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사람이 당황하면 말문이 막힌다.
곧바로 다음 게임을 위한 준비 시간에 들어갔다. 어느새 들고 있던 물 한 통이 전부 비워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이 쓰렸다.
“너 말고 내가 먹었어야 했는데.”
그대로 백은찬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에 비어진 물통 하나를 그대로 백은찬에게로 넘겨주었다.
“뭘?”
“매운 거. 나 매운 거 잘 먹잖아.”
“그것도 복불복이지, 뭐.”
“근데 뭐 하러 무리해서 다 먹었냐?”
“그냥. 그거 먹으면 이기니까.”
“그거 먹으면 이기니까?”
안지호가 미간을 잔뜩 좁힌 얼굴로 말했다. 어째 대기실에 들어온 이후부터 계속 저 표정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승부에 목숨 걸었냐?”
“마지막이잖아. 그러다 보니 그냥 눈이 좀 돌아간 거지.”
“굳이 그런 미련한 짓 안 했어도 충분히 재대결까지 갈 수 있었어. 반성해.”
반성···까지야.
속이 좀 쓰리긴 하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이어서 남아 있는 물을 그대로 조금 더 들이켰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까보단 좀 나은 것도 같기도 했으나 여전히 더부룩했다.
“세현아, 많이 쓰려?”
“괜찮아.”
“매니저 형한테 뭐라도 사다 달라고 할까?”
그런 차선빈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나. 그냥 물만 조금 더 먹으면 곧 가라앉을 터였다.
“물 더 줄게.”
“세현이 형, 원래도 매운 거 잘 먹는 편 아니었잖아요.”
“뭔가 입가심할 거라도 없나?”
“괜찮아요.”
“표정이 안 괜찮아, 표정이.”
백은찬이 그대로 혀를 찼다.
아, 표정이 안 좋았나.
“야, 이거라도 넣어.”
그대로 안지호가 저편에서부터 나를 향해 뭔가를 던졌다. 안지호가 던진 그것은 이내 느린 포물선을 그리며 내 손에 쥐어졌다.
“사탕이야?”
다름 아닌 사탕이었다.
청포도맛 사탕.
도운이 형이 한창 멤버들에게 뿌렸던 그 사탕이었다.
“이거 내가 준 사탕 아니야?”
“맞아요.”
“이걸 아직도 가지고 다녔어?”
“먹을 일이 없어서.”
그러자 이를 들은 도운이 형이 작게 실소했다. 아무래도 받은 다음 그냥 가지고 다니기만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안 잊어버리고 잘 가지고 다닌 게 용하네. 앞으로도 몇 개 더 챙겨야겠다.”
확실히 도운이 형의 사탕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당 떨어질 때마다 하나씩 챙겨 먹으면 좋았고.
“고마워, 잘 먹을게.”
“나 말고 인사는 저 형한테 해. 형이 뿌린 사탕이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네. 그렇게 돼요.”
안지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중에 존댓말은 뭐냐.
그러더니 곧 다시 폰에 시선을 둔다. 그래도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 그런 척하지만 안지호는 늘상 세심한 구석이 있었다. 사탕은 안 먹지만, 사탕이 있다는 걸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사탕을 내게 건네준 것처럼.
“안지호.”
“왜.”
“진짜 잘 먹을게.”
“그러던지.”
대답을 하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폰을 향한 채였다.
뒤이어 손안에 있던 사탕의 껍질을 까 그대로 한입에 넣었다. 동시에 은은한 청포도향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렇게 은은한 청포도향이 감도는 사탕은 한창 껄끄러웠던 입안을 조금씩 진정되게 해주었다.
* * *
사탕의 효과는 좋았다.
앞서 물을 많이 먹은 덕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자 불편했던 속도 조금은 나아진 느낌이었다.
“미련한 짓 자중해라.”
“미련한 짓?”
“들이붓는 미련한 짓.”
와중에 안지호가 한번 더 말하고 갔다. 어째 잔소리가 늘은 기분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미련한 짓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긴 한데.
“현재 상황으로 볼 때, 핑크팀이 하트 코인 20개 획득으로 아주 우세한 상황입니다. 다른 팀들은 남은 미션 동안 분발을 해주셔야겠어요.”
반면, 미션의 상황은 우리 팀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으로 가 있었다. 하트 코인 20개로 현재까지 단독 선두.
하지만 쉽게 방심할 순 없었다.
일단은 상황을 역전할 배수의 카드라는 게 있으니까. 단 한 미션이라도 X2배 카드를 뽑는다면, 순식간에 따라잡힌다.
“그렇다면 바로 미션에 들어가겠습니다. 다음 미션은 바로, 아주 간단한 게임이죠. 바로 인물 퀴즈입니다!”
인물 퀴즈!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옆에 있던 차선빈에게로 향했다. 차선빈이 원했던 그 인물 퀴즈였다.
룰은 간단했다.
한 팀을 이루고 있는 4명이 왕복에 성공한다면, 그대로 승리하는 것이었다.
“왕복은 쉽지가 않겠네.”
“어때요, 윈썸 분들은 인물 퀴즈 자신 있어요?”
그때 의도치 않게 포커스가 자연스럽게 차선빈에게로 향했다. 이에 차선빈이 언제나와 같은 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자신 있게 해보겠습니다.”
꽤나 비장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그 표정에 주변에 있던 출연자들과 스텝들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 선빈 씨가 진지한데 참 웃겨.”
“잘생겼는데, 친구가 재밌어~”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나름 기대에 차 있는 것 같았다. 이왕이면 잘했으면 좋겠네, 차선빈.
그렇게 시작된 인물 퀴즈.
역시나 이번에도 제작진의 코인딜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었다.
“일정 코인을 주시면, 핑크팀이 원하는 대로 순서 배정을 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팀이 몇 번째로 퀴즈를 풀 것인가를 정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이것도 그다지 메리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엔 쓰기로 했다.
“이번엔 써볼까? 일단은 꽤 있으니까.”
“저도 한번쯤은 쓰는 것도 좋다고 봐요.”
“야, 근데 그럼 우리는 몇 번째로 해?”
난이도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니 그냥 적당히 두 번째 순서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제작진에게 그만큼 적당한 코인을 지불했다.
“그렇죠. 한번쯤은 쓰셔야죠.”
코인을 받던 메인 피디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어떻게서든 코인을 털고 싶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피디 입장에선 한 팀만 단독으로 선두를 지키는 게 마음에 영 안 들 테니까. 어느 정도의 재미를 위해선 코인을 적당히 소유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고.
“그럼 핑크팀이 정한 순서는 노랑팀이 1번, 핑크팀 2번, 민트팀이 3번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사실 어느 팀을 가장 먼저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와중에 노랑팀이 가장 먼저 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어 이와 같이 순서를 정하게 되었다.
“이런 건 원래 빨리빨리 하는 게 좋아!”
“자, 그럼 시작해주시죠!”
그리고 노랑팀의 인물 퀴즈가 시작되었다.
“땡!”
“아아!”
하지만 퀴즈는 한 바퀴가 채 다 돌기 전에 끝이 났다. 퀴즈에서는 유명 운동선수들이 줄줄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카테고리가 있는 건가.
그리고 다음으로 온 우리 차례.
옆을 보니 도운이 형이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 비해 백은찬은 재밌겠다며 여전히 기대하고 있었고.
[“아는 사람, 아는 사람, 아는 사람!”]
[“이전엔 운동선수였으니까 이번엔 연예인 쪽으로 나올 확률이···아니,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해외 연예인이······.”]
나는 대충 세 번째 순서에 위치했다.
크게 긴장은 안 했으나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집중은 하고 있었다.
순서는 백은찬, 도운이 형, 나, 이상현이었다.
“야, 이거 그거 알지?”
“그거?”
“신경 안 쓰는 척, 신경 안 쓰는 척.”
아아.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하자는 얘기다.
어쨌든 그렇게 각자 자연스러운 컨셉을 잡았다.
“자, 하나, 둘!”
“와! 김재현 선배님!”
“정답!”
아, 이번엔 아이돌인가.
앞서 백은찬이 말한 인물은 같은 소속사 그룹인 인터니티의 김재현이었다.
이에 백은찬이 머리를 감싸며 급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못 맞췄으면 일 날 뻔했다.
다음은 도운이 형의 차례.
“하나, 둘!”
“···이수빈 선배님!”
“정답!”
이번에도 같은 기획사인 블랙엘의 멤버였다. 잠깐만, 이런 식이면 나도 IN 엔터의 선배가······.
“자, 세현 씨. 하나, 둘!”
“?”
하지만 정작 눈앞에 그려진 인물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여기서 신도하?
그건 바로 신도하의 사진이었다. 와중에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잠깐, 이럴 때가 아니지.
“···신도하 선배님.”
“네, 방금 아슬아슬했어요? 정답!”
사람이 당황하면 잠깐 말을 잃게 되는군. 여기서 신도하의 얼굴을 볼 줄은 몰랐기에 순간이지만 당황했다.
그보다도 일단 맞춰서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팀 역시 미션을 마저 성공하기 전에 결국 차례가 끝나버렸다.
“땡!”
“아!”
바로 다음 차례였던 이상현의 실수로 인하여. 이에 이상현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한번에 성공할 거라 생각도 안 했고. 처음은 그냥 난이도나 느낌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짜 식겁했다. 순간 재현이 형 얼굴이 보이는데 나도 모르게 어버버하게 되더라.”
“나도 그랬어. 분명 아는 얼굴인데도 당황하면 이름이 안 떠올라.”
아무래도 아는 얼굴들이어서 그런지 더 당황한 모습들이었다. 근데 대충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신도하 얼굴이 나왔을 때 나 역시 잠시 말문이 막혔으니.
‘···그래도 일단 맞춰서 다행이군.’
안면이 있는 사이의 인물을 틀린다는 건 어찌 됐건 좀 그러니까. 아무래도 서운한 감이···아니, 서운해하는 것까지는 아니려나.
“야, 다음 팀 바로 한대.”
“아, 응.”
그리고 곧바로 민트 팀의 순서로 이어졌다. 민트 팀의 첫 타자는 신하람이었다. 그 다음은 안지호, 차선빈 순.
“자, 하람 씨. 하나, 둘!”
“캐렌즈!”
“정답!”
그와 동시에 신하람이 꽤나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이 꽤나 귀여워 괜히 칭찬해주고 싶었다. 근데 캐렌즈, 저거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인데. 저 당근 캐릭터.
“헉!”
그렇게 고민을 하는 와중에 옆에서 백은찬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번에 또 누가 나온 건데?
‘아.’
놀랄 만하군.
그리고 이어졌던 안지호의 차례.
여기서 또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너무 익숙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우리 형.
안지호의 문제로는 형의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을 한 채로 안지호를 바라봤다.
“우도현.”
흥미진진하게 보는 주변과 다르게 안지호는 홀로 침착했다. 와중에 이를 지켜보던 도운이 형이 홀로 조용히 ‘선배님···.’하고 덧붙였다.
“정답! 아, 이건 진짜 못 맞췄으면 큰일 날 뻔하셨어요~”
그와 동시에 메인 피디와 눈이 잠깐 마주쳤다. 나를 의식하는 모습이었다. 굳이 이런 문제는 내지 말라고.
와중에 메인 피디는 해당 문제가 나에게로 갔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며 생각하고 있었다. 재밌긴 뭐가 재밌어. 내가 못 맞출 리가 있나.
그렇게 형의 문제가 지나고 난 다음, 차선빈의 차례가 되었다. 이내 차선빈은 피디가 들고 있던 판넬에 열심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넘어가는 다음장.
그 순간, 다시 한번 주변 이들의 이목이 이에 집중되었다.
해당 사진에는 아주 인자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중년 남성의 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헐.”
그리고 그걸 본 백은찬은 곧바로 다시 한번 놀란 소리를 내었다. 근데 이건 그럴 만했다.
왜냐면, 그 사람은 바로 IN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인현민이었으니까. 한마디로 사장님 얼굴이었다.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쉽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무색하게 차선빈의 입은 앞에서 세는 카운트다운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야, 잠깐?
이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틀리면 안 되는···.
“하나, 둘- 땡!”
“······아.”
???????
그 순간, 이를 보던 멤버들은 모두 그대로 경악의 소리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