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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84화 (284/413)

284화. 눈이 내리는 밤 (+삽화)

어렸을 적엔 생일이 되면 항상 엄마, 아버지, 그리고 형과 함께 집에서 작게 생일 파티를 하곤 했었다.

선물을 받는 것보다 그렇게 가족들과 파티를 하는 게 더 좋았다. 케이크에 초도 꽂고 고깔모자도 쓰고.

생일 때가 되면 엄마가 항상 해주시던 특별 불고기도 있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직까지 맛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형이 데뷔를 하고 나서부터는 그렇게 가족이 다함께 생일을 축하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형은 언제나 바빴고, 본가에 오기도 점점 힘들어졌기 때문에.

특히나 내 생일은 12월, 연말이었기에 함께 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렇지만 형은 되도록 나를 만나러 오려 했고, 생일 당일은 아니어도 반드시 얼굴을 보고 갔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때는.

그때마다 형은 불이 꺼진 초에 다시 한번 불을 붙여 생일을 축하해주곤 했다.

“아직 20분 남았네.”

“전속력으로 왔어. 다행히 차가 안 막혀서.”

“잘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형은 생일 초에 불을 붙여주었다. 이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소원 빌고 꺼.”

“응.”

그렇게 눈앞에서 일렁이는 초를 보며 짧게 눈을 감은 뒤, 후-하는 소리와 함께 초를 껐다.

그리고 초가 꺼짐과 동시에 형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이 말을 직접 듣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항상 전화로 혹은 문자로 들었었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 했던 생일 파티 느낌이 나서.

“자정 넘어가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잖아.”

“나도 마찬가지였어.”

“그래도 장하게도 맞춰서 왔네.”

“그렇지. 내가 좀 장하잖아.”

그러자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솔직히 나름 뿌듯해하고 있었다. 시간을 맞춘 것에 대해.

“케이크는 형이 샀어?”

“니 케이크를 내가 사지, 누가 사. 너 좋아하는 딸기 들어간 케이크로 했어. 너 이 집 케이크 예전부터 좋아했잖아.”

어쩐지 케이크 모양이 익숙하다 했다.

어렸을 때 자주 먹던 딸기 들어간 케이크였다.

예전엔 호랑이 같은 동물 장식이 올라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딸기로만 장식이 되어 있었다.

여긴 여전히 맛있네.

“아이스크림도 사놨는데, 먹고 먹어.”

“아이스크림 좋지.”

“아, 그리고 그것도 받아왔는데.”

“그거?”

이내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안에서부터 뭔가를 가지고 나온다.

“엄마표 특별 불고기.”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진짜로 그 불고기야?

“엄마한테 부탁해서 미리 받아놨어.”

“와.”

“데워줄게.”

진짜 맛있는데, 그 불고기.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배가 안 고팠는데, 어쩐지 배가 고파지는 느낌이다.

“어차피 너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식탁 위에는 케이크와 함께 엄마표 특별 불고기가 놓아졌다. 냄새부터 남달랐다.

그리고 그걸 보니 아침에 멤버들이 생일상을 차려준 게 다시금 떠올랐다.

그것도 진짜 맛있었는데.

‘다음엔 나도 생일상을 차려줄까.’

원래도 미역국은 생일마다 해주고 있긴 했는데, 간단한 거라도 음식을 추가해서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늘 꽤 기분이 좋았었나 보네.”

“응. 엄청 좋았어.”

“뭐가 그렇게 좋았는데?”

“그냥 생일상도 받고, 축하도 받고.”

상당히 많은 걸 받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오는 길에 그것도 봤다. 너 인형.”

“인형?”

“한강 쪽에서. 크게 있던데?”

아. 그 인형.

형이 말한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광장에 특별 전시되었다던 그 인형이었다.

“그거 나도 보고 싶었는데.”

“사진 찍어왔어. 먹고 보여줄게.”

와, 이건 좀 센스 있었다.

엄청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근데 형은 안 먹어?”

“난 아까 조금 먹었어. 그것보다 어제는 왜 이렇게 답장이 늦었어?”

“어제? 아.”

어제라면, 사자와의 일이 있던 때였다. 그 사이 형에게서도 연락이 와 있었는데, 정신이 없던 터라 조금 늦게 답을 보냈다.

“어제도 늦게까지 연습이 있어서.”

“···연말이라 한창 바쁠 때긴 하지.”

그렇게 말하던 형이 앞에 있던 케이크를 작게 한 입 떠먹었다.

형은 원래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케이크류는 잘 먹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이 집 케이크는 한 입씩 먹는 편이었다.

“근데 손은 뭐냐?”

“아, 이거 종이에 살짝 베였어.”

아직까지 밴드를 붙이고 있던 상태였다.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낫지가 않았다.

그리고 형은 그렇게 잠시 내 손을 응시하더니 이내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은 채 무표정하게 팔짱을 꼈다.

“뭐 별다른 일은 없고?”

“응. 없어.”

“그럼 그건?”

“뭐?”

“사자 새X 연락.”

···여기서 왜 또 사자 얘기가.

이에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없지. 원래도 그렇게 연락을 자주 주고받던 것도 아니었고.”

사자와의 일은 당연히 스킵이었다.

이거 또 알면, 이번엔 그냥 치는 분위기로는 안 끝날 것 같아서.

“전에도 말했지만, 말해. 연락 오면.”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어?”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새겨들어.”

표정을 보니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알겠다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말에도 여전히 떨떠름했던 건지 형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봤다.

그렇지만 나 역시 형이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건 싫었다. 그러니 이것에 관해서는 순순히 말을 들은 생각이 없었다.

“형, 나 그거나 보여줘. 인형 사진.”

“말 돌리네.”

“아닌데. 진짜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근데 나 이거 더 먹어도 돼?”

“어. 다 니 건데.”

그러면서 케이크 상자를 내 쪽으로 조금 더 밀어주었다. 동시에 사진을 보여주려는지 폰을 꺼내려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형의 눈이 조금 커졌다.

“세현아.”

“왜?”

“온다.”

그러더니 뭔가를 향해 턱짓한다.

온다고? 뭐가?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곧 눈앞으로 놀랄 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눈이 오고 있었다.

올해의 첫눈.

어두운 밤하늘 가운데서 하얀 눈발이 그렇게 펑펑 흩날리고 있었다.

“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1시 55분. 끝나기 5분 전이네.”

쏟아지는 눈을 보며 형이 말했다.

정말로 5분 전이다. 생일이 끝나기 전.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눈이 오는 걸 보는 게 더 좋았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눈이 왔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이 순간이 그냥 다 좋았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나는 꽤 한참 동안 흩날리는 눈에 시선을 빼앗겼다.

“생일 축하한다.”

형이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말했다.

이에 그런 형을 보며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형.”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생일이었다.

* * *

동생과 생일을 함께 보내는 건 오랜만이었다. 정말로 상당히, 꽤 오랜만.

같이 보낸 게 언제적 이야긴지 기억이 나지 않을, 아니 물론 기억은 하고 있었다.

루트 시절엔 워낙 데뷔 때부터 바빴기 때문에, 우세현의 생일이 되면 항상 문자를 보내거나 잠깐의 전화 통화를 하는 게 축하의 전부였다.

여기에 연예계를 떠나 있을 때도 상황이 여의치 않던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올해는, 올해만큼은 제대로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올해는 함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래서 제 나름대로 준비를 좀 했다.

어렸을 때 종종 같이 먹었던 케이크를 사기 위해 왕복 2시간가량 이동하고, 본가에 들려 어머니께 부탁해뒀던 음식도 픽업을 했다.

“세현이가 예전부터 이걸 그렇게 잘 먹었었잖니. 너도 잘 먹고. 한동안 만들어달라고 한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첫째 아들에게 사전에 만들어둔 음식을 전달해주었다. 이제는 안심이라는 얼굴로.

“도현이 너도 먹으라고 왕창 만들었으니까 같이 먹고. 너희는 둘 다 왜 그렇게 볼 때마다 살이 빠져 있는지를 모르겠다.”

“걱정 마세요. 잘 먹고 있어요.”

그렇게 본가에까지 들린 뒤에 잡혀 있던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스케줄까지 다 마치고 난 후에는 그대로 집으로 직행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가는 길에 그거 있지 않나.’

대왕 인형 전시.

분명 한강 어느 광장에 생일 당일인 하루 동안 설치된다고 들었다.

“매니저 형, 여기요. 여기서 세워주세요.”

“마스크는 잘 썼지?”

다행히 방문한 시간대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사진 찍기 적절했다. 그리고 우도현은 그곳에 있던 대왕 우세현 인형 앞에 섰다.

‘비슷하네.’

인형은 귀여운 분홍색 토끼 모자를 머리 위에 쓰고 있었다. 쏙 빼닮진 않았지만, 우세현과 느낌적으로 비슷하게 생겼다.

“매니저 형.”

“응. 거기서 찍게?”

“컨셉을 정하죠.”

“뭐?”

우도현의 그 말에 이를 들은 매니저가 순간 되물었다. 하지만 우도현은 그런 매니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말을 이었다.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친 컨셉 어때요.”

“아니, 그냥 평범하게 찍는 게···.”

“오른쪽에서 나올까요, 왼쪽에서 나올까요.”

평범하게 찍을 생각은 없구나.

그렇게 매니저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오른쪽이 나을 것 같다며 답했다.

“하나, 둘.”

그렇게 사진을 수십 장 찍었다.

평소엔 사진을 잘 찍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만 되면 ‘한 장 더요.’를 끊임없이 외쳤다.

이것도 역시 그의 매니저에겐 익숙했다.

“세현이가 좀 덜 나온 것 같아. 한 장 더 찍자.”

“네. 그럼 한번 더요.”

이제는 서로 각도를 상의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찍은 그 사진을 이후에도 우도현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곤 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난 뒤, 간단한 준비를 시작했다.

중간에 스케줄 때문에 생일 라이브를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준비를 마친 후,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우세현]

: 형 나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그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약속한 시간인 10시는 어느새 이미 훌쩍 지나있는 상태였다.

‘생각보다 많이 늦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적, 생일날 자신을 기다리던 동생의 심정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

부모님께 들은 적이 있었다.

세현이는 항상 생일날이 되면 그렇게 문득문득 현관문을 쳐다봤다고.

그땐 사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좀 했었다. 집에 올 수 있냐는 우세현의 물음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항상 애매하게 대답해버렸으니까.

그렇게 한없이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게 언제나 미안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정 반대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 순간, 우도현의 입가엔 미소가 살짝 번졌다.

하지만 싫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 기다림이.

‘새롭네.’

새로워.

어쩌면 이제는 이렇게 기다리는 일이 더 많아질 지도 몰랐다.

“근데 언제 이렇게 숫자가 많아졌지.”

케이크에 꽂을 초를 바라보다 문득 인식하게 되었다. 어느새 초는 ‘20’이나 되었다.

제가 생일날 마지막으로 초를 꽂아주었던 때가 아마 ‘11’쯤 되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앞으론 이제처럼 숫자를 놓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진 놓친 숫자들이 너무 많았다.

이제부터는 놓치는 것 하나 없이 매년 케이크에 초를 꽂아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순간, 창문 너머로 잔잔하게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는 정말 겨울이었다.

‘눈이나 왔으면 좋겠네.’

분명 동생이 좋아할 테니.

그렇게 눈이 내리기를 소망했다.

이와 같이 우도현은 동생을 기다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어둡게 물든 창 너머를 한참동안이나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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