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이곳에 섞여 들어왔어.
눈앞에 보이는 건 확실한 사자의 얼굴이었다. 언제나와 같은 저 능글맞은 얼굴.
거기에 이를 대변하듯 눈앞에 사자는 그대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사자가 여기 왜······.’
거기에 차림이 조금 이상하다.
그러니까 평소와 같은 중절모에 정장 차림이 아닌 캡 모자에 상당히 프리한 복장이다.
마치 여기 스텝과 섞이기 위한 것처럼.
‘스텝처럼. 섞인다······.’
그때 머릿속으로 어떠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과 같은 비슷한 상황. 이전에도 겪은 적이 있었다.
사자와 처음 만났을 때.
그때, 사자는 지금 상황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세현아. 대기실 안 가?”
차선빈이 나를 보며 물었다.
생각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새 홀로 멈춰 있는 모양새였다.
“가려고.”
“같이 가자.”
이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 사자는 인간의 복장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경찰이었었지, 아마.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곧, 이곳에 일이 있어서 온 거라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굉장히 달갑지 않은 일이.
* * *
사자가 현재 인간의 눈에 보이는 모드라는 건 주변에 있는 이들을 통해서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주변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여기에 제대로 파고든 건지 가끔씩은 진짜 스텝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이 시작되기 전, 빠르게 사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일단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실하게 인지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맞아. 일로 온 거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데요.”
“골치 덩어리 잡기지.”
골치 덩어리?
“쫓고 있는 령이 하나 있는데, 그게 인간들 사이로 몸을 숨겼어.”
“여기서요?”
“맞아. 이전에 너도 비슷한 걸 한번 본 적이 있을 거야. 겉은 인간이지만, 속은 전혀 아닌 존재 말이야.”
사자의 말 대로였다.
처음 사자와 만났을 당시, 나 역시도 ‘그것’을 봤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모습이었기에 볼 수 있던 거지만.
“그래서 그게 누군데요?”
“몰라.”
“예?”
“안타깝게도 아직 판단 불가야. 아주 꽁꽁 숨어버렸거든. 어떤 인간에게 붙었는지 그걸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
“그렇게 여유롭게 말할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일단 어떤 인간에게 붙었는지만 알면 그 다음엔 문제 될 게 없으니까. 바로 처리 가능하거든.”
그렇다면 정말 특정 지을 수만 있다면 된다는 건가.
‘결국 스텝들 사이에 있다는 건데.’
그것도 문제는 문제지만, 그것보다도 멤버들이 위험해지는 건 아닐지 그것부터가 걱정이었다.
결국 지금 같은 장소에 문제의 귀···아니, 위험한 령이 있다는 거니까.
“···잡을 순 있는 거예요?”
“잡아야지. 그러려고 온 건데.”
“되도록 빨리 처리했으면 좋겠는데요.”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여기서 다른 인간들이 엮이는 건 사양이니까. 골치 아프거든.”
사자가 마치 피곤하다는 듯 그대로 고개를 몇 번 움직였다.
“그래서 말인데.”
“네.”
“도움이 필요해.”
뭐? 도움?
“무슨 도움이 필요한 건데요?”
“판별해줘.”
“···령을요?”
“응.”
그렇게 대답과 함께 사자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듯이 말하는 그 모습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 * *
판별을 해달라.
앞서 사자는 분명 내게 그렇게 말했다.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데요?”
“말 그대로 판별이야. 어떤 인간 안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너의 능력을 이용해 알려달라는 거지.”
“귀신한텐 안 통하는데요.”
“엄연히 인간이야. 귀신이 아니고. 지금은 인간 안에 들어가 있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사자와의 첫 만남에서도 생각을 읽은 적이 있었지. 그걸 생각하면 사자가 하는 말이 아예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이쪽 존재가 아닐지언정 생각까지는 속일 수 없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니가 그 생각을 읽어 판별해달라는 거지.”
사람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읽는 게 가능하다. 어찌 보면 말장난과 비슷했지만, 경험해본 바로 확실히 그건 맞다.
“판별하고 나서는요.”
“그럼 내가 바로 가서 처리. 그럼 상황 종료. 아주 간단하지?”
간단하긴 뭐가 간단하냐.
애초에 그쪽이 먼저 눈치를 챌 확률도 있다. 거기에 무엇보다 그 사람이 령이 맞다는 확신 또한 있어야 하고.
‘···귀찮아.’
귀찮음이 순간적으로 훅 올라왔다.
그래. 정말로 상당히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령이 계속해서 숨어만 있는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혹여 난동이라도 부린다면 주변이 위험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선택은?”
“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되도록 빨리 현장에서 없애는 게 너한테도 좋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만이에요.”
“뭐?”
“돕는 거요. 되도록 귀찮은 일엔 관여되고 싶지 않아서요.”
어차피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다.
엄연히 저승사자의 일이지.
게다가 이런 초자연적인 일에 자주 엮였다간 괜한 이상한 소문만 날 터였다. 그런 건 사양하고 싶었다.
게다가 어차피 난 남을 위하는 그런 이타적인 사람이 못 된다. 그러니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다. 도와주는 건 이번만이라는.
“그래, 알겠어. 나도 양심 없이 인간에게 이런 일을 덥석 부탁하진 않는다고. 근데 이번엔 아무래도 좀 곤란해서 말이야.”
“뭐, 저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좋아. 그런 의미에서 파이팅 한번 할까?”
“사양하겠습니다.”
“구호는 따봉 사자야, 어때?”
사양한다니까.
하지만 그런 사자는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로 홀로 따봉 사자를 외쳤다. 이거 이렇게 들으니 되게 부끄러운 거였구나.
다시금 구호의 쪽팔림을 실감했다.
* * *
당연히 구호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의기투합을 위해서라며 사자 쪽에서 자꾸 귀찮게 굴긴 했지만, 그딴 구호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전에 내가 준 매개체. 그거 잘 가지고 있지?”
“네. 가지고 있는데요. 그건 왜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일회성 기능을 추가해줄게.”
이내 매개체를 달라는 말에 사자에게 곧 가지고 있던 키링을 건네주었다. 이어서 사자가 건네받은 키링을 자신의 손바닥 위로 올렸다.
그 순간, 키링이 홀로 작게 빛을 내었다.
“여기에 추가 기능을 하나 붙여놨어. 혹여 ‘령’과 직접 마주했을 때 위험한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바로 사용을 하도록 해.”
“위험할 때···그건 상당히 불안해지는 말인데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에 대비해서 해둔 거야. 걱정 마. 위험하게는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사자가 내게 다시 키링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내가 불안한 건 그쪽이 아니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다른 사람들도 위험에 처할 상황이라는 거니까.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 사자를 돕고 있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보다도 이렇게 되면 일일이 생각을 살펴봐야 하나.’
현장에는 꽤 많은 수의 스텝들이 있었다. 족히 30명은 넘어 보였는데 이는 즉, 이들의 생각을 일일이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하······.’
한숨이 나왔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 많은 사람의 생각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단은 주변 탐색부터였다. 아무래도 외부 스텝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혹시 모르니 내부 스텝도 살펴봐야 했다.
[“───”]
[“────”]
[“──”]
다행히 가까운 곳엔 없군.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한시름 덜었다.
“뭐야, 우세현.”
“뭐?”
“왜 그렇게 긴장한 얼굴이야?”
의상을 갈아입은 백은찬이 이내 비어 있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러더니 가지고 온 음료를 그대로 건넨다.
“배고파서 그러냐?”
“···그럴 리가.”
“근데 왜 안 하던 긴장을 하고 그래?”
“긴장 안 했어.”
그대로 백은찬이 준 음료를 받아들었다. 복숭아 맛 음료였다. 그리고 꽤 차가웠다. 냉장고에 있던 걸 가지고 온 건지.
“그러고 보니 이따가 촬영 감독님이랑 잠깐 회의 있는 거 알지?”
“아, 알고 있어.”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컨셉에 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잠시 나누는 시간이었다.
“혹시 졸린 거면 어깨 빌려줌.”
“안 졸려. 오히려 또렷한 편이야.”
“으흠, 그래?”
졸리기는커녕 오히려 너무 또렷해서 문제였다.
그리고 준비가 끝난 멤버들과 함께 감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도중에도 마주치는 스텝은 한번씩 생각을 확인의 과정을 거쳤다.
그때까지도 특별히 수상한 이는 없었다.
정말로 꽁꽁 숨어버리기라도 한 건지.
도착한 회의 장소는 스튜디오 구석에 있던 작은 컨퍼런스 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늘의 촬영 감독과 마주할 수 있었다.
촬영 감독은 대략 4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거기에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있었고.
“촬영은 사전에 전달했다시피 이런 내용으로 진행이 될 겁니다. 컨셉은 총 3가지고요.”
감독은 차분한 목소리로 오늘의 컨셉과 촬영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앞에 있던 감독과 한번 시선이 마주했다. 하지만 잠깐의 눈 마주침 이후 감독 쪽에서 먼저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윈썸은 정말로 인물들이 다 좋네요.”
“감사합니다.”
“특히나 세현 씨는,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어요.”
감독이 나를 바라본 채로 말했다. 이에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 사이, 감독이 다시금 나를 응시했다.
그 뒤로 다시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서 여기서는······.”
똑똑-
그때, 누군가 회의실 문을 노크했다.
동시에 멤버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이어서 감독의 들어와도 좋다는 소리와 남께 흰색 볼캡을 쓴 남성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감독님, 이거 급하게 한번 체크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 그래요.”
해당 남성은 오늘 촬영 스텝 중 하나로 체격이 꽤 있는 편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눴고, 이야기는 짧게 끝났다.
“그럼 감독님, 수고하세요.”
“네. 진영 씨도 수고하세요.”
그에 맞춰 흰색 볼캡의 스텝이 고개를 숙여다. 더불어 나와 멤버들을 향해서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그런 스텝을 향해 이쪽 역시 인사를 하는 순간, 흰색 볼캡의 스텝과 잠시 시선이 얽혔다.
그와 동시에 흰색 볼캡의 스텝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스텝은 얼마 안 가 컨퍼런스 룸을 나섰다.
그렇게 스텝이 열고 나간 문이 곧 작게 소리를 내며 잠시 흔들거렸다.
“그럼 다시 이야기를 진행해볼까요?”
그 순간, 감독이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멈췄던 이야기가 다시금 진행이 되려 하고 있었다.
* * *
회의는 얼마 안 가 끝이 났다.
그리고 멤버들을 되도록 빠르게 대기실로 보내고자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단 대기실에 있는 게 안전하니까.
‘그러니 빠르게······.’
─펑!
그런데 그때, 촬영 현장에서부터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주변에 있던 스텝들의 놀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뭐야!?”
“뭐예요? 뭐가 터진 거예요?”
“이거 조명 터진 것 같은데?”
조명이 터졌다.
촬영 현장 근처에 설치되어 있던.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그리고 터진 조명은 그렇게 불이 꺼진 채로 홀로 조용히 연기를 내고 있었다.
이어서 스텝들은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냐면서 해당 조명을 치우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뭐야, 갑자기 왜 조명이 터지냐?”
“그러게요. 근데 근처에 사람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촬영 중간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도운이 형의 말 대로 촬영 도중에 터졌더라면 그대로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불상사가 있었을지도 몰랐던 상황이었다.
동시에 주변을 살펴 사자를 확인했다.
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현장에 있던 사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거 빨리 해결을 봐야 할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일어난 조명 사고.
그건 왠지 꽤나 불길한 기분을 들게 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러니 지체할 새 없이 바로 해결을 봐야만 했다. 아무래도 저건, 그 ‘령’과 관련된 일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 ‘령’의 정체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