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63화 (263/413)

263화. 뒤처리는 깔끔해.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늘 보던 천장이 아니었다.

정신이 희미한 탓인지 아직까지 여기가 어딘지 제대로 구별이 되지 않았다.

“세현아!”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차선빈의 얼굴이 보였다. 평소와 달리 얼굴의 미간이 많이 구겨져 있었다.

“우세현, 일어났다고?”

“세현이 일어났어?”

“형!”

뒤이어 다른 멤버들이 내게로 우르르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저마다 얼굴에 걱정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왜 그런 표정들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한쪽 팔을 들어 보니 링거가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달갑지 않은 상황에 머리가 절로 지끈거렸다.

“···촬영은?”

“지금 촬영이 문제냐? 상태 안 보여?”

“촬영은 일단 거기서 마무리 지었어. 남은 분은 다음에 다시 날짜 잡기로 했고.”

도운이 형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결국···그렇게 된 건가.

“그래도 의식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너 계단에서 굴렀다고 했을 때, 나랑 애들이랑 얼마나 놀랐는 줄 아냐?”

“뭐?”

계단? 계단에서 굴러?

“스텝분 넘어지는 거 도와주려다가 같이 굴렀다면서? 그래서 그때 발견하고 아주 난리였어.”

“그래도 크게 안 구른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어디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대요.”

앞선 일에 대한 과정은 다소 이야기가 바뀌어져 있었다.

듣자하니 ‘령’이었던 스텝과 내가 동시에 계단을 굴렀고, 그로 인해 둘 다 타박상을 입게 되었다는 것으로 말이 바뀐 것 같았다.

그리고 해당 스텝은 마찬가지로 다른 병실에 입원 중인 상태고. 역시나 생명의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사자가 정말 뒤처리를 제대로 한 건가.’

일단 사건의 경위는 대충 잘 만들어낸 것 같고 거기에 ‘계단에서 스텝과 같이 굴렀다.’라는 말을 다들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상황도 그렇게 보이도록 잘 정리를 한 듯 했다.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숨 놓았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나름 이렇게 납득이 갈 만하게 조치를 취했네.

“뭐야, 우세현. 왜 일어나?”

“이제 멀쩡해.”

단순 타박상인 것 같고, 거기에 정신도 들었으니 더 이상 누워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이제 바로 퇴원을 하면······.

“X랄 한다.”

그 순간, 안지호가 내 어깨를 밀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밀림에 그대로 몸이 다시 침대 위로 빠르게 눕혀졌다.

“일어나자마자 퇴원은 무슨 퇴원. 타박상이라도 2~3일 정도 더 입원해 있으라는 게 의사 소견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입원은 왜 더 하는데?

어차피 가벼운 타박상 아닌가.

그렇게 앞선 말이 이해가 안 돼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차선빈이 뒤에 있던 베개를 정리해주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말씀이 상처가 타박상이긴 한데, 몸 밸런스가 너무 많이 깨진 상태래. 그래서 뒤늦게 후유증 같은 게 있을 수 있다고 며칠 더 입원해 있으라고 하셨어.”

밸런스···이거 그냥 피로 누적이라는 거 아닌가. 그런 걸로 굳이 계속 입원할 필요가 있나.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그냥 그렇게 해. 정말로 후유증 같은 게 올 수도 있는 거잖냐.”

“그래, 그러니까 그냥 닥치고 누워 있으란 소리다.”

그렇게 말하던 안지호가 저 멀리 있던 이불을 다시 끌어와 그대로 내 무릎 위로 대충 올려두었다.

“기사는?”

“그것도 이미 회사에서 다 처리해둔 상태야. 치료 후 휴식. 그러니까 그런 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도운이 형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마 활동이 끝나서 다행인가.

아니었다면 더 끔찍할 뻔했다.

“너 진짜 그때 보고 얼마나 놀란 줄 아냐. 비상구 문은 잠겨 있지, 근데 열고 나니까 넌 쓰러져 있지, 차선빈이 그대로 너 업고 차로 달렸어.”

“고마워.”

그러자 차선빈은 여전히 한껏 걱정이 담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때 누군가 쾅쾅대는 걸 듣긴 들었는데. 역시 멤버들이었나.

“아, 가장 먼저 문을 연 건 안지호다. 너 없다고 안지호가 갑자기 찾길래 같이 찾아 나섰는데, 그때 딱 뭔가 저쪽이 구리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열어봤더니 그대로 빙고. 감이 엄청 나.”

“안지호가 문을 열었다고?”

의왼데?

안지호가 그런 힘이?

“뭐,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안지호가 미간을 잔뜩 좁힌 채로 말했다. 이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멤버들은 한동안 병실에 머물렀다. 괜찮으니 가보라고 해도 다들 어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저녁 먹으라고 찾아온 매니저 형으로 인해 멤버들은 그제서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다들 여전히 시원치 않다는 표정이다.

“안 먹어도 되는데.”

차선빈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차선빈을 백은찬이 데리고 나가줬다. 와중에 잘했냐고 칭찬해달라는 얼굴이라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잘하긴 잘했다.

그렇게 멤버들은 다시 오겠다며 먼저 병실을 나섰다.

‘그럼 이제······.’

사자를 만나야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고요해진 병실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뇽.”

사자였다.

* * *

눈앞에 나타난 사자는 촬영 현장에서 봤던 복장과는 다른, 언제나와 같은 검은색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아까 문틈 사이로 보였어요. 계속 밖에 있던 거예요?”

“잠깐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이야기?

사자가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던가?

“있지. 여기.”

─휘익!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부터 갑작스럽게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미 낯익은 얼굴이었다.

“안녕.”

그 여성이었다.

촬영 건물 앞에서, 그리고 비상구 계단에서 봤던 그 선글라스를 낀 긴 머리의 여성.

잠깐만, 그렇다는 건 결국······.

“이쪽은 나와 같은 저승사자.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야.”

* * *

나타난 여성은 사자의 동료.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저승사자였다.

“···이쪽도 저승사자라고요?”

“맞아. 이 근방에 올 일이 있어서 잠깐 우연히 만나게 됐지. 그런데 그 ‘령’의 이야기를 듣고 확인차 현장에 들러본 모양이야.”

해당 사자도 마찬가지로 까만 중절모에 까만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이제 보니 저승사자는 모두 복장이 동일한 듯 싶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이번 일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지.”

“네, 뭐······.”

결정적인 도움까진 아니지만.

그보다도 이 사자는 내 능력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건가.

“생각을 읽는 능력. 처음 들었을 때 꽤나 신박해서 놀랐어. 이제까지 그런 능력을 가진 인간은 본 적이 없거든.”

말하는 걸 보니 이미 사자가 내 능력에 관해 설명을 마친 상태인 듯 했다.

이대로 능력을 발설하는 건 달갑지 않지만,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긴 했다.

그보다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을 해둔 거지.

“나도 이 인간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돼서 놀랐어. 오히려 다행이었지. 마침 필요할 때에 다시 만나게 됐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사자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충 우연히 만나게 되어 우연히 도움을 줬던 걸로 말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물론 그게 맞긴 하지만, 말하는 걸 들어보니 첫 만남 이후 사자와 내가 계속해서 커넥션을 가지고 있던 것과 사자가 준 능력이 온오프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은 듯 했다.

다른 것보다도 온오프에 관한 건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특히나 이전에 사자가 말하길, 다른 것보다 이 온오프 능력이 윗선에 알려지는 건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가 있었다.

“그것보다 중간엔 어디 갔던 거예요?”

“명이 여기 있는 걸 봐서. 그래서 잠깐 만나 대화를···아, 이 사자의 이름이 ‘명’이야.”

사자가 옆에 있던 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명이라는 그 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대로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이름 같은 게 아니야. 그냥 부르는 호칭일 뿐이지. 사자에게 부여되는 이름 같은 건 없어.”

“그래도 서로 사자님, 사자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각자에게 붙여진 호칭 같은 건 있는 편이지.”

그렇다면 사자에게도 뭔가 이름 비슷한 게 있다는 거군. 생각해보니 그간 이름이 뭔지는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한 것 같다.

별로 안 궁금해서.

“어쨌건 명을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하필 그 상황에서 일이 벌어진 거지.”

“중간에 도와주신 건 감사합니다.”

나는 그대로 ‘명’이라는 사자를 향해 인사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자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그때 비상구 문, 일부러 여신 거죠?”

“···뭐, 그런 셈이지.”

‘명’ 사자가 무심한 얼굴로 답했다.

그때 분명 비상구 문을 잠긴 상태였다. 그럼에도 문이 열렸다는 건, 사자의 힘이 작용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타이밍도 타이밍이었고.

그때 만약 문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다시 기습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이 인간, 눈치가 좋은걸.”

“그렇지? 그래서 대화하기 참 편해.”

지금까지 대화하기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거냐. 이쪽은 대화할 때마다 열이 받았는데.

“어찌 됐건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내 담당은 아니지만, 이쪽 일을 해결해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명’이 그렇게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내게 인사를 전했다. 인사를 받을 정도로 한 건 없긴 한데.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조언을 해주지.”

“예?”

“되도록 다른 사자에게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거야. 네 능력.”

갑작스러운 조언이었다.

“그 능력. 그런 걸 가지고 있다는 걸 혹여 다른 사자가 안다면, 분명 호기심을 자극할걸.”

“능력에요?”

“아니. 너에게.”

‘명’이 그대로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로 말했다. 그 목소리가 꽤나 진지했다.

“호기심이란 꽤 무서운 거거든. 게다가 네 능력은 오늘과 같이 활용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되도록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해.”

“···조언 감사합니다.”

다소 불안한 조언이긴 했으나 그보다 여기서 더 사자와 마주칠 확률이 있을까.

애초에 이렇게 마주치게 된 것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다. 일단 내 쪽에서도 이 이상 아는 사자를 늘리는 것도 사양이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사자가 그렇게 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평상시 말투보다 진지함이 조금 더 배어있는 말투였다. 전혀 안 어울렸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니 일이니까.”

“어? 가려고?”

“응.”

뒤이어 ‘명’은 짧은 순간, 나를 잠시 응시했다. 그리고는 곧 얼마 안 가 처음 등장한 것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쨌건 이번엔 정말 고생 많았어. 그런 의미에서 상처는 깨끗이 낫도록 했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그렇다기엔 타박상이 그대로인데요.”

“원래의 니 상처는 타박상 정도로 끝날 게 아니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러자 사자가 다시 대답했다.

“왼쪽 어깨 골절, 갈비뼈 골절, 심각한 내부 장기 손상. 그게 원래의 지금 네 상태야.”

···그게 원래의 상태라고?

“원래라면 대수술감이지. 하지만 그게 없어지고 타박상으로만 남은 건 순전히 내 힘 덕이지. 손을 좀 썼어. 내가.”

“상처를 낫게 했다는 말이에요?”

“맞아.”

사자에게 그런 힘도 있는 거였냐.

그런 의미에서 새삼 놀랐다.

생각보다 할 줄 아는 게 많았다.

“그 흔적이 결국 타박상 정도로만 남은 것뿐이고 아마 그 타박상도 몇 시간 후면 고통 없이 멀끔하게 나아 있을 거야. 그렇게 해두었으니까.”

“···그건 다행이네요.”

“이 정도 치료야 껌이지. 게다가 업무 관련 일에 휘말린 만큼 책임은 확실하게 질 생각이니까 말이야.”

그래도 책임감이 없진 않군.

그 덕에 복귀는 빠르게 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러니 이대로 조금 더 쉬었다가···.”

쾅!

그런데 그때,

순간적으로 병실 문이 강하게 열렸다.

동시에 누군가 내가 있던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아······.”

이내 들어온 이의 모습에 나와 사자가 동시에 이를 보며 탄식했다. 아, 잠깐만.

“···어떤 X끼 짓인가 했더니 니 X끼 짓이었구나.”

형이었다.

그것도 아주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살벌한 얼굴의.

“이 X발 사자 새X.”

그렇게 화가 난 얼굴의 형이 사자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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