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운이 중요해
로또를 사러 갔다.
원래는 하람이랑 둘이서만 가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차선빈이 붙고 어째서인지 백은찬이 붙고 그러다 보니 다 같이 가게 됐다.
그렇게 줄줄이 사탕마냥 불어난 인원으로 6명이 우르르 로또를 사러 왔다.
“너희는 뭐야? 자동? 수동?”
“어제 돼지꿈 꾼 사람 없어요? 그 사람만 수동으로 하면 좋을 텐데.”
“난 원래 꿈을 잘 기억 못해서.”
“근데 요즘도 돼지꿈인가? 막 더 좋은 꿈도 있는 것 같던데.”
사실 좋은 꿈이건 뭐건 나도 차선빈처럼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많이 꾸는 편도 아니고.
“난 수동으로 할게.”
“우세현 수동? 왜? 좋은 숫자라도 있냐?”
“아니. 그냥 막 찍으려고 하는데.”
수동으로 하는 것엔 별 의미가 없다. 다만, 하고 싶은 숫자가 있어서. 그 숫자를 찍고 남은 건 그냥 운에 맡기기로 했다.
“세현이 형, 무슨 번호 찍을 건데요?”
“우리 데뷔일.”
“오, 0131?”
“응.”
0131. 1월 31일.
윈썸의 데뷔일이다.
다른 것보다 그냥 그 번호로 찍고 싶었다. 그리고 숫자 ‘6’도 꼭 넣고.
“아, 모르겠다! 그냥 난 자동할래.”
“아직도 고민하고 있었냐?”
“뭐야, 너 벌써 샀어?”
그 사이, 안지호는 언제 산 건지 자동으로 뽑아 든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도운이 형과 차선빈도 빠르게 자동으로 뽑았다.
이를 보던 백은찬도 결국은 자동.
하람이는 수동으로 번호를 찍었다.
“두근두근.”
“근데 이거 어차피 안 되지 않을까.”
“야, 이런 건 원래 설레는 맛이 있는 거야. 또 아냐, 만원이라도 당첨이 될지.”
“만원도 꽤 힘든 거 아니야?”
“1등, 1등 당첨금이 중요해요.”
와중에 배포가 큰 우리 막내는 오로지 1등 당첨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든 목표가 높으면 좋지.
물론 개인적으론 5,000원만 당첨 돼도 이득이라 생각 중이었다.
“이런 건 결국 다 운이잖아. 괜한 기대 없이 그냥 오천원 썼다고만 생각해.”
안지호는 꽤나 현실적으로 보고 있었다. 와중에 커피 음료 하나를 산 건지 한 손엔 음료를 든 채였다.
“그래도 혹시 1등 당첨 돼도 비밀로 하기 없기. 특히 신하람.”
“원래 이런 건 본인만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가족들한텐 알리지 않아?”
“그냥 본인만 알고 있는 게 편한 상황일 수도 있죠.”
안지호가 말했다.
누구에게 알리느냐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판단이긴 했다. 나 같은 경우, 가장 먼저 형한테 알리려나.
근데 어차피 당첨될 것도 아니고.
무의미한 상상이었다.
“당첨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로또 사니까 진짜 20살된 기분나네요~”
“그래서, 또 뭐가 하고 싶은데?”
“일단 형들이랑 짠-도 한번 하고 싶고, 아, 그러고 보니 저도 거기 들어갔어요. 사이버 대학교.”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았어.”
하람이 역시 멤버들이 재학 중인 사이버 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이로써 전원 같은 곳에 재학 중인 셈이다.
“수능 때 고생 많이 했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수능은 한번 보고 싶었거든요.”
콘서트가 11월에 잡힌 터라 여기에 수능까지 겹쳐 그 기간 동안 하람이가 여러모로 바빴다.
그렇지만 수능을 보겠다는 하람이의 의지가 워낙 확고했고, 이를 무사히 치렀다.
“그때 세현이 형이 도시락 싸줬잖아요. 근데 점심시간에 먹는데 그게 또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먹는 내내 ‘와- 이 형.’ 이러면서 먹었다니까요.”
“우세현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쌌었지. 막내 먹이겠다고.”
“별로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어. 그냥 평범했지.”
“그 정도면 대단한 거지.”
그냥 계란말이나 불고기, 그 밖에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반찬이랑 밥만 싸줬다. 마음 같아선 몇 첩 도시락을 싸주고 싶었는데 그것까진 못했다.
“아무튼 저 그때 엄청 감동 먹었어요. 이게 밥이 맛있으니까 컨디션이 좋아지더라고요. 사실 그날 시험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밥은 또렷하게 기억난다니까요?”
“밥만 또렷하게 기억 나냐?”
“네! 밥만 또렷하게 기억나요!”
신하람이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어쨌건 잘 먹었다면 다행이었다.
저렇게 웃는 걸 보니 한 보람이 있었다.
그 날은 고사장 앞에 카메라도 많았다. 작년과 다르게 그 플래시를 혼자서 다 감당해야 했었는데, 그게 또 대견하기도 했다.
이어서 시험은 잘 봤냐는 백은찬의 말에 하람이는 그런 건 묻는 게 아니라며 타박했다.
“어쨌든 당첨되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신하람은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옆에 있던 멤버들이 그런 하람이를 보며 한 번씩 웃었다. 물론 나도 웃었다.
그러게, 당첨되면 좋겠다. 오천원.
* * *
지난번 산 로또의 결과가 나왔다.
사실 결과가 나오는 날인지도 잊고 있었다. 그때 산 이후로 그냥 책상 위에 둔 채 잊어버려서.
“오늘 결과 나오는 날이던데.”
안지호가 그렇게 흘러가듯 말했다.
그래서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이 하나둘씩 로또를 가지고 나왔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 속에 각자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기대감이 그리 크지 않은 건지 처음보단 관심이 좀 꺾인 모습이었다.
“당첨된 사람 있어?”
“아아, 전 꽝이요······.”
“나도 꽝. 번호 하나 맞았네.”
“도운이 형도 꽝이고, 안지호는?”
“···꽝.”
동시에 안지호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로 가지고 있던 종이를 조용히 던져두었다.
하지만 난 지금 내 눈에 앞에 있는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미쳤다.
“역시 거의 꽝이네. 우세현, 넌?”
“난···미쳤어.”
“미쳤어? 뭐야, 설마 대박이야?”
“대박? 당첨이에요!?”
어, 당첨이야.
미쳤다, 로또에 당첨됐다!
“몇 등이야? 몇 등!”
“설마 1등이에요!?”
“5등!”
“5등? 5등이면 얼마···.”
“5,000원!”
“······.”
그러자 백은찬과 신하람의 표정이 급격하게 평온해졌다. 5,000원에 당첨됐다고! 5,000원!
“그래, 우세현 오천원 축하한다.”
“대박이야!”
“응, 그래. 세현아, 대박이네. 그럼 남은 사람이 누가 있지? 아, 차선빈. 넌?”
그러자 차선빈이 말없이 보고 있던 화면을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어, 뭐지, 차선빈도 동그라미가 좀···.
“나도 5등. 5,000원인가봐.”
“너도 5,000원이야?”
“응.”
차선빈이 차분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명이나 5,000원이 나왔다! 놀랄 만한 일이었다. 6명 중에 2명이나 당첨됐다니.
둘이 합치면 만원이다!
“나도 꽝인데, 그래도 우세현이랑 차선빈이 당첨됐으니 나름 의미는 있네.”
“세현이 형, 그렇게 좋아요?”
“그러게.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
안지호가 그대로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좋다기보단 신기했다. 이런 거 당첨되는 게 처음이라서.
게다가 두 명이나 된 것도 놀라웠다.
한 명만 돼도 대박인데.
형한테 로또 당첨됐다고 자랑할까.
“그래서 당첨된 걸론 뭐할 건데?”
“보통 이런 건 한 장 더 사지 않나?”
“난 그냥 음료 한 잔 마시려고.”
차선빈이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나를 보며 말한다.
“같이 마시자, 세현아.”
“딸기 라떼?”
“응.”
그래, 뭐. 어차피 이걸로 다시 복권을 살 생각은 없었다. 내친김에 그냥 차선빈이랑 카페나 가야지. 겨울이라 다시 딸기 라떼가 나오는 계절이다.
“그래, 같이 가자.”
그러자 차선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지난번에 갔던 거기가 좋겠지. 거기 음료 맛있었으니까.
“뭐야, 결국 둘이 가는 거야?”
“세현이랑 나만 당첨이 됐으니까.”
“아, 이래서 운이 중요해!”
그 말에 차선빈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분이 상당히 좋은 것 같았다. 저건 기분이 업됐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당첨된 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차선빈은 지난번에 티켓팅도 성공했었지. 이번엔 로또도 당첨되고. 이렇게 보니 운이 상당히 좋다.
* * *
그로부터 얼마 뒤에는 우리가 단체로 복권을 사러 갔던 당시의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정확히는 사고 나오는 길에 찍힌 사진이었다.
- 애들 다 같이 뭐 사러 간 것 같은데 뭐 샀을까?
- 스케줄은 아니겠지? 단체로 있으니까 혹시 스케줄인가 해서
└ 스케줄은 아닌 듯 착장이 다들 너무 프리해 그리고 마이크도 안 보이고
- 이거 우연히 찍힌 거 아닌 것 같은데 출처 불명확한데 소비해도 되는 거임?
└ 일단 원글에는 우연히 목격했다고 써 있었음
- 지호 손에 음료 든 거 보니까 그냥 간단하게 먹을 거 사러 나온 것 같은뎅 암튼 다들 귀엽당
- 은찬이랑 지호는 사복 진짜 잘 입는다 세현이는 걍 ㄱㅇㅇ 얘는 잘생겼는데 귀여워
[Connect] [귀욤람쥐하람]
: 애들끼리 단체로 편의점 간 거 봤어? 꽁냥꽁냥 다같이 다니는 거 보니까 맘이 훈훈해진당
└ [★Haram] : 그 날 형들이랑 복권 사러 갔어요! 성인된 기념으로 가고 싶다니까 같이 가줬어요!
- 들었어? 애들 다같이 복권 사러 간 거래ㅎㅎㅎ하람이 성인된 기념으로!
- 우래기들 진짜 사이도 좋지ㅠㅠ 막내 성인 됐다고 다같이 복권 사러 가주는 애기들ㅠㅠㅠㅠ
-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솔직히 이게 젤 궁금하다ㅋㅋㅋ
- 우리한테도 번호 찍어줬으면 좋겠다 나중에 그 번호로 나도 사보려고
그렇게 멤버들과 복권을 샀던 이야기는 어느덧 팬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멜로우들에게도 기회가 될 때 이야기를 직접 공유할 생각이 있었는데, 사진이 풀림으로써 예상보다 빨리 얘기하게 됐다.
그래도 오천원 당첨된 건 꼭 직접 이야기해야지. 다들 엄청 놀라실 것 같다.
“우세현, 어디 가냐?”
“나 약속.”
“신도하 만나러 간댄다.”
“뭐? 신도하 선배?”
왜 그렇게 놀라는 표정이냐.
어제 신도하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간 언제 되냐고.
아무래도 지난번에 이야기한 생일 선물 건 인 것 같아 그냥 바로 만나기로 했다. 이어서 테이블 위에 두었던 모자를 썼다.
오늘도 장소는 역시 신도하의 작업실이었다.
“그 선배는 왜 만나는 건데?”
“잠깐 뭐 좀 받으러.”
“받으러? 아, 혹시 생일 선물이냐?”
“응.”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의외로 금방 눈치를 챈다.
“니가 그 선배한테 뭐든 덥석 받진 않을 테니까. 그나마 받을 만한 게 아무래도 생일 선물?”
사실 생일 선물도 받고자 해서 받는 건 아니지만.
“올해는 뭔데?”
“몰라. 안 물어봐서.”
“왜 괜히 내가 다 걱정되냐.”
그 부분에 관해선 나 역시 염려가 됐다. 정확히는 조금 긴장이 됐다고나 할까. 사실 그게 뭐든 좀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한데.
“야, 쓸데없이 어영부영 있지 말고 받을 거만 받고 바로 와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밥도 숙소에서 먹어.”
“알겠다니까.”
오늘따라 단단히도 일러두는 안지호에 대충 그러겠다고 답했다. 애초에 밥은 먹을 생각도 없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신도하의 작업실로 향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이제는 꽤 많이 익숙해졌다. 가는 길도.
“어서 와, 세현아.”
문을 열었을 땐, 신도하가 언제나와 같이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