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제시간에 도착해야 할 텐데.
생일이긴 해도 오늘은 다른 날보다 스케줄이 더 빡빡했다.
일단 아침엔 간단한 해외 인터뷰 스케줄이 있었다. 때문에 멤버들도 새벽 일찍 내 생일상을 준비해준 거고.
여기에 중간엔 광고 촬영이 하나 잡혀 있었는데, 과자 광고였다. 그리고 그 이후엔 다시 연습실행이었다.
그렇게 밤 10시까지 연습 스케줄, 그 사이 생일 라이브도 할 예정이었다. 그것도 아마 회사에서 하게 될 듯 했다.
‘근래를 생각하면 칼퇴네.’
새벽까지 연습을 하던 게 부지기수였던 지라 이 정도면 상당한 칼퇴였다. 당장 내일부턴 다시 새벽 연습이었고.
이동을 하면서는 간간이 멜로우들이 올려주신 생일 축하글을 확인했다.
- 세현아 생일 축하해 오늘 하루는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 세현이 생카 투어하는 중! 너무 귀엽게 잘 꾸며놔서 사진 찍느라 정신 없었음ㅎ
- 한강에 있는 세현이 인형 보러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더라 그래도 열심히 사진 찍어옴 넘 귀여워
- 너의 스무번째 생일을 축하해! 우리 세현이 오늘은 맛난 거 많이 먹구 즐거웠으면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글 남겨야지.
마음 같아선 생일 카페나 한강에 설치되었다는 커다란 인형도 보러 가고 싶건만, 아무래도 일정상 힘들었다.
‘그래도 형이랑은 시간이 맞아서 다행이네.’
그래도 다행히 형과는 만날 수 있었다.
생일이 지나가기 전에.
물론 형도 마찬가지로 오후까지 바쁜 스케줄이 있었지만, 저녁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미역국은?
“먹었어. 멤버가 해줘서.”
─ 누가 해줬는데?
“선빈이.”
─ 아. 그 친구.
마음 같아선 직접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엄청 맛있었으니까. 그 미역국.
“사진 있는데, 보내줄까?”
─ 미역국 사진을 봐서 뭐 해. 잘 먹었다면 됐어.
형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근데 정말 미역국뿐만 아니라 잡채도 갈비찜도 다 맛있었다.
애들이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이대로 가면 3년 뒤엔 요리 실력이 비등해질지도 모른다.
─ 그럼 끝나고 집으로 와.
“알겠어.”
그렇게 연습이 끝난 뒤에 형의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원래는 숙소 앞으로 오겠다는 걸 그냥 내가 간다고 했다.
어차피 형 집으로 갈 텐데 뭐 하러 숙소까지 다시 나와. 비효율적이게.
이후 통화를 끝내고 폰을 다시 확인하는데, 와중에 뜬금없는 인물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아마도 권해진]
: 세현이 오늘 생축
생일인 건 또 어떻게 아는 거냐.
자연스럽게 종료 버튼을 누를까 하다 지난번에 답장을 안 해 받은 메시지 폭탄이 떠올라 대충 감사하다 답했다.
끈질긴 구석이 있다, 권해진.
그래도 답장의 답장은 굳이 답장하지 않았다. 귀찮다.
그리고 나서 예정대로 간단한 인터뷰 후, 광고 촬영에 나섰다. 과자 광고라 그런지 대기실에서부터 과자가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한창 광고 촬영에 임하고 있는데, 그때 촬영장 저편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갑작스러운 소란스러움에 뭔가 싶어 그대로 매니저 형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다.
“손님이 찾아온 모양이야.”
“손님이요?”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손님의 정체를 곧 알게 되었다. 동시에 손님의 정체를 알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
손님의 정체는 바로 신도하였기에.
그런 신도하는 세팅된 반깐 머리에, 검은색 목티 그리고 검은 가죽 자켓을 입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화려한 모습이었다.
“마침 옆에서 윈썸이 촬영하고 있단 소리가 들려서 한번 놀러 와 봤어.”
“촬영하다가 오신 건가요?”
“응. 화보 촬영. 바로 건너편이야.”
신도하가 바로 앞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쩐지 헤어 메이크업에 힘이 들어가 있다 했다.
“어, 도하 씨!”
“신도하야······.”
와중에 신도하를 본 스텝들이 저마다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해왔다.
이에 신도하가 웃는 얼굴로 그런 스텝들을 향해 한 명 한 명 인사를 전했다. 당연하지만, 이 사람도 참 눈에 띄는 타입이다.
“세현아, 잠깐 얘기할까?”
얘기?
그리고 신도하를 따라 잠시 장소를 이동했다.
* * *
그대로 사람이 조금 장소로 잠시 자리를 이동했다. 조금 전 장소의 경우, 아무래도 공개된 장소라 안 그래도 이목을 끄는데 더욱 이목을 끌기 좋았다.
‘근데 갑자기 무슨 얘길 하자는 거지.’
일단 따라나서긴 했지만, 할 얘기라는 것에 딱히 집히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꼭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요?”
“오늘. 생일이잖아.”
아, 그 말이었군.
그것보다 신도하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단 거에 놀랐다. 물론 작년에도 선물을 주긴 했지만.
‘아, 그래서 어제 물어본 건가.’
어제 저녁에 신도하로부터 메시지가 왔었다. 오늘 스케줄 있냐는 물음.
이에 있다고 전하니 그 당시엔 다른 말 없이 알겠다고만 답이 왔었다.
“못 보나 싶었는데, 이렇게 딱 겹쳤네. 운이 아주 좋아.”
신도하가 그렇게 웃어 보였다.
···운이 좋다고 하긴 뭐하고 그냥 우연의 일치였던 걸로.
“그런 의미에서 생일 축하해.”
“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길 바랬는데···그래서, 몇 번째였어?”
“축하요?”
“정확히는 생일 축하 문자.”
생일 축하 문자.
어제 온 생일 축하 문자 중에서 신도하의 문자도 있었다. 문자 온 게 몇 개 없던 터라 기억하고 있지만, 상당히 꽤 빨랐다.
“그거 보내려고 정각만 기다렸는데. 근데 보내 놓고도 느낌상 첫 번째가 아닐 것 같았단 말이지.”
“네. 아니었어요.”
“아아, 그래?”
신도하가 곧 감흥 떨어진 얼굴을 했다. 순서는 별로 안 중요하지 않나.
“도현이였지? 첫 번째.”
“어, 네.”
와중에 그걸 맞추고 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양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어떻게 아냐, 그걸.
“그럴 것 같았어. 아무래도 내년엔 좀 더 서둘러야겠는데.”
“그래도 감사합니다. 순서에 상관없이요.”
“뭐든 첫 번째가 되는 걸 좋아해서, 내가.”
안 그래 보이는데 여전히 승부욕이 많다. 이건 좀 쓸데없는 방면이지만.
그리고 이미 충분히 빨랐다.
형은 전날 11시에 보냈으니까.
“그리고 생일 선물 말인데. 오늘 주긴 뭐하고, 나중에 따로 시간 내서 줄게.”
말하는 걸 보니 이미 사놓았다는 말투였다. 이렇게 되니 작년에 그 황금컵이 떠오르네.
아직까지도 번쩍번쩍한 그 황금컵.
그런 의미에서 살짝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다.
“부담 가질 것 없이 기브 앤 테이크라고 생각해. 내 생일에도 선물 줬잖아.”
그러더니 곧 그대로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덧붙였다.
“그 만년필, 엄청 마음에 들거든.”
···선물한 입장으로써 마음에 들어 한다면 다행이긴 했다.
“그 덕에 작업이 아주 수월하거든.”
“작업이요?”
“응. 작업.”
와중에 ‘작업’이란 단어를 콕 집어 강조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작업은 상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사실 루트 곡들 중에서 유독 취향에 맞았던 곡은 신도하 곡이었을 때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솔로곡들도 좋았다.
신도하가 만든 노래는.
“작업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환영이야. 세현이 넌 작사 쪽으로 소질이 있으니까. 작곡도 하면 잘할 거야.”
그리고 여전히 칭찬에 너그러웠다.
신도하보다 신도하 노트와 만나고 싶긴 하지. 지난번에 봤을 때도 좋은 가사가 많아서 재밌···아니, 아니지.
“아, 그리고.”
“네?”
“노트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으니까.”
“······.”
그리고선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향해 여유롭게 웃어 보인다. 알고 있었잖아, 이 자식.
* * *
그렇게 신도하는 얼마 안 가 먼저 현장을 떠났다. 왔을 때와 동일하게 떠날 때도 마찬가지로 많은 이목을 받은 채였다.
뒤이어 대기실로 돌아오자 앉아 있던 멤버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왜 보자고 하신 거야? 신도하 선배님.”
“무슨 대화하고 왔냐?”
“혹시 좀 그런 건 아니죠?”
한 사람씩 물어주면 안 될까.
그 사이 많이 궁금했던 건지 다들 질문을 속사포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냥 생일 축하한다고.”
“그게 다였어요?”
“응.”
“따로 불러서 말하길래 뭔가 싶었네. 그럼 혹시 그 말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래?”
“그냥 안부도 물을 겸해서.”
실제로 대화를 나눈 것도 생일 이야기를 제외하면 거의 안부 관련된 얘기들이었고.
“그러고 보니 작년엔 그 컵을 주셨었지. 이제야 익숙해졌어, 그 컵도.”
“그러게. 요즘은 잘 사용하더라.”
“친해지는데 한참 걸렸어.”
이상한 곳에서 낯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선물이 있다고 했는데, 올해엔 좀 더 평범한 거였으면 좋겠군. 백은찬이 낯가리지 않을 만한 걸로.
이후에는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중간에 딜레이가 좀 있긴 했지만, 크게 딜레이되는 것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연습하러 회사로.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저녁 6시가 훌쩍 넘어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는 유독 짧은 느낌이다.
“우세현 생일이 반나절밖에 남지 않았어요~!”
“와, 시간 왜 이렇게 빨라요? 아침에 같이 미역국 먹은 게 바로 전 같은데,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유독 좀 바쁘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해서 연습.
중간에 밥 먹는 시간과 생일 라이브를 제외하고 그저 연습만 했다.
‘시간이······.’
어느새 10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당연히 창밖이 어두워진 지는 오래였고.
중간에 잠깐 확인한 결과, 형은 이미 스케줄이 끝난 상태였다.
원래라면 10시까지가 오늘의 연습 일정이긴 했는데, 중간에 안무가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 수정으로 인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듯 했다.
[우세현]
: 형 나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형]
: ㅇㅇ 알겠어
무조건 12시 전에 끝나야 할 텐데.
물론 12시까지는 아직 좀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길어봤자 30분 정도겠지.
하지만 뭐든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길어야 30분일 거라 생각했던 연습은 30분을 넘어서 어느새 1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꾸 시간이 밀리는데.’
이렇게 되니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형 집까지 걸리는 시간도 있고, 그나마 지금은 길이 막히지 않는 게 다행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리고 마침내 연습이 끝났다.
동시에 곧바로 현재 시간을 확인해봤다.
[PM 11 : 10 / 12월 01일]
11시 10분!
여기서 형 집까지 20분 컷이다.
[우세현]
: 형 나 이제 출발해
답장이 왔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메시지를 보내놓고, 빠르게 회사를 빠져나왔다. 지금은 무엇보다 빨리 도착하는 게 중요했다.
오랜만에 같이 보내는 생일이었다.
정말 몇 년만.
정확히 얼마 만인지 모를 만큼.
시간이 너무 늦어 어쩌면 제시간 안에 초를 불기도 힘들지 모르지만, 그래도 다른 것보다 같이 생일을 보내고 싶었다.
생일날 형의 얼굴을 보는 건 너무 오랜만이었기에. 어렸을 때 이후, 너무 오랜만이다.
[PM 11 : 40 / 12월 01일]
‘얼추 맞겠어.’
엘리베이터에서 확인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맞아떨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이 긴박했다.
철컥!
그리고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고요한 집 안이 나를 반겼다. 이어서 빠르게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곧 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왔어?”
케이크가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형을.
그리고 그 케이크 위에는 그렇게 ‘20’이라고 꽂힌 숫자 초가 그 순간, 불빛을 내며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