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80화 (280/413)

280화. 도움 좀 받자.

“도움 좀 받자.”

아, X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잘 나가다가, 아니 잘 나간 건 아니었지만 어쨌건 사자는 지금 내게 뜬금없는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물었다.

구체적으로 정확히 뭘 도와달라는 건지.

애초에 이건 귀신과 관련된 일이었다.

엄연히 지난 ‘령’때와는 사건 자체가 다르다. 그건 사람 안에 들어가 있기라도 하지 이건 그냥 심령 현상, 불가사의 미스테리다. 엄연히 범주가 다르다고.

“지금 너희 연습실에 있는 건 아주 간단한 잡귀 레벨의 귀야. 하지만 여기엔 큰 문제가 하나 있지.”

“뭔데요, 그게.”

“바로 흔적을 없애는 게 굉장히 빠르다는 점이지. 그만큼 몸을 빨리 숨길 수 있어. 그래서 잡는 게 꽤 까다롭지.”

그렇기에 이를 해결하려 해도 이제껏 허탕만 치는 게 대다수였다 말했다.

“꼭 잡아야 하는 귀신이에요? 보통 잡지 않고 돌아다니는 귀신들도 있잖아요.”

“이 건은 잡아야 하는 것에 속해. 이미 여기저기서 사고를 많이 쳤거든.”

아, 왜 하필 또 그런 류인 거냐.

그것보다 저승사자가 일을 해결하지 못해서 일반인한테 도움을 구하는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보는데.

“걱정 마. 너한테 뭔가 큰 걸 부탁하려는 게 아니니까.”

“큰 걸 부탁하면 양심이 없죠.”

“그래. 그러니까 간단해.”

“안 할래요.”

“? 어, 뭐?”

“안 한다고요.”

그러자 사자가 곧바로 말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뭘 그렇게 놀라.

“간단한 일이건 뭐건 귀신과 관련된 일이잖아요. 이전에도 말했듯 위험한 일에 더 이상 관련될 생각 없어요.”

앞으로 남은 스케줄이 한가득이다.

일해야 한다고. 괜히 잘못해서 저번 일이 반복되거나 하면 곤란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걱정시키기도 싫다.

그래서도 안 되고.

“어, 이건 예상외의 답이긴 하네.”

“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할게요.”

“아주 칼이네, 칼이야.”

사자가 그렇게 몇 번 고개를 저었다. 칼이고 말고 할 것 없이 이건 당연한 거다. 나 하나 없다고 사자가 일을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수고하십쇼.”

“진짜로 못 한다고?”

“네.”

이에 사자는 뒤에서 뭔가 구시렁거리는 것 같긴 했으나 그 이상 나를 붙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 양심이 있으면 본인이 해결하라고. 자기 일이잖아.

“음, 혹시나 생각 있으면 연락 주고.”

“아, 예.”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긴 했지만.

* * *

앞서 거절은 했지만, 사자의 제안이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신경이 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자의 제안이 신경 쓰였다기보단 이곳에 있다는 ‘그게’ 신경 쓰였다.

여기 10층 A301 연습실에 있다는 그 귀신.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연습이 있었다.

‘사고를 친다고 했었지.’

그러고 보니 지난 얘기를 돌이켜보면, 뭔가 이상한 걸 목격한 게 한두 명이 아니었다.

소리가 들린다거나, 커튼이 저절로 열린다거나 하는 것들.

‘신변에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라면, 사자가 잡길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지난번에 다르게 잡귀라고도 했었고.

사실 그래도 저승사자인데, 곧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거절한 것도 어느 정도 있다.

“세현아.”

그때, 차선빈이 내게 다가왔다.

이에 고개를 돌려 차선빈과 마주했다.

“어, 왜?”

“좋아하는 음식 있어?”

“좋아하는 음식?”

뜬금없이 웬 좋아하는 음식?

“어, 웬만하면 다 잘 먹는데. 갑자기 그건 왜?”

“내가 해주려고.”

“? 뭘 해줘?”

“요리.”

요리?

요리를 해준다고?

······차선빈이?

아니, 차선빈이 요리를 할 수도 있지. 그럼.

“어, 근데 요리는 왜 해주는데? 야식?”

“아니. 이제 곧 생일이잖아.”

“생일?”

“응.”

차선빈이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짚이는 게 없어 그대로 멀뚱히 서 있었다.

어, 그러니까 지금 날짜가······.

“세현이 너 생일.”

“아.”

내 생일.

아, 지금 11월 말이었지.

요즘 한창 정신이 없던 터라 잊고 있었다.

“아, 그래서 요리해준다는 거야?”

“응. 생일상 같은 거 해주고 싶어서.”

생일상? 생일상은 너무 스케일이 큰 거 아니냐? 아, 미역국이랑 밥만 있어도 충분한 생일상이긴 했다. 여기에 깍두기 정도 있어도 좋고.

“미역국이랑 깍두기 정도?”

“미역국은 원래 할 생각이었고, 깍두기는 이미 숙소에 있어. 다른 건?”

“그것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자 차선빈이 곧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뭐든 해준다면 다 좋았다. 그냥 김이랑 밥만 줘도 고맙긴 했다.

생각해서 해준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기대된다.”

“뭐가?”

“니가 끓여준 미역국.”

차선빈이 미역국을 하는 건 처음 보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구경할까.

“열심히 끓여볼게.”

“응.”

“맛있게.”

“응.”

“엄청.”

···그렇게 강조할 것까진 없는데.

왠지 모르게 열정과 의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요리라 그런가?

“연습 시작하자!”

백은찬의 외침이 그대로 연습실을 우렁차게 울렸다. 이에 차선빈도 나도 곧바로 연습 준비에 나섰다.

그래, 지금은 뭐든 연습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니 앞선 사자의 일 같은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또 모르는 일이다, 내일이면 잡았다고 사자에게 연락이 올지도.

쿵!

“아, 마이크 저건 또 왜 떨어지냐······.”

“마이크 또 떨어졌어요?”

“근데 아까부터 뭔가 위에서부터 계속 쿵쾅거리는 것 같지 않아?”

“맞아요. 아까부터 소리 들리더라고요.”

“하······.”

“세현아, 왜?”

“아니. 아무것도.”

사고 한번 요란하게 친다.

큰 건 아니지만, 묘하게 사람 신경 긁는 듯이 자잘하게.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집중이 끊기곤 했다.

“위에 가봤는데, 텅 비어 있더라고.”

“텅 비어 있어요?”

“응. 그럼 뭐냐, 이 소리는.”

그대로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멤버들이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 소란스러움은 그 날뿐만 아니라 다음 날도, 그 다음 날까지도 계속됐다. 이 정도면 도저히 안 되겠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넵.”

아무래도 망할 사자를 다시 한번 만나 봐야 할 것 같다.

* * *

그렇게 앞서 사자와의 만남을 가진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한번 사자를 찾았다.

와중에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 이죽이죽 웃는 얼굴이라 더 거슬렸다.

“미안, 미안. 나도 요 며칠간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뭐 얼마나 빠르길래 고전하는 건데요?”

“이 자식이 워낙 특이해서 말이야.”

하긴. 그렇지 않았으면 애초에 나한테까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테니.

“근데 무슨 심경의 변화로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야?”

“연습에 방해돼서요.”

“아아. 그러고 보니 요즘 한창 바쁘지?”

그래. 그러니까 빨리 해결을 보고 싶었다. 이게 상당히 거슬리는 터라.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요?”

“복잡할 거 없어. 간단해. 아주아주.”

“뭐가 어떻게 간단한 건데요.”

“그냥 가만히만 있어 주면 돼. 가만히.”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고요?”

“응. 가만히.”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은······.

“미끼가 되란 거예요?”

“오, 아주 적절한 표현이네. 그거.”

역시. 그럼 그렇지.

미끼가 되어서 그걸 낚으라는 거였다.

“그 녀석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근처에 있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거든. 워낙 장난기가 많아서. 그러니 니가 미끼가 되고 그 사이, 내가 낚아채는 거지.”

다시 말해 해당 연습실에 내가 있고, 그게 나타나는 순간 사자가 이를 잡겠다는 작전이었다.

“간단하네요.”

“그래. 아주 간단하다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건이 있어요.”

“엥?”

아주 간단하긴 한데, 그래도 이번에도 역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순순히 부탁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걸 안 이상, 뭐라도 얻어가야지.

“조건? 조건이 뭔데?”

“나중에 제가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줘요.”

일단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을 하고, 그때 필요한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말할 계획이었다.

사실 마음 같아선 한 3개 정도 들어 달라하고 싶긴 했는데···그때 가서 3개 들어 달라고 할까.

“까다롭긴. 뭐, 좋아.”

어, 의외로 쉽게 수긍하네.

사실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좋아요. 그럼.”

“참, 깐깐해졌다니까. 우리 사이에.”

“너무 별거 아닌 사이 아닌가요.”

“그건 아니지.”

그렇게 사자가 나를 향해 한번 씨익 웃어 보였다. 뭐, 일반적인 것보단 조금 특이한 관계이긴 했다. 사자랑 내가.

“근데 공식적인 서류 같은 건 없어요? 지금 한 말을 입증할 수 있는 거요.”

나중에 시치미 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당연히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럼 하나 만들어주시죠. 재량껏.”

“뭐, 좋아. 그렇게 불안하다면 확실하게 해두도록 하지.”

이내 사자가 목소리를 조금 더 가다듬었다. 그리고 찰나의 침묵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원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이 무엇이든 어김없이 들어준다고 약속하지.”

그 말을 하는 사자의 목소리가 공간을 천천히 울렸다. 평소와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지만, 느낌적인 면에서 뭔가가 달랐다.

“사자의 약속이지.”

“사자의 약속이요?”

“사자가 확언한 약속은 그렇게 간단하게 깰 수 있는 류의 것이 아니거든.”

그런 게 있다면 처음부터 쓰라고.

“만약 깨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건 비밀.”

“예?”

“영업 비밀이라고. 그것까진 언급 못 해.”

어째 언급할 수 있는 기준이 제멋대로 인 것 같긴 했지만, 그것과 관련해서는 정말로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일단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좋아, 그럼 협상이 됐으니 그것과 관련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까.”

그리고 앞선 제안과 관련된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본격적으로 그 잡귀를 잡기 위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내가 귀의 시선을 뺏은 사이, 사자가 잡겠다는 전략.

“근데 혼자인 게 좋아.”

“미끼니까 당연히 혼자겠죠.”

“그래. 그런 의미에서의 미끼이기도 하지. 아무래도 사람이 늘어나면 그만큼 활동에 전반적인 제약이 따르게 되니까 말이야.”

그래, 그러니 잡는 건 사자에게 맡기면 되고. 여기에 작전 시작일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필요했다.

“대충 30일 어때.”

“30일···괜찮네요.”

그때라면 일단 연습실에 오는 게 가능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대충 만들면 됐고.

“시간은 밤 11시 30분으로 하자.”

“왜 11시 30분인데요?”

“그 시간이 느낌적으로 딱이라서.”

어째 그냥 자기 멋대로 정한 것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일단은 수긍했다. 일단 협조하기로 한 이상.

“좋아. 약속의 날과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할게.”

“네.”

“11월 30일, 오후 11시 30분. 이의 없지?”

“네. 이의 없어요.”

그렇게 협상이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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