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첫 콘서트가 끝난 후에
“자, 도운이 형. 건배사 한번 해주시죠.”
“어제, 오늘 모두 수고 했고, 앞으로도 이 분위기 이대로 계속 끌고 가자.”
“치얼스!”
그렇게 6개의 잔이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콘서트가 끝난 이후, 그에 대한 뒤풀이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 가지는 뒤풀이는 우리끼리 가지는 두 번째 뒤풀이였다.
첫 번째는 고깃집에서 스텝들과 다 같이. 그리고 숙소에 돌아온 뒤 이대로 잠들긴 아쉽다 싶어 한번 더 멤버들과 모였다.
“와인잔에 사이다라니······.”
“참거라. 앞으로 약 한 달이다.”
“와인잔에 마시는 사이다도 분위기 있고 좋다고요.”
“아, 그래?”
그렇게 말하던 백은찬이 남아 있던 사이다를 하람이의 잔에 조금 더 따라주었다. 그리고는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다.
대놓고 약 올리는 얼굴이다.
“막내한테 그러지 마라.”
“무슨 소리야. 난 그냥 잔이 비었길래 따라줬을 뿐인데~”
그러면서 목소리엔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하다. 아직도 놀리는구만.
하지만 하람이는 마치 그런 백은찬에게 보라는 듯이 잔에 있던 사이다를 여유로운 모습으로 마셨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병과 함께 6개의 와인잔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미성년자인 하람이만 사이다. 나머지는 레드 와인이다.
해당 와인은 회사에서 콘서트를 무사히 끝냈다는 의미에서 준 기념 와인이었다.
“이거 맛이 괜찮네.”
“그러게. 나쁘지 않네.”
“도운이 형이 잘 따서 그런가 봐요.”
“딸 줄 아는 게 도운이 형밖에 없으니까.”
와인은 딸 줄 알았던 게 도운이 형뿐이었던 터라 형이 나서서 한 잔 한 잔 와인을 따랐다. 그렇게 가볍게 한 잔씩.
1차에서 술을 마신 사람이 없었기에 당연하게도 취한 사람은 없었다. 그나저나 와인은 처음 마셔본다.
“도운이 형은 많이 마시지 말고요.”
“이 정도는 괜찮다.”
“막내가 지금 맏형 걱정하는 거야? 사이다를 손에 든 채?”
“제가 또 든든하잖아요.”
“맞아. 하람이 든든해.”
“세현이 형···. 감동···.”
그러자 하람이가 나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였다. 든든하지. 그래. 이렇게 든든한 막내가 어딨다고.
“근데 난 아까 마지막에 슬로건 보는데 순간 울컥했다니까.”
“맞아요. 저도 울컥할 뻔했어요.”
“그리고 옆에 있는 차선빈을 딱! 봤는데!”
“봤는데?”
“방긋방긋 잘 웃고 있더라고. 난 솔직히 차선빈 울 줄 알았다.”
그러자 잔을 입가에 대려던 차선빈이 그대로 하던 것을 멈춘 채 이쪽을 바라봤다.
“울컥하긴 했어, 나도.”
“그래도 울진 않더라고.”
“하긴, 선빈이 형 첫 1위 했을 때도 울었었죠.”
“그러고 보니 그때 누가 울었지? 우세현이 울었나?”
안 울었다.
“안지호가 울었었나?”
“뭐라는 거야.”
“안지호가 울었네. 안지호가 울었어!”
그렇게 백은찬이 안지호를 가리킨 채로 호들갑을 떨었다. 이에 안지호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잔을 들이킬 뿐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한번도 안 운 사람은 지호 형뿐일걸요?”
“다 한번씩은 울었나? 우세현, 넌 언제 울었어?”
“나 우리 파이널 때.”
“아아. 그때 차선빈하고 눈물의 파이널을 했었지.”
플온스 파이널날.
차선빈과 함께 무대 위에서 울었던 그 날을 말하는 거였다.
근데 생각해보니 정말 안지호는 우는 걸 떠나서 그렁그렁 자체를 못 본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안지호가 다 마신 와인잔을 그대로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오늘 무대 좋았다, 우세현.”
순간 마시던 와인을 뱉을 뻔했다.
갑자기 뭐냐.
“···뭐야?”
“아, 이거 말 돌리기네. 말 돌리기.”
“눈물 말고, 무대 얘기하자고. 무대.”
그런 안지호의 잔에 백은찬이 조용히 와인을 더 채워 넣었다. 그리고는 곧 나를 향해 말했다.
“근데 정말 우세현 오늘 좋았다.”
“맞아. 세현이 오늘 좋았어. 유닛 때도 화음 하기 더 편하더라고.”
“아, 그거 진짜 잘 맞았어요!”
“대기하면서 저희끼리 감탄했잖아요.”
갑작스럽게 흐름이 넘어갔네.
근데 개인적으론 나보단 다른 멤버들이 더 좋았다.
단체, 유닛 할 것 없이 꽤 만족스러워서. 개인적인 만족보다는 멤버들이 잘한 것에 대한 만족이 컸다.
이런 걸 보통 자부심, 이라고 하나.
그런 게 느껴졌다.
보통의 음악 방송을 할 때와는 달랐다.
확실히 콘서트는 그 느낌이 달랐다.
분위기도, 느낌도, 무대에 오르는 기분도. 모든 것이 일반적인 무대와는 달랐다. 근데 그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난 ‘나의 목적지’할 때가 좋았어.”
“나의 목적지? 그거 진짜 팬들이랑 같이 부르는 거 기분 좋지 않냐?”
“전부 같이 불러주시니까. 게다가 슬로건도 너무 예뻐.”
“그래서 챙겨왔잖아요.”
“안 구겨졌지?”
“당근이죠.”
가장 좋았던 무대는 역시 ‘나의 목적지’다. 그때 본 풍경, 그 당시의 기분.
공연이 끝났음에도 그런 것들이 아직까지 생생했다.
예전에 객석에서 형의 콘서트를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또 다르게 벅차올랐다.
무대는 역시 다르다.
“우리 다음은 어디였지?”
“아마 LA일걸요.”
“아, 빨리 가고 싶네.”
백은찬의 말처럼 빨리 다음 무대에 서고 싶었다. 더 많이. 더 자주. 어제 오늘 연속으로 3시간 넘게 무대를 했지만,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이런 말 하기 뭐한데, 확실히 우리는 그게 맞는다니까. 쿵짝.”
“그렇죠. 쿵짝이 맞아요!”
“얜 사이다 먹고 취했냐? 왜 이렇게 하이 텐션이야?”
“근데 정말로 그렇긴 해.”
“그런 의미에서 우세현! 가위, 바위, 보!”
갑작스러운 가위바위보 대결 선언에 빠르게 손을 들어 패를 내었다. 그 결과, 백은찬도 묵, 나도 묵이다.
“아, 이것 봐. 쿵짝이 맞는다니까?”
“이건 그냥 우연 아니에요?”
“우연이 아니에요. 쿵짝이지.”
그렇게 백은찬이 남아 있는 와인을 털어 넣었다. 우연이 아닌 건 맞았다. 이건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라.
“자, 그런 의미에서 한번 더 치얼스 하자.”
“우세현, 잔 비었다.”
“여기.”
차선빈이 곧 내 잔에 와인을 조금 따라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배. 다시 한번 잔이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이들아.”
백은찬이 그렇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얼마 안 있으면 곧 출국이었다.
그리고 그 날 가졌던 뒤풀이는 꽤 오랜 시간, 멈출 줄 모르는 채 오래도록 진행되었다.
* * *
윈썸의 1일차 콘서트가 끝난 직후, 우도현은 그대로 주차해둔 차에 올라탔다.
되도록 주변에 눈에 띄지 않도록, 카메라가 닿지 않을 곳으로 주차를 해둔 덕에 그의 주변은 현재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기분이 꽤 좋았다.
낮게 흩날리는 바람에 우도현은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은 상태였다.
오랜만에 동생의 무대를 직접 볼 수 있었으니까.
플온스도, 음악 방송도, 팬미팅도 가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뭐든 닥치는 대로 가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
평소엔 별 생각이 없다가도 이럴 때가 되면 얼굴이 알려져 있다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를 실감하게 되곤 했다.
음방 정도는 그래도 무장을 하면 갈 수 있지 않을까. 응원 왔어요, 하는 차원으로. 그것도 고려해볼 만은 했다.
그렇게 기대했던 동생의 무대는 당연히 좋았고, 늘 그렇듯 완벽했다.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을 만큼.
역시 콘서트는 올콘이 진리다.
이 말 또한 예전엔 쉽게 이해 못했던 것이었다. 똑같은 무대를 보는 게 왜 진리인지 그땐 잘 몰랐었으니.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막상 돌아갈 때가 되니 동생과 함께 가고 싶었다. 올 때는 매니저와 함께였지만 돌아갈 때는 혼자였기에.
일단 첫날 콘서트를 잘 끝냈으니 그에 관한 회포도 풀 겸 같이 가고 싶었다만, 아무래도 내일도 있던 터라 그건 어려웠다.
‘왜 그렇게 울상이었는지 알 것 같네.’
예전에 루트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어린 동생은 항상 울상인 표정을 짓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우세현은 항상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 세현아, 왜? 왜 그렇게 시무룩해?
- ···(도리도리)
그래서 그땐 콘서트가 너무 좋아, 가기 싫구나하는 마음인 줄 알았건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와중에 형 배려한답시고 어리광 한번 부리지 않았다.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된 시점부터 더욱 그랬다.
형한텐 그래도 됐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내일도 볼 수 있다는 것 정도. 내일은 마침 부모님도 오시기로 되어 있었다. 간만에 가족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차의 시동을 걸 준비를 하는데, 그 순간 차 문 밖에서부터 그림자가 하나 졌다.
똑똑.
동시에 누군가 차량 문을 두드렸다.
신도하였다.
“뭐야?”
“잠깐 대화를 좀 하면 어떨까 해서.”
그런 신도하의 말에 우도현은 잠시 대답이 없다가 이내 차량의 잠금을 풀었다. 이에 신도하는 웃으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이쪽이야말로 해야 할 말이 있어서.”
“그 말,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그 순간, 우도현이 목소리를 낮춘 채로 신도하를 똑바로 응시했다.
“접근 말라고 했을 텐데. 동생한테.”
“이전에도 말했듯이 접근이 아니라니까. 순수한 관심이고 친해지고 싶은 의욕이지.”
“관심이고 뭐고 그냥 닥치고 떨어지라고. 그딴 거 하나도 안 반가우니까.”
신도하는 그렇게 정색하는 우도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넌 나에 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너와 나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란 생각, 해본 적 없어?”
오해.
그 말에 우도현은 그대로 잠시 침묵했다. 그럼에도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였다.
“오해가 있든 말든 관심 없어.”
뭐가 됐든 관심 없었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져봤자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일 뿐이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신도하는 그렇게 작게 웃었다.
예상 못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런 우도현의 대답이. 아니, 오히려 그럴 거란 걸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생각나네.”
“뭐?”
“콘서트. 그땐 너나 나나 10대였는데.”
뜬금없는 추억 회상이었다.
신도하는 그렇게 저 멀리 보이는 고척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신도하를 보며 우도현은 그대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여전하네. 그룹에 과하게 집착하는 거.”
그리고 그 말에 이번엔 신도하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한 채였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너 설마 루트의 재결합. 그런 허무맹랑한 걸 바라고 있는 건 아니겠지?”
“허무맹랑이라. 그런가?”
“제대로 정신 나갔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다른 멤버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사실 그 중에서 가장 가능성 없는 건, 도현이 너지.”
“잘 알고 있네.”
“내가 모를 리가.”
신도하가 낮게 웃었다.
저 멀리 보이는 고척돔엔 아직까지 불이 꺼지지 않은 채였다.
이전과 달라진 것 없는 그 모습에, 신도하는 여전히 그곳에 두었던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오늘 세현이 무대 하는 거 보니까 기분이 좋더라고. 그렇게 작았던 애가 언제 저렇게 커서 저런 무대를 하나 싶고. 예전에 니 말도 생각나고.”
동생이 노래를 잘한다는 그 말.
그 말을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노래를 잘했다. 우세현은.
“그리고 세현이는, 여전해.”
순간 떠오르는 옛 기억에 신도하는 그렇게 저도 모르게 앞선 말을 내뱉었다. 반면, 그 말은 우도현의 심기를 더욱 거슬리게 했다.
“여전해? 무슨 말 하는 거냐.”
우도현이 미간을 한껏 좁힌 채로 물어왔다. 우도현으로서는 앞서 신도하가 말한 것에 관해 짚이는 게 없었기에.
‘이런. 너무 추억에 젖었나.’
이래서 과한 추억 회상은 좋지 않다고 하는 건가보다 싶었다.
그렇게 신도하는 차 문 손잡이를 당겼다. 동시에 달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대답 안 하고···.”
“아무래도 해외 공연도 한번 따라갈까봐. 오늘 무대 보니까 더 욕심나네.”
그 순간, 신도하가 우도현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인 채로 말했다.
“이 X···.”
뒤이어 우도현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신도하는 그대로 열려진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탓!
동시에 차 문이 닫히고, 그 틈 사이로 신도하는 여유롭게 손을 천천히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여전히 육두문자를 내뱉는 우도현을 뒤로한 채로 신도하는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오늘은 날이 아니군.’
중요한 얘기를 나누기엔 그다지 좋지 않은 날이었다. 우도현은 아무런 관심 없다고 했지만, 확실히 대화는 필요했다.
그게 오늘은 아닌 것 같지만.
적어도 이 장소는 아니었다.
‘집착이라···.’
과도한 추억 회상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루트. 그 이름은 그에게 있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했기에.
그렇게 신도하는 저 멀리 보이는 돔을 향해 걸어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