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장기전은 싫어해.
“괜찮아?”
차선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 보니 차선빈이 언제나와 같은 무덤덤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앞선 이신혁과의 몸싸움으로 인해 바닥으로 엎어질 뻔한 그 순간, 차선빈이 절묘하게 나를 감싸 다행히 그대로 몸이 바닥에 처박히는 일은 없었다.
워낙 앞에서 정신이 없던 터라 중간에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 뜯겼어!”
와중에 나는 무사히 이신혁의 이름표를 뜯는 것에 성공했다. 이신혁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내 손에 잘 잡혀 있었으니까.
‘어, 근데 잠깐···차선빈은 다른 팀······.’
─지이이이익!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니나 다를까, 등 뒤에서부터 무언가가 뜯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잠깐만!
“···뜯었어?”
“응.”
차선빈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웃었다.
아,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차선빈과 내가 다른 팀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동시에 차선빈은 붙잡고 있던 몸을 다치지 않게 그대로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주었다.
‘와중에 방심했다.’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방심을 했던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이신혁과 내가 탈락했다는 소식이 남아 있던 출연자들에게 전해졌다.
“신혁이가 벌써 탈락을 했다고?”
“이신혁 탈락했어요?”
“세현 씨가 뗐어요? 이야~”
아무래도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다보니 이신혁의 탈락이라는 소식은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온 바였다.
‘이 정도면 이신혁의 이름표를 떼는 장면만큼은 반드시 방송에 나가긴 하겠네.’
그거라면 초반 탈락을 했어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너무 초반 탈락을 하는 바람에 팀의 별 도움이 못 됐다는 게 걸렸다. 백은찬과 도운이 형의 얼굴 볼 면목이 없다.
“이름표 누가 뗐어?”
풀장 밖으로 나가던 도중, 백은찬이 달려와 물었다. 그런 백은찬의 등에는 다행히 아직 이름표가 잘 붙어 있었다.
“선빈이.”
“오케이. 형이 복수해준다.”
“응. 힘내라.”
그러자 언제나처럼 씨익 한번 웃더니, 곧바로 다시 남아 있는 출연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오래 살아남는 것도 좋지만, 오바하다가 괜히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보아하니 넘어지면 쓸리는 탓에 피부가 좀 아플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전에 차선빈이 잡아주긴 했지만.
* * *
백은찬은 지금 열심히 이리저리 풀장을 누비는 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이름표 뜯기는 계속되고 있었고, 어느새 풀장 안에 사람 수는 처음보다 훌쩍 줄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이, 미션맨 팀이 포진된 노랑팀은 어느새 모두 탈락한 채였다.
핵심 인물이었던 이신혁의 초반 탈락으로 인해 이어서 다른 패널들 역시 곧바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었다.
그 밖의 윈썸 멤버들은 나름 꽤 선전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 이런.”
그 순간, 안지호가 뜯겨진 자신의 이름표에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와, 안지호. 체력 왜 이렇게 좋아?”
중간에 맞붙게 된 백은찬과 안지호는 그대로 잠깐의 싸움을 벌였지만, 백은찬이 결국 안지호의 이름표를 뜯게 되면서 결국 승리는 백은찬이 거머쥐게 되었다.
“빨리 가기나 해.”
“잘 가져간다.”
체력이 방전된 안지호는 그대로 젖은 머리를 털며 풀장을 나갔다. 생각보다 안지호의 이름표를 떼는데 체력을 썼다.
‘안지호가 체력이 좋네.’
방심했다가는 되려 뜯길 뻔했다.
힘 자체는 백은찬이 우세했지만, 민첩성 면에서만큼은 안지호가 꽤 우세했기에.
여기에 부족한 만큼 주어진 지형을 활용해 이리저리 피하는 통에 생각보다 이름표를 뜯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제 저쪽에 남은 건, 보스뿐인가.’
그와 동시에 백은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상대편인 민트팀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은 바로 차선빈이었다.
이쪽의 경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윤도운이 남아 있었지만 안지호과 격전을 벌이는 동안 윤도운의 이름표 역시 떼어졌다.
“와, 이제 1대 1이야!”
“시간은요? 이대로 타임 오버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사실 이대로 타임 오버가 돼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될 경우 하트 코인을 반반씩 나눠가질 확률이 올라갈 테니.
그렇게 풀장에 있던 백은찬과 차선빈은 그대로 서로를 잠시 탐색하듯 응시했다.
“반반 나눠 갖기보단 역시 독차지가 좋지?”
“응.”
“그건 나도 그래.”
마침 해결해야 할 빚도 있으니.
그렇게 의견은 일치했고, 곧이어 두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빠르게 중앙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각축이었다.
백은찬과 차선빈은 그야말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힘과 힘의 대결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와, 역시 차선빈.’
백은찬은 그 힘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역시 괜히 우리 팀의 힘 원탑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힘을 쓰는 와중에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차선빈 역시 힘을 들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밀릴 것 같으면서도 백은찬은 밀리지 않은 채로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힘과 힘이 맞닿아 있는 동안, 차선빈이 순간적으로 잠시 발을 미끌했다. 아무래도 지형이 변수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 차선빈이 먼저 백은찬의 이름표로 손을 빠르게 뻗었다. 이 이상 시간을 끌기보다는 빠른 종료가 낫겠다고 판단했기에.
“오우!”
하지만 백은찬은 이를 살짝 피했다.
동시에 차선빈의 미간이 작게 좁아졌다.
이어지는 백은찬의 반격에 차선빈도 이를 빠르게 방어하면서 분위기는 장기전으로 갈 분위기였다.
“근데 난 장기전을 싫어해.”
“?”
“내가 끈기가 없거든.”
그와 함께 백은찬이 한번 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차선빈이 그런 백은찬의 말에 무어라 하기도 전에 백은찬은 차선빈을 붙잡았다.
“가보자고.”
그리고 그대로 옆에 있던 풀장 안으로 함께 다이빙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백은찬의 다이빙에 차선빈은 순간 당황하여 백은찬이 의도한 대로 함께 옆으로 떨어졌다.
─지이이이익!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이름표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차선빈의 이름표였다.
그렇게 백은찬은 떨어지는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풍덩!
* * *
큰 물결이 일었다.
그리고 그 물결이 눈앞에서 일은 순간, 타임아웃이 되었다.
이어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동시에 출연진들의 시선이 모두 제작진에게로 향했다.
“승리팀은, 핑크팀입니다!”
···이겼다.
마지막 백은찬의 다이빙으로 인하여 결국 차선빈의 이름표가 그대로 떼어졌고, 이로 인해 승리하게 되었다.
그 뒤로 빠르게 수건 두 장을 챙겼다. 제대로 다이빙을 한 탓에 백은찬이나 차선빈 모두 흠뻑 젖은 채였다.
“수고했어, 수건.”
“땡큐~”
“고마워.”
이윽고 백은찬과 차선빈이 내가 건넨 수건을 몸에 둘렀다. 아,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씩 가져왔어야 했는데.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도운이 형이 뒤이어 수건을 몇 개 더 가져온 덕에 머리에도 얹고 어깨에도 얹고 아무튼 많이 얹었다.
“아, 시원하네.”
“갑자기 붙잡아서 놀랐어.”
“말했잖아. 내가 끈기가 없다고.”
“이 형, 와중에 웃는 거 봤어요.”
“아, 그랬나?”
이어서 백은찬이 수건을 이용해 머리를 탈탈 털었다. 그러더니 꽤나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나를 향해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갚아주겠다고.”
“그래. 고맙다.”
“형이 또 하나 크게 했지~”
그러더니 가지고 있던 수건을 그대로 내 머리 위로 올린다. 물에 잔뜩 젖어 있던 터라 수건이 꽤 묵직했다. 다 썼으니 가져가라는 거군.
“근데 진짜 차선빈 힘 너무 쎄.”
“선빈이 형 혼자서 우리 다 상대할 수도 있을걸요.”
“야, 솔직히 인정.”
그건 솔직히 나 역시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에 비해 당사자인 차선빈은 말없이 젖은 머리를 열심히 털고 있었다. 강아지 같네.
이에 차선빈 머리 위에 있던 수건을 살짝 흔들어주었다.
그 이후에는 코인 증정 시간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받게 될 코인은 10개. 하지만 여기서 하나 더 해야 할 게 있었다.
“자, 그럼 카드 뽑아주시죠.”
곧바로 제작진이 백은찬을 향해 카드를 건넸다. 5장의 카드 중, 한 장을 뽑아야 하는 상황.
물론 피디의 생각을 읽을 순 있겠지만, 문제는 카드는 건네기 전에 피디 본인이 그 카드를 랜덤으로 몇 번 더 섞었다.
다시 말해, 피디 본인도 어떤 카드가 무슨 카드인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카드를 뽑는 것은 이번 승리의 주역인 백은찬이었다. 그대로 백은찬은 크게 고민하는 기색 없이 앞에 있는 카드를 한 장 뽑았다.
그 카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X1배]
“······!”
“선방했다!”
X1배. 다시 말해서 10개 그대로 온전히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백은찬이 앞서 말 한대로 정말 선방은 했다.
‘일단 한시름 놓았군.’
그나마 뺏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백은찬이 이렇게 뛰어다녔는데.
“잘했어, 은찬아!”
“아, 이번에 완전 운이 좋았어요~”
옆에 있던 도운이 형도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백은찬 역시 위풍당당한 얼굴이었고. 이로써 하트 코인 10개를 획득했다.
처음으로 획득한 하트 코인에 주변에선 이를 보며 부러움의 소리들을 내었다.
“자, 그럼 바로 다음 미션으로 가실게요!”
그리고 다음 미션의 장소로 이동했다.
* * *
“아, 은찬이 형 이번에 진짜 대박.”
“맞아. 은찬이 이번에 멋있었어.”
다음 미션에 들어가기 직전, 쉬는 시간. 대기실에 있던 멤버들이 저마다 백은찬을 칭찬했다.
“멋있긴 했어.”
“어, 진짜?”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자, 백은찬이 이내 만족스럽단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만큼 지난 미션은 백은찬의 공이 컸다.
“근데 세현아, 좀 놀랐어.”
“뭐가?”
“이신혁 선배님 뜯어서.”
차선빈이 말했다.
아, 그거.
그건 내가 원해서 뜯은 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공격을 해오는 통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돌진이었냐?”
“돌진도 아니었어. 그쪽이 먼저 돌진을 했던 터라.”
“그래도 엄청 빨랐어. 사실 보니까 좀 걱정돼서 간 거였거든.”
아, 그래서 그때 차선빈이 바로 뒤에 있던 거였군. 하하. 그 탓에 이름표도 뜯겼지만.
그리고 준비를 마친 뒤, 다음 미션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미션 장소로 가니 그곳엔 기다란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번 미션은 복불복 미션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께 몇 개의 음식을 드릴 겁니다. 그 음식 중 보통의 음식을 맞추시는 팀원이 이번 미션의 승리자가 됩니다.”
음식을 이용한 복불복 게임이었다.
제작진이 준비해둔 같은 종류의 음식 3개. 이에 매 라운드당 팀원 한 명씩 나와 음식을 고른다.
이 중, 아무 장치도 해놓지 않은 평범한 음식이 단 1개. 그 1개를 고른 팀이 해당 라운드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보통이 아닌 음식은 얼마나 보통이 아닌 건데요?”
“당연히 맵고 짜고 달고···아무튼 심각합니다.”
“심각한 정도예요?”
“드셔보시면 알 거예요.”
그렇게 메인 피디가 밝게 미소 지었다. 아주 제대로 준비를 했나보군.
“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지난 우승팀에게는 혜택 기회를 드립니다.”
혜택 기회?
그냥 혜택도 아니고 혜택 기회?
“네. 다름 아닌 복불복의 힌트권이죠. 복불복 선택에 도움이 될 만한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단, 그냥 드릴 수는 없고요.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말과 함께 메인 피디가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동그랗게 보인다.
“코인이요. 하트 코인. 하트 코인을 일정 지불하셔야 가능합니다.”
복불복의 힌트권을 얻기 위해선 하트 코인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도 가진 코인의 절반을.
“선택은 자유입니다. 코인의 절반을 주시고 힌트를 받아 가셔도 되고, 뭐 그렇지 않으면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에는 당연히 힌트를 선택할 거라는 확신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치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너희 손해라는 마냥.
하지만 오래 생각할 것 없이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아뇨. 안 하겠습니다.”
당연히 산뜻한 미소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