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58화 (258/413)

258화. 오랜만에 한잔 할까?

제작진이 준비한 문제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해당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소품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선빈이 문제는 어디 있었나 했더니 저기 모형 비행기 안에 있었어.”

“치밀하다, 치밀해.”

선반 높은 곳에 있던 모형 비행기. 비행기 기장이라는 역할을 맡은 차선빈의 문제는 바로 그곳에 숨겨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발견하지 못 해서 꽤나 오래 찾았다. 와중에 높은 곳이라 팀에서 가장 장신인 차선빈이 이를 꺼냈다. 그냥 본인이 본인 문제를 찾았다.

[Q. 선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 메뉴?]

“아, 이건 한번에 바로 맞추지~”

“오랜만에 쉬운 문제가 나왔네요.”

정답은 당연히 딸기 라떼.

최애는 딸기 라떼였으나 여름에는 딸기 라떼가 나오지 않으니 대체로 아이스티를 마셨다.

[Q. 하람이의 요즘 최애 노래는?]

“어렵다.”

“어렵다고요?”

“니가 최애라고 말한 게 한두 개냐?”

“최신 노래 있잖아요. 최신 노래!”

“정답. 나의 목적지.”

“아, 역시 세현이 형.”

가장 최신 노래라면 역시 그것밖에 없었기에. 타이틀곡도 있긴 한데, 하람이가 워낙 ‘나의 목적지’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나한테도 싸비를 불러달라고 한 적도 있었고.

“잠깐, 이렇게 되면 끝인가?”

“번호! 번호 주세요!”

그리고 준비된 문제를 모두 맞히자 마침내 6자리의 비밀번호가 완성되었다. 앞서 틀렸던 문제들의 경우 대체해서 새로운 문제를 맞혔고, 번호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숫자는 순서대로 [0,6,3,1,1,0]이었다. 비밀번호가 얻은 숫자의 배열 그대로란 말은 안 했으니 이 자체가 비밀번호일 리는 없겠고.

그러니 번호를 적당히 조합을 해야 하는데, 이 숫자의 배열. 왠지 좀 낯설지가 않다. 아, 그렇군. 뭔지 알겠다.

“데뷔일이네.”

“어? 그렇네.”

“올, 세현이 형. 0131···그럼 나머지 6이랑 0은요?”

“멤버수 아냐?”

“아, 06 이렇게요? 여섯명?”

“역시 형사와 과학수사대~”

“입력이나 해라.”

안지호가 백은찬을 타박했다.

그리고 이내 백은찬은 그 말에 따라 앞에 있던 금고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금고가 한번에 열렸다.

“060131이랑 013106 중 찍었는데 맞춤.”

“역시 백은찬 찍기 신공.”

“이왕이면 운이 좋다고 해주세요.”

백은찬이 입가의 미소를 띤 채로 여유롭게 말했다. 그리고 백은찬은 그대로 금고 안에 있던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게 그 상대 조직의 정보라는 건가.

그와 동시에 뒤에 있던 사이렌이 울리면서 ‘Mission Complete’란 글자가 떠올랐다.

“미션 컴플리트, 축하드립니다.”

“그럼 이제 이걸로 뭘 하면 되는데요?”

“이제 조직을 잡으러 가셔야죠.”

“자, 얘들아. 그럼 이제 조직을 소탕하러 가볼까~?”

그와 동시에 백은찬이 연기톤으로 말했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 역시 하나둘씩 마치 대사를 읽듯 다음 멘트를 치기 시작했고, 그것을 이어 내가 마지막으로 멘트를 쳤다.

“와, 잡으러 가자.”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동시에 잠깐 당황한 듯한 얼굴을 보였다. 톤이 너무 일정했나.

어쨌든 이 대사 다음으로는 곧바로 촬영장을 우르르 나서야만 했다.

다들 움직여라.

그리고 나면 대충 이쯤에서 자막으로 ‘The end’ 문구가 떠오르겠지.

“안지호, 빨리와!”

“간다.”

그렇게 멤버들은 촬영장을 우르르 나섰고, 와중에 안지호의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느렸다.

* * *

오늘도 음악 방송이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로 막방 중에 막방이었다. 활동 마지막 주의 마지막 무대.

그런 의미에서 나름 멜로우에게 비밀스럽게 선보일 이벤트도 준비했다. 엔딩 포즈에서 멜로우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사전에 이야기한 메시지를 각자 종이에 한 글자씩 적어서.

들기로 한 글자는 [멜로우 사랑해].

정확히 6글자다.

근데 이거 순서대로 잡아주시겠지?

“근데 오늘 마지막인데, 저녁에 다같이 모여서 한잔할까?”

백은찬이 제안을 해왔다.

한 잔이라. 좋긴 하지.

“간단하게 캔 맥주 하나씩 하면 되겠네. 아, 하람이는 콜라고.”

“사이다로 할 거예요.”

“조금만 참아라. 너도 이제 반년 후면 성인이니까.”

“어째 올해는 유독 길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너만 미성년자니까?”

그러자 신하람이 백은찬을 그 즉시 노려보았다. 왜 애를 놀리고 그래. 어쨌든 그렇게 해서 저녁엔 다 같이 한잔하기로 했다.

“세현아, 어디가?”

“잠깐 음료수. 아, 같이 사다줘?”

이에 차선빈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같이 갈까하고 물어왔지만, 어차피 금방 다녀올 거라 혼자 가겠다고 했다.

‘···아. 사람이 있었네.’

그리고 자판기 근처에 사람이 있는 게 보였다. 남성 두 명이 그 앞에서 음료를 뽑고 있는 모습이었다.

‘리엠인가?’

이전에 만났던 남자 아이돌 그룹, 리엠.

그러니까 RA 엔터 연습생 출신 멤버가 있는 그룹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그 멤버가 눈앞에 있었고.

활동기가 겹쳐서인지 마주치는 일이 잦다.

그렇지만 이번엔 마주한 게 아니었다. 순전히 내 쪽에서 그 멤버를 발견했다. 방송국이 워낙 좁다 보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당연하게도 날 기억 못 하는 눈치더라.”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같이 연습했는데 기억도 못 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이거 아는 얘기 같은데.

다른 멤버와 그 멤버가 대화하는 목소리가 내가 있는 곳까지 줄줄 들려왔다.

“근데 안지호라면 그럴 만해. 그 자식, 성격 더럽기로 워낙 유명했어가지고.”

“뭐 얼마나 더럽길래?”

“말도 마라. 그 당시 연습했던 애들이라면 다 알걸. 오죽했으면 그 실력을 가지고도 데뷔조에서도 탈락을 했겠냐.”

이것도 역시나 아는 이야기고.

다만, 조금 아픈 이야기이긴 하다.

“그때도 지독한 마이웨이에 무시 쩔었는데. 그래서 걔한테 붙는 애들도 없었잖아. 다른 연습생들한테 오지게 인성질 해대고~”

“듣기만 해도 성격 안 좋긴 하네. 근데 그 정도면 같은 멤버들한테 애도를 표해야 하는 거 아니냐?”

같이 이야기를 하던 리엠의 멤버가 그대로 피식 웃어 보였다.

“내 말이. 여전한 것 같던데, 그룹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신기하다니까. 아니면 걔네도 안 보이는 기싸움 같은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뭐가 웃긴 건지 리엠의 두 멤버는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번 키득거렸다. 역시 뒷말은 듣기가 불쾌하다.

“근데 솔직히 생긴 거만 봐도······.”

“안녕하세요.”

그 순간, 나를 발견한 리엠의 두 멤버가 놀란 얼굴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두 명을 바라보자 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놀리던 입을 그대로 꾹 다문다.

“비켜주시겠어요?”

“어, 아, 네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황급히 길을 턴다. 여전히 입은 꾹 다문 채로. 하지만 당연하게도 생각은 다물지 않은 채였다.

[“X됐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둘은 그대로 눈치를 살살 보더니 이내 꽁무니를 빼고 도망갔다.

‘기싸움이라.’

앞서 들었던 그 말이 무심코 떠올랐다. 이에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순간 실소했다. 애들이 먹을 것 가지고 자주 싸우긴 하지.

그리고 난 그대로 자판기 앞에 선 채로 뽑을 음료를 고민했다.

‘안지호가 좋아했던 게 뭐였더라.’

그냥 왠지 모르게 안지호에게 음료 하나를 건네고 싶어졌다.

* * *

“안지호.”

“? 뭐냐.”

“마시라고.”

그렇게 안지호에게 뽑아온 음료를 하나 건넸다. 이에 안지호는 여전히 뭐냐는 얼굴이었지만, 얼마 안 가 캔을 땄다.

여기에 막방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카메라 감독님께서 다행히 [멜로우 사랑해]를 순서에 맞게 잘 잡아주신 덕이었다.

- 으아 애들 너무 귀여워ㅠㅠㅠㅠㅠㅠ멜로우 사랑해래ㅠㅠㅠㅠㅠㅠ

- 한글자씩 뽀쨕뽀쨕 썼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ㅠㅠㅠㅠㅠㅠ

- 듣자하니 저거 리허설 때는 한번 실수했대 카감이ㅋㅋㅋㅋㅋ그래서 멜로우 랑사해라고 나왔다고 함ㅋㅋㅋㅋㅋㅋ

└ 랑사해 모냐ㅋㅋㅋㅋㅋㅋㅋ

└ ㅠㅠㅠㅠㅠ그것도 귀여워ㅠㅠㅠㅠㅠ

나는 거기서 ‘랑’자를 맡았다.

글자를 든 순서가 나이순이었기에.

“맥주 사왔어요? 맥주?”

“응. 대충 캔 맥주.”

“안주, 안주는요?”

“안주도 이것저것. 아, 감자칩도 사왔어.”

“크, 감자칩!”

준비된 캔맥주와 안주들에 백은찬이 그대로 감탄사를 내질렀다. 멤버들과 술을 마시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사실 술 자체를 마시는 게 꽤 오랜만이었다. 아무래도 그간 여러모로 바쁘다보니 마실 기회도 없었고, 또 마실 사람도 없었고.

이전부터 형에게 혼술이 최고라는 말을 듣긴 했는데. 그러면서 혹시나 술을 마시게 되면 자길 부르라는 말을 덧붙였다.

혼술이 최고라면서 왜 마시면 부르라는 건지 앞뒤가 안 맞는 그 말이 이상하긴 했다.

“이렇게 같이 마신지 꽤 됐지 않나?”

“다같이 마시는 건 오랜만이지.”

“도운이 형은 일단 주량이 약하잖아요. 이 형, 저번에 취하니까 노래 부르더라고요.”

“아, 나도 들었어. 고래고래 부르던데.”

“춤을 안 춘 게 다행이네.”

알고 보니 도운이 형은 주량이 꽤 약한 편에 속했다. 그렇다고 아주 약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같이 마시면 가장 먼저 취할 정도였다.

“와중에 차선빈은 진짜로 쎄고요~”

“선빈이 형은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애초에 술 별로 마시지도 않잖아.”

동시에 차선빈이 묵묵히 과자 더미에서 과자를 하나 집어갔다. 그러더니 가져간 과자를 뜯어 내 앞에 놓아주었다. X쵸였다.

X쵸 맛있지.

“그러고 보니 지난번 그거 생각난다.”

“그거?”

“왜 우리 멤버 퀴즈 한 거 있잖아.”

“그건 갑자기 왜요?”

“나 그 대답이 너무 감동이었어. 우리 럭키.”

“니가 준 건 행운이라니까.”

“이름 바꾸면 안 되냐? 럭키가 더 입에 착 붙는데. 럭키가 내 새끼 같아.”

“소유권 자체는 이미 나한테 있어.”

그러니 이름은 그대로 가는 걸로 한다. 괜히 바꾸면 그건 그거대로 더 헷갈리니까.

“솔직히 그 퀴즈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몇 가지 있죠. 예를 들면, 지호 형의 오디션 정보라던가?”

“아, 그렇지. 진짜 그건 처음 들었다.”

“당연하지. 말한 적이 없는데.”

안지호가 무심한 표정으로 캔 맥주를 한번 들이켰다. 확실히 그건 처음 듣는 정보였다. 노래만 불렀으려나.

“노래만 불렀어?”

“아니.”

“어, 나도 그런데.”

“뭐야, 우세현 오디션에서 춤췄어?”

“응. 내가 말 안 했나.”

“처음 듣는 정보인데요?”

아, 그런가.

근데 그건 좀 민망해서 보여주기 그렇긴 했다. 물론 공개되는 것 없이 아마 신인개발팀 보관 파일 어딘가에 잘 보관되어 있겠지만.

“뭐 췄는데요?”

“루트 싸인.”

“루트 싸인? 또 형님 파트 췄구만.”

아닌데. 권해진···파트 췄지.

루트 메인 댄서가 권해진이다.

“근데 안지호, 너도 오디션이야?”

“? 당연히 오디션이지.”

“그러니까 어떤 경로로 오디션이냐고.”

같은 오디션이라도 여러 경로가 많았다.

길거리 캐스팅을 통한 오디션, 해외 오디션, 요일 공개 오디션 등등.

“연계 해줬어.”

“연계?”

“RA 엔터 매니저 형이.”

아. 그렇군.

전 기획사가 RA 엔터니까.

가끔씩 이렇게 기획사끼리 연계를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RA와 IN 연계가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RA 엔터라.’

그러고 보니 떠올랐다.

낮에 있었던 일이.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동시에 들고 있던 맥주를 조금 들이켰다.

“야, 거기 그것 좀 줘봐.”

그때, 안지호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런 안지호의 손은 정확하게 내 앞에 있던 과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그래.”

그렇게 가까이에 있던 과자를 집어 안지호에게로 건넸다. 그리고 그 순간, 안지호와 잠깐 손이 닿았다.

─팟!

그리고 보였다.

눈앞으로 마치 장면과 같은 무언가가.

“뭐야?”

“어?”

“멍하니 뭐 하고 있냐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지호가 미간을 한껏 좁히고 있었다. 이건 지금, 현실의 안지호의 얼굴이다.

“벌써 취했냐?”

“아니,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

이어서 앞에 있던 맥주를 한입 마셨다. 기억이었다. 안지호의 기억.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이번엔 그 속에서도 꽤 많은 장면들이 보였다.

마치 영상의 편집본 마냥 컷컷되는 것처럼.

‘······하.’

기분이 별로였다.

타인의 기억을 본다는 건 여전히 불쾌한 감각을 일으키게 했다. 봐선 안 되는 걸 봤다는 느낌.

다시금 들고 있던 맥주를 마셨다.

조금 전과 다르게 어떠한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입 안이 쓰게만 느껴졌다.

‘···꽤 어렸네.’

그리고 그렇게 보았던 기억 속에는 안지호가 있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앳되어 보이는 안지호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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