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어느새 자정이었다.
쿵!
근처에 있던 무언가가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번에도 마이크였다. 저 멀리 마이크가 홀로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등 뒤로부터 알 수 없는 섬뜩한 기운이 훅 덮쳐왔다.
이대로 뒤를 돌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뒤를 확인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땀이 났다.
공기가 어느새 서늘해진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려앉은 고요함. 묘하게 숨을 옥죄이는 듯한 고요함이었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나는 그렇게 움직임을 멈춘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다시 일었다.
하지만 이번에 부는 바람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세기의 바람이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귀신같은 걸 못 보는 게 다행이군!’
만약 그랬다면 훨씬 더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오로지 텅 빈 연습실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청난 세기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앉아 있던 의자가 덜컹거릴 만큼.
쿠당탕탕탕!
주변에 있던 것들 또한 결국 중심을 지키지 못한 채로 그대로 쓸려가는 중이었다.
창문만 깨지지 마라!
그건 어떻게 해명할 수도 없어!
그런데 그때, 바람의 방향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느꼈다.
‘문!’
연습실의 문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귀신이라면 당연히 문을 통과할 테지만, 그냥 본능적인 느낌이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뛰었다.
문을 향해.
쾅!
문을 막자 아까보다 더욱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이젠 거의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쿵!
그와 동시에 굴러다니던 마이크가 내 머리 옆으로 날아와 꽂혔다. 젠장, 그대로 저세상 갈 뻔했다!
그 밖에 쓰레기통이나 탁상 테이블 같은 물건들이 거센 바람에 의해 힘없이 이리저리 밀려다녔다.
“잘했어.”
그러던 도중, 목소리가 들렸다.
사자의 목소리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사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언제나와 같이 검은 정장에 중절모를 쓴.
이어지는 순간, 굴러다니던 의자가 마치 나를 노리듯 정통으로 날아왔다. 이번엔 피할 새도 없이 직빵이었다.
‘젠장!’
이에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아무리 있어도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거칠잖아.”
그 순간, 다시금 사자가 눈앞으로 보였다.
동시에 날아오던 의자가 산산조각이 난 채로 그대로 다시 튕겨져 나갔다. 와중에 여전히 바람은 계속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정신없이 불던 사람이 조금씩 멎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천천히.
그와 동시에 사자가 미소 지었다.
그렇게 세차게 불어대던 바람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가라앉았다.
“X친···.”
그 말 밖에 안 나왔다. 지금은.
귀신이고 사자고 눈앞에 있는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그 말밖에 안 나왔다.
“많이 놀란 모양이네.”
사자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중간에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사자의 손을 무시 한 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탓인지 잠시 다리가 휘청했다.
“수고했어.”
사자가 웃으며 말했다.
표정을 보니 계획이 그럭저럭 잘 먹혀든 모양이다.
“끝난 거죠?”
“응. 덕분에. 그나저나 다친 곳은···아이고.”
사자가 그대로 내 팔을 보며 탄식했다.
어느새 소매 부분이 찢어져 팔이 긁혀 있었다. 그리고 그 긁힌 부위로부터 피가 살짝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사이 어디 부딪혔었나.
···연습복이라 다행이다.
“바로 처치를 해야겠네.”
“이 정도면 괜찮긴 한데요.”
“나중에 올 후환이 두려워서 그래.”
웬 후환.
그리고 그대로 사자의 손이 팔에 닿았다. 그러자 곧 찢어진 소매가 원래의 제 모습을 찾았다. 더불어 새어 나오던 피 역시 말끔히 사라졌다.
“그보다 반응이 엄청 빠르던데? 그대로 문을 막은 건 아주 좋은 행동이었어.”
“거의 반사적인 행동이었어요.”
“역시 탁월해.”
“그것보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은데요.”
“? 더 중요한 거?”
뭐냐니, 당연히 눈앞에 보이는 이 광경이지. 부서지고 떨어지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이거요. 이건 어떻게···.”
철컥철컥!
그와 동시에 연습실의 문고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밖에서부터 누가 들어 오려한다는 신호였다. 잠깐, 설마 안지호인가?
철컥철컥!
그리고 그렇게 돌아간 문고리는 마치 문밖에 있는 이의 성격을 보여주듯 거침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보이는 건 있는 대로 구겨진 안지호의 얼굴이었다.
“뭐 하느라 이제 열어?”
“잠깐 이어폰으로 노래 좀 들었어.”
“문은 왜 잠그고?”
“내가 잠근 거 아닌데. 왜 잠겼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고장 났나.”
그러자 안지호가 곧 그대로 내 등 너머를 잠시 살피는 게 보였다.
앞서 난장판이었던 연습실은 사자의 힘으로 이번에도 역시 뒤처리가 잘 상태였다.
깨지기 직전의 유리창도, 엉망진창이 된 연습실 내부도 깔끔하게 이전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그렇게 짧은 사이 뒤처리를 하는 걸 직접 보니 확실히 판타지스럽긴 했다. 지금 벌어진 이 모든 상황이.
‘퇴마가 웬 말이냐고.’
아무래도 회사 터가 안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안 갈 거냐?”
“아니. 가려고. 너 기다린 거야.”
그러자 안지호가 그대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그럼 빨리 나오라며 나를 재촉했다.
안지호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괜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했다.
“갑자기 그 똥고집은 왜 없어진 건데?”
“그냥. 니 말대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 똥고집도 우리 집 개랑 똑같네.”
“그렇게 말할 거면 마루 좀 보여주던가.”
“사진이 없···야.”
“왜?”
“손 내놔봐.”
손? 갑자기 웬 손?
“너 손에서 피난다.”
“뭐?”
정말로 엄지손가락에서 작게 피가 나고 있었다. 조금 까진 수준이었다. 이제 보니 여기저기 많이도 부딪혔나 보네.
“어디 종이에 베였나봐.”
이 정도면 대충 밴드도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칠칠맞긴. 의무실 들렸다 가.”
“어, 굳이?”
“토 달지 말고 가. 숙소에 밴드 다 떨어져서 없어.”
그랬었나.
보다 보면 안지호는 은근 숙소 환경에 빠삭하다.
그리고 역시나 의견을 굽히지 않는 안지호에 결국 뒤따라 의무실로 가기로 했다. 매니저 형한테 부탁해 미리 문을 열어두었다.
“아.”
그런데 그때, 잘 가던 안지호가 중간에 자리에서 멈춰 섰다. 또 뭔가 싶어 보는데, 그대로 안지호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우세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벙쪘다.
어느새 12월 1일이었다.
* * *
그 날 있었던 잡귀 사건은 그렇게 큰 잡음 없이 마무리가 된 듯 싶었다.
사자와 직접적으로 내통할 순 없었지만, 마지막에 이야기했을 때 잘 해결됐다고 했으니 잘 해결된 거겠지.
중간에 연습실이 난장판이 되고, 안지호가 올 때까지만 해도 눈앞이 잠시 아득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터가 안 좋다.
‘그래도 이득이긴 하네.’
일단은 상처 하나 없이 소원권을 얻었으니. 이건 잘 써먹어야겠다.
그렇게 안지호와 의무실에 들린 뒤, 곧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갔을 때 아직까지 부엌에 있는 차선빈을 보고 좀 놀랐지만.
“아직까지 준비하고 있었어?”
“아, 세현아.”
와중에 반가워하는 얼굴에서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뭔가를 휙하고 덮는다.
“이제 들어가려고. 근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얘가 손을 다쳐서 의무실에 들렀어.”
“손 다쳤어?”
“아니, 그냥 종이에 베인 수준이야. 밴드 붙이고 끝.”
“아······.”
그럼에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에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하자 차선빈이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발견해서 사자한테 치료해 달라 요구할 걸 그랬다.
그 뒤로 안지호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직행, 그리고 나 역시 방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신경 쓰이는 게 있어 걸음을 주저했다.
저 덮여 있는 건 뭘까.
그렇지만 아까 당황한 걸 보면, 지금 보여달라고 하긴 뭐해서 그냥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럼 나도 들어갈게.”
“응. 아, 세현아.”
앞선 차선빈의 부름에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돌아봤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차선빈이 곧 밝게 웃으며 말했다.
“생일 축하해.”
묵직하고도 기분 좋은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런 차선빈을 향해 나 역시 웃어 주었다. 괜히 들뜨는 기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자정이 넘은 시각, 팬 커뮤니티부터 SNS까지 내 생일과 관련된 많은 사진과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의_스무번째_겨울_세현이
#HappySehyunDay
- 세현아 생일 축하해♥
- 세현이 생일 되면 이제 진짜 겨울이 된 느낌 듬ㅋ 울 세현이 생일 축하해!
- #세현이_생카_타래
- 울 와기 오늘 맛난거 많이 먹구 이불에서 따땃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눈물)(눈물)
- 세현이 생일 광고 진짜 많다ㅋ 한강에 엄청 큰 세현이 인형도 하루동안 전시된대!
- #세현생일이벤트
12/01 세현이 생일을 기념해서 RT 하시는 분들 중 당발하여 도토리세현 인형 드립니다 세현아 사랑해♥
[HOT!] 오늘 윈썸 세현 생일을 맞이해 열리는 각국의 다양한 이벤트
정말 다양한 이벤트들이 있었다.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마음 같아선 하나하나 다 방문해보고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앞선 일의 여파인지 몸은 좀 무거웠지만, 그럼에도 정신은 또렷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스크롤을 넘겼다.
‘내일 라이브 해야지.’
그리고 그 목록을 하나하나 눈에 담다가 이내 감기는 눈꺼풀에 그 날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 * *
몸이 무거웠다.
분명 깨어는 났는데, 평소보다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침대에 파묻혀 있었다.
‘뭔가 소란스럽다······.’
방문 밖이 뭔가 소란스러웠다.
눈을 떠 확인해보니 옆 침대가 비어있었다. 백은찬이 벌써 일어났다는 건···.
그 즉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후 거실로 나가니 그대로 백은찬과 하람이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겼다.
“세현이~ 이제 일어났냐?”
“밥 먹어요! 밥!”
그러더니 곧바로 내 어깨를 잡고선 빠르게 식탁으로 데리고 갔다. 어제 생일상 얘기를 하긴 했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이른 시간 일 줄은 몰랐다.
동시에 앉자마자 보이는 화려한 음식들에 순간 아직까지도 잠에서 깨지 않은 건지 잠깐 헷갈렸다.
“이걸 진짜로 다했다고?”
“응. 좀 열심히 했지. 우리가.”
갈비찜에, 잡채에······.
뭘 이렇게 많이 했어?
“이런 날 아니면 언제 하겠어요. 세현이 형이 그동안 숙소 담당 요리사였으니까!”
“야, 잡채는 내가 한 거야. 제일 먼저 먹어야 한다.”
“뭔 소리예요. 같이 한 걸 가지고.”
“내가 메인 쉐프였어.”
그러는 사이 차선빈이 미역국을 가지고 나왔다. 연기가 나오는 게 정말로 막 끌어온 모습이었다.
“미역국부터 먹어.”
“고마워.”
옆에선 도운이 형이나 안지호가 음식을 나르는 걸 돕고 있었다. 중간에 나 역시 일어서려 했는데, 그러기 무섭게 백은찬에 의해 다시 앉혀졌다.
그렇게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맛있다.”
“야, 차선빈. 성공했다.”
“성공했어?”
간이 딱 맞았다.
싱겁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그, 미역이 좀 많긴 한데···그래도 몸에 좋으니까!
다른 반찬들 역시 맛이 좋았다.
갈비찜이나 잡채 모두.
그리고 물어보니 갈비찜 역시 차선빈이 주도하여 한 것이었다.
‘어제 감춘 게 갈비찜이었군.’
갈비찜은 정말로 깜짝으로 해줄 생각이어서 되도록 감췄다고 한다. 기특하긴.
“근데 이 정도면 차선빈이나 나나 많이 발전하지 않았냐?”
“둘 다 많이 늘었지.”
“검색을 많이 했어.”
“근데 얘는 진짜 검색을 어마어마하게 했어. 어떻게든 맛있게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더라.”
생일상이라고 열심히 신경을 써준 모양이다. 괜히 더 고맙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그대로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케이크는 도운이 형이 매니저 형이랑 같이 사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따가 회사에서도 케이크를 준다고 했었지.
그렇게 멤버들과 다같이 모여 초를 부니 생일이라는 게 다시 한번 실감 났다. 내내 무겁던 몸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괜히 웃음이 났다.
원래 생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무색해졌다.
매년 이렇게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지이이이잉─
그리고 그때 온 메시지 하나.
[형]
: 오늘 잊지 마라
형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