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292화 (292/413)

292화. 무대는 내년에나 하겠네.

MBS 가요제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 순서가 오기까지는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내년이나 돼야 올라갈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니 괜히 까마득한 것 같네.

‘여전히 따뜻하네.’

손안에 있던 핫팩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안지호가 열심히 흔든 덕인가 보다.

그렇게 들고 있던 핫팩을 패딩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그대로 손을 집어넣자 얼어있던 손가락이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세찼지만, 어째서인지 이전보다 추위가 확연히 덜 느껴졌다. 그 새 몸이 익숙해진 건가.

아니면 역시나 안지호가 준 핫팩 덕분일 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지간히도 추워 보였나 보다.

뜬금없이 핫팩을 주고.

아, 어쩌면 무대를 생각해서 준 걸지도.

“오, 우세현. 목도리가 느슨하다.”

그 순간, 다가온 백은찬이 내 목에 있던 목소리를 조금 더 꽉 매었다. 그러자 느슨하게 있던 목도리가 조금 더 착 감겨왔다.

“이렇게 해야 따뜻하지.”

“그렇다기엔 너무 꽉 조인 거 아니냐.”

“안 돼, 안 돼. 이 정도는 돼야지.”

그리고선 다시 한번 목도리를 정리한다. 근데 정리하는 손에 은근 힘이 들어가 있는데?

“그래도 나름 메이크업 안 묻게 잘 해줬다고. 형이 세심하게 신경 써서. 이제야 좀 마음에 드네.”

“그래, 고맙다.”

그러자 백은찬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사실 계속 목도리를 하고 있던 이유는 춥기 때문도 있지만 다른 것보다 목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세현아, 이거 마셔.”

“? 이게 뭔데?”

차선빈이 내게 테이크아웃 컵 하나를 건넸다. 그렇게 받아든 컵은 꽤 따뜻했다. 여기에 가져온 지 얼마 안 된 건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유자차. 매니저 형한테 부탁해서 사다 달라고 했어. 언제나 올라가기 전에 따뜻한 거 마시고 올라가잖아.”

차선빈의 그 말에 새삼 조금 놀랐다.

알고 있었나.

이맘때쯤 추워질 때면 종종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따뜻한 걸 마시고 들어갔다. 주로 물이었으나 가끔 유자차 같은 걸 마시기도 했고.

“오늘은 더 마시고 싶을 것 같아서.”

차선빈의 말대로였다.

익숙하게도 정말로 슬슬 뭐가 마시고 싶었던 참이니까.

“고마워. 잘 마실게.”

“응.”

그대로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입 마셨다.

그 순간, 달달한 유자향이 깊게 났다.

오늘따라 그 향이 더 기분 좋게 느껴졌다. 저절로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거는? 내 거는 없어?”

“있어. 여기.”

“아, 역시 차선빈. 그렇지. 짝꿍인 내 거가 없을 리가 없지!”

그렇게 백은찬이 차선빈으로부터 컵을 받아들였다. 백은찬은 유자차가 아닌 따뜻한 라떼였다.

“왜 너랑 선빈이가 짝꿍이야?”

“내 폰 저장명이잖아. 짝꿍선빈.”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군.

잠시 잊고 있었다.

그렇게 차선빈이 가져온 음료를 멤버 모두가 모여 함께 마셨다. 마시는 동안에도 대화가 끊이지를 않았다.

“야, 잘 가지고 있지?”

“뭘?”

와중에 안지호가 잘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뭘 잘 가지고 있는데?

“핫팩.”

“아, 있어.”

이윽고 주머니에 있던 핫팩을 그대로 꺼내보였다. 그러자 안지호는 그걸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핫팩은 왜 물어보는 거지.

“누구한테 또 홀랑 줘 버렸을까봐.”

“이미 사용한 건데 왜 주겠어.”

“그래, 그러니까 잘 가지고 있으라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건 왠지 쉽게 넘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생각해서 준 게 느껴져서.

아무튼 넘길 생각 없었다.

중간엔 도운이 형이 멤버들의 컨디션을 한번씩 확인하기도 했다.

컨디션 조절이 힘든 건 다 똑같을 텐데, 형은 리더라는 이름으로 멤버들 모두를 챙기고 있었다.

“형은 좀 괜찮아요?”

“나야 워낙 추위에 강해서.”

“이렇게 하면 조금 덜 춥대요!”

동시에 하람이가 나와 도운이 형에게 팔짱을 껴왔다. 확실히 붙어있으니 추위가 좀 덜 느껴졌다.

“뭐야, 왜 그렇게 붙어 있냐?”

그러면서 은근슬쩍 백은찬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 모습을 보던 차선빈도 마찬가지로 내게 팔짱을 껴왔다.

와중에 안지호는 백은찬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힘없이 같이 딸려왔다.

표정은 이게 뭐냐는 표정이지만, 그래도 따뜻하긴 한 건지 군말 없이 있었다.

여전히 입김은 나오고,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해서 패딩도 벗은 채 목도리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이전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하늘엔 달이 떠 있었다.

상당히 둥근 보름달. 오늘따라 달이 꽤 뚜렷하게 보였다.

눈앞에선 화려한 조명과 무대가 빛나고 있었고, 수많은 관객이 이에 환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올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이 조금씩 지나고 있었다.

* * *

새로운 해가 밝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때는 무대 위였다.

[202X년, 새해 첫 곡을 맞이할 시간이네요. 그 첫 무대의 주인공,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럼 지금 바로 그 멋진 무대를 만나 보러 가시죠!]

[WINSOME]

그렇게 202X년, 새해의 첫 무대를 우리가 장식했다. 정말로 무대 위에서 새해를 맞이한 셈이었다.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제야의 종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무대 위였다는 건 변함없었다.

무대 위에서 새해를 맞이한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작년과 올해 겨우 2번에 불과했지만, 이젠 무대 위에서 보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았다.

여기에 작년과 변함없는 게 또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떡국. 올해에도 떡국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러지 말고 나랑 차선빈이 하는 건?”

“지금 떡국 별로란 얘기를 돌려 말하는 거냐?”

“와, 안지호. 야, 그래도 먹을 만은 할 거야. 우리 진짜 실력이 꽤 늘었다?”

“선빈이 형 의견도 포함된 거 맞아요?”

“어, 난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

“안 돼! 짝꿍!”

백은찬이 그대로 차선빈을 부르짖었다. 사실 이건 그냥 백은찬이 떡국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같이 만들기로 했다.

백은찬이랑.

그래도 손이 하나 더 있으면 뭐든 유용할 테니.

‘원래 안지호한테 도와달라고 할 생각이기도 했고.’

어쨌건 백은찬이 그 자리를 채웠으니 계획에는 크게 차질이 없었다.

“백은찬, 거기 파 좀 썰어줘. 아, 그냥 댕강댕강 자르면 안 돼.”

“오케이. 물론 그냥 댕강 자를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간 본 게 있어서 재료 손질만큼은 많이 늘었다. 내 생일 때 잡채를 한 것만 봐도. 그건 다시 생각해도 놀라웠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떡국을 완성했다.

작년에 한번 해봤다고 이번엔 시간도 꽤 단축됐다.

“와, 이 많은 걸 벌써 다 했어?”

“네. 이제 뜨기면 하면 돼요. 백은찬, 거기 국자 좀.”

“여기 있습니다.”

“바로 날라.”

이번에도 양을 넉넉하게 했다.

사람이 여섯이나 되니까.

내가 그대로 떡국을 그릇에 담으면 백은찬과 다른 멤버들이 이를 가져가기로 했다.

“세현아, 얼른 와.”

차선빈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식으니 먼저 먹으라고 했는데도 다들 먹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와, 역시 맛있네.”

“솔직히 이젠 세현이 형 떡국 아니면 못 먹을 것 같아요. 완전 맛있어.”

“이거 은찬이가 도운 거라고 했었지?”

“옙. 제가 부주방장.”

“도움은 됐냐?”

“파는 송송 잘 썰더라.”

“내가 또 파 썰기 달인이야.”

그 덕에 파를 좀 많이 넣었다.

한 숟가락 뜰 때마다 파도 같이 떠오르네.

“이제 우리 팀에 미성년자가 없네.”

“그러니까요. 이제 다 20살이야.”

“하, 나도 이제 와인 딸 수 있다고요.”

“갑자기 와인은 왜 나오는데?”

“와인 못 딴 게 한이 됐어요.”

그러면서 와인 따는 시늉을 보인다.

와인이라면, 그때 그걸 말하는 건가. 콘서트 끝나고 뒤풀이 겸 마셨던 그 와인.

그때 하람이는 미성년자라서 혼자 와인잔에 사이다를 따라 마셨으니. 다음에 정말 와인을 사서 한번 다 같이 마실까.

“다른 건 뭐 없냐? 하고 싶었던 거.”

“하고 싶은 거야 있긴 하죠.”

“뭔데?”

“일단 지금 현실적으로 바로 실현 가능한 건 아무래도 그거겠죠?”

“그거?”

그 순간, 멤버들의 시선이 신하람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신하람이 그대로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또죠.”

아, 그렇군.

확실히 지금 당장 현실 가능성이 있는 얘기긴 했다. 마침 근처에 살 수 있는 곳도 있었고.

“그럼 시간 날 때 한번 가보자.”

“어, 진짜요?”

“응.”

어차피 가까우니까.

그러자 하람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사실 지금의 로또는 당첨 여부보다는 살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을 테니.

“아뇨. 당첨이 중요한데요.”

우리 막내는 현실적이었다.

미안, 형이 너무 감성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뒤에 있을 새해 기념 자컨에서 올해 목표 같은 거 묻는다던데.”

“아, 그거 들었어요. 개인 목표랑 팀 목표랑 해서 하는 거였죠?”

며칠 뒤에 있을 새해 기념 자컨.

새해를 기념해서 게임도 하고 이것저것 하는 모양인데, 그 안에서 올해의 목표를 정하는 코너도 있었다.

‘올해 목표라.’

팀 목표라면 일단 명확했다.

당연히 대상이지.

재작년엔 신인상, 작년엔 남자 그룹상. 그러니 올해는 당연히 대상이 목표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제쳐야 할 그룹들이 꽤 있긴 했지만.

“솔직히 팀 목표는 이견 없이 동일할걸?”

“이건 진짜 여기서 당장 이구동성할 수도 있어요.”

“와중에 다른 거 말하는 사람 있는 거 아니지?”

“그런 멤버 있으면 일주일 화장실 청소 맡겨야 해.”

생각으로 볼 때, 멤버 모두 지금 떠올리고 있는 목표는 역시나 하나로 동일했다. 이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대상.

그것 하나뿐이었다.

“개인 목표는?”

도운이 형이 물었다.

사실 팀의 목표가 내 개인 목표이긴 한데, 아마 그것과 별개로 따로 목표를 작성해야 하는 것 같았다.

“형은 뭔데요?”

“난 우리 팀 잘 이끌기. 아 그리고 작곡?”

“이 형, 요즘 작곡에 한창 맛들렸어.”

“근데 도운이 형 곡은 좋으니까요. 회사에서도 많이 좋아하시고.”

도운이 형은 요즘도 한창 작곡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에 작업실을 만드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고.

“전 연습실에 더 오래 있기요.”

“오, 차선빈~ 역시 연습 벌레~ 전 지금보다 라이브랑 춤 느는 것 정도?”

“전 개인적으로 노래 늘고 싶어요!”

신하람이 그대로 손을 든 채로 말했다.

“노래?”

“네. 근데 사실 노래 말고도 춤도 늘고 싶고, 안무 창작도 더 잘했으면 좋겠고, 공연도 더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공연 많이 하기 좋다.”

“그쵸?”

이렇게 보니 개인적인 목표도 거의 비슷했다. 더 많이 공연하고 싶고, 실력이 더 늘고 싶고. 이런 걸 보면 영락없이 팀이다.

“안지호, 넌?”

“노래, 춤 정점 찍기.”

“그걸 올해 안에 하겠다는 거냐?”

“올해 해보고 안 되면 내년에도 하려고.”

사실 지금도 안지호는 올라운더라고 불릴 만큼 노래가 춤이나 안 되는 게 없긴 한데.

애초에 정점이라는 기준이 좀 주관적이지 않나. 결국 그냥 본인이 만족할 만큼 한다는 의미였다. 그 기준은 아마 상당히 높겠고.

“나도 노래랑 춤. 그리고 작곡.”

“세현이 형은 노래도 목표에요?”

“응. 노래 아직 부족해서.”

그러자 이를 들은 멤버들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마치 뭔가를 잘못 들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왜 그렇게들 보는 건데?

“부족···한가? 부족의 의미가 내가 아는 거하고 다른가?”

“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또 있었어요?”

“아니. 그건 아마 아닐 거야.”

“세현아, 너 노래 엄청 잘해.”

차선빈이 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 그걸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지 말아 줄래.

“지금 이상으로 해야지.”

“와우, 지금 이상?”

언제까지고 정체되어 있을 순 없었다. 그룹이 올라갈수록 실력도 그에 맞춰 올라가야만 했다.

내 기준에선 아직 한참 멀었다.

만약 현재 내 노래 실력을 점수로 나타낸다면 ‘S’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랄까.

‘S’로는 부족하다.

‘SSS’는 돼야지.

‘SSS’보다 위가 있다면 그 위도 좋고.

여기에 작곡도 하고 싶었다.

물론 작사도 좋고.

하지만 개인곡보다는 그룹곡이 만들고 싶었다.

‘···근데 왜 신도하가 떠오르지.’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신도하가 떠올랐다. 예전에 작곡과 관련 되어 한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서 그런가.

‘···확실히 신도하가 작곡을 잘하긴 해.’

노래에 묻어나오는 신도하 특유의 그 느낌이 좋았다. 멜로디만 들어도 신도하가 만든 곡임을 알 수 있는 그 느낌.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신도하와 작곡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언제 한번 연락, 해볼까.

그대로 한술 뜬 떡국에는 흰 떡과 함께 작은 파들이 여전히 송송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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