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하지만 이젠 좀 알 것 같다.
IN 엔터에서의 연습생 생활은 이전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매일 매일 연습의 반복. 환경은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연습생의 하루야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래도 제 딴에 나름 사리기는 했다.
조금 더 침묵하는 쪽으로.
그럼 귀찮은 말이 나올 일도 없겠지.
그러다가 얼마 안 돼, 회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다. ‘Play on the stage (플레이 온더 스테이지)’.
그리고 3위를 차지하여 이윽고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데뷔였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데뷔. 그런 데뷔를 마침내 하게 되었다. 그룹으로.
‘그룹으로.’
자신은 그렇게 한 그룹의 멤버가 됐다.
동시에 자신은 그룹을 절대 하지 못할 거라며 조롱하던 그 당시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 됐잖아.’
안지호가 입꼬리를 올렸다. 결국은 됐다. 결국은 그룹이 됐고, 데뷔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가 차가워지며 마음속 한구석에 무언가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공개 투표를 통해 멤버가 되었고 그룹이 결성되었다. 그러니 무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며, 그 덕에 그룹이 된 것이다.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만약 이전과 같았다면, 또다시 퇴출되었을지도 모른다.
- 절대 그룹 못할걸.
- 협동심이 없는 새X라 안 돼.
그때의 그 말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지만 그룹은 자신에게 꼭 필요했다. 무대에 서기 위해.
그러니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겨우 손에 넣은 이 기회를.
그러나 그러면서도 생각은 여전히 자신을 좀먹었다. 특히나 같은 멤버들을 보며.
그룹이란 건, 단순히 안무 동작을 맞추고 노래 파트를 나눠 부른다는 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더, 조금 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다만, 이 멤버들과 함께 있다 보면 그것이 이따금씩 느껴졌다.
‘피해는 주지 말자.’
이 녀석들에게.
적어도 피해만큼은 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룹이라는 걸 만들어준 이 멤버들에게.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그룹 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그에 대한 의문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온전히 서 있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 그러한 의문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 같은 게 마음속 깊은 속에서부터 넘실댔다.
그리고 하루하루 그러한 생각에 잠식이 되어갈 때쯤, 문득 듣게 되었다.
“내가 볼 땐, 너 꽤 협동심 있어.”
“뭐?”
“우리 팀 꽤 합이 잘 맞는다는 소리 많이 듣잖아. 그것도 서로 협동심이 없으면 힘든 거야.”
우세현은 그렇게 안지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그 말에 안지호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협동심이 있다.
우린 꽤 잘 맞는다.
고작 그 몇 마디가, 우세현의 그 몇 마디가 이제껏 마음속에 걸려 있던 묵직한 무언가를 단번에 가볍게 만들어주었기에.
처음 듣는 말이었다.
분명 자신에게 협동심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다고 말해주는 상대가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앞에.
- 너는 내 멤버니까.
자신이 의문을 표할 때마다 늘 그렇게. 늘 그렇게 당연하게 우세현은 이와 같은 말을 해주었다.
기뻤다.
항상 그렇게 말해주는 우세현의 말을 이제는 믿고 싶어졌다. 정말로 그러길 바랐다.
우세현 뿐만이 아니었다.
멤버들은 그렇게 자신을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룹에 있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안지호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제는 윈썸의 멤버라는 사실이 어느새 자신에게 있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하는 일이 늘수록 조금이지만 이제는 이 그룹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을까.
내내 마음속에 잠식해 있던 의문과 불안감은 조용히, 그렇게 조용히 꺼져 들기 시작한 것은.
그와 동시에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그룹에 있고 싶다.
이 그룹에, 이 자리에 있고 싶다.
그런 욕심이 났다.
저답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했다.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멤버들이 생겼다.
여전히 뭐가 중요한 건지 명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이제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룹을 지키고 싶다.
이 그룹을.
그게 가장 중요했다.
어렸을 적, 화면을 통해서 봤던 그룹들이 왜 그렇게 빛나 보였는지, 그것은 단순히 실력이 좋기 때문이 아니었단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 * *
그렇게 안지호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 얼굴로 한동안 말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솔직히 난 다행이라고 여겨.”
그 순간, 안지호가 다시 입을 뗐다.
“갑자기 뭘?”
“윈썸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을 하는 안지호의 얼굴은 이전과 달리 평안했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해.”
“그룹?”
“응.”
안지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하다. 결국 이건 소중하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안지호의 입에서 그 얘기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안지호는 다시 조용히 허공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그래서 가능한 오래 하고 싶어.”
“윈썸에?”
“응. 되도록 오래.”
술의 힘인가.
오늘따라 유독 솔직했다.
아, 물론 평소에도 솔직하긴 했지만.
그리고 난 안지호의 그런 부분을, 솔직함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인가, 앞선 말을 듣고 있자니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떤 생각인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도 그래.”
그와 동시에 줄곧 허공에 머물러 있던 안지호의 시선이 이내 내게로 향했다.
“나도 오래 하고 싶어. 너희랑.”
지금처럼. 같이.
그렇게 다같이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으니까.
“···취했냐? 뭘 그렇게 웃어.”
“멀쩡한데.”
“···우세현.”
“왜?”
안지호가 그 순간 잠시 침묵했다.
불러 놓고 왜 말을 안 하냐.
그러더니 곧 그대로 눈을 마주한 채로 말했다.
“고맙다고.”
꽤나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말없이 맥주를 마신다. 그 말 한마디가 꽤나 묵직했다.
“그만 마시고 자라.”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러다가 한번에 훅 간다.”
“그렇지. 우세현, 그러다가 훅 간다.”
그 순간, 백은찬이 부엌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내 옆에 털썩 주저앉음과 동시에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자, 그러니 이제 이거 먹고 자자.”
“? 뭔소리야. 안 취했다니까.”
“안지호, 너도?”
“됐어.”
“응. 그럴 줄 알고 안 가져옴.”
“잘했네.”
이를 들은 백은찬이 그대로 여유롭게 웃었다. 여기서 싸우지 마라. 뒤이어 백은찬은 가져온 초콜릿을 한 입 먹었다.
그 사이, 안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다가 버릴 생각인지 먹고 남은 캔이나 과자봉지 등을 손에 들었다.
“들어가려고?”
“어. 이제 졸린다.”
“그래, 잘 자고. 그룹이 중요한 안지호.”
“···들었냐?”
“응. 들었어. 그룹이 좋은 안지호.”
백은찬은 그렇게 안지호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반면, 안지호는 그런 백은찬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이것도 가져가라.”
이어서 백은찬이 안지호를 향해 뭔가를 던졌다. 그것은 곧 안지호의 손에 잘 안착했다. 초콜릿이었다.
안 가져왔다더니.
제대로 챙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안지호는 받은 초콜릿을 그대로 손에 쥔 채로 말없이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자! 취한 세현이는 형이랑 자러 가자~”
“? 안 취했다고.”
“형이랑 자자~”
내 말은 전혀 안 듣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곧 내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걸더니 이내 나를 힘차게 일으켰다.
“애들이 기다리고 있다.”
“애들? 무슨 애들?”
“우리 행운이랑 럭키.”
아, 행운이랑 럭키.
“기다리긴 뭘 기다려. 걔네는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한다.”
“그래, 그래. 그러니까 가자고.”
여전히 술 취한 사람 취급이었다.
안 취했다니까 그러네.
그리고 그 뒤로는 정말로 그대로 백은찬에게 끌려가듯이 끌려가 방으로 직행하게 되었다.
* * *
그 날 그 얘기를 하던 안지호가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이해가 됐다.
안지호가 지금 그룹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짧은 대화였지만, 그 감정들이 마찬가지로 내게도 전해졌다. 뭐라 표현할 순 없었지만 대충 어떤 느낌인지 정도는.
어쩌면 기억을 통해 지난 일을 보았기에 더욱 공감이 됐던 걸지도 몰랐다.
순간적으로 본 안지호의 기억.
그리 길다고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도 없었지만 안지호는 지금, 그룹이 돼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거면 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기억······.’
물론 타인의 기억을 보는 건 여전히 상당히 껄끄러운 부분이었다. 기분도 좋지 않고.
하지만 보고 싶다고 보는 것도 보기 싫다고 보여 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이전보다 더 선명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
이전에 처음 기억을 봤을 때보다 이번엔 더욱 선명하게, 마치 정말로 눈앞에 있는 일처럼 보여 졌다. 현실과 구분이 다소 모호해질 만큼.
이건 분명 달갑지 않았다.
“아, 졸린다.”
“지금 몇 시예요?”
“새벽 6시.”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 그곳에서 멤버들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저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스케줄은 빡빡하게 차 있는 상태였다. K-POP 관련 행사나 지역 행사를 가기도 했고, 중간엔 광고 촬영도 잡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광고 촬영이 있었다.
새롭게 잡힌 광고는 탄산음료 광고.
정확히는 사이다 음료였다. 해당 음료사에서 신상품으로 나온 복숭아맛과 파인맛의 광고 모델로 우리가 선정되었기에.
“근데 저 이 음료수 진짜 좋아해요.”
신하람이 오늘따라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거 파인맛 좋아했었지?”
“어떻게 알았어요? 파인맛이 진리죠.”
“이전에 마시는 거 봤어.”
“하여튼 우세현, 관찰력 하난 알아주네.”
모를 수가 없지 않나.
항상 이 음료수를 마시면 하람이는 파인맛을 집었기에.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기분이 더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왠지 눈이 말똥말똥해요!”
“그러기엔 눈만 말똥한데?”
“새벽 6시에 눈만 말똥해도 엄청난 거죠.”
신하람이 백은찬을 향해 툴툴대었다.
촬영은 복숭아 버전, 파인 버전, 그리고 스페셜 버전 이렇게 세 가지 컨셉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었다.
더불어 이를 위해 서울에 있는 모 스튜디오 촬영장 건물을 통째로 빌렸다. 물론 야외 촬영도 예정에 있었다. 오늘은 스튜디오 촬영뿐이지만.
그리고 얼마 안 가 스튜디오 건물 앞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층수가 꽤 되었다. 건물 자체도 큰 편이었고.
“입구 이쪽이야.”
이어서 매니저 형을 따라 건물의 입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렇게 따라 걸어가던 도중, 건물 근처로 사람 한 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큰 키의 긴 생머리.
거기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여성이 그대로 건물 벽에 기댄 채로 홀로 조용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앞을 지나치려던 찰나, 짧은 순간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긴 했지만, 시선이 마주했다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뭐지.’
그 생각과 동시에 여성이 먼저 이쪽을 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곳에 서있는다.
왠지 모르게 뭔가 찜찜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가 영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다.
“안 가냐?”
뒤에 있던 안지호가 그대로 나를 스치며 물었다. 이에 이전보다 걸음을 조금 더 빨리하며 그런 안지호를 뒤따랐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았다. 뭐라 정확히 정의할 수 없어 더욱 찜찜한 거겠지만.
그렇게 여전히 뭔가가 걸렸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일단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려고 온 거니까.
“윈썸, 어서오세요.”
이후 스튜디오에 도착한 나와 멤버들을 스텝이 반겼다. 그리고 그렇게 스텝을 따라 대기실로 이동을 하려던 찰나, 그 순간 다시 한번 눈에 띄는 이를 발견하였다.
···잠깐, 니가 왜 거기에 있어?
동시에 그쪽도 나를 발견한 건지 이내 언제나와 같이 능글맞은 얼굴로 웃으며 손 인사를 한다.
다름 아닌 사자(使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