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궁예가 판을 치고 있다.
- [HOT!] 주머니에 손 찔러 넣은 채로 선배에게 인사하는 아이돌.jpg [1430]
핫게시글이 떴다.
해당 게시글은 어제 있었던 K팝 행사와 관련된 내용의 게시글이었다.
‘주머니에 손 찔러 넣은 채로 선배에게 인사하는 아이돌······.’
제목에 친절하게 요약을 해줬듯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선배에게 인사를 했다고 하여 이를 타박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우리였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지호였고.
- (요약) 어제 있었던 K팝 행사 마지막에 단체로 출연자들 올라오는데 다들 인사하는 마당에 윈썸의 지호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인사함
참고로 윈썸은 이제 데뷔한 지 2년 안 되는 신인 축에 속하는 위치고 앞에 있는 그룹은 무려 3년 선배임
물론 윈썸이 다 그렇다는거 아님
옆에 보면 같은 멤버들은 제대로 잘 인사하고 있음. 근데 유독 지호만 띠꺼운 표정으로 저러고 인사함
(당시 캡쳐 사진1.jpg)
(당시 캡쳐 사진2.jpg)
└ 표정이 진짜 띠껍긴 하다
└ 인사는 기본 중에 기본 아님? 와중에 주머니에 손 찔러 넣는 건 뭐야
└ 인사를 아예 안 한 거야?
└└ ㄴㄴ 캡쳐 보면 하긴 함 근데 태도가 존나 별로
└ 윈썸 지호 예전부터 표정 존나 띠꺼운 거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와서 말 나오는 게 신기하네ㅋㅋㅋㅋ
└ 표정이 진짜 ㄹㅇ 살벌하긴 허다
└ 행동이랑 표정만 봐선 인성 ㅈㄴ 별로 같아보이는데 얘도 팬 많지?
그 밑으로는 몇천 개에 해당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표정 궁예부터 시작해서 예의가 어쩌고 하는 댓글들까지.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
앞뒤 맥락 없이 그저 깎아내리기 다급한 모양새들이었다.
“순간 캡쳐가 이렇게 무섭네.”
“이때, 계속 손 넣고 있었나?”
“아뇨. 뺐어요.”
당시 안지호가 주머니에 잠깐 손을 넣고 있던 건 맞았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그때 생긴 상처 때문이겠지.
‘갑작스럽게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게 된 터라 나름 보이지 않겠다고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인사하는 순간이 생겼고, 그 순간이 대포에 찍혀 캡쳐본으로 돌아다니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게 날조라는 건, 당시 안지호는 인사를 할 때 주머니에서 손을 확실하게 뺏기 때문에.
하지만 방송을 통해서 나간 것이 아니었기에 해당 영상을 직접 찾아보지 않으면 이게 순간 캡쳐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정신차려 @sdfdsasdf
앉ㅈㅎ 인성 논란 언제 날까 했는데 이제야 나네ㅋㅋㅋㅋㅋ다들 빨리 정신차리길~
. @asdfdfswe
이제 1년 차가 선배 앞두고 잘하는짓ㅋㅋㅋㅋㅋ성격 나쁜 거 이제라도 알려져서 새삼 다행임 ^^ 이제 좀 죽이고 살았으면
G @sdfgsssa
앉지 머리는 좋아서 어떻게 하면 이미지 좋게 포장 될지 존나 잘 앎 근데 나중에 주제 모르고 겉멋 들어서 솔로 한다고 나갈 멤버 1순위
표정 궁예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어처구니없는 성격 궁예까지 나온 상태였다.
논란 멤버로 이대로 이미지 못 박기. 그게 키보드 앞에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이들이 노리는 걸 테니.
하지만 해당 캡쳐본이 순간 캡쳐에 의한 날조라는 것은 다행히 영상이 대대적으로 공개가 되면서 어느 정도 해명이 되고 있었다.
- 순간 캡쳐본 가지고 태도 논란 어쩌고 ㅈㄹ을 하는 거였네 윈썸한테 한 처먹었나
- 핫게 올라온 저거 원본 영상이랑 전혀 다름 영상 올라온 거 왔는데 인사 할 땐 확실하게 주머니에서 손 뺌
- 아 뭐야 날조였어? 요즘 윈썸 잘 나간다더니 견제하는 정병들 제대로 붙었나보네
- 우리 애가 성격이 살짝 덜 둥근 건 맞는데 절대 그렇게 예의 없이 굴진 않음
- 근데 어쨌든 무대 위에서 주머니에 손 넣고 삐딱하게 있던 건 사실 아님? 그 자체로도 그냥 태도 논란감인데
- 나도 영상 봤는데 결국 인사하면서 표정 쌉 구린 건 맞던데ㅋㅋㅋㅋㅋ
‘쓸데없는 궁예질이 또 시작됐군.’
어떻게서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모양새였다. 실제로 안지호의 표정이나 태도에 특별히 눈살을 찌푸릴 만한 것은 없었다.
물론 표정이 그렇게 밝은 건 아니지만, 앞서 이야기하는 것 같이 똥씹은 표정, 구린 표정 같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제가 직접 말할게요.”
“직접 말한다고?”
“네.”
안지호가 대답했다.
해당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직접 해명하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안지호 본인의 상처에 관해 언급하는 걸 그다지 원치 않는다는 거였다.
“그럼 어떻게 설명을 하려고?”
“사정이 있어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습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습니다─라고.”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는 표현은 생략해······.”
여기서 더 난리 날 일 있냐.
어쨌건 두루뭉술하게 사정을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이런저런 말을 나오게 할 터였다.
그렇지만 안지호는 여전히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안지호를 일단 진정시킨 채로 말렸다.
“일단은 좀 진정해.”
“그럴 필요 있어? 그냥 말하면 그만이지.”
“괜히 기름 부을 필요는 없잖아.”
“그룹 이름 더 나오기 전에 그냥 빨리 말하는 게 나아.”
그룹이름?
그렇게 말하는 안지호는 평소보다 더 예민해진 상태였다. 보아하니 그룹이 같이 끌려나오는 게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진정해. 어쨌든 이건 우리 그룹일이니까 같이 의논을 좀 해보자. 같은 멤버잖아.”
그러자 그런 내 말에 안지호는 잠시 입을 달싹이더니 이내 다시 조용히 다문다.
당연하게도 반박이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안지호는 앞선 말을 듣자마자 반박 없이 이를 수긍했다.
일단 이 상태에서 뭔갈 더 얹어봤자 좋을 게 없다. 괜히 꼬리를 물뿐이지. 하지만 물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적당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도록······.
- [제목] : 어제 지호 손 다쳤었나봄
그 순간, 새롭게 올라온 글이 보였다.
[행사 때 사진 지금 올라오는 거 보는데 무대 때는 없었는데 끝에 나왔을 때 오른손에 밴드들 붙여져 있음ㅠㅠ (사진.jpg)]
└ 헐? 진짜 그렇네?
└ 밴드ㅠㅠ 근데 왜 갑자기 다친 거야ㅠㅠㅠㅠ
└ 중간에 다친 건가? 오른손 나와 있는 사진 더 없어?
└└ [글쓴이] : 그래서 나도 찾아봤는데 오른손 나온 사진만 유독 없음 지호가 일부러 감춘 건가ㅠ
└ 혹시 그래서 주머니에 계속 손 넣고 있었던 거 아님?
└ ?????? 너 코난 아님?
안지호가 손에 밴드를 붙이고 있는 사진이 풀리면서 점차 이를 토대로 한 추측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와중에 꼼꼼하게도 감춘 건지 오른손이 찍힌 사진이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확실하게 찍힌 사진들이 몇 개 있었다.
굳이 손 쓸 필요 없어졌군.
“안지호.”
“왜.”
“안타깝게도 이미 알려졌어.”
“뭐?”
그리고 나는 그대로 보고 있던 화면을 안지호에게로 건넸다.
* * *
김설아는 지금, 눈앞에 있는 화면에 한껏 집중을 한 채였다. 오늘 하루 종일 윈썸과 관련된 글이 커뮤니티를 달구고 있었기에.
‘기레기들, 그 사이 기사까지 냈네.’
- 윈썸 지호, 태도 논란? 무대 위에서 주머니에 손 넣은 채로 인사
- 윈썸, 이대로 태도 논란 불거지나?
내용도 자세한 내용 없이 순전히 핫게시글에 있던 내용을 복붙하듯이 쓴 것들이었다. 커뮤 눈팅만 존나 하고 있지, 또.
하지만 기사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당시 무대 위 직캠 영상이 올라오게 되면서 상황은 전반적으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핫게에 나온 대로 안지호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예의 없게 인사를 한 것이 아닌 그것은 단순히 순간 캡쳐에 의해서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지만, 악플러들은 한번 잡은 건수를 놓치지 않았다.
“이제는 아주 주머니에 손 넣은 걸로 아주 생난리를 부리고 있네.”
포커스를 바꾸어 무대 위에서, 선배들이 있는 곳에서 저대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삐딱하게 서 있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와중에 표정이 띠껍다느니 구리다느니 하는 말도 있었지만, 애초에 표정이나 자세나 삐딱한 것도 없었다.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는 구실일 뿐.
‘이때다 싶어 다 몰려왔네.’
정병 모임 파티였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면서 상황은 다시금 반전이 되었다.
“다쳤어?”
올라온 사진 속 안지호의 오른손에는 큰 밴드가 몇 개 붙어 있었다. 이에 이를 보던 김설아의 표정 또한 걱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해당 사실은 다시금 HOT 게시글을 통해 여러 커뮤니티로 퍼져나갔다.
- 헐 다쳐서 그런 거였어?
- 이럴 줄 알았지 혹시 몰라 가마니하고 있길 잘했다
- 근데 진짜 다쳐서 그런 거 맞아? 이것도 그냥 궁예 아니야?
└ 맞는 거 같은 게 옆에서 마이크 건네는 데도 오른손으로 안하고 왼손으로 함 그리고 영상 보면 오른손으로 하려다 멈칫하는 거 찍힘
- 아니 ㅆㅂ 이럴줄 알았지 애를 그렇게 쥐잡듯 잡더니 결국 이유가 있었네
- 우리 지호가 마이 웨이이긴 해도 그렇게까지 마이웨이는 아니야(?)
이에 멜로우들은 이와 관련하여 IN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입장을 기다렸고 그로부터 한참 뒤에 관련 입장문이 올라왔다.
[지호는 가벼운 타박상으로 현재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본사는 아티스트 케어를 위해 더욱더 최선을 다하는······]
- ㅆㅂ 지호 역시 다친 거 맞았나보다
- 방금 아이엔 입장문 올라옴 존나 그렇게 싸가지 없다고 ㅈㄹㅈㄹ하더니
- 솔직히 IN 이대로 먹금할 줄 알았는데 입장문을 내네 그게 더 신기
- 예상하던 대로 맞았네 손 다친 거 감추려고 내내 가리고 있던 거 맞는 듯
회사의 간략한 입장문이 나온 뒤, 그 뒤로 정황이 제대로 파악이 되면서 여론은 완전히 뒤집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수없이 얹어졌던 말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자진 삭제되고 있는 모양새였다.
- 윈썸이 뜨긴 떴나보다 이런 정병 날조글이 올라오는 걸 보니
- 어제 완전 윈썸 정병 파티였어 벼르고 있던 애들 많은 듯
- IN은 고소 안하나? 고소 공지 한번 떴으면 좋겠네 어제 오늘 삭제된 댓글만 몇 개냐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알람이 하나 떴다.
[Artist] 좋은 점심이에요, 멜로우.
“지호!?”
안지호의 커넥트 글이었다.
이에 김설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알림을 클릭했다.
[Artist] 지호
좋은 점심이에요, 멜로우.
점심은 드셨는지 궁금하네요.
밥은 꼭 챙겨 드세요.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주셨는데 그렇게 걱정할 만한 건 아닙니다. 이제는 흔적도 없게 되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걱정시키지 않도록 할게요.
이전 일은 전적으로 제가 조심하지 못한 탓이니 그것과 관련해서는 사과드립니다. 항상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멜로우.
[사진 첨부.jpg]
첨부된 사진에는 밴드를 뗀 손과 함께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안지호가 있었다.
세팅되지 않은 차분한 레드 헤어에, 프리한 검정색 후드티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 지호야ㅠㅠㅠㅠㅠ지호다ㅠㅠㅠㅠㅠ
- 안지호 후리한 거도 왜 이렇게 까리해
- 지호야ㅠㅠㅠㅠㅠ보고싶었어ㅠㅠㅠㅠ
- 아니야ㅠㅠㅠㅠㅠ왜 사과를 해ㅠㅠㅠㅠ
- 지호 얼굴 보니까 이제야 좀 살 것 같다ㅠㅠㅠㅠㅠㅠ
- 이제부터 지호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ㅆㅂ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니 걱정되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숨 돌렸다.
그런데 거기에 또 하나, 사진이 하나 더 첨부되어 있었다.
그건 바로 멤버들과의 사진이었다.
앞에 앉아 있는 안지호와 그 뒤로 그런 안지호를 놀리듯 헤실헤실 웃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었다.
“귀여워!”
와중에 첨부 파일명이 [바보들.jpg] 이라고 되어 있어 그것이 김설아를 한번 더 웃게 만들었다.
* * *
이화준은 지금,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를 한창 모니터링하고 있던 중이었다. 언제나와 같은 모니터링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유독 눈에 띄는 게시글이 있었다.
- [HOT!] 주머니에 손 찔러 넣은 채로 선배에게 인사하는 아이돌.jpg [1430]
“와우,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구나.”
이후 사태를 확인한 이화준의 입꼬리가 그 즉시 올라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이 그에겐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화준이 형, 봤어요? 안지호 논란 기사 올라온 거?”
“봤지. 당연히.”
“근데 보니까 손 찔러 넣은 건 나름 이유가 있다고 하던데.”
“그럼 뭐 하냐, 표정이 구린데. 그 성격에 지금까지 아무 논란이 없었던 게 이상한 거지.”
그래서 이화준은 이번 논란이 통쾌했다. 설령 날조가 된 것이 언정 어쨌든 논란이 됐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니.
“그러고 보니 안지호, 원래 연습생 때부터 말 많았죠. 성격 더러운 걸로.”
“유구했지.”
“예전에 그런 말도 했다면서요. 실력이 어중간하면 닥치고 조용히 있으라고.”
“아, 맞아. 그런 말 했지.”
“오, 그거 사실이었구나.”
하민제가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이화준은 다시금 논란 기사를 확인해보았다. 논란은 식었지만, 기사는 아직까지 내려가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 성격이 어디 가겠냐.”
그렇게 말하는 이화준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잔뜩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