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며칠 전에 우연히 들었어.
역시 사람은 타인과 대면하게 되면 뭐든 아는 게 많아진다. 물론 보통은 ‘대면’이 아닌 ‘대화’겠지만,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고.
‘터뜨릴 생각이었군.’
이 X끼들.
언제 그렇듯 이화준의 생각은 참 이해하기가 편하다. 되는대로 줄줄 말해주는 터라.
‘그런 의도라면 간단하네.’
저쪽은 쉽게 포기할 거라 단정 짓는 모양인데, 그런 거라면 더더욱 양보는 없었다.
“같은 곡 할래요?”
“예?”
그러자 이화준이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배째식으로 어그로 끌기다.
커버곡을 같은 곡으로 선곡한다는 건 그야말로 어그로 끌기에 절정이었다. 대놓고 경쟁에 불을 붙이겠다는 거니까.
게다가 그 대상이 윈썸과 체이스다.
만약 방송국 놈들이 이런 X친 이벤트를 기획한다면, 당장 바닥에 드러누워야겠지만 어차피 실행 가능성 없는 것이니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말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배째식 일뿐이었다. 실제로 그럴 리가 있나. 멜로우들 마음 졸이는 꼴은 못 본다.
그리고 그 방법은 아주 잘 먹혀들은 듯 했다. 이화준은 그렇게 한동안 미친 새X인가? 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으니까.
[“그냥 객기···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 진심인데······.”]
[“이 X끼 이거, 진짜로 그러자는 거 아니야?”]
그리고 와중에 입을 다문 건 옆에 있던 명우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 다 이런 식의 반응은 전혀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 그것에 관한 건 회사와 좀 더 상의를 해보시죠. 저희도 회사와 대화를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날 X친놈 보듯이 보고 있었다. 상당히 찜찜하다는 얼굴. 생각이 많아지는 꼴을 보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뭐, 붙어도 절대 질 것 같지 않지만.’
하지만 이것과 그건 다르니까.
그리고 저쪽은 이미 본인들이 정해놓은 진짜 곡이 따로 있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보험이 있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이렇게 뭔가 일이 수 틀어질 것 같은 때엔 오히려 쉽게 발을 빼는 게 대부분이다.
어차피 진심으로 그럴 생각도 없으니 그만큼 포기가 빠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시간만 조금 끌면, 가속도가 더욱 붙을 테지.’
혼자만의 객기가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도 이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원래 라면 짧게라면 하루 만에 결정이 될 사항이다. 하지만 회사에는 조금 더 시간을 달라 이야기를 전한 뒤, 시간을 끌면 저쪽은 그만큼 불안함을 느끼게 될 터였다.
진짜로 뭔가 있는 거 아닌가하고.
미리 입질을 넣어두었으니 혹시나 정말로 그런 거 아니냐는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제 발로 발을 뺄 테지.
불안함이란 건 원래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를 키워나가는 것이니까.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입가에 더욱 미소가 지어졌다.
* * *
“그 새X 눈깔이 돌아 있었다니까?”
이화준이 그렇게 앞에 있던 체이스 멤버들을 향해 열변을 토했다.
회사로 돌아온 뒤, 이화준은 곧바로 앞서 윈썸과 있었던 이야기를 나머지 멤버들에게 풀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앞과 다르게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우세현 눈깔이?”
“어. 그렇다니까.”
“은근 노빠꾸였나보네.”
손태하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잘생긴 노빠꾸였구나.”
“지금 그게 중요하냐?”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어. 애초에 IN 엔터에서 그걸 허락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런 이화준과 다르게 명우진은 동요하는 것 없이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렇겠지만, 뭔가 이게 불안해서요. ···느낌이 안 좋아요.”
“···괜한 걱정이겠지.”
하지만 앞선 이화준의 걱정에 불을 붙이듯 돌아오는 건 좀 더 시간을 달라는 IN 엔터의 말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가 않았다.
“설마 진짜로 똑같은 걸 하겠다고 나서는 건 아니겠죠? 미치지 않고서야?”
“······.”
이에 명우진은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명우진의 마음속에서도 불안함이란 싹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의 싹은 마치 씨를 뿌리듯 주변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렇게 되자 결국 이 상황 속에서 체이스가 하게 될 선택은 하나였다.
* * *
“됐어요? 그렇게 됐어요?”
“응. 그렇게 됐다.”
며칠 뒤, 커버곡과 관련된 사항이 조율되었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Kingdom’을 하는 쪽으로.
우리 쪽에서 사전에 먼저 의사를 전달하기 전에 RA 엔터 쪽에서부터 선뜻 먼저 양보를 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해왔다.
사실 그렇게 질질 끌 사항도 아니니 아무래도 아니다 싶어 먼저 발을 뺀 거겠지.
어쨌든 이쪽 입장에선 잘된 일이었다.
거슬리던 게 사라졌으니 이제 앞으로 남은 건 결국 연습과 연습밖에 없었다.
“체이스 쪽이 물러설 줄은 몰랐네.”
백은찬이 말했다.
시작 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이제 쫀 거죠.”
“아, 우세현한테?”
그 순간, 눈이 마주친 백은찬과 신하람이 이상한 표정으로 히죽거렸다. 그 표정들은 뭐냐.
“세현이한테 왜 쫄아?”
“지난번에 얘기했잖아요. 왜, 로비에서 체이스 만났다고요.”
“아, 그때?”
그제서야 도운이 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체이스와 만났을 때, 백은찬과 안지호, 하람이 세 사람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없었던 터라.
그렇지만 그 이후에 대충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관해서는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내가 직접 한 건 아니고.
멤버들과 만나자마자 백은찬과 하람이가 열심히 떠든 거지만.
“그때 우세현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보는데 순간 섬뜩했다니까.”
“어떻게 웃었는데?”
“이렇게 웃었어요, 이-렇-게.”
그대로 하람이가 내 흉내를 내보였다. 아주 방긋 얼굴 웃는 얼굴이다. 저렇게 웃었다고? 저렇게까진 아닌 것 같은데.
“비슷하다니까.”
와중에 안지호가 팔짱을 낀 채로 한마디 얹었다. 진짜로 저렇게 웃었다고?
“우리 집 개랑.”
아, 개랑?
“너희 집 개라면, 마루?”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냐?”
“응. 잊어 먹을 건 또 뭐냐.”
분명 멋있는 강아지라고 했었지.
그래서인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근데 이쯤 되니 궁금하네. 어떻게 생겼는지.
“마루는 사진 없어?”
“없어.”
“한 장 정도는 찍는 게 어떠냐.”
“카메라 싫어해.”
마루는 카메라를 싫어하는구나.
분명 엄청 멋있을 것 같은데.
대형견이니 데리고 오는 것도 쉽지 않겠지.
“솔직히 끝까지 늘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빠르게 바꿔서 좀 놀라긴 했다. 그때 말하는 거 보면 절대 안 그럴 것 같았거든.”
“선배된 차원에서 양보한다고 했었나. 그냥 하는 말 같긴 하지만.”
“걍 쫄린 거 맞다니까요.”
계기야 어떻든 어쨌든 성가신 일 없이 일이 풀렸으니 이제 별 상관이 없었다. 다만, 정보가 흘러간 루트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긴 한데.
그래도 일단은 연습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연습부터······.
쿵!
그때 근처에서 무언가가 쿵-하고 떨어졌다. 그대로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연습실 한 켠에 구비되어 있던 마이크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깜짝이야.”
이를 보던 백은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가 떨어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을 뒹굴던 마이크는 그렇게 백은찬에 의해 다시금 제자리에 올려졌다.
“방금 순간 싸-해지지 않았어요?”
“다들 놀랐으니까.”
“왜, 갑자기 싸-해지면 귀신 지나간 거란 말 있잖아요.”
신하람이 농담 던지듯 말했다.
그런데 어째 그 말에 다시금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러자 이런 반응은 예상 못한 건지 신하람이 그대로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어, 장난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들었어.”
갑작스레 차선빈이 불길한 서두를 뗐다. 아니, 잠깐. 이거 왠지 흐름이 안 좋은데.
와중에 다들 궁금했던 건지 곧바로 차선빈의 말에 주목했다.
“뭘요?”
“지한이 형이 여기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어.”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뭔가를 중얼대는 소리.”
“네? 중얼거려요? 그럼······.”
“···잠깐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좋지 않은 예감에 나는 그렇게 일단 앞선 이야기를 급하게 멈췄다. 잠깐만, 이건 진짜 아니잖아!
“한여름도 아닌데 괴담은 좀······.”
“그랬었지. 우세현 이런 거 무서워했었지.”
“아, 미안해. 세현아.”
“아니, 무서운 게 아니라···.”
“세현이 형을 위해 우리 여기서 더 나아가지 맙시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 무섭다기보단 꺼려진다고나 할까.
그냥 좀 그런 거 있잖아.
“사색이 됐네.”
안지호가 말했다.
사색이 아니라 그냥 살짝 땀이 나는 것뿐이다. 살짝 땀이.
“그래, 괴담은 하지 말자.”
“도운이 형도 무서운 모양인데?”
“나도 괴담 같은 건 싫어서···.”
그나마 도운이 형이 있어서 이야기는 거기서 끊겼다. 어찌 된 게 질색하는 게 나랑 형밖에 없는 건지.
같은 멤버지만 애들이 참, 보통 강심장이 아니다. 나랑 도운이 형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신나서 끝까지 이야기했을지도.
‘물론 실재한다는 걸 모르는 입장에선 당연히 그렇긴 하겠지만.’
아니, 물론 실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별 생각 없는 사람도 있긴 하지. 예를 들면, 우리 형.
어쨌건 귀신같은 건 질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있다는 그 괴담을 믿는 건 아니었다.
보통 괴담은 괴담일 뿐이니까.
하나하나 진짜라고 생각하기엔 당연하게도 말이 안 된다.
원래 연예계에선 귀신 봤다는 이야기가 왕성하니까. 애초에 귀신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많고.
─지이이잉.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이 타이밍에 울려선 안 되는 것이 주머니에서부터 울렸다.
그러니까 키링이.
다시 말해 사자가 준 연락의 매개체가.
* * *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사자로부터의 연락.
지난번 일 이후, 정말로 사자와는 한동안 만난 적이 없었다. 뭐, 그동안도 자주 왕래가 오가거나 했던 건 아니었지만.
능력 관련 이외 사적인 용건은 없으니까.
사자에게 있는 유일한 용건은 결국 부작용에 관한 건데, 막상 가봤자 아무런 수확도 없으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냉정한 거 아니냐? 적어도 반가운 얼굴로 인사는 해야지.”
“그렇게 반가운 얼굴은 아니잖아요.”
“그럼 나라도 반갑게 인사를 해야지, 뭐.”
그렇게 사자는 사람 짜증 나게 하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안부 차 부른 거야, 안부 차.”
“무슨 안부요?”
“뭐, 부작용은 그간 어땠는지.”
“비슷해요.”
“구체적으로 어떤데?”
“그냥 왔다가는 하는 정도예요. 기억은···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고요.”
“그래?”
내 말을 들은 사자는 그렇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마치 무슨 정기 점검하는 것 같네.
“정말 이런 걸로 불렀어요?”
“음, 실은 다른 용건이 있긴 했어.”
그럴 줄 알았다.
고작 부작용에 관해 묻겠다고 뜬금없이 부를 리가 없었다.
“그거 알아? 너희 회사에 귀신 나오는 거.”
“알아요. 지금 눈앞에 있잖아요.”
“···난 카테고리가 다르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귀신같은 것과는 존재 자체가 다르다고.”
사람의 눈에는 보통 비슷해 보입니다만.
“여기가 보통 귀신 나오는 거기 아니에요? 이전에 여기에 뭐가 있다고 했잖아요.”
“정확히는 연결 고리? 그런 것쯤이지.”
“···다른 곳 말하는 거예요?”
“응.”
그러자 사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짜증 나는 얼굴···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잠깐만요, 그러니까 IN 엔터 안에 지금 귀신이 나오는 장소가 있다는 말이죠?”
“응. 맞아.”
“어딘데요.”
“짐작 가는 곳 있지 않아?”
“······.”
아, 젠장.
그 말을 듣자마자 문득 한 곳이 떠올랐다.
설마 그거 진짜였냐.
“10층 A301 연습실. 그곳에서 요즘 흉흉한 게 나온다고 하더군.”
위치 한번 정확했다.
10층 A301 연습실.
그곳은 근래 멤버들과 같이 자주 이용하던 연습실이었다. 바로 어제도 사용했었고.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 하려고.”
그리고 그 순간, 사자가 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아, 설마. 이거 왠지 모르게 상당히 익숙한 장면이다.
“도움 좀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