까, 피자 오면 먹을까~”

“같이 먹는 것도 좋죠.”

“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올 피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주, 매우 이상했다.

“······왜 피자가 안 오냐?”

주문한 지 40분이 훌쩍 넘은 시간에도 피자가 오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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