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역시 숙소가 최고다.
“오랜만에 세현이랑 좀 놀려고.”
신도하가 그대로 소파에 앉은 채로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처음엔 그냥 하는 말인가 싶었는데, 하는 걸 보니 당황스럽게도 정말로 그럴 생각처럼 보였다.
“X랄 말고 꺼져.”
당연히 형의 반응은 안 좋았다.
“너무 날 세우지 마. 너도 휴식이 좀 필요할 거 아니야. 급하게 온 걸 테니 스케줄 정리도 필요할 테고.”
“그렇게 위선 떨 거 없어. 내 동생을 너한테 맡길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형이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표정만 웃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형과 신도하 사이에서 한동안 팽팽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게 바로 기싸움인가.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졌다.
“형, 근데 정말 일은 괜찮아?”
안 그래도 조금 전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으니 혹시나 일이 있거나 한다면 역시나 가는 게 맞았다.
신도하 말처럼 급하게 온 터라 정리도 필요할 테고.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해. 그리고 방금 정리하고 왔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형이 단호하게 말했다.
정리를 하고 왔다고는 하나 걱정이 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정말로 잘 정리한 거 맞겠지.
하지만 그 뒤로도 형의 입장은 여전히 완고했다. 신도하는 그런 형을 잠시 바라보는 듯 하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며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현이가 참 한 고집해, 그렇지?”
신도하가 나를 향해 말했다.
솔직히 그것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 바였다.
그리고 형은 그런 신도하를 여전히 짜증 섞인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양보할게. 병원이기도 하니.”
“양보? 웃기는 소리 하네.”
“퇴원하면 보자. 그때는 생화로 준비해놓을 테니까.”
“아, 네.”
사실 그거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와중에 꽤나 진지하게 말하는 터라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말인데.”
이어서 신도하가 내게 순간적으로 훅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다가옴에 잠시 멈칫했는데, 동시에 신도하가 내게 뭔가를 조용히 속삭였다.
“이 X끼가 또 친한 척······.”
그리고 그 순간, 형이 빠르게 다가왔다.
뒤이어 이를 본 신도하가 그 즉시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병실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럼 나중에 보자, 세현아.”
“네. 오늘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래. 몸조리 잘하고.”
그렇게 신도하는 손을 흔들었고, 이내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걸음을 잠시 멈추더니 이내 형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도현이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 말에 형이 기가 찬다는 듯 실소했다. 하지만 신도하는 그런 형의 반응이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전히 손을 흔들어댔다.
“저 새X가 뭐라고 했어?”
“별말 안했어. 그냥 식사 잘 챙겨 먹으라던데.”
“진짜냐? 그게 다야?”
“응.”
정말로 그게 다였다.
마치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 마냥 분위기를 잡아대긴 했지만, 실상은 그저 잘 먹고 잘 쉰 다음 퇴원 잘하라는 말이었다.
“거슬려.”
그럼에도 형은 여전히 뭔가 찜찜한 것인지 미간을 잔뜩 좁혔다. 참, 사이가 안 좋은 건 여전하다.
* * *
다음 날 오전에 곧바로 퇴원 수속을 거쳤다. 매니저 형은 물론이고 형 역시 그때까지 계속 함께 있는 채였다.
“형, 안 졸려?”
“별로.”
“불편하니 그냥 집 가서 자라니까.”
“가면 불안해서 못 자.”
차라리 병원에 있는 마음이 놓인다며, 형은 그렇게 병실 안에 있던 내 짐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근데 설마 이거 숙소까지 가져갈 거냐?”
형이 신도하가 준 꽃다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신도하가 준 조화 꽃다발은 일단은 퇴원을 할 때까지는 잘 보존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따금씩 꽃다발을 볼 때마다 형이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는 통에 되도록 꽃의 생존을 위해 되도록 눈에 안 띄게 하고 싶었으나 워낙 크기가 컸던 터라 그것도 불가능했다.
“응. 가져가려고.”
“···형이 가져갈까?”
“아니. 그냥 내가 가져갈게.”
그러자 형이 다시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노려봤다. 여전히 찜찜한 모양인가 보다. 그래도 선물이라고 가져온 건데 챙겨야지.
꽃은 어제 받은 그대로 예쁘게 피어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보니 예쁘긴 하다. 근데 이거 어디에 두지.
퇴원 후에는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막상 숙소를 보니 왠지 모를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다. 뭔가 집에 온 느낌. 역시 병원은 불편하다.
그리고 현관문을 여는데, 그 순간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서 튀어나왔다.
“Welcome!”
“어서와요, 세현이 형!”
동시에 뭔가가 터졌다.
자세히 보니 꽃가루 같은 게 공중에서 춤추고 있었다.
“···이건 뭐야?”
“퇴원 축하 파티요! 세현이 형, 퇴원했으니까 다 같이 파티 하려고요~”
“병원 밥 먹으라 고생했을 거 아니냐. 그래서 파티 기념해서 오늘은 너 맛있는 거 먹이려고.”
“세현아, 짐 이리로 줘.”
그대로 가지고 있던 짐을 차선빈과 도운이 형에게 건네주었다. 천천히 보니 멤버들은 저마다 머리에 고깔모자 같은 걸 쓰고 있었다.
“안지호도 썼네?”
“당연히 써야지. 파티인데.”
“씌우느라 힘들긴 했지.”
“그래도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자 안지호가 한숨과 함께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잘 어울리긴 하네.
“자, 너 것도 미리 준비를 다 해놨어.”
그러더니 곧 백은찬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화려한 하트가 달린 고깔모자 하나를 내 머리 위로 씌웠다.
“머리가 작아서 그런지 형은 고깔도 찰떡이네요.”
“아, 케익 어디에 뒀어요?”
“선빈이가 가지러 갔어.”
“케익 여기 있어.”
그대로 차선빈이 기다렸다는 듯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잠깐 없어졌다 싶더니 케이크를 가지러 갔던 모양이었다.
케이크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로 위에는 하트 모양 초가 하나 꽂혀 있었다.
“자, 그럼 불어라!”
“아, 소원도 빌어요!”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
“니들이 말하면서 끄겠다.”
안지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에 나는 그대로 초를 한번 짧게 바라본 뒤, 눈앞의 초를 살짝 불었다. 그러자 살랑이던 촛불이 눈 깜짝할 사이에 꺼졌다.
“우세현, 퇴원 축하!”
“퇴원 축하해.”
“퇴원 축하해요, 형!”
그 순간, 퇴원을 축하한다는 목소리가 숙소 안에 신나게 울려 퍼졌다. 그걸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제서야 숙소에 왔다는 실감 났다.
고작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자, 그럼 이제 밥을 먹으러 가볼까?”
“세현이 형 온다고 해서 맛있는 걸로 준비를 해놨어요!”
“뭔데?”
“스테이크.”
역시 메뉴 선정 한번 기깔 난다.
그리고 눈앞에 스테이크를 보니 이제야 정말로 퇴원을 했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물론 아까도 그런 기분이 들긴 했지만.
“잘 구웠다. 이거 누가 구웠어?”
“지호 형이요.”
“고기는 내가 사옴.”
“잘했다.”
그러자 백은찬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멤버들과 함께 안심 스테이크를 맛있게 썰었다.
* * *
퇴원 후에는 금방 일상으로 다시 복귀했다. 이후에 듣자 하니 함께 입원했던 스텝 역시 내가 퇴원한 이후로 얼마 안 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여기에 사자가 당시 상황에 맞게 손을 써놓은 덕에 자신이 계단에서 구른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었고.
“어쨌든 이로써 잘 마무리가 된 거지.”
사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날 이후, 다시 한번 사자를 찾았다.
좀 더 정확한 당시 뒤처리 상황이라든가 내가 기절한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등을 묻기 위해서였다.
“혼파망이었지, 혼파망. 특히나 너희 멤버들 얼굴이 아주 사색이 되는 바람에······.”
이래서 멤버들이 제일 먼저 발견하지 않기를 바랐던 건데. 그래도 사자가 손을 쓴 다음 발견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그 날은 나도 진땀을 뺐다고.”
“사건 날이요?”
“아니. 병실에서 형님이랑 마주쳤을 때.”
아, 그때.
그때 분위기가 좀 그렇긴 했지.
“그때 형님 눈 뒤집어 진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어우, 무서웠어.”
사자가 다시 생각해도 소름 끼친다는 듯 그대로 어깨를 몇 번 쓸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까지 무서운 일인가. 사자 양반이.
“니가 뭘 몰라서 그러나본데. 너희 형님은 그게 있어, 그게.”
“그거요?”
“그러니까 파장이 안 맞아. 이쪽이랑.”
“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아-주 가끔, 가끔씩 그런 인간들이 있어. 이쪽과 파장이 안 맞는 인간들. 이쪽 말로는 기가 세다는 표현을 쓰는 것 같은데.”
“아, 그런 얘기였어요?”
난 또, 뭔가 했네.
그런데 사자는 그런 내 반응에 어이가 없다는 듯 더욱 흥분한 채로 말했다.
“이건 정말 특이한 거라고! 이런 인간, 흔치가 않아요.”
“아, 네. 기가 센 사람이 많지 않긴 하죠.”
“그냥 센 것도 아니야. 아주 웬만한 령들은 알아서 피할 정도라고.”
그런 거라면 괜찮은데.
적어도 형한테 뭔가 붙을 일은 없을 테니.
“사자가 불편한 정도인데, 일반 령들은 어떻겠어. 아무튼 너희 형님은 이쪽이랑 안 맞아.”
“안 맞는 편이 이쪽 입장에선 좋긴 한데요.”
“뭐, 인간의 입장에선 그렇겠지만.”
그러고 보니 사자가 예전부터 형 얘기를 할 때면 종종 질색하는 표정을 보이곤 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런 방면이었던 모양이다. 단순히 첫 만남이 안 좋아서 그런 줄 알았지.
“아무튼 당분간 사릴 생각이야.”
“당분간이 아니라 영원히 사려주시죠.”
“영원히라 단정 지을 수 있는 게 어딨겠어.”
그렇게 사자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건 영 불안한 말인데.
어쨌든 이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피곤하고 골치 아프긴 했다.
그 이후로 형도 걱정이 된 건지 전보다 연락을 자주 하고 있었고. 그러니 나 역시도 몸을 사릴 생각이었다.
이전에 말했듯 이런 귀찮은 일에 엮이는 건 사양이니까.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회사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와 멤버들과 함께 출근했다.
그대로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니 그곳엔 익숙한 얼굴이 먼저 와 자리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윈썸.”
“안녕하세요, 이사님.”
정서준 이사였다.
그리고 정서준 이사는 나와 멤버들을 웃는 얼굴로 반기었다. 급한 일이라 소집한 것 치곤 꽤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아, 세현 씨는 이제 몸이 좀 많이 괜찮아졌나요?”
“네.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졌다니 다행이네요. 처음에 얘기 들었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렇게 형식적인 인사가 잠시 오간 뒤, 멤버가 모두 착석했다는 것을 확인한 정서준 이사는 이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여러분들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중요 소식을 하나 전달하기 위해서예요.”
“중요 소식이요?”
“예.”
정서준 이사가 대답과 함께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소식이라 할 만한 게 뭐가 있지.
“바로 콘서트죠.”
“네?”
그 순간, 나를 포함한 멤버들의 시선이 정서준 이사에게로 향했다.
“네? 뭐요? 콘, 뭐요?”
“콘서트 말이에요. 여러분들의 단독 콘서트.”
그리고 이를 들은 멤버들은 제각기 놀란 표정을 보였다.
앞서 이야기한 중요 소식.
그건 바로 윈썸의 첫 단독 콘서트를 말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