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81화 (281/413)

281화. 약속한 디데이가 됐다.

사자와 약속한 날은 11월 30일 오후 11시 30분. 그때 10층 A301 연습실에서 만나는 걸로 이야기를 끝냈다.

요즘은 연습을 늦은 시간까지 하니 그때 회사에 있는 건 별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 그날은 단체 연습도 11시 전에 끝났고.

‘일단 시간이랑 날짜는 적절하고.’

그 밖에 준비할 건 특별히 없었다.

그리고 해당 일까지 아직 날짜가 좀 남은 상태였는데, 그 짧은 사이에도 이런저런 거슬리는 일들이 좀 있었다.

역시 귀찮으니 빨리 해결을 보는 게 좋겠군.

그런 와중에 안지호가 갑자기 뜬금없는 걸 묻기도 했다.

“우세현. 좋아하는 거 읊어봐.”

“뭐?”

갑자기 웬 좋아하는 거?

“좋아하는 건 갑자기 왜?”

“읊어봐.”

“···공연?”

그러자 안지호가 인상을 팍 구긴다.

아니, 왜. 공연 좋아한다고.

“공연 말고. 뭐 없어?”

“···그럼 커피?”

“···알겠다.”

그리고는 여전히 인상을 팍 구긴 채로 돌아선다. 이 카테고리도 아닌가. 갑자기 물어오니 마땅한 게 안 떠올랐다.

“이제 곧 세현이 생일이네.”

도운이 형이 말했다.

그 말에 잠깐 오늘 날짜를 다시금 되짚었다.

“오늘 벌써 29일이잖아. 앞으로 이틀 남았어.”

“12월 1일~”

“D-Day 2네요.”

“디데이까지야···.”

“원하는 거 없냐?”

“글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필요하다 싶은 게 지금은 딱히 없었다.

그러니 굳이 선물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멤버들은 여전히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생각을 좀 해봐. 필요한 거 말고 뭐, 좋아하는 거라도.”

“좋아하는···아.”

안지호가 물었던 게 그런 방면이었군.

그리고 안지호를 쳐다보자 이내 ‘뭐’하는 표정을 보인다. 공연이랑 커피는 좀 그렇긴 했겠네.

“그러고 보니 작년엔 같이 광고판 보러 갔었잖아. 너랑 나랑.”

“아, 세현이 형이랑 은찬이 형이랑 둘이 갔었죠?”

“응. 올해도 보러 갈 거냐?”

“올해도 가고 싶긴 하지.”

찍어서 멜로우들한테 보여주면 더 좋고.

멀리는 아니더라도 회사 근처로도 광고판이 걸려 있었으니 거길 가도 좋을 것 같다.

“그때 막 눈도 내렸었잖아. 그래서 눈 온다고 좋아하고.”

“응. 좋아했지.”

기분 좋은 기억이었다.

눈까지 와서.

물론 그 뒤로는 조금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긴 했지만.

“세현이 형, 눈 좋아해요?”

“응. 좋아해. 그래서 생일날 눈 오면 기분 좋아.”

생일이 겨울인지라 생일날 눈이 왔던 적이 기억 속에 몇 번 있었다. 어렸을 땐, 형이랑 같이 눈사람도 만들고 그랬었는데.

“세현이 생일날 오는 눈이면 거의 첫눈 아닌가? 요즘 첫눈은 보통 언제 오지?”

“그래도 요즘은 11월이면 오지 않아요?”

“올해도 왔으면 좋겠네.”

차선빈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올해도 왔으면 좋겠다.

“야, 눈 오면 눈오리 어때?”

“해요, 해요! 눈 오리!”

“오리 왕국, 어떠냐?”

귀엽겠네.

근데 그러려면 눈이 많이 와야 할 텐데.

아직까지 서울에 첫눈은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눈이 오면 기분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곧 볼 수 있었으면 싶었다.

요즘은 오리 모양 말고도 많다던데.

* * *

시간은 어느새 흘러, 사자와 약속한 날이 되었다. 11월 30일. 이렇게 되니 뭔가 결전의 날 같은 기분이다.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적절한 긴장감은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어디까지나 난 ‘미끼’ 역할이니까.

“오늘은 10시까지 연습이던가?”

“응.”

“그래도 오늘은 좀 빨리 끝나네. 요새 내내 새벽 연습이었잖아.”

백은찬의 말 대로 어제까지만 해도 새벽 연습 스케줄이었다.

어제도 그래서 3시까지 연습을 했고. 그나마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나는 편이었다.

“내일도 일찍 끝나서 다행이네.”

“내일은 세현이 형 생일이니까요!”

“시간 진짜 빨라.”

그렇지. 시간이 참 빠르긴 했다.

사자와 작전을 짠 게 엊그제 같은데.

어찌 보면 홀가분하기도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놈의 귀신이 영 신경 거슬리게 굴었으니까.

심지어 수리 보수라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니 오늘만 지나면 그것도···.’

지이이잉─

그대로 폰이 한번 진동했다.

[형]

: 내일도 연습이야?

형의 톡이었다.

그나저나 아침 일찍도 보냈다.

스케줄 있나.

[우세현]

: ㅇㅇ 근데 내일은 빨리 끝나

[형]

: ㅇㅋ

그러고 보니 형이랑 생일에 보는 건 굉장히, 엄청 굉장히 오랜만이다. 거의 몇 년 만일지 모를 정도로.

일단 작년이랑 재작년엔 캐나다에 있느라 못 봤고, 그 전엔 군대에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생일 축하 연락이나 선물은 빼놓지 않고 주긴 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꼭 봐야지.

그간 못 봤으니까.

그렇게 저녁 10시까지의 연습이 계속되었다. 정말로 10시에 끝난 건 아니고, 30분 정도 초과하여 조금 더 연습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멤버들도 하나둘씩 돌아갈 채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어, 너 더 연습하려고?”

“응.”

대략 한 시간쯤.

사자와의 약속 시간이 앞으로 한 시간쯤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대로 연습을 핑계로 더 남을 생각이었다. 12시 전에는 끝나겠지. 그럼 대충 말이 맞을 것 같다.

“너무 길게 연습하지는 마라.”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얼마 안 있을 거예요. 12시 전에 가려고요.”

“무리하지 마요, 형.”

그대로 탐탁지 않아 하는 멤버들을 대충 달래어 먼저 가라 일어두었다.

그리고 그대로 가는가 싶었는데, 차선빈이 가던 걸음을 멈춘 채로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내일 아침에 미역국 해줄게.”

“고마워.”

지난번에 말한 생일 미역국.

듣자 하니 지금부터 숙소에 가 준비를 할 모양인 듯 했다. 미역도 불려놓고, 이것저것 준비도 해놓는다고.

그리고 그렇게 멤버들이 하나둘씩 연습실을 빠져나가는 걸 보고 있는데, 아직까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안 가?”

안지호가 이상하게 안 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대답 없이 그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왜?”

“아니. 그냥.”

싱겁긴.

그리고 마침내 갈 생각이 들었는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좋아, 그럼 이제 정말 준비 시작인가.

그렇게 근처에 있던 의자를 하나 끌어와 음향기기가 옆에 두었다. 그리고 착석.

째깍째깍.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연습실 속,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조용히 그 공간을 울려댔다.

약속한 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이대로 시간 좀 죽이면 되겠지.

한적하니 음악 하나 틀면 딱 좋겠지만, 아무래도 음악을 틀 분위기는 아니었다.

끼이이익─

‘···어?’

그런데 그때, 다시 한번 연습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설마 이것도 그 귀···.

“뭘 그렇게 놀라?”

“···아.”

그게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사람, 그러니까 안지호였다.

* * *

안지호가 그대로 뜬금없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금 나간 것 같은데 왜인지 모르게 다시 돌아왔다.

“뭐 놓고 갔어?”

“아니.”

“그럼 왜 다시 돌아와?”

“물어볼 거 있어서.”

물어볼 거?

이에 잠깐 벽에 걸려 있던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뭔데?”

그러자 안지호 역시 저편에서부터 의자를 하나 끌고 온다. 그러더니 곧 가져온 의자를 내 앞에 놓았다.

“너 요즘도 아프냐?”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요즘도 아프냐는 말은···아, 대충 알겠군.

이전에 안지호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무슨 병 있는 거 아니냐고.

“안 아파. 왜?”

“지난번 LA 갔을 때도 그렇고, 오늘도 뭔가 영 찜찜해서.”

얘도 왜 이렇게 감이 좋은 거야.

LA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실 능력 관련이긴 했다. 물론 지금은 조금 카테고리가 다르지만.

“기분 탓이겠지. 그리고 그때도 아픈 게 아니라 잠깐 기분이 안 좋아졌을 뿐이었어. 백은찬이 과장한 거야.”

“백은찬이 좀 오바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오바는 안 할 텐데.”

“오바야. 안지호 똥촉이네.”

그러자 이를 들은 안지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래, 사실 똥촉이 아니긴 해. 너 왜 이렇게 감이 좋냐.

그리고 이러한 내 부정에 안지호는 잠시 말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감추는 게 있는 건 아니고?”

뭐?

순간 그렇게 되물을 뻔했다.

그렇게 물은 안지호는 이내 대답을 요구하듯 그대로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거 없어. 내가 뭘 숨겨.”

당황도 침묵도 안 됐다.

그런 기색 없이 자연스러운 부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안지호는 분명 금방 눈치챌 거다.

그리고 안지호는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새 팔짱까지 낀 채로.

“찜찜한 거 투성인데 어째서인지 말을 안 하네.”

불만과 함께 짜증이 담겨 있는 말투였다.

그걸 나타내듯 손가락을 톡톡 몇 번 두드렸다.

“그거 촉 불량이라니까. 전혀 없어.”

“···그래. 일단은 알았다. 지금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여기서 이 이야기를 더 나아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한숨 돌렸다.

“물어볼 게 그거였어?”

“어.”

“그럼 끝났고?”

“그렇지.”

그래, 근데 그럼 왜 아직까지도 꼼짝도 안 한 채로 앉아있는 거냐. 분명 볼일은 끝난 것 같은데 어째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안 피곤해?”

“별로.”

“다른 애들은? 갔어?”

“갔어. 안 그래도 바쁜 것 같더라.”

“왜 바쁜···아.”

대충 왜 바쁜지 알 것 같았다.

“근데 선빈이는 그렇다 치고, 다른 애들은 왜?”

“다른 애들도 하나씩 한다던데. 음식.”

“이거 판이 커지는 것 같은데······.”

도운이 형은 그렇다 치고, 백은찬이랑 하람이는 뭘 하려는 건지. 생일상 한번 거하게 받겠네.

“넌 안 해? 음식?”

“해줘?”

“그렇게 진지하게 받지 마라. 그냥 장난으로 해본 소리였어. 굳이 안 해줘도 돼.”

안지호는 평소에도 나랑 같이 요리를 하는 편이었으니까. 사실 요리 실력으로 가장 믿음이 가는 건 안지호이긴 했다.

“그냥 다 같이 맛있게 먹자.”

그거면 될 것 같다.

그게 가장 기대가 됐다.

“그럼 지금 그냥 가.”

“더 연습하다 갈 건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안지호는 그렇게 못마땅하단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고집이 센 건 안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짜로 안 가면 자기도 안 갈 기세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시계를 보니 이제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안지호를 엮이게 할 순 없는데.’

이대로 있다간 딱 휘말리기 좋은 꼴이었다. 사자가 큰일은 없을 거라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자의 입장에서 일 수 있으니.

그렇게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 그 고민을 해결해줄 해결사가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했다.

“뭐야, 지호 너도 아직 있었어?”

매니저 형이었다.

그리고 매니저 형은 그런 안지호에게 안 그래도 전할 게 있었다면서 잠깐 나오라 말했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야, 다시 올 거야. 기다려.”

“알겠다.”

그러면서 얌전히 기다리라며 단단히도 일러둔다. 그렇게 안지호가 열고 나간 문이 반동에 의해 잠시 흔들렸다.

[23:30 / 11월 30일]

시간도, 아주 딱이었다.

* * *

11시 30분이 되어서도 여전히 주변은 고요했다.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만이 이곳에서 나는 소음의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그 중심에서 의자에 기댄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홀로 앞으로 나타날 ‘그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이어 차분히 흔들리는 매개체.

사자가 건네준 매개체였다.

사자가 이곳에 현재 있다는 신호였다.

뭣도 없는 나는 ‘그게’ 의도한 대로 접근했는지 알 수 없기에,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사자가 이를 파악하고 잡기로 사전에 말을 마친 상태였다.

슈웅─

그리고 그때,

갑작스럽게 연습실 창이 열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잠겨 있던 창이었다.

미세하게 열린 창을 통해 차가운 바람이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다. 뭔가 느낌이 왔다. 아주 쎄한 느낌이.

‘···잘 낚은 것 같은 느낌인데.’

흔히 소름이 돋는다고 하나.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가슴이 조금 동요했지만, 일단 차분히 자리를 지켰다.

펄럭!

그리고 그 순간,

창 앞에 있던 커튼이 크게 소리를 내며 펄럭였다.

쿵!

그때 무언가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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