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무대 위에서 손발 맞기
물이 시원하게 쏟아졌다.
머리 위에 있던 양동이는 담고 있는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은 채로 모두 쏟아졌다.
이번 <미션맨>의 벌칙이었다.
거대 양동이에 담긴 물 맞기.
이에 화면 속 나와 멤버들은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 꼴 마냥 흠뻑 젖은 채였다.
“시원하게 쏟아지네.”
백은찬이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보는 사람이 시원해지도록 쏟아지는 물이었다.
“저 때 너무 쏟아져서 몸이 막 무겁더라.”
“아, 맞아. 나도 그랬어.”
“그렇죠? 그래도 이상한 거 아니고 그나마 물 벌칙이라서 다행이긴 했어요.”
백은찬의 말 대로 그나마 물 맞기 벌칙 정도라 다행이었다. 지난 회차 벌칙은 밀가루 폭탄 맞기였고 그 이전에는 먹물이 쏟아지는 벌칙도 있었으니까.
‘물이 깔끔하긴 하지.’
양이 좀 많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 만은 했다.
“뭔가 게임은 우리가 가장 많이 이긴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니 벌칙도 우리가 받고 있더라.”
“그래도 그 덕에 분량은 있잖아.”
“그래. 분량은 있지. 그래도 뭔가 억울하단 말이지. 이런 운으로만 좌우되는 세상이란!”
백은찬이 주먹을 쥔 채로 그대로 억울하단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원래 세상은 운 좋은 게 최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그냥 운이 좀 없었을 뿐이고.
“그래도 반응은 꽤 좋은데용. 볼만 했다는 의견들이 많아요.”
“그건 다행이네. 근데 너 뭐 먹냐?”
“아몬드요. 근데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형 몫은 없어요.”
“아직 달라고도 안 했다.”
그러자 신하람이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확실히 하람이가 말한 대로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생각보다 재밌었다는 의견.
- 이번에 미션맨 보고 느꼈는데 윈썸 귀엽다
- 윈썸 미션맨이랑 잘 맞는 거 같음 이번 편 솔직히 기대 많이 안했는데 재밌었음 간잽러 있으면 한번씩 보는 걸 추천~
- 미션맨에서 윈썸 되게 열심히 하더라 그래서 더 호감 아 그리고 거긴 진짜 멤버들이 다 잘생긴 것 같아 외모 상향평준화
└ 완전 다 잘생긴 건 아니지 않나?ㅋ
└ 요즘 안 잘생긴 그룹이 어딨음ㅋㅋㅋ
└ 윈썸 정도면 다 잘생긴 거 맞는데 글쓴이가 비교질을 했어 뭘 했어 왜 비꼬고 ㅈㄹ
- 미션맨 보고나니 윈썸이 왜 요즘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알겠더라ㅋㅋ멤버들 케미도 좋고 먼가 사이도 되게 좋아보임ㅇㅇ
와중에 차선빈이 인물 퀴즈에서 인현민 대표를 맞추지 못한 상황이 커뮤니티 HOT! 게시글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HOT!] 인물 퀴즈 중 내가 더 쫄릴 것 같은 상황.jpg [561]
“세현이 형도 올라와 있는데요? 핫게시글.”
“세현인 뭘로 올라갔어?”
“오늘자 미션맨 이신혁의 이름표를 뗀 대담한 아이돌.jpg 이요.”
아, 그것도 올라가긴 했다.
그 당시 짤과 함께.
“이건 내가 봐도 반하겠는걸.”
“이제 무대 올라가자.”
“시간 됐어요?”
“응. 바로 다음 순서래.”
“우세현, 말 돌리네?”
백은찬이 묘하게 입꼬리를 올린 채로 나를 가리켰다. 시간 돼서 올라가자고 하는 건데.
뒤이어 멤버들이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로 앞에 있던 식사를 정리하였다. 오늘은 음악 방송 이후 중간에 인천에서 행사 무대가 있었다.
도착 시간과 무대 시간 텀이 좀 아슬아슬했던 지라마저 저녁을 다 먹지 못한 상태였다.
‘페이스오프, 위닝샷.’
무대에선 2곡 정도를 할 예정이었다. 더불어 오늘 행사는 K팝 관련 행사였기에 같은 시기에 활동을 하던 그룹들은 물론이고 비활동기인 그룹들도 꽤 많이 출연했다.
[FACE OFF]
무대 위로 올라가기 직전, 거대 LED 화면 속에선 ‘FACE OFF’의 스펠링이 마치 연기처럼 하나하나 적혀져 나갔다.
그리고 비로소 스펠링이 모두 완성되자 이내 들려오는 함성과 함께 다시금 새로운 글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Time‘s up.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손에는 저마다의 가면을 든 채로 리프트를 통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멤버들의 모습이 드러나자 더욱더 커지는 함성.
그렇게 들고 있던 가면을 거두는 순간, ‘FACE OFF’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멜로우, 많이 오셨네.’
눈앞으로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슬로건과 함께 수많은 눈꽃 응원봉들이 예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걸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무대를 하던 중, 순간 발밑으로 뭔가 걸리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살짝 미끌했다.
‘···뭐야?’
이에 곁눈질을 통해 발밑을 빠르게 확인했다. 하지만 정확히 밟고 있는 것인지 모습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뭔가를 확실히 밟긴 밟은 것 같은데, 정확히 뭘 밟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안무를 하는 내내 발밑이 거슬렸다.
와중에 내 파트가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는 상황이라 고개를 내려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시 백은찬으로 화면이 전환.
그때서야 밑을 확인할 틈이 생겼다.
그간에 동선이 살짝 이동된 지라 조금 전에 밟은 것이 뭐였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저건?’
뭔가가 반짝였다.
그리고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니 해당 물체는 액세서리 같은 모양새였다.
정확히 팔찌 같은 모양이었는데, 여러 비즈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아 무대용 액세서리 같았다.
‘멤버들 액세서리는 아닌 것 같은데.’
기억하기론 오늘 무대에서 팔찌를 착용한 멤버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이전 무대를 했던 그룹의 액세서리인 듯 했다.
그리고 해당 액세서리는 아직까지도 내 발 옆에서 홀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에 되도록 밟지 않도록 조금하고 있었으나 중간중간 끈을 밟기도 했다.
‘동선이 변경되는 걸 생각하면 다른 멤버들이 밟기 전에 이걸 치워야 한다.’
밟아봐서 아는 거지만, 순간 밟으면 미끌하는 게 느껴진다.
다행히 밟았을 당시 역동적인 안무가 아니었기에 무너지는 일은 없었지만, 혹여나 운이 안 좋다면 넘어질 수도 있었다.
지금은 전체 군무가 잡히는 시점.
그러니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때 빠르게 이를 무대 밖으로 밀어내야만 했다.
‘···확실히 걸리적거리는군.’
와중에 한번 더 밟을 뻔했다.
그리고 타이밍을 보며 이를 빠르게 무대 밖으로 쳐 내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옆에 있던 안지호와.
그와 동시에 안지호의 시선이 다시금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안지호 역시 팔찌가 떨어져 있는 것을 눈치챈 듯 했다.
[FACE OFF]
[순간의 틈 사이에서 멈춰서]
[두 가지 진실을 비추고 있어.]
윤도운의 목소리가 그 순간 무대 위로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안지호는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대충 그렇군.’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느낌상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금 화면이 전환되었을 시점, 나는 그대로 근처에 있던 팔찌를 옆으로 툭 쳐내었다.
그러자 팔찌를 옆으로 슥 밀려났고, 그것은 곧 안지호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동시에 이를 본 안지호가 그대로 안무를 하는 척 손을 아래로 뻗었고, 떨어져 있던 팔찌를 그대로 무대 밖으로 빠르게 밀어내었다.
‘잘 정리됐네.’
그리고 안지호를 다시금 살짝 보았는데, 아까와 달리 이번엔 마주하는 시선이 없었다.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제 안무를 할 뿐이었다.
‘눈치, 빠르다니까.’
그리고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도중에 멤버들이 밟거나 하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이동되는 동선으로 인해 안지호가 내 앞으로 위치를 이동했다.
‘···어.’
그런데 그런 안지호가 왠지 모르게 눈에 걸렸다. 표정도 움직임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이 같았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 순간, 내게로 다시 카메라가 오는 게 느껴졌다. 지금은 결국 무대 위. 지켜봐 주는 이들을 위해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눈앞에서 빛이 반짝이는 이 무대에 온 목소리를 다했다.
* * *
무대를 끝나고 내려오자마자 나는 그대로 안지호에게로 향했다. 아까부터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뭐. 왜. 뭔데 마려운 강아지마냥 쫓아와?”
“누가 쫓아왔다고 그래.”
“너.”
안지호가 그대로 턱짓을 하며 말했다.
와중에 그냥 강아지도 아니고 마려운 강아지다. 아니, 그것보다.
“다쳤어?”
안지호의 손이 눈에 띄었다.
그대로 오른손 손바닥이 뭐에 긁힌 마냥 피가 나고 있었다. 동시에 안지호가 내 손을 빠르게 놓았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혹시 아까 긁힌 거야?”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했잖아.”
안지호가 그대로 상처 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쓸데없고 뭐고를 떠나서 보는 것만으로도 쓰라릴 것 같았다.
‘정황상 아까 치우면서 긁힌 것 같은데.’
손을 다칠 이유가 그것밖에 없었다.
역시 내가 그냥 치웠어야 했는데.
“손 줘봐.”
“아, 됐다고.”
“형, 연고 하나 필요할 것 같아요!”
“아, 우세현···!”
그렇게 미간을 한껏 구기며 성질을 부리는 안지호를 무시한 채로 매니저 형을 빠르게 불렀다. 나야말로 쓸데없이 그냥 지나칠 생각은 없었다.
“왜 그래, 안지호 무슨 일인데?”
“안지호 다쳤어.”
“다쳤어요? 어디요?”
“하······.”
이에 멤버들이 나와 안지호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안지호는 여전히 귀찮다는 기색이었다. 뒤이어 매니저 형이 상처 회복에 좋은 연고와 밴드를 가지고 왔다.
“주세요, 그냥 제가 할게요.”
“형. 제가 해줄게요.”
혼자 하겠다는 안지호에 먼저 선수를 쳐 매니저 형에게 연고와 밴드를 건네받았다. 그러자 안지호가 다시금 뭐냐는 얼굴을 했다.
“나 때문이잖아.”
“? 미쳤냐? 뭐가 너 때문인데?”
“가만히 좀 있어 봐라.”
“아까부터 계속 씹네.”
말이 중요하냐.
이게 중요하지.
그나마 다행히 찢어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긁힌 부위가 좀 넓어서 작은 밴드로는 어림도 없었다. 와중에 계속 자기가 하겠다는 걸 억지로 붙잡았다.
“물 안 닿게 조심해.”
“물 좀 닿는다고 어떻게 안 돼.”
“어떻게 안 되도 되도록 조심하라고.”
그러자 귀찮았던 건지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잘 새겨들었으면 다행이다.
“근데 무대에 웬 팔찌? 우리 오늘 팔찌 착용한 사람 없지 않았냐?”
“아무래도 이전 그룹 건가봐.”
원래 무대를 하다 보면 팔찌나 귀걸이 같은 게 하나둘씩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와중에 그때 밀어버린 팔찌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얘들아, 뒤에 한번 더 무대 올라가야 하는 거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올라가게 되면 알려줄게.”
마지막에 단체로 무대 위에 올라가는 시간도 있어서 이대로 끝이 아닌 다시 한번 무대에 올라가야만 했다.
아무래도 모든 출연자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무대에 올라가니 이미 사람이 북적북적한 상황이었다.
이에 한 발자국 뗄 때마다 보이는 그룹에게 인사를 하며 자리를 옮기는 수순이었다. 더욱이 우리는 아직까지 신인 축에 드니.
와중에 안지호를 보니 다친 손이 나름 신경이 쓰였던 건지 되도록 손을 가리려는 모습을 보였다. 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곡까지 하고 난 뒤 내려온 무대. 그런데 잘 끝낸 것 같던 그 무대에서 생각지도 못한 구설수가 떠오르게 되었다.
- [HOT!] 주머니에 손 찔러 넣은 채로 선배에게 인사하는 아이돌.jpg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