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귀신 주제에 제법 치밀하다.
사자가 찾고 있던 ‘령’.
그 ‘령’을 마침내 찾게 되었다.
“세현 씨, 촬영 건으로 짧게 이야기할 게 있는데, 잠깐 시간 좀 내줄래요?”
조명 사고로 인해 현장이 잠시 인산인해였을 찰나, 스텝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컨퍼런스 룸에서 봤던 그 흰색 볼캡 모자의 스텝이었다.
‘령’이었다.
사자가 계속해서 찾던 그 ‘령’.
스텝 중 한 명에게 들어갔다던 그 ‘령’.
눈앞에 있는 흰색 볼캡의 남자가 그 ‘령’이었다. 컨퍼런스 룸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나를 ‘인간’이라고 부르며 속으로 웃고 있었으니까.
“잠깐이면 돼요.”
그렇게 나를 향해 다시 한번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이미 알고 있던 바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단은 이를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번 더 사고를 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일종의 위협이었다.
무엇보다 이번엔 제대로 저지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향해 조명을 터뜨릴 계획. 한마디로 X친 X끼였다.
그때까지도 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쓸데없이 필요할 때 보이지 않는다. 아까까지만 해도 주변을 빙빙 돌더니.
‘일단 주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그대로 남자를 따라 장소를 이동했다. 이동한 장소는 촬영 현장에서부터 조금 떨어진 건물의 비상구였다.
하지만 오히려 촬영장에서 멀어질수록 좋았다. 뭐가 일어나든 다른 사람이 휘말릴 일은 없을 테니까.
‘령’과 관련된 일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되도록 주변에 사람이 없는 편이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순순히 ‘령’을 따라 장소를 이동한 것이기도 했고.
“원래 그렇게 예민한 편이에요?”
그 순간, ‘령’이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였다.
“무슨 말씀이시죠?”
“내가 보기엔 세현 씨는 꽤나 예민한 편인 것 같아서요.”
이내 흰색 볼캡의 스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웃었다.
그와 동시에 비상구 근처에 있던 CCTV들의 불빛이 홀로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전원이 꺼졌다.
‘그 사이 카메라 위치를 파악한 건가.’
귀신 주제에 제법 치밀하다.
“저거 너무 귀찮아서. 여기서 생긴 일이 노출이 되어선 안 되니까 말이야. 근데···전혀 놀라는 얼굴이 아니네?”
그리고 그 스텝은 이제 완전히 몸을 돌려 내게로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와중에 들리는 반말이 거슬렸다.
“아뇨, 충분히 놀라고 있습니다.”
“놀라고 있다고?”
“네.”
그러자 남자가 갑작스레 킥킥거리며 웃는다. 당연하게도 일단은 시치미 떼기다. 여기서 정체를 알고 있다고 까서 좋을 게 없으니까.
“내 눈엔 아무리 봐도 아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야. 내가 누군지.”
그리고 그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비상구의 모든 문이 잠겼다. 주변이 완전히 봉쇄되었다.
* * *
위층, 아래층 할 것 없이 주변에 있던 문들이 모두 그대로 잠기었다. 당연하게도 CCTV도 다 꺼진 상태고.
그렇게 이 공간 속에 남은 건, 숨 막힐 듯 고요한 침묵뿐이었다.
‘아무리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해도 이 정도 능력은 너무 사기적인 거 아니냐.’
실제 귀신같은 행동을 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어이가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곱게 나갈 거란 생각은 안 하긴 했지만······.
“아까 거기서 보는데 딱 느낌이 오더라고. 아, 저 인간, 눈치를 깠구나-하고.”
“죄송하지만, 여전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거짓말해봤자 소용없어. 너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잖아. 내가 누군지.”
동시에 목소리가 바뀌었다.
가라앉듯 묵직하고도 낮은 목소리.
마치 음성 변조라도 한 듯 노이즈가 섞인 듣기 힘든 목소리였다.
“내가 어떻게 도망을 나왔는데···그런 의미에서 위험 요소는 즉시 처리할 생각이야.”
여전히 듣기 힘든 목소리로 남자가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남자가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역시 이런 전개인가.
전혀 예상 못한 행동은 아니었다.
일단 들리는 게 있었으니.
그렇게 빠르게 다가오는 남자의 주먹을 간발의 차이 정도로 피했다.
‘싸움엔 전혀 취미가 없지만······.’
쿵!
그와 동시에 스쳐 지나간 남자의 주먹이 벽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X친, 이 정도면 한 방 맞으면 바로 저세상행이겠는데.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를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어이가 없었다. 이거 현실감이 너무 없는 거 아니냐고···.
“쥐X끼 같은 구석이 있네···.”
남자가 다시금 킬킬대며 말했다.
그 뒤로도 주먹은 여전히 쉴 틈 없이 날아들었다.
체구가 저렇게 크니 원래도 힘이 엄청났을 것 같은데, 거기에 초자연적인 힘까지 섞이니 시너지가 배였다.
쿵!
‘아, 젠장!’
그러던 중, 순간적으로 눈앞으로 튄 벽의 파편으로 인해 잠시 시야가 가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지금!”]
그대로 복부를 향해 날아드는 주먹에 이를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으나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퍽!
이런, X발······.
“아, 역시 쥐X끼잖아. 그걸 그새 막으려고 드네.”
“콜록콜록!”
그대로 시야가 휘어짐과 동시에 배를 감싼 채로 몸을 잠시 휘청였다. 끝도 없이 나오는 기침에 폐가 다 아파올 지경이었다.
‘···토하지 않은 게 다행이군.’
폐뿐만이 아니었다.
맞은 배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단순히 주먹에 맞은 느낌이 아니었다.
묵직한 돌덩이 같은 무언가가 복부를 강하게 강타한 느낌이었다.
‘하, X발. 오늘 촬영해야 하는데.’
와중에 촬영 생각부터 났다.
아직 촬영해야 할 분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나마 맞은 게 배라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흔들거리는 시야를 간신히 잡고 있는데, 그 순간 남자가 내 머리를 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동시에 등 뒤로 강한 충격이 일었다.
“얼굴 보니 아직 살 만한가 보네?”
눈앞으로 킬킬 웃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금 나를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피해야 하는데, 배를 맞은 영향인지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렇게 어거지로 몸을 움직였다. 여전히 토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퍽!
그렇게 힘껏 날아든 남자의 주먹을 팔로 빠르게 막았다. 그러자 곧바로 당황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작으로 남자의 정강이를 빠르게 걷어찼다. 동시에 남자가 ‘윽-’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내게서 떨어졌다.
그렇게 남자의 손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조금 전 주먹을 막았던 팔이 말도 못하게 욱신거렸다.
‘되도록 직접적인 타격은 주고 싶지 않았는데.’
내용은 령이라고 해도 겉은 어쨌든 사람이었다. 그러니 되도록 다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싶었으나 당연히 생각대로 될 리가 없었다.
“칫, 쓸데없이 빠르네. 생긴 건 비실비실한 게 툭 치면 넘어갈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던 남자의 얼굴엔 여전히 여유가 가득했다. 다시금 달려들 기세에 어떻게서든 몸을 움직이려 노력했다.
“이번엔 피하기 힘들걸!”
그리고 남자는 주저앉은 나를 향해 그대로 발을 들어 올렸다. 이에 없는 힘을 쥐어짜 몸을 틀었다.
쾅!
그렇게 앞선 남자의 발길질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한 건지 찰나의 순간 어깨가 남자의 발에 쓸렸다.
쓸린 어깨가 더럽게 아팠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그대로 골절행이었겠는데.
그리고 잠깐의 틈 사이, 이어지는 동작으로 그 즉시 남자의 복부를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악!”
이번 공격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건지 남자는 그대로 비상구 문이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이런, X···!”
“···받은 건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대로 제대로 차긴 한 건지 남자는 그대로 배를 잡은 채 조금 휘청거렸다. 차면서도 묵직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먹히긴 먹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자는 아까보다 더욱 눈이 뒤집힌 얼굴로 나를 향해 다시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어깨까지 맞은 터라 이번엔 아까보다 더욱 피하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피할 생각 따윈 없었다.
‘거리는 대충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그리고 난 그대로 가지고 있던 키링을 꺼내 들었다. 사자에게서 받은 키링이었다.
사자는 이전에 말했다.
‘령’과 직접 대면했거나 그로 인해 위험한 순간이 오면 이걸 사용하라고.
- 사용 방법은 대충 거리를 벌린 다음, 키링을 3번 터치한 뒤 ‘령’을 향해 던지면 돼. 간단하지?
와중에 사자의 그 능글맞은 얼굴이 떠올랐다. 간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다시 보면 그대로 등짝을 걷어찰 생각이었다.
“이야야아악!”
생각보다 빠르잖아.
그리고 남자가 그렇게 달려들려는 순간, 나는 그대로 키링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아슬아슬할 것 같았다.
─끼익!
쾅!
“윽!”
그런데 그 순간, 남자의 등 뒤에 있던 비상구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자는 갑작스럽게 열려진 그 비상구 문에 악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뭐야?’
동시에 보이는 눈앞의 여성.
큰 키의 긴 생머리. 그리고 선글라스.
이전에 본 적이 있던 여성이다.
“아, 이런. Sorry.”
그리고 나를 보더니 앞선 말만 남겨 놓은 채 이내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황당했다.
“이런, X······.”
그렇게 밀려난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채로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타격이 컸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살려 나는 키링의 터치하는 것을 마무리했다. 동시에 키링을 남자를 향해 빠르게 던졌다.
남자는 그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난 그런 남자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잘 가라.”
“뭐?”
뭔진 모르겠지만, 분명 ‘령’에게 타격이 있는 것일 터였다. 그러니 위험한 상황에 사용하라 한 것일 테고.
그리고 그게 뭔지는 얼마 안 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검은 블랙홀 같은 무언가가.
공중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것은 이내 남자에게서 무언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으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남자는 악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남자의 목소리가 아닌, 이상한 노이즈 같은 것이 얼핏얼핏 귓가로 들려왔다.
블랙홀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덩이는 남자에게만 철저히 타격을 주고 있었다. 반면, 이쪽엔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 만큼의 살랑이는 바람만이 불어올 뿐이었다.
“잘했는데.”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타났다.
“아주 훌륭해.”
등짝을 걷어찰 사자가.
* * *
눈앞으로 나타난 사자.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자는 지금 앞서 형성된 블랙홀과 함께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동시에 여전히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주 커다란 무언가가. 다만,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곤 뭔가에 괴로워하는 남자의 모습뿐이었다.
─슉!
그리고 그 순간, 블랙홀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남자가 머리를 쥔 채로 눈앞에서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 주변은 그렇게 다시 고요해졌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마냥.
“···끝난 거예요?”
“응.”
허공에 떠 있던 사자 역시 그대로 지면에 발을 안착시켰다. 정말로 모든 게 끝난 것이었다.
“하······.”
그렇게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다행이다.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어서.
스텝들, 그리고 멤버들. 다른 사람들이 엮이는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동시에 눈이 무거워지면서 시야가 흐려졌다.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인가. 그 상태로 잡고 있던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맞은 배와 팔이 욱신거렸다. 어느새 귓가에는 ‘삐-’하는 소리가 웅웅대며 울려댔다. 촬영, 마저 하러 가야······.
“잠깐, 야?”
어느새 눈앞까지 온 사자가 놀린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쓸데없이 그러고 있지 말고 뒤처리나 좀 하라고. 그렇지만 목소리가 안 나왔다.
철컥철컥!
쾅!
그때, 비상구 문이 크게 흔들렸다.
누군가 온 건가.
무슨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한데, 정신이 흐릿해서 그런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멤버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리고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