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연말 TNC 시상식에서
12월 말.
새해가 밝기까지 얼마 안 남은 그 시간, 현재 일산 킨텍스에서는 TNC의 연말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TNC 개국 1n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이기도 한 그 시상식에는 올 한 해 방영한 드라마의 출연진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는 소위 내놓아라는 배우들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우도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 <시간 감지자> 테이블에 앞에 깔끔한 수트를 입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곳에는 정말로 많은 연예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도현은 특히 더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 때문인지 우도현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앉아는 있지만, 지금 우도현은 머릿속은 딴생각들로 가득했다.
‘KMS 가요제전 볼 방법 없나.’
오늘 시상식과 같은 날 진행하는 KMS 가요제전. 심지어 시작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비슷했다.
시상식이 없더라면 그대로 본방을 시청했겠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무리였다. 눈앞으로 내내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이 그로서는 상당히 절망적이었다.
“표정을 좀 더 피는 게 좋지 않나.”
박시겸이 그런 우도현을 향해 말했다.
박시겸 역시 오늘 시상식에 참석했다.
여기에 박시겸이 앉은 테이블과 우도현의 테이블이 나란히 배정된 탓에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은 서로 옆자리에 앉게 됐다.
보는 눈이 있기에 인사 정도는 나눴지만,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상대방과 대화할 생각이 없는 건 우도현이나 박시겸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렇지만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지금도 두 사람은 세트장 밖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상관할 바가 아닐 텐데.”
“그렇게 딱딱한 표정으로 있다간 이쪽도 같이 괜한 오해를 사게 돼서 말이야. 쓸데없는 말 나오는 거, 질색이라서.”
그 말에 우도현은 잠시 실소했다.
애초에 박시겸이 말한 대로 딱딱한 표정을 한 적도 없고, 오해를 살 것도 없었다.
내가 이 바닥 몇 년 차인데.
카메라 앞에 구린 표정으로 나설 만큼 사리 분별이 없진 않았다.
“예전부터 말했을 텐데. 좀 더 표정을 피는 게 좋다고.”
“쓸데없는 참견은 여전하네.”
“너야말로 남의 말을 안 듣는 건 여전하군.”
그렇게 서로 눈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에는 얼음장과 같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앞서 있던 SBC 가요제전 건으로 영 거슬리는 판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부딪히니 우도현은 더욱 짜증이 났다.
“아니면 윈썸이 축하 공연이라도 와야 그 표정이 풀어지려나.”
“뭐?”
그 순간, 우도현의 차가운 시선이 박시겸에게로 향했다. 반면, 박시겸은 여전히 변화 없는 얼굴로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윈썸. 무대 잘하더라고.”
“······.”
“개인적으로 축하 공연에 어울릴 것 같아서.”
그 즉시 우도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순간 굳이 윈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 하며 말의 내용까지, 그 모든 것이 우도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비아냥거리는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하는 소리니까.”
박시겸이 여전히 변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덧붙여진 그 말에 우도현은 그대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앞선 말이 진심이건 뭐건 상관없었다. 뭐가 됐든 불쾌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오히려 진심이라는 게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그건 곧 박시겸이 윈썸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니까.
박시겸은 빈말 따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도발을 하려는 의도건, 비아냥거리려던 의도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항상 사람을 더욱 열받게 했다.
안 그래도 전에 있던 일이 신경 쓰이던 중이었다. 우세현이 말했던 그 옛날이야기.
까마득하게 옛날 일이었다.
그저 우연하게 나눈 대화.
그럼에도 박시겸은 그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평소 박시겸이라면 그런 사소한 것 따위 절대 기억하지 못했을 거였다.
예전에 어린 제 동생과 마주할 때마다 박시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는데, 아무래도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래. 윈썸이 무대를 잘하긴 하지. 축하 공연도 뭐, 당연히 잘할 테고. 그런데 말이야.”
그 순간, 우도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동시에 그대로 박시겸을 향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건 날 축하하는 거지, 널 축하하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뭐?”
동시에 박시겸의 시선이 우도현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으로 얽혔다.
“오늘 상. 그거 내가 받을 거거든.”
오늘 있을 드라마 부문 베스트 대세상.
한창 이름값을 올리고 있는 젊은 남자배우들이 노리고 있는 그 상.
그건 아마 우도현의 차지일 터였다.
아니, 이는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그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박시겸 역시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박시겸의 미간은 이전보다 눈에 띄게 좁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게 우도현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박수 잘 치라고.”
동시에 우도현은 그런 박시겸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 지어주었다.
* * *
[올해의 베스트 대세상, <시간 감지자>의 우도현! 축하드립니다!]
“형님 상 받으셨다!”
그 순간, 화면을 보던 백은찬이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외쳤다.
KMS 가요제전 대기실에서 대기를 하는 동안 멤버들과 함께 TNC 시상식을 생방송으로 시청하는 중이었다.
날이 겹치긴 했지만, 다행히 형이 상을 받는 부문과는 시간이 겹치지 않아 온에어를 통해 이를 볼 수 있었다.
“오늘 엄청 잘생기셨는데요?”
“수트빨이!”
“잠깐, 이제 수상 소감 하신다.”
그 말에 멤버들은 곧바로 입을 다문 채로 화면에 집중했다. 형의 손에 있는 금색 트로피가 순간 잠시 반짝거렸다.
형이 그렇게 앞에 있는 마이크에 조금 더 다가갔다. 무슨 소감이 나올지 궁금했다.
[일단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굉장히 얼떨떨합니다.]
그렇게 화면 속 형이 살풋 미소 지었다.
“정말 받을 줄 모르셨나봐. 표정이 엄청 놀란 표정이신데.”
“알았을걸.”
몰랐을 리가 없지.
후보들이 꽤 쟁쟁하긴 해서 까봐야 안다는 의견이 많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수상 가능성을 놓고 보면 형이 1순위였다.
- 베스트 대세상 우도현 ㅊㅊㅊㅊ
- 헐 우도현 상 받음?ㅠㅠㅠㅠㅠ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받아서 다행
- 박시겸, 서한민이랑 대립이었는데 결국 우도현이 이겼네ㅋㅋㅋㅋㅋ
- 근데 당연히 우도현 꺼 아니었음? 솔까 후보 중에서 올해 젤 터진 게 우도현인데
└ ㅇㅇ 맞아 넷상에서만 내려치기 당하지
└ 누가 봐도 우도현이긴 했지
- 와중에 존잘이라 눈이 개안한다ㅠㅠ도현아 상 받은 거 축하해
[마지막으로 우리 사랑하는 가족,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내 동생, 세현이. 형, 상 받았다. 칭찬 기대할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형이 다시 한번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동시에 화면 속에서 큰 함성이 일었다.
- ㅋㅋㅋㅋㅋㅋ세현이 칭찬 기대한대ㅋㅋ
- 세현아 형아 칭찬해죠라ㅠㅠㅠㅠㅠㅠ
- 근데 형 상 받았다고 한 거 세현이 따라 한 거지?ㅋㅋㅋㅋㅋ세현이도 이전에 상 받고 형한테 상 받았다고 그랬짜나
└ 아 ㄹㅇ 그렇네
└ 그때 우도현이 보고 있었나봄ㅋㅋ
- 우도현 팬 많이 갔나보다 함성 소리 장난 아니네
- 오늘 우도현 직캠 ㅈㄴ 많이 올라올 듯 헤메코에 힘 빡줌
“기대하신다는데?”
“그냥 하는 말이야.”
그러니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면 된다.
물론 형은 그냥 안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와중에 형이 상을 받고 내려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다음 장면으로 박시겸을 비췄다. 박시겸은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모습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컷 전환 한번 속 보이네.
이번 베스트 대세상은 받지 못했지만, 박시겸 역시 그 전에 상을 받았다.
이렇듯 참여한 사람들에겐 당연하게도 전부 상이 돌아갔다. 무관은 없도록.
사실 이 시상식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올해에 화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증명하는 것이긴 했다.
올 한 해 흔히 인기 좀 있었던 드라마는 거의 이름을 올렸으니까. 물론 그 중에서도 탑 티어는 형의 드라마인 <시간 감지자>였다.
그러니 시상식에서 가장 큰 상, 거의 대상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올해의 드라마>상 역시 <시간 감지자>가 받을 터였다.
‘지금 문자를 넣어둘까.’
어차피 답장이 바로 올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시간이 있을 때 보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세현]
: 형 상 받은 거 축하해 온에어로 봤어
아마 조금 이따가 더 큰 상을 받겠지만, 일단은 이대로 보내기로 했다. 받으면 한 번 더 보내지, 뭐.
‘그러고 보니 박시겸한테도 형식상 축하 문자 정도는 넣어줘야 하나.’
지난번 SBC 가요제전에서 같이 MC를 봤을 당시, 번호를 교환한 바가 있었다.
당연히 내가 먼저 물은 건 아니었고, 박시겸이 먼저 물어서.
‘번호 정도는 교환해두는 게 좋을 것 같군. 입력하도록 해.’
예상 못한 전개였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본인의 폰을 넘기는데, 그대로 거절하기도 뭐 했다. 그래서 결국 번호는 교환했다. 일단.
‘와중에 용모 단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질 않나.’
그냥 어지간히도 이유를 알려주기 싫었구나했다. 그래서 상당히 찜찜하긴 하지만, 어쨌건 박시겸으로 인해 이득을 얻은 건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상한 부채감 같은 게 좀 있었다.
‘어쩌다 보니 루트 전화번호를 다 가지고 있는 셈이 되어버렸네.’
신도하에 박시겸에 권해진에.
아, 물론 한 명은 빼고.
하지만 하나 같이 꺼려지는 인물들뿐이었다. 그나마 나은 게 신도하정도. 그래도 신도하는 앞선 두 사람보다는 나았다.
‘귀찮지만······.’
그래도 보내는 걸로 했다.
어차피 답도 안 올 것 같으니.
내용도 간단하게 ‘축하드립니다’만 보낼 생각이었다. 되도록 단답형 대답이 오도록. 물론 그렇지 않아도 단답형이긴 할 테지만.
[우세현]
: 축하┃
“야! 이제 우리 슬슬 올라가야 한대.”
그때 백은찬이 갑작스럽게 내게 팔을 걸어왔다. 이에 순간 놀라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눌렸다.
“아.”
[우세현]
: 축하
그래도 보내버렸다.
* * *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올해의 마지막 연말 무대인 MBS 가요제전을 위해 벤을 타고 이동했다.
앞서 있던 TNC 시상식의 마지막엔 예상했던 대로 형의 <시간 감지자>가 올해의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형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더 많이 받으면 좋았을 텐데.
인터넷에선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로 떠들썩했고, TV에서는 <시간 감지자>의 스페셜 연속 방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박시겸 선배랑은 이야기가 잘 됐고?”
“응. 그럭저럭.”
“다행이네.”
백은찬이 말했다.
지난번 박시겸에게 잘못 보낸 그 메시지. 의도치 않게 ‘축하’ 두 글자랑 달랑 보냈다. 그리고 그걸 안 순간, 빠르게 뒷말을 쳤다. ‘드립니다’라고.
[우세현]
: 축하
[우세현]
: 드립니다
이어서 ‘축하드립니다’였다.
그때보다 빨리 자판을 누른 적이 없던 것 같다. ···읽은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리고 나서 한참 뒤에 박시겸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솔직히 말해서 안 올 줄 알았다. 아니, 차라리 안 왔으면 했다.
하지만 정말로 한참 뒤에 답장이 오긴 왔다.
[박시겸 선배님]
: 그래
내용은 마음에 들었다.
별거 없는 내용. 마음에 든다.
어쨌건 그 건은 그렇게 끝났다. 중간에 진땀을 좀 빼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박시겸은 권해진보다 더 불편하다.
“근데 올해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그렇죠. 올해도 결국 이렇게 돼요.”
“뭐가?”
“우리 무대.”
아. 그 말이었군.
동시에 백은찬이 그대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곧 턱을 괸 채로 말했다.
“올해는 그래도 안에서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임진각은 아니잖아.”
“올해는 임진각 무대가 다시 폐지됐으니까 그렇지. 아니었으면 올해도 갔을 지도.”
완전히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
“또 얼어 뒤지겠네.”
그대로 안지호가 툭 내뱉었다.
올해의 마지막 연말 무대인 MBS 가요제전. 그곳에서 우리는 이번에 야외 특설 무대에서 무대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